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93화 (193/217)

수십 개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생각해야 한다. 시간은 없다. 기껏해야 1초. 그것마저도 지나치게 넉넉하게 잡은 시간일 것이다.

네르웬이 분신술 같은 것을 쓸 수 있는 엘프는 아니었다. 화살 여러 개를 한 번에 쏠 수 있다 한들, 내게 피해를 줄 수 있는 화살은 한정되어 있다.

나머지는, 그냥 페이크일 뿐이다. 기껏해야 두 개, 혹은 세 개. 그 정도가 진짜 그녀가 쏜 화살일 것이고, 나머지는 그저 힘없이 흩뿌린 화살, 혹은 그마저도 아닌 그녀의 기운을 담은 나뭇가지일 것이다.

피할 수는 없다. 수많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었고, 한 번 피하겠다고 생각하고 다리를 움직이는 순간 화살을 쳐내거나 방어할 틈은 나오지 않는다.

알아내야 한다. 그녀의 진짜 화살이 무엇인지.

눈과 머리, 목이나 심장으로 날아오는 화살은 무시한다.

그녀의 의도를 생각하면, 제일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은 다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네르웬의 계획에 놀아나는 걸지도 모른다.

"...하!"

수십 개의 화살 중, 복부로 날아오는 화살 한 개를 쳐냈다. 살짝 다리를 움직여 내 다리에 직격할 법한 공격을 피하고, 몸을 살짝 돌려 복부에 맞을 화살을 등으로 받아냈다.

"크흡!"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수많은 화살들은, 내 피부를 뚫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

진짜 화살은 세 개였다. 내가 쳐낸 복부로 들어오는 화살 하나, 내 다리를 노리던 화살 하나.

하지만 왼쪽 허리에 날아온 진짜 화살 하나는 피할 수 없었다.

"진심이냐?"

화살을 거칠게 뽑아내자마자, 그녀의 연격이 이어졌다.

네르웬의 화살을 정면에서 받아낸 것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은, 내 등 뒤에서 화살이 날아왔으니까.

아군의 사선에서 움직이는 것은 오싹한 경험이었지만, 그 화살이 나를 맞출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성과 상관없이, 그 화살은 언제나 마물의 급소를 꿰뚫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게,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진심이다... 지금까지 너를 대할 때,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다 해도! 지금은, 지금만은 진심이다!"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아무리 용사의 감각이라 해도, 이런 울창한 숲에서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목소리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것이, 전략적으로 올바른 판단일 리 없었다.

"너를 네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 네가 더 이상 나와 다른 사람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하는 것, 네가 용사로 소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 세계의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죄책감을 지지 않게 하는 것!"

화살이, 매섭다. 몇 번씩 화살을 튕겨내고, 피해냈지만 모든 공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숲의 끝까지 달려갈 기세로 그녀를 쫓아가 봐도, 네르웬은 아슬아슬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녀의 공격 기회는 끝이 없었고, 나는 조금씩 그녀의 공격을 허용했다.

옷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제대로 힘이 실리지 않은 나뭇가지라 해도 용사의 힘을 갖춘 내 육체를 찢을 수 없다 뿐이지, 조금 단단할 뿐인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너도... 제발, 제발 부탁이니까, 이 세계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라!"

울먹이고 있었다.

여행 중에서는 평생 내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것 같던 네르웬이, 그녀의 본심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끝이 없다.

용사의 힘은, 검을 들고 싸우는 전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힘이 절대적이라 해도, 최고의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전장은 정해져 있다.

성검의 힘을 방출하지 않는 한, 수많은 병사들을 일거에 섬멸할 광선 같은 것을 쏘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날개 같은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하피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성검을 내려놓고 자신의 궁술 실력에 의존하거나 초인적인 각력으로 높은 곳까지 뛰어올라, 허우적거리며 검을 휘둘러야 한다.

용사의 능력이라면 평범한 하피 하나에 쩔쩔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지금, 네르웬의 존재도 그랬다.

아슬아슬하게, 그녀는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내게 나뭇잎과 나뭇가지는 장애물이었다. 시야를 가리고, 걸음을 느리게 하며, 피해 가는 것도 뚫고 가는 것도 조금이나마 더 많은 시간을 소모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나무는 발판이었고, 삶의 터전이었다. 유연한 몸과 균형감각으로, 그녀는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얇은 나뭇가지를 밟으며 숲을 움직였다.

"미치겠네..."

하지만, 그녀의 화살로 내가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화살은 내 살갗을 찢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굳이 힐러가 없더라도 이 정도에 멈출 나는 아니었다.

아직 불리하지는 않다. 더 버틸 수 있고, 언젠가는 따라잡을 수 있다.

체력이 모두 고갈된 그녀의 속도가 줄어들고, 내가 그걸 쫓아갈 수 있게 되었을 때 즈음에는.

"미치겠네..."

나는 다리에 힘을 주어, 전력으로 네르웬을 쫓았다. 여기서 무리하지 않으면, 평생 이렇게 술래잡기를 할 것 같았다.

계속해서 화살이 날아온다. 어깨, 다리, 팔뚝에 각각 하나씩 화살이 박혔다. 그마저도 수많은 화살을 쳐 낸 뒤, 내 방어와 회피를 뚫고 몸에 박힌 화살이었다.

그녀의 움직임 사이에서 어렵사리 패턴을 읽어낸 나는, 네르웬의 기척이 느껴지는 곳 대신 그녀가 다음에 움직일 법한 나뭇가지로 뛰어갔다.

몇 번이고 시도한 방법이었지만, 이번은 조금 달랐다. 몇십 번 반복한 공방 끝에,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확실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 어!"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었다. 전력으로 도망치던 그녀와 전력으로 쫓아가던 나, 어느 쪽도 서로가 부딪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활을 쥔 네르웬과 그녀의 얼굴을 코앞에서 본 나, 어느 쪽도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크흡!"

"히잇!"

나와 네르웬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져 땅바닥을 뒹굴었고, 네르웬은 튀어 올라 내 반대 방향으로 위치를 옮겼다.

나는, 속도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녀의 얼굴을 눈앞에서 본 순간, 내 몸에 붙은 가속도는 어마어마했다.

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간 분명히 네르웬을 죽이고 말았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검을 바로 놓아 버린 뒤 주먹을 휘두르거나 그녀의 몸을 껴안고 땅바닥에 뒹굴었다면 네르웬을 포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순간적으로 내리기에는 내 경험이 부족했다.

"거, 참..."

네르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분명 내가 달려든 순간, 그녀의 화살은 내 머리를 겨누고 있었으니까.

그저 활시위에 놓인 손을 놓아 버리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화살은 내 머리를 꿰뚫었을 것이다. 아니, 꿰뚫지는 못했더라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도, 나도 그러지 못했다. 싸움이라 할 가치도 없는 우스운 전투였다.

나도 네르웬을 죽일 생각이 없었고, 네르웬도 나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 서로 몸만 힘들어질 뿐 진심으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습네."

어느새 다음 자리를 잡았는지, 네르웬의 화살이 날아왔다. 나는 귀찮음을 떨쳐내고 슬쩍 성검을 휘둘러 그녀의 화살을 쳐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녀의 본심이었다. 네르웬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억지로 나를 따라오는 것도, 내 힘이 두려워서, 그녀의 충동 때문에 억지로 나를 따른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랬다. 그녀는 나를 위해, 내 삶과 내 감정을 위해 내게 화살을 쐈다.

"하..."

네르웬이 했던 일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눈을 잊지 않았다.

경멸과 분노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했던 말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방금 그녀와 눈이 마주친 찰나의 순간 그녀가 보여줬던 눈은, 얼굴은, 너무나도 필사적이고 생생해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어이, 나와!"

이런 식으로 싸워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네르웬이 이 정도로 필사적이라면, 나도 이용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야 했다.

내 고함에, 네르웬은 쏟아내던 화살을 멈추고 침묵했다.

"그만하자. 힘들어. 너도 힘들 거 아니야. 이대로 가다간 끝이 없다."

경계하던 네르웬은,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지쳐 있었고, 얼굴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너, 나한테 해야 할 말 없냐? 갑자기 와서 화살부터 쏘는 게 맞아?"

어두운 밤이었다. 조금 있는 달빛은 나뭇잎에 막혔고, 그녀를 비춰 주는 빛은 아주 약하고 여렸다.

그 자그마한 빛은, 네르웬의 눈에서 떨어지는 물에 닿아 잠깐 반짝였다.

"미안... 하다. 전부. 내가 했던 일, 네가 당한 것. 모두... 그러니, 부디 돌아가... 자유롭게,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녀는, 이만큼이나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가 했던 일을 생각하면 이걸로도 한참 모자란 것 같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울고 있는 여자다. 그게 네르웬이라 해도, 내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쉽게도, 처음부터 그녀와 태평하게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었지만.

"사죄... 하겠다..."

네르웬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네르웬의 다리가 후들거리며,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떨렸다.

지금이다.

"읏!"

나는 섬광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무리 빠른 네르웬이라고 해도 한계는 있었다.

나무 위가 아니라 땅 아래다. 눈물이 시야를 가려 순간 내 움직임을 놓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 급습을 피하는 것은, 이미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그녀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네르웬을 껴안고 땅바닥을 몇 번 뒹군 다음, 나는 드디어 네르웬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잡았다."

내 몸에 깔린 네르웬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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