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91화 (191/217)

그들과 계속 대화를 나눴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은 파시어의 계획에 깊게 관여되어 있었다.

시체를 만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탁한 많은 마법 재료들을 다루고, 운송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성녀를 본 사람도 있었다.

-자, 가자! 앞을 가로막는 놈들을 무찔러 버리고, 승리를 쟁취하는 거야!

오랜만에, 성검이 말을 걸었다.

"넌 갑자기 왜 이렇게 신나 있냐."

-네가 이길 걸 알고 있으니까?

성취가 있었지만,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해 보지 못했다.

수도 근처에 있는 숲으로 걸어가는 내 머릿속은 아직도 의문과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장 몇 분 뒤, 몇 시간 뒤 일도 예상할 수 없었다.

내 생각이 틀렸을 가능성도 있고, 앞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하네. 너라면, 다 때려 부수고 죽이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 나는 그냥 용사를 좋아하는 거라고. 영웅담도, 용사의 고뇌도, 시련을 딛고 일어나는 감동도.

"그렇다면 나는,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겠지."

책임을 회피했다. 황제와 엘레노어가 나를 필사적으로 설득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결국 성검을 들겠다고 선언했다면 그들이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죽음을 그들의 탓으로 돌렸기에, 마음 놓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었다. 살려 달라고 애원할 수 있었다.

그 무게가 얼마나 큰지 알지도 못했으면서, 외부인인 내가 날뛴 것이다.

-하지만, 이제 너는 네가 뭘 하고 싶은지 깨달았잖아?

"깨달았다니, 그건..."

마음속이 조금 정리된 것에 불과했다.

-그게 아니라면, 앞으로 걸어가지도 못했겠지.

성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용사 파티의 계획은, 나를 내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렇다면 그걸 막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분명했다.

"우스워졌네."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아니고, 그렇게 받고 싶었던 선물을 제 발로 걷어차는 꼴이라니.

이래서야, 욕을 먹어도 어쩔 수 없었다.

-과거 따윈 신경 쓰지 마. 용사잖아? 원래 다 그런 법이야. 가끔 민가에 들어가서 항아리도 깨고, 금지된 구역에도 몰래 들어가 보고. 그러면서 크는 법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용사가..."

-용사야.

성검의 근거 없이 당당한 말투가,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나는 네가, 용사가 되어 이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걸. 그런 눈을 한 사람은, 한 번도 예외 없이 그랬으니까.

"...내 눈?"

거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고요한 호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 몰골을 볼 수 없었지만,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닐 것 같았다.

-너, 지금 보이는 모습은 그냥 정의의 용사야. 앞에 뭐가 있든 뚫고 지나갈 거고, 어떤 유혹이 와도 견뎌낼 수 있는 용사.

"..."

-날 믿어.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용사 보는 눈은 알아주거든.

우스웠다. 금지된 구역에 제멋대로 들어가고, 민가에 들어가서 행패를 부린다니. 그야말로 덜 자란 불량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소리치는 꼬맹이 수준 아닌가.

"그런가..."

성검이 보고 있는 용사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면, 내가 용사다워 보인다는 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 인정하자. 이제 와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다 내 책임이다.

용사 파티의 인간들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 대가를 받는 것처럼, 나는 나를 괴롭혔기 때문에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

견딜 수 없으면서 견딜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고, 할 수 있는 일이면서 하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도망쳤고,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달려들었다.

그러면서도 나 자신에게는 '이게 옳은 일이야.'라며 착한 사람인 척을 했다. 셀리아를 욕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걸어가는 것, 싸우는 것에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해서, 내가 하고 싶어서, 내 욕심으로 하는 일이다.

그걸 위해, 나는 누구와도 싸워 이길 수 있다. 내 욕망을, 내 희망을 강요할 수 있다.

-봐. 무시무시하잖아. 용사의 눈이라니까?

"어쩌면... 그럴지도."

셀리아가 마지막으로 들어갔다고 했던 숲으로, 나는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

"이곳인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셀리아의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익숙하면서도 혐오스러운 감촉의 공기가 느껴졌다.

이 숲에는 생각보다 많은 존재가 남아 있었다. 괴물과 싸웠던 숲은 아니었고, 여기 있는 이들도 괴물은 아니었지만.

나는 걸음을 멈춘 채, 성검이 아닌 존재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나와."

울창한 나뭇잎이 내게 대답해 주었다.

"역시, 아는구나."

"...얼굴 한번 보자. 나와."

하지만,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디까지 알고 온 거야?"

"모르지. 내가 아는 게 틀렸을지도 모르고, 시시콜콜한 건 잘 모르니까. 그러니까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데, 나와."

대답 대신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람 같은 화살이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쩌면,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직접 느끼니 감회가 좀 새로웠다.

네르웬의 위치가 수없이 바뀌었다. 그녀의 기운이 흩어졌다 다시 뭉치고, 드러나기와 사라지기를 수 차례 반복했다.

"이런 것도 할 수 있었나?"

"준비를 충분히 하면, 나무와 친구가 될 수 있지. 뭐, 나는 이런 곳에는 재능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나를 향해 금방이라도 화살을 겨눌 듯한 누군가의 형체가, 이 숲 안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었다.

눈이 밝지 않거나, 아예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좀 특이한 나뭇가지가 많네.' 하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 하나하나에 기운이 새겨져 있었다. 어느새, 그녀의 기운과 냄새가 묻은 나뭇가지가 이 근방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아주 작은 움직임. 바람, 짐승, 곤충. 혹은 나무 그 자체의 움직임이, 교묘하게 내 신경을 자극했다.

포위당한 기분이었다. 진짜 그녀를 분간해낼 수 없다.

아주 잠깐, 그녀가 입을 열 때를 제외하면 누가 진짜인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교묘했다.

"싸울 생각이야?"

"아직은 준비가 안 되었거든. 나는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집 지키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녀가 내게 활을 겨눌 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해 봤었지만, 그게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괜찮은 거 맞아?"

"당연히 아니지. 나는 한 번, 네 모든 목숨과 영혼을 네게 바친다고 선언했다. 태어날 때부터 네 씨앗을 받기 위한 존재이기도 하지."

수없이 많은 네르웬이, 각자 음절을 나눠 내 말에 대답한다.

그중 몇몇은 너무 작거나 모호해서, 마치 흩날리는 바람이 속삭이는 것 같다.

"지금도, 내 정신이 깎여 나간다. 육체가, 본능이, 약속을 지키라고 속삭이고 있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럼 적당히 나를 보내 줘도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힘들 것 같은데."

그녀의 몸은 가벼웠지만, 목소리는 무거웠다.

수천, 수만 개의 거목을 태우고, 거기서 끓어오르는 열기가 목을 타고 새어 나와 어설픈 언어를 만드는 것 같다.

"이딴 것에... 굴복할 것 같으냐."

"좀 편해져도 괜찮잖아. 그렇게 고생을 많이 했으면."

말이 멈췄다. 어쩌면, 그녀의 역린을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편해져... 편해져, 편해져. 그래! 나는 편한 길을 선택했다! 본능에 굴복했다! 태어날 때부터, 나를 묶고 있던 감각에 무릎 꿇었다!"

숲이 울부짖었다. 대지가 그녀의 고통에, 분노에 같이 떨리고 있었다.

"너를 처음 봤을 때, 너무나도 강렬하고, 알기 힘든 냄새를 맡았다. 그게 주는 감각이, 성욕이라는 감정이 너무나 추잡스럽고 역겹고 불쾌해서! 그 책임을 네게 돌렸다!"

"이 감정은, 흔들림은, 충동은 다 너 때문이라고! 그래서 경멸했다! 그게 제일 편했으니까!"

"누구보다 고귀한 엘프인 본인은, 그딴 쓰레기 같은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믿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혐오했다, 그래서 멸시했다, 그래서 증오했다!"

마치 거칠게 줄을 튕긴 현악기처럼, 나무들이 웅웅거리며 소리를 낸다.

"그게 끝이 아니다. 다음도, 그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어! 네가 필요하다는 걸 안 나는 너를 힘으로 제압하려 했다. 그게 편했으니까."

"그 문제를 깨달은 다음에도, 어찌 되든 세계수까지만 가면 될 거라고 생각해서 네게 무릎 꿇었다, 그게 편했으니까! 그리고, 세계수에 도착한 다음에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지지 않았단 말이다..."

네르웬이 울부짖었다.

"네 씨앗을 받아야 한다는 책임을 인정하고 그걸 따르려 하지도 않았다, 내가 너를 증오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알고 수치심에 내 목을 끊지도 않았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냥, 너를 따라다녔다. 네가 돌아갈 때까지 함께 싸워 주기만 하면, 그럭저럭 편리하고 안락한 여행을 만들어 주기만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편했으니까!"

한껏 절규를 토해낸 그녀는, 흐느끼듯 남은 말을 내뱉었다.

"이대로 내 본능에 굴복하고 네 명령을 따른다면, 몸은 편해지겠지. 마음도 편해지겠지. 네가 여길 지나가게 놔 두고, 네 귀환을 네 손으로 막는 꼴을 보면서, 들쥐처럼 네 냄새를 맡으면서 살아가는 미래. 그건, 분명 편한 선택일 거다."

시작되었다. 수십, 수백, 아니 수천 개의 화살이 나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아. 네게 화살을 쏘는 순간 내 심장이 멈추더라도, 여기서 너를 막을 거다. 반드시 돌려보내겠다."

활시위를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그게 진짜 너를 위한 일이라고 결정했으니까."

그녀의 마지막 말은,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에 가려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태어난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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