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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90화 (190/217)

머리 뒤에는 털이 덮여 있었다, 강아지 같기도 하고 늑대 같기도 한, 하얀색의 복슬복슬해 보이는 털이.

이빨은 날카로웠고, 언뜻 보이는 근육은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이었다. 그것도, 내가 봤던 사람이었다.

"아저씨..."

"허, 기억하는구먼. 뭐, 그리 쉽게 잊혀질 만한 몰골은 아니지. 응?"

넉살 좋게 웃은 촌장은, 창을 대충 내팽개친 다음 내게 달려왔다.

"오랜만이야! 언제 얼굴 볼 수 있나 했다고."

숨이 막힐 듯한 포옹 끝에, 나는 겨우 풀려나 그의 얼굴을 뜯어볼 수 있었다.

기억나지 않을 리 없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파시어의 개조를 받은 이들이었다.

살아남아서, 여기까지 와 있었을 줄은 몰랐다.

"마침 식사 준비 중이었는데, 손님이 오셨군! 따라오게나."

"아, 저, 그게..."

거부해 보려 했지만, 그의 손이 거칠게 나를 끌어당겼다.

어차피 정보를 얻어야 했으니, 이 정도 시간은 투자해야 할지도 모른다. 반쯤 단념한 나는, 말없이 그에 손에 잡혀 식당이 있는 곳까지 따라갔다.

"여기 보게! 짐꾼 나리가 오셨어!"

"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지, 진짜요? 멀리 계신 줄 알았는데..."

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에어컨을 지나치게 세게 튼 사무실에서 느낄 법한, 선선하고도 차가운 바람.

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의 등과 어깨에 자라난 털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열대에서나 볼 법한, 시원하고 얇은 옷이다.

"그, 그런데... 밖에서는 저분이 용사님이라고 하던 것 같던데..."

"뭘, 우리는 엘레노어 황녀님이 어떻게 싸우는지 봤잖나? 쓸데없는 헛소문에 휘말리긴... 뭐, 우리에게는 저분이 용사님이긴 하지. 마을 전체를 구하셨으니!"

마을에서 보였던 문양이, 지하에 펼쳐진 이들의 보금자리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황실에서 먹던 것보다는 훨씬 거칠고 야생적인, 고기 본연의 향기가.

"누가 침입했다는 경보를 들었을 때는 어떤 예의 없는 놈이 식사 시간에 쳐들어오나 했는데, 손님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뭔가. 때를 잘 맞춰 왔어."

"아, 아니... 감사합니다."

"우리들이 얼마나 빨리 먹는지 보게 되면 깜짝 놀랄 거야. 조금만 늦었어도, 저 많은 고기 대신 뼈다귀들만 식탁에 가득했을 테니까!"

그때도 느꼈지만, 호탕한 사람이었다.

마왕군의 영지와 가까운 곳에서, 그 추운 혹한을 버티면서도 외부인에게 친밀한 마을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에는, 그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게, 드릴 말씀이..."

"아, 일단 먹게! 뭘 하든 속이 든든해야 할 수 있는 법 아니겠나?"

그는 내 말을 가볍게 흘린 뒤, 나무 숟가락과 돌로 만들어진 포크로 앞에 놓인 스튜와 고기를 빨아들이듯 먹어 치웠다.

"그럼... 감사히 먹겠습니다."

용사의 힘이 있어도,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었다. 참을 수는 있었고, 먹지 않는다고 죽지야 않겠지만 감각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맛있네요."

스튜는 간이 잘 배어 있었고, 그 충격적인 비주얼에 비하면 고기의 잡내는 거의 나지 않았다.

온종일 식사를 하지 않았던 나는, 어느새 내 앞에 놓인 음식들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런 곳에 살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거참, 그 쪼끄만 마법사 나리가 말도 안 해 줬단 말이오? 키만큼이나 속도 좁군. 나 원 참, 몰랐으면 많이 섭섭할 뻔했다고."

살아 있었다. 역시, 거기에는 가치가 있었다.

마을 하나 분량의 사람이 그 지옥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건... 뭡니까?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보면 모르겠나. 지하 도시일세. 몸이야... 이 변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땐 좀 답답했지만, 그럼 또 어떤가, 여기 모두가 있고, 고기가 있고, 일터가 있는데!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아아!!!"

이 미친 듯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덕분에 용사 파티가 큰 도움을 얻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설산에서, 모두가 지쳐 쓰러져 있을 때 우리를 찾아 구해준 사람들은 이 마을 사람이었으니까.

그 도움 없이도, 다른 파티원들이라면 어찌어찌 제 살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는 죽었겠지만.

물자와 협조를 얻을 때도, 현지 주민의 협조를 얻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다르다.

용사 파티를 거부하는 마을에서 물자를 징발하는 것은, 마음을 도려내는 일이었다.

용사의 검으로 그들을 위협하고, 거부하는 이들의 다리를 엘프의 화살로 꿰뚫은 뒤, 분노에 찬 사람들의 식량을 뺏어 온다는 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당연히 알 줄 알았는데... 마법사 나리가 우리가 살 곳을 마련해 주었네. 처음에는 좀 더 허름하고 볼품없는 지하실이었지만, 차츰차츰 개발하고 확장할 수 있었지."

모든 마을 사람들이 괴물이 되어버린 이후에도, 그의 긍정적인 미소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입구가 도시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네. 밤에 몰래 밖으로 빠져나와 사냥을 하거나, 마술사들의 실험을 대신해주곤 하지. 뭐, 먹고 살 만하네!"

"마술사들의 실험이요?"

"이 몸은, 냉기를 퍽 잘 견디는 것 같더군. 마법으로 보호막을 치기에는 비효율적인 실험들을 우리가 대신해주는 거지."

"답답하지는 않으십니까?"

"너무 다시 산으로 오를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이 몸으로는 무리지. 뭐, 밤에 잠깐 사냥을 나서는 정도로는 들킬 일도 없고, 마법사 나리가 인간으로 변하는 물약도 만들어 주고 갔으니까. 시간제한이 있긴 하지만."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들이 사는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을 괴물로 만든 파시어를 비난했을 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파시어는, 그녀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누구보다 꼼꼼하게.

"왜 표정이 굳나! 이거, 진짜로 살아 볼 만 하다니까. 몸도 편하고 마음도 그럭저럭 편해. 우리가 원래 어디서 살았는지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아니요, 그냥... 어떻게 얼굴이라도 한 번 뵀어야 했는데, 좀 죄송해서요."

"그럴 필요는 없네! 뭐, 우리도 할 건 다 해. 저기 저 총각은 원래 수도 살던 사람인데, 밤에 어찌어찌 눈이 맞아 여기 들어와 살게 됐지 뭐냐!"

"정말요?"

등에 털이 없는, 평범한 남자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작게 웃었다.

모두,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복수를 꿈꾸는 사이, 아니 어쩌면 마왕과의 싸움이 끝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파시어는 이걸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도.

"잠시만요."

파시어라면, 얼마든지 효율의 논리 안에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녀 안에서도, 사람의 목숨은 가치가 작지 않은 물건일지도 모른다.

시체를 모은 것도 그렇다. 그녀의 마술과 정치력이라면, 비싼 돈을 들여 시체를 사들일 필요 없이 영지 간의 교전을 일으키는 것이 더 편하다.

빠르게, 안정적으로 시체를 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체를 파는 것이 돈이 될 정도로 많은 시체를 비싸게 사들였다는 것은, 파시어가 그만큼 많은 재산을 소모했다는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마룡을 탄생시키는 게 그녀의 목적이라고 한다면, 시체를 가지고 이런저런 마술을 부리는 것보다 그냥 마룡이 사람을 죽이게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테니까.

"최근에 파시어가... 따로 실험을 부탁한 일은 없었습니까?"

"있긴 했는데, 실험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네. 그냥 땅 파는 일이었어. 이런 느낌의 지하실을 만드는 일. 그거 말고는 짐 옮기기 정도."

파시어의 염원은 영생이다. 생명 창조가 아니다. 과연 용을 탄생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법을 그녀가 구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변이라면. 영생을 위해 수없이 많은 시도를 해 봤다고 했던 그녀였다. 혼을 옮기는 술법과, 가짜 육체를 움직이는 법까지.

자신은 리치와 같은 꼴을 영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그 성과들을 무시했던 파시어였지만, 그녀라면 내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변이'를 구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점. 이상한 점이라면... 최근에, 무언가 우릴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네."

멍청했다. 내가 왜 이 사실을 더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룡이 되기 직전의 용이다. 생존본능보다 파괴욕이 앞서는 게 당연한, 흉악한 짐승이다.

그런 놈이 날뛰는 데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이걸 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상황이 워낙 아슬아슬했기에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것마저 그녀의 계산 안에 있었다면. 내가 달려오는 것을 깨달은 다음, 딱 그걸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계산된 폭력성을 드러냈다면.

그녀의 마술로도, 용의 흉포함을 그토록 정밀하게 제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그, 전설 속에 나오는 괴물 있잖나? 그런 게 어디선가 우릴 지켜보고, 우리가 만든 지하실 안에 숨어 있는데... 공격하지는 않으려는 듯한 느낌."

파시어는 용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니, 만들었지만, 그게 자유롭게 날뛰도록 내버려 둔 것이 아니었다. 생명이 아니라 껍데기를 창조했다.

그 껍데기 안에 누가 들어가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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