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87화 (187/217)

엘레노어가 황제가 되기로 선언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수도 전체로 퍼졌다.

숨길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숨길만 한 사람이 있는 일도 아니었다.

엘레노어를 적대하는 자들은 '이런 살인귀를 황제로 세울 수 없다!'라고 주장했고, 엘레노어를 지지하는 자들은 '드디어 황녀가 검을 뽑았다!'라며 환호했다.

어느 쪽이건, 이 사건을 널리 알리려 했다.

하지만 강세를 보이는 쪽은 엘레노어의 지지자들이었다.

간단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엘레노어는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나와, 서서히 수도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던 무법자들을 일시에 정리했다.

황족에게서 들어온 돈으로 차츰차츰 세를 넓히려던 범죄자 조직이나, 세상이 망했다고 생각하고 무차별적인 범죄를 일으키는 양아치들은 기사단의 검 앞에 녹듯이 사라졌다.

용과의 싸움과 괴물 출현으로 인력이 부족해진 경비대는, 당장 그 조력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은 이미 엘레노어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에게 사기를 쳤고, 황제의 친딸이 맞고 아니고는 그들에게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지금 당장 검을 든 이는 엘레노어였다. 지금 당장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이들은 엘레노어의 기사단이었으며, 지금 당장 그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범죄자들을 쓸어버린 것도 엘레노어의 세력이었다.

그리고, 이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상황이 많이 바뀌었을지언정, 엘레노어의 백금 기사단이 범죄자들을 처단하고 시민의 안위를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은 남아 있었다.

마왕 퇴치 전에 하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했을 뿐이니, 그녀를 적대하는 이들도 쉽사리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들이 더 두려워하는 건, 그냥 죽음이었다. 길거리에서 소문을 퍼트리려면 적어도 자기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

남은 황족들은 엘레노어의 지지를 깎아내리기 위해, 그녀가 범죄자뿐만 아니라 거슬리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제국을 찬탈하기 위한 사생아이자 창녀인 엘레노어가, 제국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선동은 시민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엘레노어가 '제국을 찬탈한다.'라는 개념 자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수도에서 일어난 소란과 분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던 사람 중에서는, 엘레노어가 아직 용사고 마왕 퇴치 후 쉬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 상황이 어찌 되었건, 차기 황제가 엘레노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적었다.

말도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크든 작든, 평범한 시민이라면 엘레노어에게 해를 입은 것보다 덕을 보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도적이나 몬스터의 출현으로 인해 통행로가 막혀 막대한 손해를 볼 뻔한 상인이, 백금 기사단의 출전으로 인해 계획된 상행을 마칠 수 있었다.

거대한 늑대 무리에 맞서 자신을 지켜야 하는 농민들은, 거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나타난 엘레노어의 랜스 덕분에 평안을 되찾았다.

그런 사람을 '창녀'라고 섣불리 격하시키는 것은, 그 말의 의미와 진위를 가리지 않고 반감을 샀다.

가장 큰 문제는, 그걸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다른 황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 엘레노어가 나타나 그들을 죽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입이 막혔다. 엘레노어는, 황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

무의미했다. 이번 만남에서도, 진정 중요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정원은 아름다웠고, 꽃은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답답함에 타들어 갔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나, 나중에도 저희 황자 전하를 꼭 한번 만나 주신다면..."

"기회가 생길 때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환대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정작 이럴 때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용사 파티에서 정보가 필요할 때는, 각자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해냈다. 나는 민간인 사이에 끼어서 편안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네르웬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말도 안 될 정도로 지엽적이고 오래된 지식이라도, 파시어의 머릿속에는 들어 있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어떻게든 내게 만남을 요청하는 황족들에게, '잠깐 대화할 기회'를 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렇다 한들, 그들도 내가 원하는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화제는 황제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와 엘레노어의 만행에 대한 비난이었으니까.

애초에, 나조차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할지 확신하지 못했다. 파시어가 죽기 전에 뭘 하려 했는지 알고 싶다? 엘레노어가 왜 바뀌었는지 알고 싶다? 어느 것 하나 의미 없고, 무가치한 질문일 뿐이다.

"시, 실례지만, 다시 만나 주실 거라고 확답이라도..."

"죄송합니다."

아쉽게도, 이들에게는 더 뽑아낼 정보가 없었다.

기껏해야 분노 섞인 징징거림이 전부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적법한 황제가 되어야 할 사람은 황자 누구누구다, 엘레노어가 기사 몇십 명을 죽였다더라, 그 과정에서 황궁의 보물고를 털었다더라.

무의미한 말이다.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음?"

"요, 용사님. 혹시 생각이 바뀌신 건..."

아니다. 어쩌면, 중요한 정보가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파시어를 통해 그들의 목적과 수단을 드러내겠다는 방법은 전부 실패했다. 아직도 경비대 중 몇몇이 남아 마탑을 수사하고 있었지만, 관련자 몇 명을 더 체포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움직임을 보여준 파시어지만, 그녀 수준의 마법사가 흔적을 남길 리 없었다.

하지만 엘레노어라면, 아주 조금, 뒷마무리가 부실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수도 있었다.

"황궁의 보물고라는 거, 언제 털린 겁니까?"

"저, 저희로서도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마 용사님이 로렐에 계실 때 이미 범행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황제 폐하가 살아 계실 적에..."

이상하다.

엘레노어가 황제가 되려 한 건, 내가 그걸 단호하게 포기한 다음이었다. 그 의사를 그녀 앞에서 드러낸 다음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내 말을 '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나 에네렐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밖에 없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황궁의 보물고를 털 이유가 없다.

차라리 그 말을 들은 뒤에 황궁의 보물을 원했다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황제가 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해, 인간을 죽이는 검이 필요했을 테니까.

하지만, 순서가 반대다. 그녀는 황제라는 자리와 상관없이 살인검을 필요로 했거나, 어쩌면 거기 있을 다른 유물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용사님! 잠시, 잠시만 더 시간을!"

나를 잡으려 하는 시종의 팔을 가볍게 떨쳐내고, 나는 황궁으로 달려갔다. 어중간하게 마차를 타는 것보다 내 걸음이 더 빠르다.

주위 풍경들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파시어가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그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셀리아는 웃었다. 비정상적이었다. 그녀는 나에 대한 죄책감에 신음하고 있었다. 내가 애써 거기에 눈을 돌리고, 인정하지 않았을 뿐.

그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를 변화시킨 요인이 있다.

무언가, 그녀에게도 역할이 있다. 희생이 있다. 셀리아가 지고 있는 죄책감의 짐을 잠시나마 놓을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고통이.

분위기가 흉흉한 탓인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는데도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에게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누군가를 치고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잠시 후, 나는 빈 황궁에 도착했다.

사람은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에 불과했다. 간단한 대화로 내가 용사라는 것을 경비병에게 증명한 뒤, 나는 황궁 내부로 달려갔다.

길을 잃었다. 나는 주위에 있는 병사 중 한 명을 붙잡고, 추궁하듯 거칠게 물었다.

"황궁의 보물고, 어디 있습니까?"

"네? 그, 그건 용사님이라도... 그..."

"거기 있는 걸 쓰려는 게 아닙니다. 아니, 그게 어디 있는지보다... 그걸 관리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헤, 헨리 경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분은 아마 황궁 지하 감옥에..."

"감사합니다!"

방향이 정해졌다는 생각 때문인지,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급했다. 어떻게든 허비한 시간을 보충해야 한다는 상념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런 곳에 지하 감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위 경비병에게 묻고 또 물어, 나는 그곳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 보니, 감옥이라기에는 너무 아늑하고 깨끗하지만, 독방이라기에는 쇠창살로 막혀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헨리 경! 헨리 경! 계십니까!"

방이 그리 많지 않았고, 대부분은 비어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하얀 수염의 노인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살 너머로 내 눈을 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황궁 보물고에서 여러 물건이 도난당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그 때문에 제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실례지만... 용사님이십니까?"

"네. 지금, 좀 많이 급해서 그런데... 어느 물건들이 도난당했는지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고민했다. 상식적으로, 감옥에 있는 사람이 그런 비밀스러운 정보를 술술 쏟아내는 것은 금지된 일이다.

하지만 경비병도, 갇혀 있는 그도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이걸 허용해 줘도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이 감옥, 아니 황궁 전체에 맴돌았다.

"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아마 알고 계시다시피, 살인검. 1800년 전부터 내려온 마검이 그중 하나고, 그 다음은..."

그의 말이 멈췄다. 무언가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순수하게 어떤 물건이 도난당하였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성한 로브. 그게 전부입니다."

어쩌면, 그게 열쇠가 되어 줄지도 모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