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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80화 (180/217)

내가 수도 근처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술식이 끝난 다음이었다.

멀리서 느껴지던 사악한 기운이,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더 강렬해졌다.

진원지는 수도 그 자체였다. 땅 이곳저곳에, 마력으로 새겨진 문양들이 일어났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하지만, 수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지간한 일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거대한 짐승이 포효하는 소리가 온 천지에 울려 퍼졌다.

"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버렸다는 절망감이었다.

"용... 이라고?"

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면, 수도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공포에 떨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용이 나타난 곳을 향해, 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본능적인 공포심이 내 머리를 자극했다.

용과 싸워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전설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 있었다.

용사 파티는 때때로 거대한 괴물과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용사 파티'였기에 싸움이 성립되었던 것뿐이다.

지금 내 힘은, 전성기의 엘레노어보다 확실히 약하다.

용사의 힘을 얻은 뒤에도, 내 전투 경험은 꽤 많이 늘어났다. 강한 적들과 싸우기도 했고, 엘레노어와 수련했던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용사인 내가 거대한 적과 싸워 본 경험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중간지대 안쪽에 있던 괴물들을 처치했을 뿐.

게다가, 그때는 적어도 용사 파티로서 움직였다. 엘레노어는 용사의 힘을 잃었다고 해도, 싸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강력한 검사였다.

적에게 치명타를 넣을 수 있을 만큼 강하면서도, 필요한 곳에 공격을 넣고 비교적 적은 보조를 받아도 쓰러지지 않는, 말 그대로 강력한 검사.

파시어의 마법, 셀리아의 신성 주문, 네르웬의 화살도 만만치 않았다.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곳에 화살을 날려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전략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의 체력과 상처를 입었을 때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중대한 약점은, 성직자의 보호를 받는 한 대부분 극복할 수 있는 약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없는 지금은, 나는 거대한 괴수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평범한 괴수도 아니다. 용이다.

이 세계에서 용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책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인간을 초월한 마법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용은 그 크기마저 초월한 날램과 완력, 단단한 비늘과 그보다 더 강력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그 발톱의 날카로움과 뾰족한 이빨, 끔찍한 완력은 오히려 '상대가 인간일 때는' 그리 도드라지는 장점이 아니었다. 인간을 죽이는 것은, 그것의 십 분의 일의 힘만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해야 했다.

수도가 더 소란스러울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했던 것에 비해서는 훨씬 조용했다. 이곳저곳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용이 땅으로 내려왔기에 하늘을 보며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놈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대규모의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 싸우고 있는 이들의 함성 소리는 들렸으니까.

부리나케 그곳으로 달려갔을 때, 용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 사람이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용을 향해 뛰쳐나갔다.

"흐으으읍!"

발목이 뒤틀린다. 우측에서 달려들었던 나는, 정면에서 들어오는 거대한 용의 충격과 섬광 같은 속도로 달려들었던 내 속도에 의한 반동을 한쪽 발로 전부 받아들여야 했다.

용의 거대한 코가 내 검과 부딪혔다. 검기를 뽑아내지 않으면 벨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

"크으읏..."

하지만, 검기를 뽑아내기 위해 아주 약간의 생각이라도 하는 순간 이대로 밀려 버릴 것 같았다.

나는 검에 온 힘을 집중한 채, 용의 머리와 힘겨루기를 했다.

파충류 특유의 세로로 찢어진 눈이 나를 압도했다. 더 마주치고 싶지 않아, 나는 거칠게 힘을 주어 용을 밀어붙였다.

"크르르..."

밀려났다. 조금이지만, 내 자그마한 팔뚝에서 나오는 힘이 저 용의 거대한 머리를 밀어내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용이 날개를 펴고 가볍게 날아올랐다. 용은 가볍게 상황을 관조하며, 내 존재를 눈에 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요, 용사님!"

누군가 했더니, 익숙한 얼굴의 경비대장이었다. 좀 무리해서라도 구하기 위해 달려들지 않았다면, 나중에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부, 분명 그 숲에 있는 괴물들을 처리하고 오신다고..."

"이미 끝냈습니다. 수도에 이런 놈이 나타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지만요."

눈치를 보아하니, 그는 내가 아직도 숲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수사 과정에서 내 실적이 그리 신통하지는 않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누굴 찾아야 하는 문제였다. 명확한 적을 때려 부수는 데에는, 용사의 힘을 아낌없이 쓸 수 있었다.

"그르르르..."

그것마저, 용을 상대로라면 통할 거라 장담할 수 없었지만.

두렵다. 이성적인 두려움이라기보다는, 내 사고를 마비시키는 것 같은 묘한 두려움이 느껴진다.

'네가 인간이라면 이걸 보고 무서워해야 해!'라고 누가 귓가에서 계속 소리치는 것 같은, 기묘하고 기분 나쁜 감각.

평범한 병사들이 이것과 맞서 버틸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쉽게 볼 적이 아니다.

"흐읍!"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용에 두려움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것보다 몇 배는 강할 거라 예상했다. 전승에 기록된 그대로의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정도로 밀려나서는 안 되는 생명체가 용이다.

용과 싸웠다는 전승은 오래전에 기록된 것이었으니, 오류나 왜곡이 있을지도 모른다.

안정된 자세도 아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을 지킬 것인지, 용을 밀어낼 것인지도 확실히 정하지 않았었다. 스텝은 꼬였고, 검에는 제대로 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어냈다. 이게 의미하는 건...

"이길 수 있다."

용이 날개를 접고 땅바닥에 내려앉았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저 거대한 몸덩이에 가속력까지 실린 공격을 받아내는 것보다는, 조금 위험하더라도 내가 먼저 달려드는 편이 나았다.

"하아아압!"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내가 여기서 물러나면 이곳에 있는 모든 병사들이, 더 나아가 수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

검에서, 푸른색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없이 미약했지만, 당장은 이걸로 충분했다.

"크흡!"

그었다, 거대한 허벅지에 뛰어든 나는, 용의 다리에 검을 꽂았다.

용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분노한 건지, 나를 잡기 위해 몸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강철 같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고, 살짝 날았다 다시 내려앉으며 앞발을 내리치고 뒷발로 대지를 찍었다.

나는 간발의 차이로 그 공격을 피했다. 찍힌다고 해서 즉사하지는 않겠지만, 그 충격을 버티는 데 시간을 썼다간 평생 이 용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잘해 줬네!"

라인하르트의 검이 매섭게 용의 다리를 찔렀다.

싸울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는 정말 무시무시할 정도로 엄청난 검사였다.

항상 그가 있어야 할 위치에 있다. 내가 조금 빈틈을 보일 때마다 용을 경직시키고, 용과의 싸움에 집중한 내가 공터 밖으로 나갈 것 같으면 어김없이 소리쳐 정신을 잡아 준다.

싸움의 여파가 빠져나가 희생자가 생기는 일을 막기 위해 수많은 황실 기사들과 병사들을 지휘하고, 그 과정에서는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강한 사람을, 나는 겨우 '완력이 더 세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이겼던 건가.

용의 다리에 상처가 늘어가고 있다. 용사의 힘을 썼음에도 한 번에 용을 벨 수는 없었지만, 더 깊고 강한 상처를 꾸준히 만들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려들던 용은, 갑자기 우뚝 멈춰 나를 보았다.

"...음?"

무언가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킨 채, 용의 움직임을 살폈다.

생각보다는 훨씬 약하다. 단지 내가 지나치게 강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무언가 숨겨 둔 수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용은 날개를 펼친 채 가볍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리들은 그저 멍하니, 그 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발리스타의 화살이 용의 날개에 닿았지만, 끄떡도 하지 않고 용은 하늘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와..."

날개를 억누를 법한 마법도 없었고, 멀리서 용을 견제할 궁사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쫓아냈다. 용은 지능이 높은 생물이고, 특별히 인간에게 악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어디론가 날아갈 것이다.

마기가 흉포한 놈이었으니 다른 곳에서 피해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이미 다리에 충분한 상처를 입혔다. 당분간은 숨어서 치료에 전념할 것이다.

"이, 이겼습니다! 용사님!"

"용사님이 우리를 구원하셨다!"

걱정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가는 용을 보던 병사들이 환호의 함성을 내질렀다.

내 입장에서는,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저런 괴물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저들이 훨씬 비현실적이고 대단해 보였지만.

뒤를 돌아보니, 라인하르트와 기사들, 병사와 경비대들이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아직 찝찝한 기분이 남아 있었지만, 이들 앞에서 그런 표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나도, 내가 지을 수 있는 표정 중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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