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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79화 (179/217)

거대한 용의 입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브레스다! 모두 피해!!!"

경비대장은 용과 거리를 둔 채, 화살을 쏘며 경비대를 지휘했다.

검은 용의 브레스가 검붉은 불을 뿜어냈다. 뜨거운 열기가 경비대의 바로 앞을 뜨겁게 메웠다.

"으아아아아!!!"

"방패, 방패 놓지 마! 죽을힘을 다해 버텨!"

경비대가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검게 타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빗나간 브레스에서 새어 나오는 열기만으로도 경비대 전체를 꼼짝 못 하게 만들기는 충분했다.

"뜨거워, 손이, 녹아버릴 것 같아!"

"네가 방패를 놓치면 우리 모두 녹아버릴 거라고! 제일 먼저 녹는 건 네 몸일 거고!"

"으으으으..."

하지만, 전열에 선 병사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표정은 공포에 물들어 있었지만, 적어도 전열을 벗어날 정도로 멀리 도망치는 이는 없었다.

멍청한 드래곤이 맨땅에 브레스를 뿜어낸 탓도 있었겠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비대들은 자신의 능력 이상으로 민첩하게 움직였고, 굳건하게 버텼다.

"지금이다!"

그리고, 라인하르트가 이끄는 황실 기사들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옅은 검기가 반짝였다. 강력한 힘이 검에 휘감겼고, 그들의 검격은 강철 같던 드래곤의 피부마저 벨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대, 대단하십니다!"

경비대들은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기사들의 위대한 싸움을 흥미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멍청이들아, 아직 싸움이 끝나지 않았어! 용이 내려온다!"

그 말을 들은 경비대원들은 일제히 창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아!"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간 용의 발톱에, 병사들이 혼란에 빠졌다.

"찌, 찔러! 도망치지 마!"

용의 발뒤꿈치가, 전열 마지막에 있던 병사의 코앞에 있었다. 후열을 지키는 경비대 조장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긴 창으로 용을 찔렀다.

"죽어라!"

황실 기사들이 검기를 넣어 검을 휘둘렀다고는 하지만, 그건 신성한 용사의 검기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약한 검기였다.

그냥 철보다는 강했기에 용의 비늘에 상처를 약간 낼 수 있었지만, 기껏해야 손가락 반 마디 정도의 상태였다.

용의 종아리가 그 크기에 비해 훨씬 작다고는 해도, 깊은 상처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병사의 눈에는 그 허점이 반짝이듯 빛났다. 이대로 찌르면, 저 거대한 괴물이 쓰러질 것만 같았다.

"으아아아!"

그의 창은 당연히 용의 비늘을 뚫을 수 없었지만, 이미 난 상처를 '조금' 더 헤집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자, 자극하지 마라! 피해! 전열을 정비해!"

그걸 보는 경비대장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용의 자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주 약간 요동쳤지만, 그건 단지 발뒤꿈치를 찌른 인간을 내리치기 위해 꼬리를 하늘 높이 치켜들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쳐!!!"

하지만 그의 말은, 창을 깊게 박고 고양감에 젖어 있는 경비대원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용이 뒤를 힐끔 쳐다본 다음, 그 거대한 꼬리를 내리쳤다.

"안 돼!"

하지만 용을 보고 있던 경비대장은, 그 뒤에서 섬광같이 움직이는 인간 한 명을 보지 못했다.

거대한 충격이 대지를 강타했다. 땅이 파헤쳐지고, 먼지가 솟아올랐다.

"아... 어?"

경비대장은 희망 섞인 위화감을 느꼈다. 아무리 저 사악한 용의 거대한 꼬리라 한들, 인간 한 명을 짓눌러 죽였는데 저 정도로 청량하고 저항 없는 소리가 나올 수는 없었다.

"용맹한 병사여, 몸은 무사한가?"

용에게 창을 찌른 병사는, 늙은 기사에게 안긴 채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경..."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났다. 늙은 기사는 누구보다 민첩하게 움직여, 약간은 용맹하고 과하게 무모했던 병사를 구해냈다.

"정신 차려라!"

"라인하르트 경이 위험하다! 모두 발사 개시!"

"바, 방위군!"

경비대장은 왜 이제서야 왔냐고 화를 내려 했지만, 그들이 가져온 물건을 보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대형 노포들이 바퀴에 올라간 채 차례차례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설치한 물건도 있는지, 거대한 창 크기의 화살이 용을 향해 날아갔다.

"계속 공격하시오! 황제 폐하를 위하..."

너무나도 익숙한 구호를 외치려던 경비대장은, 이제 황제가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고 말았다.

"제국을 위하여!"

인간의 힘을 초월한, 무정하고 거대한 나무 기계장치가 용을 강타했다.

비늘을 뚫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약한 충격은 줄 수 있었다.

그 움찔거리는 틈을 타, 다시 기사들이 달려들었다. 대부분은 검을 뽑아 용의 발과 다리에 미약한 상처를 입혔지만, 몇몇 기사들은 자신의 애마를 데려온 뒤 랜스 차징을 시작했다.

"으아아아!"

하지만, 모든 이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용은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민첩했고, 조금이라도 용의 시선을 오래 끈 말과 기사들은 손짓 한 번에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몇몇 기사들이 용을 죽이겠다며 찾아왔지만, 그들은 검을 한 번 휘두르지도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그 정도면 실력은 부족할지언정, 용맹은 충분한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자유 기사들이, 멀리서 용의 포효를 듣는 것만으로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쳤으니까.

거대한 함성은 하나둘씩 사그라졌다. 처음에는 상처가 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던 기사와 경비대들은, 길어지는 싸움에 절망적인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용을, 죽일 수 없는 것 아닐까.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라도..."

경비대원들은 용맹하게 싸웠고, 기적적으로 아직 사망자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영원히 싸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친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쓰러진 순간, 희생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경비대장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꺼내지 않으면 아무도 꺼내지 못 할 말을 해야 했다.

"후퇴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두 단어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황실 기사들은 강했지만, 용에게 치명타를 입히지는 못했다.

다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면, 날개가 없는 그들은 결국 용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이 미묘한 균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후퇴..."

경비대는 대부분 탈진한 상태였다. 남은 이들은 그저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을 뿐, 얼마 못 가 쓰러질 것이다.

황실 기사들은 강력했지만, 이들이 용에게 상처라도 낼 수 있었던 것은 경비대가 이목을 끌어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도 방위군도 도착했으니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겠지만, 결국 인간이 먼저 지칠 것이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합니다. 이 수도에서. 말도 안 되는..."

이길 수 있는 상대다. 용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제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지금 이들이 여기서 후퇴한다는 것은, 목숨이 아깝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목숨을 가치 있는 곳에 쓰겠다는 말이다.

분노한 용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수도에 사는 수많은 민간인은 자기 집 안에 틀어박혔을 뿐이고, 그 집은 용에게서 절대 안전하지 않다.

'

그러니, 후퇴를 결정한 순간부터 경비대와 수도 방위군은 뒤로 돌격해야 한다. 각자 살길을 찾아 도망치는 게 아니라, 수도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전부 설득하고 강요해 대피시켜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직접 그들이 저 용을 죽일 수 없다면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많이 왔어도..."

충분한 준비만 되었다면. 용을 죽이는 주문이 지금 싸우는 기사들의 검에 깃들고, 사악한 것을 묶는 성직자들의 기도가 용의 움직임을 제한했다면.

하지만, 이젠 전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경비대장은 결심을 마쳤다.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이 없..."

"조심하십시오!"

경비대장이 있던 곳으로 검은 용이 달려들었다.

"이, 이건!"

지금까지, 용은 그게 뿜어내는 무시무시한 마기에 비하면 턱없이 약한 공격성을 보여주었다.

위협적인 짓을 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걸리적거리는 벌레들을 털어내는 수준의 공격성이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에 걸맞은, 살육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날뛰었다면 더 위험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그 용은 경비대장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아아..."

검은 용의 거대한 입이 경비대장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몸은 공포로 얼어붙었다.

마치 용이 그가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그의 모든 근육과 정신이 우뚝 멈췄다.

하지만, 피하려고 해 봤자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보다 빠르게 날아오는 용은, 그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눈꺼풀을 아주 약간 내린 다음, 눈을 질끈 감는 것뿐이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미래에 대한 불안, 과거에 대한 회한이 순식간에 그를 메우고, 빠져나갔다.

거대한 마찰음이 울렸다. 용의 이빨에서는 도저히 나오지 못할 법한, 거칠고도 거대한 소리가.

"...읏!"

경비대장은 다급하게 눈을 떴다. 회한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볼 수 있는 건 뒷모습에 불과했다. 현 시대 가장 강한 인간이자, 누구보다 고귀한 여정을 마쳤던 인간의 뒷모습.

용사가, 그의 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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