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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77화 (177/217)

공기가 탁했다.

황제의 가호가 사라진 건, 공기로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마기의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으니까.

"...뭐지?"

하지만,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

나는 머릿속을 뒤져, 이 느낌을 어떤 상황에서 느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불안한데..."

마력이 움직이는 것 같다. 사악한 기운이 꿈틀거린다.

무언가 일어나고 있었다.

숲에 있을 때는, 그 괴물들을 만든 마기가 아직 주위를 맴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밖에 나와 수도를 향해 걸으면 걸을수록 불길한 기운은 커져 갔다.

분명 이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수도로 들어가고 있는 건데, 과거에서 느껴 본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진다.

"음..."

사실, 명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내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이 불안감만큼 강한 무언가가 나타나고 있다면.

확실하진 않지만, 이 느낌은 마왕성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 압도적인 마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지만, 적어도 냄새는 비슷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마왕이 부활했을 때 내가 이 힘으로 그를 쓰러트릴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용사의 힘을 쓰고 있는 나였지만,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노력해 봤지만, 검술은 일정 수준에서 더 늘어날 기미가 없었다. 어쩌면, 다소 어설픈 자세와 부족한 기교를 메꿔 줄 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내가 각오가 되어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본 용사는 엘레노어였다. 그 사이에 있던 일들을 모두 제외하면, 그녀는 결국 마지막에 마왕을 죽이고 세계의 평화를 되찾았다.

그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렇게 할 수는 있을까.

강압적이고 가혹한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엘레노어의 잣대는 그녀 자신과 타인을 가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먼저 나아가, 앞장서서 희생하고 목숨을 바친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엘레노어도 좀 이상했지."

파시어와 셀리아에 정신이 팔려 엘레노어를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처럼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차린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어?"

그러고 보면, 용사 파티는 전부 이상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흔들렸고, 평소의 그들이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했다.

셀리아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그럭저럭 안정된 상태였다. 네르웬의 말까지 고려하면 그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네르웬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냥 내 냄새를 몇 번 맡은 것으로 안정되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있기를 거부했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엘레노어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녀도 황제로 만들게 두지 않겠다는 말만 할 뿐, 제국을 위해 다른 황족들을 지원하거나 처단하려 하지 않았다.

뜬금없이 아무도 모를 목적을 내세워 시체를 모은 파시어도.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흔들리지 않았지만, 파시어는 파시어다.

셀리아나 네르웬과는 다르다. 그녀가 작정하고 감정을 속이려 든다면, 나는 그녀와 24시간을 함께 보내도 절대 그녀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자신이 있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솟아올랐다. 만일, 그들이 나 몰래 꾸미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파시어 말고 다른 파티원을 죽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싫었다. 파시어의 일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 모든 일은 그저 망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의문이 있다면 풀어내면 된다. 파시어의 음모는 파시어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상식적으로 모든 힘을 잃은 파시어나 결국 '강력한 엘프 궁사'에 불과한 네르웬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불안했다. 나는 어두운 평야를 걷고 또 걸었다. 일단, 수도로 돌아가야 한다.

/////

"너희들도 느끼고 있지?"

경비대장의 거친 목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였지만, 눈치 빠른 경비들은 이미 그 음성에 불안이 섞여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수많은 경비대들이 소리쳤다. 이 음산한 분위기와 마기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사람의 커다란 목소리는 사람들을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줄만한 힘이 있었다.

"무엇이 나오든 절대, 절대 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의무를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비상이 걸린 곳은 경비대뿐만이 아니었다.

기사단 또한 전부 집합해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대기하고 있었고, 마법사들은 호위대와 함께 도시 곳곳을 수사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집 안에 틀어박혀 이 밤이 지나가기를 빌고 있었고, 오갈 길 없는 모험가와 상인 때문에 여관은 마구간까지 꽉꽉 들이찼다.

불안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상황마저 권력 다툼에 사용하려 하는 황족들밖에 없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도 시종과 전령을 보내, '이 사악한 마법의 배후에는 [본인이 아닌 다른 황족의 이름]이 있다! 당장 그들을 처단하라!' 같은 편지나 보내고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무기를 점검해라! 그게 우리가 살아서 쓰는 마지막 무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무의미한 말이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모든 경비대원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이미 그들은 윤이 날 정도로 그들의 무기를 잘 닦아 놓은 상태였으니까.

그저, 큰 목소리로 그들의 긴장을 유지시키려는 시도일 뿐이었다.

마기의 거대한 압박감이 그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게 뭐든, 무언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지금이라도 새 황제를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관의 말에, 경비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시선에서 볼 때, 이 사건은 황제의 부재로 나타난 일이었다.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는 하지만, 황가의 가호가 없어진 이상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경비대장은 마지막에 용사가 수사하던 마법사들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아마 연료였을 수많은 시체들도 찾아내지 못했고, 마법사들의 죄상도 밝혀내지 못했다.

"...마탑. 아직 조사 중인가?"

"조사대가 들어가 있긴 할 텐데, 전부 복귀했습니다."

"흠..."

그들이 남아 있어 봐야, 안전을 보장해 줄 제국 소속 마법사나 기사의 동행이 없다면 그저 무력한 일반인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신분을 가진 사람은 경비대의 직권으로 수사를 요청할 수 없었다. 당장 그들도 소속된 가문이나 기사단에 모여,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해야 할 테니까.

점점 마기의 기운이 거세지고 있었다.

"뭐, 뭔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수도 이곳저곳에서 불길한 빛의 기둥이 솟구쳤다. 마법이었다.

"수, 수도 주변에 사교도가 있었던 건가!"

흑마법사든, 사교도든 누군가 있었다. 저 사악한 빛에는 분명 어떤 경향성이 있었다.

숲에서 괴물들이 나타나는 건 마기가 퍼졌을 때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지만, 이건 분명 범인이 있는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비, 빛이 올라가는 곳을..."

"너무 많아! 경거망동하지 마라! 일단 상황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저런 의식이 벌어지는 것을 경비대가 달려간다 해서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괜히 흩어졌다간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악한 빛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몇 번이고 교차되며 문양을 만들고, 마법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일반인마저 '무언가 이루어졌다.'라고 말할 법한 기운을 뿜어낸 다음.

하늘이 고요해졌다.

한참 동안 긴장에 찬 침묵이 이어졌다. 부관이 조심스레 경비대장을 불렀다.

"끄.... 끝난 겁니까?"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늘에 마법진이 그려져 악마가 소환된다 하더라도, 차라리 이것보다는 덜 당혹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철저한 준비를 마친 채 이런 주문을 시전한 이들이다. 주문이 방해받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실패한 것 아닐까요? 제국의 마법사가 저 술식을 저지했을 수도 있고..."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하지만, 사악한 기운은 사라졌다. 그들의 피부를 압박하는 고통스러운 감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지, 진짜 끝난 것 같은데..."

경비대장은 안색을 찌푸렸다.

마법에 결과가 없을 리 없다. 방해받거나 실패했다고 해도, 왜곡된 결과가 어떤 식으로든 나타나야만 한다.

저들이 하려 했던 사악한 마법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다.

당장 황궁이 폭발하거나 시가지의 절반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기운이었다. 경비대장이 마법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긴장을 풀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 편한 자세로 기다려라. 긴장을 완전히 풀지는 마라. 주문은 이미 성공했다. 제국을 위협하는 적이, 전조 없이 나타날 수 있다... 읏?"

"괜찮으십니까?"

경비대장의 몸이 잠깐 흔들렸다.

"피곤하시다면 일단 쉬시는 게..."

"아니다. 피곤한 게 아니야. 이건!"

땅이, 흔들렸다.

거대한 진동에 대지가 요동쳤다. 천둥 같은 용의 포효가 도시를 울렸다.

검은 비늘과 포악한 눈, 날카로운 발톱과 포악한 숨결.

경비대장은 저주받은 육체를 눈에 전부 담고, 두려움과 공포에 젖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건,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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