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75화 (175/217)

의외로, 괴물들은 겁이 많았다.

"으어, 으워어, 어으, 어어어!!"

수가 적지는 않았다. 숲이 넓었으니, 여기 있는 괴물들이 전부 몰려왔다고 하면 이상할 건 없었다.

피가 튄다. 그들의 근육은 부드럽지 않았고 힘은 약하지 않았지만, 부족했다.

가장 강한 놈을 검 몇 번으로 쓰러트렸을 때도, 작은 놈들은 괴성을 지르며 나를 공격했다. 소리를 들은 괴물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나뭇가지가 꺾이고, 땅이 흔들렸다.

하지만 끝은 있었다.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많은 시체가 쌓이자, 놈들은 하나둘씩 도망치기 시작했다.

"으워어어어어!!!"

나를 죽이려던 살의 가득한 포효는, 어느새 살고 싶다는 절규로 바뀌었다. 그들은 사방으로 도망쳤다.

나는 숲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그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렸다. 어느 순간부터는, 쫓아가 검을 휘두르는 것이 귀찮고 피곤한 일이 될 정도로.

"이게 마지막인가..."

그렇게 한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자니, 어느새 내 앞에 도망치던 괴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무리는 철저한 편이 좋았다.

이 넓은 숲에 있는 괴물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일 수는 없겠지만, 사방으로 흩어졌으니 아직 놈들이 흩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두세 번 정도는 이 괴물들을 더 찾아다녀야 할 것 같았다. 숨을 한번 돌린 뒤, 나는 다시 숲을 뛰어다녔다.

이미 숲 전체에 그놈들의 냄새가 배어 있었기에, 냄새로 찾아내는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렇게 똘똘 뭉친 괴물들이 순식간에 흩어질 것 같지는 않았고, 흩어지더라도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거대한 나무 사이에서 느껴지는 진동을 느끼며, 그 괴물들이 남아 있을 곳을 따라갔다.

"...위험하겠는데."

사람은 괜찮다. 좀 혼란이 있을지 몰라도, 제국의 군대를 생각하면 좀 혼란이 있을지언정 이 정도 괴물에 흔들릴 이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는 동물이 없었다.

나무 위에 사는 작은 다람쥐 같은 놈들을 제외하면, 이 넓은 숲을 끝도 없이 뛰어다니는데도 사슴이나 늑대, 멧돼지 같은 진짜 동물을 만나지 못했다.

생태계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다소 속 편한 소리를 생각을 하며 나는 계속 그 괴물들을 찾아다녔다.

"우워어..."

내가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는지, 눈이 마주친 괴물은 당황하며 도망치려 했다. 함께 있던 괴물들이 각자 다급한 포효를 내뱉었다.

도망치는 놈은 조금 빨리 죽었고, 맞서 싸우는 놈들은 조금 늦게 죽었다.

내게 한 번 등을 보인 놈을 나중에 쫓아가서 죽이는 것보다, 그들을 먼저 처리하고 남은 '도망치지 않은' 괴물들을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이쪽으로 도망친 놈들은 이게 전부였을 것 같았다. 찾아보면 작은 괴물 몇 놈은 더 나오겠지만, 그걸 하나하나 추격하는 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다음 방향이..."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

"단장님..."

백금 기사단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너무 오래 지속되어, 이제는 이게 혼란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의 혼란.

그 사단 속에서도 남아 있었던 부단장은, 쓰린 눈으로 엘레노어를 바라보았다.

"왜지?"

차가운 목소리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원들은 저 목소리에 안도감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를 이룰 것이라는 의지,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의가 그 안에 담겨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돌아왔을 때, 부단장은 환호했다. 남아 있던 단원들도 안도했다.

그들이 알던 그녀가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제국의 누구보다 강한 전사이자, 정의의 상징과도 같던 그녀가.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 눈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을지언정 그 끝에 보고 있는 것은 달랐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저희도...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원하는 건가."

"그건... 대장님이 결정하셔야겠지만, 적어도 뭘 원하는 지는 알려 주십시오! 우리가 단장님을 위해, 제국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이미 한 번 분열되었던 기사단이다. 엘레노어의 거짓말에 실망한 이들이나, 더 이상 그 기사단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기사들은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백색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제국과 시민들을 위해 동화 속 영웅처럼 말을 타고 달려가던 기사단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걸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좋은 가문의 젊고 잘생긴 후계자와 결혼할 수 있는 여기사가, 가문과 척을 지면서도 무너져 가는 기사단에 남았다.

수많은 공을 세우고 검술을 갈고닦아 가문의 후계자로 인정받은 기사가, 안정된 영주의 길 대신 명예도, 보람도, 실익도 없는 기사단에 남길 선택했다.

이성적인 생각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아집에 가까웠다.

백성들의 찬사를 듣고, 병사들의 환호를 듣고, 누구보다 강하고 고귀한 황녀, 그들의 단장 뒤를 따라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그 짜릿한 감각을 잊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우리는, 뭘 하면 되는 겁니까."

떠난 이들은, 그저 그걸 기다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간 것뿐이었다.

백금 기사단의 훈련은 가혹했고, 보수는 적지 않았지만 그들이 기사단 밖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엘레노어의 행적에 실망한 사람도, 이 기사단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떠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싫어했던 사람은 없었다.

"모두... 모두 기다리고 있었단 말입니다."

엘레노어가 수도에 복귀했다는 말이 돌자마자, 얼굴을 싹 바꾸고 제발 기사단에 가입시켜 달라는 단원이 있을 정도였다.

그 누구도, 엘레노어가 이렇게 변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괴물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암흑가의 폭력배와 암살자들은, 그들을 고용하려는 황족들 때문에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올랐다.

"움직입시다. 우리가 필요한 상황 아닙니까!"

이전의 엘레노어였다면 분명 움직였을 것이다. 훌륭한 참모들과 최고의 계획을 세워, 제국과 황제를 위한 명예로운 싸움을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레노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제국... 인가."

엘레노어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렇다면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아니, 이건 혼자 해야 하는 일이다. 그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받아서도 안 되는 일이지."

부단장은 분노에 차오른 채, 엘레노어를 향해 소리 질렀다.

"단장님은 우리의 지도자입니다. 당신만 보고 충성을 바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미안하다."

여기 있는 아무도, 그녀가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엘레노어의 사과는 어떤 말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나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명백히 그녀의 잘못이 아닌 것'을 대신 사과했을 뿐이다.

도적의 습격으로 초토화된 마을에 들어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울부짖는 아이의 질문에 '미안하다.'라고 답하는 것처럼.

단원들은 엘레노어가 스스로 행한 일에 후회하고, 사과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너희들에게 진 빚을 갚지 못한 것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단장님?"

"백금 기사단은... 어떻게 해도 좋다. 헨리, 이 기사단의 단장이 되고 싶나?"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헨리는 최대한 빨리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제게 그럴 능력이 있을 리 없습니다. 애초에, 지금 남아 있는 사람은 단장님을 보고 남은 겁니다. 제가 아니라."

"나는... 마쳐야 할 일이 있다."

"그렇다면, 약속해 주십시오. 그게 뭐가 되었든, 전부 끝난 다음에는 돌아와 주신다고."

"...그래."

엘레노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침묵이 흐르자, 그녀는 조용히 기사단 본부를 나섰다.

한참을 걸은 엘레노어가 도착한 곳은, 수도에 있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엘레노어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반가워요!"

하얀 옷을 입은 셀리아가 웃으며 그녀를 반겼다.

"옷은 어떠십니까."

"좋아요. 따뜻하고, 부드럽고."

"제국의 비고에 있던 물건이니, 틀림없이 유효할 겁니다."

"알아요. 이 옷에서, 여신님의 향기가 넘치고 있으니까요."

이미 그녀는 성녀로서의 힘을 잃어버렸지만, 그건 신에게서 받는 힘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불 꺼진 화덕은 온기도 빛도 만들 수 없다. 여신과의 연결이 끊긴 그녀는, 신성력을 다룰 수 없다.

"다행이에요. 이거라면 저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작은 성냥불 하나만 있으면 아주 잠깐 타오를 수 있다. 불도 빛도 만들지 못할지언정, 무언가 타오르고 있는 것 같은 냄새는 풍길 수 있다.

엘레노어는 고개를 숙였다. 차마 셀리아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모두가 짊어져야 할 희생을, 당신에게만 짊어지게 해서..."

"뭐, 꼭 저만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셀리아의 밝은 미소에 그림자가 졌다.

"제가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엘레노어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뺏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 그림자는 마치 허깨비였다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셀리아는 마치 성녀처럼, 아니 성녀답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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