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71화 (171/217)

나는 멈춰선 채, 파시어의 의도를 조심스레 추측했다.

결국, 파시어의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녀의 행동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으로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지하실에서 한 번 보여준 그녀의 이면을 믿는 것보다 내가 보아왔던 파시어를 믿는 게 더 옳은 선택일 것이다.

"그 마법사는 절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지."

나는 그녀와 만났던 시간들을 곰곰이 되짚어 보고 있었다.

여행 중에 느꼈던 그녀와, 내가 용사라는 것을 알게 된 다음의 그녀. 오크 로드와의 전투에서 거대한 불을 내린 그녀, 흰 나뭇가지와의 싸움에서 목숨을 걸고 자리를 지킨 그녀, 에리니스의 결계를 뚫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자른 그녀.

"그래..."

이 시체 수집, 꽤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그녀 정도의 마법사라면 마탑과 연락할 수단은 언제나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마왕을 잡으러 가는 여정에서야 그럴 여력이 없었다 해도, 그 뒤에는 보급이든 마력의 여유든 충분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녀가 정말 변했거나 내게 보여준 모습이 모두 연기였다는 가정하에, 내가 모를 그녀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고 한다면...

"이상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녀가 나를 기만하려고 오랜 시간 노력했다고 생각해도, 최소한 그건 내가 용사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 있었어야 하는 일이다.

그녀가 용사인 나를 모험 중에 멸시할 이유는 없었다. 그녀의 태도가 바뀐 것까지 전부 연기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치게 과한 생각이었다.

나를 '아무것도 아닌 그냥 짐꾼'으로 생각했을 뿐, 그때 나는 파시어에게 구태여 속일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무리 늦어도 엘프와 싸웠을 때 정도에는 이미 계획이 실현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파시어는 '언젠가 죽일 나'의 귀환을 돕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뜻이 된다.

엘프의 화살이 잘못 날아가면 그녀의 심장을 뚫을 수도 있었다. 내 뒤통수를 칠 생각이었다면, 싸울 이유가 없었다.

반대로,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면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마법은 그 손에서 발사되기 전까지는 누굴 향한 마법인지 알아챌 수 없으니까.

정보 격차가 너무 크다. 그녀가 나를 방해물이라 생각했다면, 뒤에서 날아오는 마법으로 나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설령 엘레노어와 네르웬, 파시어의 시선 때문에 그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었다 해도, 에리니스 일은 아예 다른 문제였다.

그녀가 결계 안에 들어간 나를 방치했어도, 아무도 그녀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예 방법이 없다고 말해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고, 팔을 희생할 수 없다고 말해도 그녀를 이해해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구태여 나를 구했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역시, 내가 알던 파시어가 달라졌다고 불 수는 없었다.

팔을 복구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필요 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리 마법사라 한들 팔 한쪽이 필요 없을 리 없었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적어도 마탑에 돌아온 뒤로는 새로운 팔, 혹은 그걸 대체할 만한 수단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모습에도, 파시어는 팔 한 짝이 없는 상태였다.

내가 모르고 있던 게 많다. 어떻게든...

주위를 서성거리던 내 팔이, 아슬아슬하게 수직 호수에 걸쳤다. 전에 봤던 기억들이 다시 밀려들어왔다.

파시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화가 잔뜩 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진실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내가 하는 고민들이 다 의미 없어졌다는 것을.

결국, 파시어는 죽었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마법사는 이미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이제 와서 그녀가 사실 나를 속이고 있었고, 진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한들 모두 무가치한 일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가까스로 그 수직 호수에서 몸을 빼냈지만, 더 이상 서 있을 자신이 없었다.

생각에 빠져 있을 틈도 없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일은 다 끝나셨습니까?"

그 잠깐 사이에, 경비대장의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 차 있었다.

"...제가 볼 수 있는 건 다 본 것 같습니다."

저 안에 다른 기억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바로 나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중요한 일이 터졌습니다."

경비대장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마법사들이 저항하고 있는 겁니까?"

"특별히 협조적이지는 않고, 증거도 나오지 않으니 저항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당장 저희를 쫓아낼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경비대장의 말이 빨라졌다. 내가 이 방에 들어가기 전과는 달리, 조급해 보였다.

"그놈들이 얼마나 오만한지 생각해 보면, 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협조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뭔데요?"

"황제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용사님이 직접... 반드시 와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나는 그제서야, 그의 표정이 굳어간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당장 내 머리는 파시어 사건을 해결하기도 벅찼다.

"황제..."

그에게는 좋은 기억이 없었지만, 정말 그의 말대로 연명이 아슬아슬한 상황이라면.

마지막으로, 그의 얼굴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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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작고 초라해 보였다.

"왔구나..."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옆에 있는 시녀의 도움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황제는 노쇠해져 있었다.

"저를 불렀습니까."

내 태도에 당황한 건지, 시녀들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그와의 만남은 철저한 독대로 이루어졌다. 늙은 황제는, 주위 사람들을 물릴 만한 여유도 없는 것 같았다.

"생각은.. 바뀌지 않았지?"

"지금, 위험한 상황 아닙니까? 당장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그게 더 위험한 일이네. 엘레노어는 황제가 되어서는 안 돼. 이유는... 그녀가 더 잘 설명해 줄 걸세."

기침을 몇 번 한 그는, 억지로 고개를 일으켜 나를 보았다.

"안 됩니다, 안정을 취하셔야..."

"지금 내가 안정을 취하면, 며칠이나 더 살 수 있겠나?"

황제의 물음에 시녀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건, 그 며칠보다 훨씬 가치 있는 순간일세."

상반신을 힘겹게 일으킨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얘기보다, 먼저 해야 할 말이 있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수천 번을 말해도 모자라겠지만, 자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야."

"...모르셨겠지요."

화를 내고 싶은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지만,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의 죄를 따지고 싶지는 않았다.

"말로 변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이미 자네의 마음은 떠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황제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후계는 정하지 않겠네. 엘레노어는 황제가 되어서는 안 되고, 다른 황족 가문의 자식들은... 한 번 후계로 정해진 순간, 황제 자리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테니까."

"..."

"선택받지 않은 이들은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할 테고... 그러면 싸움이 일어날 걸세. 협상의 여지 없이, 거칠고 잔혹하게."

말의 무게가 달랐다. 나와 그만 들을 수 있는 밀폐된 공간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시녀도 있었지만, 몇몇 값비싼 옷을 입은 귀족도 있었다. 황제의 유언이라는 것은 좋은 명분이 될 테고, 그들이 직접 확인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걸 조작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지, 진심이십니까!"

"안 됩니다, 황제 폐하. 부디..."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그들이 먼저 부산스레 움직였다.

"조용히 하게. 짐이 지금 용사와 대화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노인의 죽어가는 목소리가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권위 있고 강력했다. 그들의 항의는 금세 잦아들었다.

"후..."

이건, 공식적인 선언이다. 더 이상 '내게만' 던지는 비밀스러운 대화가 아니다.

"어쨌든 내전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다툼은 있겠지만, 적어도 더 적은 이들이 죽겠지. 누군가 암살당하고, 습격당하겠지만 군대가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니."

"제대로 된 황제 없이, 제국 내에 세력이 많아지는 일입니다. 시간을 끌어서 좋을 건 없을 텐데요."

"그렇겠지... 그래도 내가 인정하는 후계는 단 하나, 용사인 자네뿐이다. 이게 내가 그대에게, 제국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속죄니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속죄가 아니라, 짐이겠지요..."

"그렇다 한들 어쩔 수 없지. 정 그렇다면, 그 동료들의 뜻에 따라 주도록 하게나. 자네의 선택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니."

"동료라니..."

"어느 쪽이든,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거야. 내 방식대로 해결되지 않더라도..."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게 끝인가 싶어 그를 깨우려 했지만, 시녀들이 나를 제지했다.

"아, 안정을 취하셔야 합니다! 용사님. 정말 죄송하지만..."

"알겠습니다."

눈을 감은 채 쓰러진 그의 입에서,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용사가 아니었다면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는 내게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

나는 잠시, 자고 있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고요했다.

다른 이들이 내게 쓸데없는 질문을 하기 전에, 나는 황제의 침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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