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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69화 (169/217)

"이제 가서 좀 쉬시는 게..."

경비대장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몸은 씻었고, 시간이 촉박하니까요. 며칠 정도 안 자도 상관없습니다."

사실은, 눕고 싶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침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걸음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게 뭐든지 간에, 생각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일단 경비대를 보내 놨으니, 곧 소식이 올 겁니다... 부디 무사했으면 좋겠군요."

"그래야 할 겁니다."

혹시 파시어의 뒤를 따르겠다며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려 하는 마법사가 있다면, 나는 사람을 더 죽여야 할 테니까.

"그래도, 제대로 된 수사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힘이 부족하니까요."

지구에서야, 무장한 경찰이 준비를 마치고 출동하면 그걸로 끝이다. 어지간한 범죄 조직이 아니고서야 공권력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다르다. 개개인의 무력 차이가 심한 시대다. 제대로 된 기사들을 투입하지 않으면,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없었다.

"...따라갈 걸 그랬군요."

"아닙니다! 일단 좀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용사님. 증언이 사실이라면, 끔찍한 일이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파시어를 죽인 다음, 어디에도 가지 않고 바로 경비대에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하면 증거가 사라질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파시어는 죽었지만,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태우든 묻든 그 시체를 처리해야 했고, 남은 이들의 죄목과 처우도 결정해야 했다.

"크, 큰일났습니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온 경비대는, 숨을 헐떡이며 보고를 시작했다.

"아,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분명 그 폐가에 들어가서, 수상한 지하실의 흔적을 확인했지만... 텅 비어 있었습니다."

"뭐라고?"

경비대장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경비대장의 대처는 꽤 기민하게 이루어졌다. 내가 용사라고는 하지만, 내 증언과 몸에 묻은 피와 잔해만 믿고 몇 시간 만에 경비대를 파견했으니까.

사실 관계를 파악하거나, 위험한 임무에 차출될 경비병을 선발하는 데 하루나 이틀 정도가 더 걸렸다 해도 그를 비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빨리..."

내가 남아 있었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전서구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거리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좀 경비대에 전해 주세요.'라고 붙잡을 수도 없었으니 나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하, 하지만 무언가 있었던 건 확실했습니다. 안에 수상한 액체도 많았고, 그, 시체 냄새가..."

"비상이다! 남아 있는 경비대들 전부 소집하고, 수도를 지키는 기사단에게 전부 소식을 보내!"

"알겠습니다!"

경비원들이 부산스레 움직였다.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은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이런 식이었습니까? 그, 힘이..."

"이 정도로 교묘하고, 위험하고, 강한 놈들이 수도에서 난리를 칠 줄은 몰랐습니다."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이 정도 일이면 보통 백금 기사단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그들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엘레노어가 쉬지 않고 그녀의 기사단을 움직여, 수도와 제국의 안위를 지켰다는 얘기는 들어 봤었다.

"황녀 폐하가 귀환하셨으니, 이제 뭉칠 법도 한데..."

그러고 보면, 그녀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다.

수도로 돌아왔으니 황제의 자리를 위해서라도 이곳저곳에 소식을 퍼트리고 다닐 줄 알았는데, 그녀는 마치 없는 사람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

황제에게서 직접 후계자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걸 내게 따지려 들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오해가 쌓이면 이걸 배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당장은 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게 먼저였다.

"어쨌든, 마탑으로 가야 하는 거지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몸이 피곤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이제 와서 다른 기사단을 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도, 최소한 마법사는 구해야 할 테지만요."

경비대장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

마탑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평소보다 더 음산한 분위기였다. 기사단장은 몇 번씩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그 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 혹시나 했지만, 역시 순순히 열어 주지 않는군요.”

최소한의 검증을 위해 황실과 귀족가의 마법사 몇 명을 데려왔지만, 결국 그들만 믿고 의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이들도 마탑 출신일 것이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눈을 감아주거나 마탑의 마법사들과 동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제 억지로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비대원 중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지하실에 들어갔던 경비원이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이러는 와중에도 그들이 증거를 지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억지로 들어가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마탑의 방어장치를 가동시키고 싶나?"

꽤 단단해 보이는 문이었다. 창문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한 건물 4층, 5층 높이까지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문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강도는 약하지 않아 보였고, 마법도 걸려 있었지만 작정하고 베면 못 벨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벤다기보다는, 같은 곳에 검을 계속 휘둘러 작은 균열을 만들고 그 균열을 통해 부수는 형태가 되겠지만.

"마지막 경고입니다! 마탑은 경비대의 수사에 협조하시오!"

경비대장은 몇 번이고 소리쳤던 말을 다시 한번 토해냈다.

문의 강도를 떠나서, 마탑은 어지간한 영지의 성 못지않게 강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가 억지로 문을 여는 순간, 보호용 마법이 가동해 이 주위를 초토화시킬 것이다. 내 목숨은 지킬 수 있다 해도, 여기 있는 경비대원들은 문을 여는 순간 전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겠소. 시간이 필요하니, 잠깐 기다려 주시구려."

거친 소리와 함께, 문의 잠금장치가 움직였다. 거대한 금속이 덜컹덜컹 움직이고, 안을 지키고 있던 보호 마법들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다.

"그대들은 거대한 규모의 시체 밀매, 또한 허가되지 않은 끔찍한 비술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고 있소. 죄가 없다면, 수사에 협조해 주시오."

노인의 마술적 성취가 적지 않아 보였다. 금박으로 장식된 로브가 부드럽게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이곳에서 얻을 건 없을 거요. 이미, 우리 중 하나를 체포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새로운 증거가 나왔소."

시체를 밀매했다는 정황 증거와 증언으로 사람을 체포하는 것과, 비록 실물이 남지는 않았지만 시체를 보관하던 장소가 드러났던 것은 그 중요성이 달랐다.

게다가, 그 제단에 일렁거리던 사기도 적지 않았다. 그 안에서 무슨 마법을 시전했든, 그게 제국 법령에 허가된 마법일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들어오시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리를 비웠기에, 많은 이들을 받아들일 수는 없소."

"마법사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협상을 받아들일 상황이 아닙니다."

경비대장은 연장자로 보이는 마법사에게 예의를 차렸지만, 단호한 태도를 놓지는 않았다.

"이들 모두를 받아들일 수는 없소. 기껏해야 열 명... 뭐, 그리 많은 사람이 온 것 같지는 않으니 괜찮을 것 같소만."

우리를 떨어트려 놓고 기습하려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이 중 열 명이면 이미 차고 넘치는 전력이었다.

급하게 달려온 기사와 마법사 몇 명, 경비대장과 나를 제외하면 엄밀한 의미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안내하겠소."

따라온 경비대원들은 뒤에 남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 마법사의 뒤를 따라 마탑을 올라갔다.

"관련자를 색출하는 것은..."

"이미, 이 모든 계획에 관여했던 사람을 처단했던 것 아니었소?"

그는 내 쪽을 바라보며,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

파시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사라진 시체를 그들이 관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들을..."

"미리 말하겠지만, 이곳에는 없소. 이미 우리 손을 떠났지. 대마법사님의 신임을 받는 자들이 관리하고 있을 거요."

"그렇다면, 찾을 방법이 있습니까?"

"내가 어찌 알겠소. 그분의 마법으로 숨긴 것들을... 실력 차이가 너무 크지."

그가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마법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가볍게 흘렸다.

기사들은 격분했고, 마법사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면, 파시어가 숨기고 있었던 그 수직...호수? 거울 같은 것,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걸 찾으십니까?"

그는 조금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물론, 그분께서는 절대 용사님께 그걸 보여주지 말라고 하셨을 테지만... 뭐, 이미 돌아가신 분이니까요. 제 알 바는 아니지요."

이상했다. 방금 전까지 그 마법사의 태도는 자신이 죽더라도 파시어에 대한 충성을 지킬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울 얘기가 나오자마자, 가볍게 자신의 태도를 바꿔 버렸다.

"그걸 감상하시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겁니다. 다른 분들에게는 좀 죄송하지만, 혼자 보고 계시지요. 저는 그동안 마탑을 안내하고 있을 테니."

"우리는 조사를 위해 나온 겁니다!"

경비대장이 소리쳤지만, 마법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를 진정시켰다.

"그대들을 불러들이긴 했지만, 얻을 수 있는 건 없을 겁니다."

그는 마법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를 마탑 중 가장 높은 곳으로 인도했다.

"이 안에 있습니다. 혼자 들어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쓰기 어려운 물건도 아니니까요."

마법으로 잠긴 문은, 그 마법사의 간단한 손길 몇 번에 맥없이 열렸다.

나는, 그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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