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67화 (167/217)

지하실에, 다시 소리 없는 고요가 맴돌았다.

"..."

죽일 생각은 없었다. 마지막까지도, 그녀가 죽기를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나를 죽이려 했던 파시어다. 무슨 일을 꾸미고 있었는지는 미지수지만, 아마 내가 절대 허용하지 않았을 일을 꾸미고 있었을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었다. 개인적인 감정을 뒤로하면, 나는 수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던 악한 마법사를 처단한 것이다.

변명할 일도 아니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녀를 남겨 두었을 때,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이 일어날지 차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마법사다. 어지간히 용맹한 전사라 해도, 그녀가 거점 여러 개를 만들어 둔 뒤 게릴라전을 벌이면 피해를 막을 수 없다.

그러니까, 이건 옳은 일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다. 여기 있는 게 파시어가 아니라 다른 평범한, 내가 모르는 마법사였으면 이런 고민을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나 자신에게 변명하고 있었다. 납득할 수 없었다.

내가 파시어를 죽여야 한다는 것을, 그래도 한때 동료였던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는 처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나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손에 피를 묻힌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산적이나 이번 일에 연루된 흑마법사처럼 명백히 자기 의사로 타인을 해친 이들에게는 내 의지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미련에 불과하다. 그저 파시어와 내가 친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시어를 특별하게 대우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가슴 속의 공허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파시어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남아 있는 건, 거칠게 으깨진 머리의 잔해뿐이었다.

작은 체구와 머리칼의 색깔을 제외하면, 이게 그녀의 시체라는 것을 알아채기도 어려울 만큼 참혹한 광경이었다.

"..."

피가 이곳저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내 피도 조금 섞여 있었지만, 대부분은 내 마지막 일격에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시체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오크의 곤봉에 맞아 날아간 시체는 이것보다 더 끔찍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평범하게 칼에 맞아 쓰러진 시체라고 덜 참혹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시체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내가 가장 힘들고 괴로웠을 때, 마왕군의 공격을 받아 구성원 전부가 사라진 마을을 본 적이 마지막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언제 봐도 익숙해질 수 없는 괴로움을 내게 퍼부었다.

"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는 동의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그 목적만은 숭고하다고 여겼다.

마법사가 이타적인 소망을 가지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마술의 본질은 기만과 욕망이다.

대부분은 부귀영화나 권력욕 같은 세속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아니라고 해 봐야 지식욕이나 탐구욕 같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욕망을 가졌을 뿐이다.

자신이 느꼈던 고통스러운 감각을 아무도 느끼지 않게 하겠다는 파시어의 소망은, 그걸 위해 그녀가 했던 짓을 빼놓고 본다면 고귀한 소원이었다. 마법사라기보다는, 성직자에 가까울 만큼.

그런 그녀가 자신의 목적을 포기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그녀와 지금 그녀의 변화를 생각해 보면, 내 영향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면 그녀가 더 많은 힘을 갈구하기 시작했던 것도 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 여정을 고통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꿈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걸음이 무거웠다. 여기 있는 수많은 시체들이, 나를 원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이들에게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또 다른 이가 시체가 되지 않게 해줄 수는 있어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 나는 무력하고 무가치한 존재였다.

경비대에 신고하면, 이 시체들을 회수해 줄 것이다. 하지만, 신원을 확인하고 유족들에게 보내 줄 정도로 그들이 성실하게 일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들이라면 애초에 습격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각지에서 긁어모은 시체였을 테니, 실종자를 찾으려 한들 유족을 쉽게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어딘가 구덩이를 판 뒤 전부 모아 매장하거나, 수도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불을 피워 단체로 화장하겠지.

결국, 내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그뿐이었다. 물 안에 담겨 있는 시체들을, 땅 밑에 묻거나 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일.

지하실의 출구가 보였다. 계단 아래편에는, 나를 여기까지 안내해 줬던 마법사가 떨리는 눈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끄, 끝난 거에요?"

"네. 끝났습니다."

그녀는 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살짝 고개를 내려 내 꼴을 살펴보니, 확실히 사람을 안심시킬 수 있을 만한 몰골은 아니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 있고, 피가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다.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아마 역한 마기의 냄새와 피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찌르고 있을 것이다.

"파시어 님은... 데려오셨나요? 아니면, 저 안에..."

"도망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파시어는...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지만, 다른 마법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이 광경을 본 다음부터는, 경비대도 여유롭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분명 마탑에도 수사관이 파견되어, 그들이 했던 일을 샅샅이 파헤칠 것이다.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마법사들을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남아 있는 마탑의 마법사들은 새어나간 정보의 출처를 알아내려 할 것이다. 이 마법사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 그렇다고 해도, 일단 치료를..."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하, 하지만 파시어 님도..."

나는 차마 그녀에게, 파시어가 죽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녀는 파시어를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마음속에서,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저열한 원망이 스멀스멀 자리를 차지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파시어의 계획을 몰랐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준비를 했다고는 한들, 내가 여기에 방문하는 것은 예상 밖의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평생, 아니 내가 돌아갈 때까지 파시어의 음모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의심은 하겠지만, 결국 그녀와 싸우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이 세계에는, 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안 좋은 일어날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파시어를, 죽이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이건 결국 내 이기적인 책임 회피일 뿐이다. 파시어를 죽인 사람은 나였다.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설마... 아니죠?"

마법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차마 그 눈을 마주 볼 수 없었다.

내가 한 일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웠다. 내가 저지른 살인을 그녀가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제압만 해 두신 거죠? 당분간은 깨어나지 못하게. 맞죠?"

"...그렇게 만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파시어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싸웠다면, 어떻게든 제압하려 했을 것이다. 엘레노어든 네르웬이든, 죽지 않는 선에서 '이 정도면 확실히 제압되었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파시어는 다르다. 나는 그녀가 의식을 잃은 상황에서도 미리 써 둔 마법이 작동하는 것을 보았다.

그저 손을 몇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거대한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들었을 때는, 꽤 많은 대가가 필요했던 모양이었지만.

그런 그녀가, 내 앞에서 악행을 저질렀고 또다시 저지르겠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약속했잖아요."

마법사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주저앉았다.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따뜻하게 대해 주신다고, 약속했..."

그녀도 공범이었을지도 모른다. 파시어가 한 일에, 이 마법사도 관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차마 울고 있는 그녀 앞에서 그런 매정한 말을 할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고, 파시어를 죽일 만한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사과하는 게 사과하지 않는 것보다 내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줄 것 같았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운 뒤, 마법사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유해를 수습하고 싶어요. 그 정도는 눈감아 주시겠죠?"

"감사합니다."

이를 꽉 악문 그녀의 눈에는, 나에 대한 원망이 조금 섞여 있었다.

"마탑에 들어가게 된다면... 파시어 님의 방에, 수직으로 꺾여 있는 물 거울이 있어요."

"...네?"

"한 번 들어가 보세요. 파시어 님은, 절대 용사님을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중요한 증거가 있을지도... 몰라요."

영문 모를 말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피에 젖어 무거워진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올랐다. 이곳에서 내려올 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끝난다는 마음에 신이 나 있었는데.

어쩌면 나는, 원흉을 잡고 싶은 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파시어가 이 일과 관련 없다는 증거를, 내 눈으로 찾아내고 싶었던 걸지도 몰랐다.

"...."

어딘가, 가슴 한 곳이 비어버린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