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66화 (166/217)

끔찍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필요한 만큼 시체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고 했을 때, 한두 구의 시체가 아닐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시체를, 이렇게까지 생생한 상태로 보존해 두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

마치 아직 살아 있는 것 같다. 죽어가는 표정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몇몇 시체는, 당장 저 유리 수조 안에서 끄집어내 성직자의 치유를 받으면 거짓말처럼 살아날 것 같았다.

하지만, 용사의 직감은 처절할 정도로 냉혹하게 그들의 상태를 알려 주고 있었다. 아니, 사실 정신만 차리고 있어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몇 시간, 아니 몇 주를 여기 잠겨 있었을 사람이, 살아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상반신 밑부분이 잘려 나간 사람이, 얼굴과 목이 멀쩡하다 해서 살아 있을 리가 없는 것처럼.

조금 사그라들었던 분노가 폭포수처럼 치솟았다. 상대가 누구라 해도, 이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지하실은 넓었다. 시체는 특수 용액 같은 것에 잠긴 채 보관되는 것 같았다.

길은 하나밖에 없었기에, 어디로 가야 할지 주저할 일은 없었다.

차마 앞을 볼 수 없었다. 길 옆을 가득 메우고 있는 시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쉽사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한들, 여기서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시체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끝내야 한다.

"..."

사실, 알고 있다. 그들은 단지 시체를 구매했을 뿐이다.

마법사들은 그저 기다리고, 모은 것뿐이다. 이 근방에서 일어났던 모든 살인과 약탈의 흔적들을.

그렇다고 해도, 이 광경을 보는 건 너무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었다.

인기척이 느껴졌다. 길의 끝에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높지는 않았지만, 단단하고 넓었다. 밑에는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사악한 기운이 내 모든 각을 자극했다.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그 텅 빈 공간에, 작은 마법사가 앉아 있었다. 조금은 처량해 보이고, 조금은 씁쓸해 보이는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서도, 나는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이것마저도 환각이 아닐까, 그녀와 닮은 어린아이를 가져다 둔 것이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파시어."

그녀는 눈에 담긴 회한을 지워냈다. 흉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정말로... 네가 한 짓이야?"

"아니라고 하면, 믿어 줄 생각이었느냐?"

"글쎄."

사실,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 파시어를 본다 해도, 화들짝 놀라며 사정을 설명한다면 나는 진지하게 그 말을 들어 주었을 것이다.

"구태여 네가 여기까지 와 주었으니, 나도 숨길 생각은 없다... 그래, 나다. 이 늙은 마법사가 손을 썼다."

"하지만... 어떻게? 몇 주 만에 모은 시체는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사소한 일에 굳이 내 힘이 필요할 리가 있겠느냐. 너를 따라 여행을 떠나던 와중에도, 내 계획은 진행되고 있었다."

마법사를 상대로 시간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끝에 있던 마법사가 파시어가 아닌 다른 마법사였다면, 나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그 인간을 제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차마 파시어에게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었다.

"...어째서?"

나는 한 번도 풀리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파시어가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계속해서 나를 묶고 있던 근본적인 질문을.

"그게 중요하더냐?"

하지만 파시어는 작게 미소 지으며, 내 고민을 쓸모없는 것처럼 부정했다.

"원한다면 알려주마. 그리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다만... 그냥, 시체가 필요했을 뿐이다. 이걸로는 부족한가?"

"...왜?"

파시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법에 필요했으니까. 사악한 마법을 다루는데, 시체만큼 좋은 재료가 어디 있겠느냐. 계속해서 나오고, 너무 흔해서 이런 다량의 재료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고. 안성맞춤이지 않으냐?"

"하지만, 분명 저번에 말했을 때는, 시체는 필요 없다고..."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물건의 가치가 달라지는 법 아니겠나. 내게 몇 마디 주워들은 정도로, 너 자신을 마법의 대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냐?"

그녀의 말이 옳았다. 나는 마법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제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믿었는데..."

"우습구나.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도 아직 신뢰를 잃지 않았다니."

파시어라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재료를 찾아 떠난 여행에서, 그녀가 달라졌다고 믿었다.

그게 아니라도, 적어도 용사 파티에서 함께 싸웠던 그녀를 믿었다. 작은 희생을 용인할지언정, 그 끝에는 대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째서..."

"마술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지."

파시어의 말은, 마치 나를 향한 것처럼 들렸다.

그녀가 용사 파티의 여정 중에 희생시켰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용사 파티를 위해 고생해야 했던 나.

필요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도, 처음 내가 용사였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 완전히 달라진 그녀의 태도를 생각나게 했다.

"오히려, 네가 이제서야 나를 의심하는 게 우습고도 애처롭구나."

"..."

의심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상식적으로, 로렐과 크리스티나의 의심은 합당하고 당연한 의문이다.

오랫동안 마탑에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를 묻는다면, 누구든 파시어를 지목할 테니까.

그래도, 나는 그녀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파시어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는 지금도,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렇게 순순히 모든 걸 알려 주는 거지?"

그럴 이유가 없었다. 내가 그녀를 이해하는 만큼, 적어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파시어도 나를 알고 있었다.

바보처럼, 이렇게 순순히 진상을 알려 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왜라니. 내가 왜 여기 있겠나? 내가 하려던 일을 이렇게 집요하게 후벼판 이를, 어떻게 용인하겠나."

파시어가 손을 들었다.

"죽은 자는 입을 열 수 없으니까. 당연한 이치다."

"큭!"

흉흉한 기운이 가득 실린 마기가 내 옆을 스쳐지나갔다. 급히 피하지 않았다면 당장 내 몸을 찢어발겼을, 거대한 마력.

"정말로... 정말로? 나를 죽이겠다고?"

"왜, 믿지 못하겠나? 이렇게나 나를 믿어준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하지만... 너와의 인연은 이걸로 끝이다."

준비된 마법사다. 아무렇지 않게 마법을 쏘아대는 그녀의 모습은, 파시어가 이 싸움을 적어도 며칠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더 이상 나를 방해하게 둘 순 없어. 유감이지만, 어쩌겠느냐? 이쯤에서 헤어지는 수밖에."

파시어의 눈이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적어도 유감이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하지만, 여유롭게 그녀의 감정을 분석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다시 한번 내가 있던 곳에, 거대한 마탄이 쏟아졌다.

/////

"..."

싸움은 길지 않았다. 마법사와 전사의 싸움이니, 순식간에 승패가 결정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부족했다. 반쪽짜리라지만 나는 용사였고, 이 싸움은 강력한 마족을 성스러운 힘으로 베어야 할 필요가 없는 전투였다.

내 팔에는 상처가 가득 나 있었고, 배 한 쪽에는 검은 기운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옷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하지만, 내가 이겼다.

"커흑, 흑, 흐읍..."

파시어는 내 손에 목을 졸린 채, 숨을 쉬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었다.

"네가 졌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포기해."

"그럴 수 있을 리가... 있나."

"모든 사람들의 영생을 원한다는 그 말, 아직도 유효하겠지? 이딴 짓거리를 하는 대신, 차라리 내 도움을 구해라. 돌아가기 전까지는 협조해 줄 테니까."

나는 용사다. 행운이 따르긴 했지만, 나와 파티원들의 힘으로 구해낸 불사조의 유해와 유니콘의 피는 '그깟' 인간 몇백 명의 시체와 비교될 바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제안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딴... 건. 이제 관심 없어..."

"왜!"

그녀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몇 명을 더 죽일지 예상할 수도 없는 상대다.

어설픈 흑마법사와 달리, 그녀는 아주 조금만 마력을 회복하고 나면 어떤 수단으로든 도망칠 수 있었다. 내가 당장 그녀의 목을 베지 않는 한, 파시어를 억제할 수단은 없다.

모두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 파시어를 죽이는 것이 옳다.

"항복하란 말이야!"

그러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그녀가 살아남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 내가, 그럴 것 같나?"

파시어의 몸에 마력이 몰려드는 것이 느껴진다. 몇 초만, 몇 초만 더 그녀를 잡고 있으면 파시어는 바람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죽음을 만들 것이다.

그토록 바랐던 꿈을 '그딴 건 관심 없다.'라고 말할 정도다. 이미 그녀는, 내가 알던 파시어가 아니었다.

그녀를 멈춰야 한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

"흡!"

섬광이 반짝였다. 나는 그 빛보다 빠르게, 성검으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쳤다.

"...아."

적어도, 반드시 그녀를 죽여야 한다면, 마지막에는 고통 없이 보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까지 그녀를 베고 싶지 않았다.

성검은 그녀의 머리를 관통하는 대신, 그 거대한 충격량으로 파시어의 머리를 부숴 버렸다. 상실감이 물 밀듯 몰려들어 왔다.

시체가 한 구 늘었다. 목 아래만 남은, 너무나도 작은 시체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