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안개8
* * *
"이게뭡니까?"
몰라서묻는게아니었다.내직감은,저안에어떤물건이있을지선명하게알려주고있었다.
하지만,설마하는마음도남아있었다.크리스티나의양심을믿고있지는않았지만,'그렇게까지할까?'하는의문도남아있었다.
예전에일어났던,사소한사고에불과하다.기억이가물가물하긴했지만,내가굴욕감을느낀적은없었다.사건당사자인나조차도잊어버린,말그대로작은다툼이었을뿐이다.
그걸위해,그녀가이렇게까지준비하고노력해야할필요가있을까.아무리생각해도그럴것같지는않았다.
"직접확인하시는게좋을것같네요.열어보세요."
떨리는손을억지로움직여,나는나무상자의뚜껑을열었다.
"아..."
불길한예감은,어처구니없을정도로선명하게들어맞았다.
머리였다.
감기지않은눈은고통으로얼룩져있었고,목아래쪽은무딘검으로잘려나간듯거칠게찢어져있었다.
입과코,눈에서한줄기씩흘러나온피가얼굴에피의강을만들었다.죽은지오래지난사람이었기때문인지,그피의강은붉게타오르는대신탁한검은빛을띠고있었다.
"..."
나는고개를들어크리스티나를바라보았다.
"마음에들지않으시나요?뭐물론용사님이라면직접복수하셔도괜찮으셨겠지만...이것도나쁘지는않죠?"
내표정이굳어있다는건눈치챈것같았지만,왜그랬는지는알지못하고있는것같았다.
"용사님정도지위에있는사람이라면,이렇게주제를모르고기어오르는사람이한두명은아닐테니까요.하나하나죽이는것도고역이시겠죠."
"죽여야하는겁니까?"
"조금실례일지도모르겠지만,적어도이근처에서일어난일은대부분알고있어요.이무도한자가용사님께어떤잘못을저질렀는지도알고있죠."
그녀는나무상자를,손가락으로가볍게툭툭쳤다.
"그렇다고해도,용사님처럼선하고고고하신분이이런쓰레기에직접손을댈수는없으시겠죠?"
객관적으로는,그녀의외모는퍽아름다운편이었다.지금크리스티나가짓고있는미소를다른사람에게보여준다면,넘어가지않을남자가없을것같았다.
하지만,지금나는그게너무나도추하고역겹게느껴졌다.
말을꺼내야한다.이쯤에서그녀의오해를종식시키고,나는이딴선물을원하지않는다고말해야한다.
"저는잘모르지만,이런쓰레기들이여행중에한둘은아니셨을것같네요.그가증스러운배신자들은물론이고,입에담기조차천하고더러운버러지들이많았겠죠."
하지만,나는입을열지않았다.
"제손을더럽히지않기위해기사들과시종들이저를섬기는것처럼,저희가문도용사님을섬기고싶네요.이렇게거추장스럽고...귀찮은일을대신해드리면서."
그녀의시선에서볼때,나는아마차기황제가될것이다.그녀와그녀의가문은그아래서계속되는부귀영화를누리고싶은것이고.
초점없는시체의눈을멍하니들여다보았다.호감이있는것도아니었고,그렇게심하게증오하던것도아니었다.
굳이따지자면,어디서죽든신경도쓰지않을사람이었을지도모른다.
엄밀히말하면,나조차도그의죽음을슬퍼하고있지않았다.
"흐음..."
착한사람인척을하고싶은게아니었다.애초에,내가그렇게착한사람도아니었고.
이제와서'그때만난용병아저씨의복수를하겠다!'라고소리치며검을휘두를생각은없었다.
그보다는,증오였다.그런일로사람을죽이는게당연하다는생각을가지고있는,나와다른사람.다른인간에대해이해하고싶지않다는마음이었다.
그러니,대화와소통을통해그녀에게내생각을전달하고,합의점을찾고싶을리가없었다.크리스티나는내게그만큼소중한사람이아니었다.
차라리,그녀가이렇게자기좋을대로떠들다가,갑작스럽게선을넘기라도한다면.
"죽이는건쉬웠지만,이상태로보존하는건쉽지않은일이었어요.가문의마법사가동원됐죠."
내가,그녀를죽일수밖에없는상황에처하게되는것을,마음속으로기다리고있던걸지도모른다.
"놀랍군요.많은공을들이셨습니다."
칭찬의의미는아니었고,얼굴은굳어있었다.
하지만그녀는우습게도내말덕분에안심한건지,긴장하고있던표정을살짝풀었다.
"알아주셔서고마워요."
크리스티나는수줍었는지,입을가리고조용히웃었다.
"그렇다면,나중에다시연락드리겠습니다.당장은수도에서할일이남아있으니까요."
"필요한일이있으시다면언제든불러주세요.알트도어가문은전적으로용사님을지지할테니까요."
"예,그럼이만..."
자리에서일어난나는,문앞에서멈춰선채생각에잠겼다.
지금그녀를죽여야할까.계속크리스티나와알트도어가문을방치한다면,얼마나더많은사람을죽일지상상할수있었다.
이용병에게죄가없는건아니었지만,이렇게가벼이사람을죽이는인간이무고할리없었다.
"..."
그래도,당장은참는게낫다.그녀와그녀의가문이지은죄가거의확실하다해도,그증거를내가알고그들을죽이는것은다르다.
게다가,내세력없이이런거대한가문을처치하는것은비효율적인일이었다.
"어머,아직미련이남으셨나요?다행히도제몸은준비되어있답니다."
내가문밖으로나가지않는이유를잘못해석했는지,크리스티나가드레스앞섬을살짝내려가슴골을가볍게드러냈다.
"아니요.그럴필요는없을것같군요."
그리고결국,내가해결해야할일은아니다.정식으로엘레노어가황제자리에즉위하고난뒤에,그녀가알아서할일이다.
그래도마룡의심장을찾기까지시간이좀남아있다면,그녀의가문을정리하는것이나을지도모른다.
"안녕히계십시오."
복잡한마음을억지로정돈한채,나는알트도어가문의저택을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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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신경쓸것없어."
성검이반짝였다.어두운밤이었기에,작은빛이었지만선명하게눈에띄고있었다.
그녀의말을차갑게쳐냈지만,나는곧그게실수였다는사실을깨달았다.내게말을걸어줄사람은이제성검밖에없었으니까.
뭐,그럴것같긴했어.다행이네.
"지금누굴놀리냐..."
화를낼힘도남지않았다.허탈한목소리로중얼거리는것말고는,아무것도할수없었다.
진심이야.너는,누가뭐래도훌륭한용사가되어가고있으니까.
"용사?"
나는용사를좋아해.지금까지수없이많은용사를봤고,그손에들렸지.엘레노어도나름용사의자질이있었던것같지만...부족했어.
"..."
그래서,네가나를잡아주기를항상꿈꾸고있었어.지금은좀힘들어하고있는데다,네가내웃음을싫어하는것같아서말을하진못했지만.
"그랬지."
처음여정을떠났을때,성검의웃음소리는시끄럽고짜증나는소음이었다.
귀환의식은실패했고언제돌아갈지모르는상황에빠진데다,제국과는척을지고황제를반죽여놓은상태였다.
속없이'모험!영웅!용사!'하고떠드는성검의목소리가달가울리없었다.
그래도,너와함께떠난모험은재미있었어.엘프와싸운것은오랜만이었지만신선했고,오크의살덩이를베는건익숙하지만항상안정적인맛을보장하지.
"검이니까,그런걸좋아하는거냐."
그보다더인상적인건,바로너였어.한번도보지못했던용사.
"...고맙다."
생각해야할게너무많았다.무언가일어나고있는데,내가거기관여할수있는능력도정보도없었다.
무엇보다,어떤선택을내려야할지결정을내리지못했다.
너무걱정하지마.결국에는,네가원하는대로될테니까.너는그런선택을내릴수있는사람인걸.
무의미한말이라는것은알고있었다.성검의말이맞은적은많지않았다.
하지만,그런쓸데없는말이라도나를위로하기에는충분했다.
"그럼,다시시작해볼까."
혼자가되긴했지만,이미어딜찾아야할지는알고있었다.
마탑으로들어가야한다.용사의신분을앞세우고,경비병몇명을대동하면충분한압박을줄수있을것이다.
원인이뭔지알아내고,다시는그런일이일어나지못하게하면된다.
"음?"
막걸음을내딛으려는사이,익숙한기운이느껴졌다.
"또뵙네요.에네렐.그간무탈하셨나요?"
순간,나도환상을보고있는것아닌가하는의심이들었다.
그녀의모습은,너무나도멀쩡하고자연스러웠으니까.
"셀리아?"
마지막으로봤을때는,거의폐인이나다름없는상태였다.
조금덜고통받길바랐지만,많은기대를걸지는않았다.해결할수없는문제라고생각했다.
하지만,그녀는나를처음만났을때처럼환하게웃고있었다.마음에한점의의심과불안도없다는것처럼,구김없이밝은웃음이었다.
이전처럼심한거부감이들지는않았다.사람머리통을선물이랍시고건네주는미친년을보다셀리아를보니,그나마덜미워보인걸지도모른다.
"좀괜찮아졌어?"
"이번에도,저를먼저걱정해주시네요..."
셀리아의표정이조금굳어졌지만,이내그녀는환하게웃었다.
"덕분에,괜찮아졌어요!뭘해야할지확실히깨달을수있었거든요."
내착각일지도모르지만,그웃음에서묘한불안감이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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