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안개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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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큰제안을받았다.흔들릴수밖에없는내용이었다.
하지만,내가해야하는일이바뀐것은아니었다.
"직접들어가서증거를가져오시다니,역시용사님이세요."
좀아이러니한상황이었지만,지금내가조금이라도믿을수있는사람은크리스티나밖에없었다.
황제는무언가알고있는것같았지만입을열려들지않았고,그가그런태도라면엘레노어에게물어봐도달라지는일은없을것이다.
셀리아와네르웬은정말로아는것이없는것같았다.남은사람이라면파시어정도겠지만,그녀에게물어보는것도쉬운일은아니다.조금이나마이사건에관여된건사실이었고,그녀에게정보를얻었다가외곡된정보를얻을수도있었으니까.
"하지만,그런일이있었으면저희를불러주시지그랬어요.용사님의싸움을도울정도는아니겠지만,조사와증거확보라면쓸모가있었을텐데."
결국,함께일을의논할만한사람은그녀밖에남지않았다.모든것을아는사람도아니었고,엄밀히말해서내편이라고말할수있는사람은아니었지만,당장은어쩔수없었다.
"필요하다고생각하면제가부르겠습니다."
하지만,필요이상으로그녀와의관계를과시할수는없었다.알트도어가문을부르지않았다고섭섭해하는것도,그녀의영향력을확보하기때문일테니까.
마탑의죄를용사가알아내추궁하는것은그냥사건이지만,거기에알트도어의병사와귀족들이끼어있다면의미가더욱커진다.
그녀의생각대로휘둘릴생각은없었다.
"...표정이좋지않으시네요.많이피곤하신건가요?"
"그건아닙니다."
내얼굴이피곤해보인다는건아마사실이겠지만,내눈에는그이상으로조급해보이는크리스티나의얼굴이보였다.
"원치않은자리에끌려가셨다고들었어요.안타깝게생각해요.아직분노가남아있으셨을텐데."
"걱정받을만큼힘든자리는아니었습니다."
"하지만,황제폐하께서,그런일에는관심이없었을것같은데요.맞죠?"
같은사람을욕하는것은,관계진전에큰도움이된다.아마크리스티나가노리는것도그런상황인것같았다.
"이건좀조심스럽게해야하는말이지만...용사님이하시고계신일,헛수고가아닐지도몰라요."
"네?"
뭔가중요한이야기를하려는것처럼,크리스티나가목소리를죽였다.나도그녀의입에주목할수밖에없었다.
"황제폐하께서...후계자를찾고있다는말이있었거든요."
"아."
무슨중요한이야기를하나했는데,이미알고있던내용이었다.
자세한이유나황제의상태를전해듣지는못했지만,이방인인나에게황제권유를해야할정도로극단적인상태라는것은알수있었다.
"용사님도,그걸원하고있었던거잖아요?"
"네?"
크리스티나의입에걸린미소가,그리긍정적으로보이지는않았다.
"사정을전부알고있는저희라면모를까,겨우농노신분의인간몇명이실종되었을뿐인사건이잖아요?레오드린의영지에서는,그렇게생각할수밖에없었겠죠."
"..."
"그런데,그정도의사건을해결하기위해굳이수도까지내려온다?그리고,나서바로저를만나셨다...저도바보는아니라고요.용사님이뭘원하시는지,눈치챌정도는된답니다."
자신만만하게으쓱거리는크리스티나가,그리좋게보이지않았다.
아무도나를이해하려하지않는다.아니,잘못된관점으로나를바라보고멋대로해석한다.
"용사님의존재감을수도에과시하고,미담을만들면서저희같은귀족과연줄을만든다.용사님께서도아직포기하지않으신거죠?"
그녀는내표정이굳어지는것을보고조심스레말을멈췄다.나는고개를저었다.
"계속말해보시죠."
"다음...이되는것말이에요."
아무리그녀가황제의명령을거부하고,제멋대로해석하려드는귀족파의인간이었지만,그래도지켜야할선은있었다.
황제와그후계의직위는,제국에사는사람들에게차마입에담기도두려울만큼중요한일이었다.
"황가의가호도받을수있는분이고,마왕을훌륭하게퇴치하기까지하셨으니이미자격은가지고계시죠."
황제에게이얘기를들었을때도유쾌하다고할수는없었지만,그녀에게듣는황제이야기는끔찍할정도로역겨웠다.
최소한,황제는절박해보이기라도했다.그자신의욕심보다는,누군가일지는몰라도타인을위한마음을앞에세워감추기라도했다.
"뭐,현황제폐하께서는...딸사랑이너무지극하셔서,그비겁한사기꾼이아니면후계를물려줄생각조차없으신것같지만요."
그건내게아쉽지않았다.그녀는모르고있었지만,나는이미황제의제안을거부했다.
그보다내가더불편한것은,내가중요하게생각하는것에그녀가아무런관심도없다는사실이었다.
"그보다,조사는어떻게되어가고있는겁니까?"
"책임자를잡았잖아요?아쉽지만,여기서더파고들어봐야우리가이득을보지는못할거예요.용사님이목적을달성하시게된다음에는,결국마탑의힘이필요할테니까요."
그녀는내말의의미를전혀알아듣지못했다는것처럼,엉뚱한소리를하고있었다.
"그늙은마법사를더압박할수있으면좋았겠지만,아쉽게도저희를불러주시지않았으니까요.이쯤하는게낫겠죠."
"그걸로된겁니까?"
"그럼요.좀아쉽지만,만족해야죠."
사람이죽었다.나는,수많은시체를봤다.
죽은사람의주검을처음본것은아니었다.하지만,그건마물이나오크처럼'인간이어찌할수없는존재'때문에일어난죽음이었다.
슬프고괴로웠을지언정,극복할수있다는희망이있었다.마물중우두머리를마왕을죽이기위한여행은문제없이진행되고있었고,오크로드는결국내손에쓰러졌다.
하지만,이건아니다.사람이사람을죽이고,나는아직그원인을끊어내지못했다.
마물의끔찍한마기가서려있지도않고,비상식적인오크의힘에뭉개져죽은시체도아니다.사람이,그작고미약한힘으로검을휘둘러다른사람을죽였다.
"마탑에서꼬리를자르기시작하면,더이상죄를찾아내긴힘들어요.꼭그들이아니라도,결국도적들은여행자를습격해죽였을테니까요."
마물이라는너무명백한인류의적이있었기에잠시잊고있었던사람이었다.별다른이유없이도,사람은사람을죽인다.
"마탑측에서죽은사람과마탑의관계성을증명하라고요구한다면,저희가죄를더추궁하기도어렵죠."
"...답답하군요."
파시어를의심할수밖에없는처지인내가,답답하고막막했다.파시어가원인이아니었다고한들,마탑은그녀의세력이고범인은그녀의동료다.
왜그럴수밖에없었는지,붙잡은다음따져묻고싶었다.
"너무조급하게생각하실필요없어요.결국,용사님의시간이올테니까요."
그리고,그녀도답답했다.마치상식이비틀린것처럼,내고통을전혀이해하지못하고있다.
이런생각을하게될줄은몰랐지만,조금용사파티가그리워졌다.
그들과각을세웠을때도,갈등의가장큰원인은사람이었다.거대한마물의파도속에죽어갈수밖에없는,힘없고약한사람들.
엘레노어와파시어,네르웬은가차없이그들을저버렸다.셀리아는고민했지만,결국그들의의견에동조했다.
그렇다고해도,그싸움은적어도옳은일을하려는사람과옳은일을하려는사람의싸움이었다.
당장눈앞에있는사람을살려야할지,더빨리마왕을쓰러트려눈에보이지않는곳에서죽어갈사람을살려야할지에대한다툼이었다.
"...즐거워보이시네요."
"그럴수밖에없잖아요?용사님이최고의자리에오르게된다면,지금있는불합리한법률과황가의행패가싹사라지게될테니까요."
목구멍을타고흐르는역겨움을힘겹게삼켜야했다.크리스티나와,알트도어가문과척을지려한다면확실한계획과준비가있어야한다.
적어도그전까지는,억지로나마웃어야한다.
"상상해보세요.그용사님에게이런푸대접을할정도니,제국을지탱해왔던우리귀족에게는얼마나많은핍박이있었겠어요?얼마나천한것들을좋아하시는지..."
"고생이많으셨겠습니다."
"뭐,제가얼마나이런말을하든용사님이당해야했던수모와고통에비할바는안되겠지만요.그래서,작은선물을준비했답니다."
크리스티나의말이,기쁘기보다는두려웠다.
내가무엇을원하는지,무엇을싫어하는지도모르는인간이제대로된선물을줄리없었다.
"그거,기대되는군요."
"분명기뻐해주실거라믿어요."
그녀가박수를두번치자,한번봤었던시종이작은상자를든채들어왔다.
"많은일들이있었죠...기억나시나요?"
"글쎄요."
그녀의말처럼,많은일들이있기는했다.하지만,그녀와공유하는추억은많지않았다.
"처음황궁에서빠져나오셨을때,모험가일을하셨던것.기억나지않으십니까?"
"그러고보면,그런적이있었던것같기도하네요."
막황궁에서벗어났을때는,계획도없고생각도없었다.어떻게든마법재료를찾아야한다는일념하나로,황궁을빠져나왔을뿐.
"용사님을알아보지못했던무례한놈이있었지요.뭐,천한놈들이보는눈이있을리가없겠지만,어쨌든그래서,제가용사님대신대가를치르게해줬습니다."
그말을듣고,나는집사가테이블위에올려둔상자를멍하니바라보았다.
정사각형의묵직한상자안에서는,향냄새가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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