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0화 〉 안개6
* * *
"너는아직어렸지만,그녀와꼭닮은눈을가지고있었지.나는그때,깨달아버렸다."
엘레노어의추억속황제는,너무나도따뜻하고인자한모습으로그를맞아주었다.
그안에숨겨진슬픔과고통을헤아리기에,그녀는너무어렸다.
"이건내가사랑했던사람의딸이다.엘레시아가이세상에남기고간유일한유산이다.이건...내딸이다."
"그래서..."
엘레노어가믿고있던세상이무너지고있었다.그녀가당연하게받았던제국의권세와명예들은,모두한사람의변덕으로인해이루어진일이었다.
"그래서,너는내딸이되었지.그뿐이다."
어려운이야기를끝낸황제는,얼마남지않은수명의대부분을써버린것같았다.
"그렇다한들,그때까지만해도되돌릴기회가있었을것입니다."
"무엇을?"
"저를...자식으로인정하지않기만하셨더라면."
적어도,이모든사건은합의에의해일어났다.
결혼과사랑을거부했던엘레시아라해도,황궁에들어온상태에서불륜을저지를정도로무모한사람은아니었다.
황제가그녀를풀어줬다해도,별거했다는사실자체를숨길수는없었다.보는눈이많았을테니까.
"조금만더...저와제어머니를모질게대하셨다면."
황후라한들,후계자로인정될수있는아이를낳은게아니었다.그저계약상이어진결혼이유지되고있을뿐,엘레노어를낳았을때이미황제는그녀를놓아준상태였을것이다.
"저를버리기만하셨더라면!"
황제의사랑을거부한여자가나오는것이,심지어황후의자리에서그영광과권세를거부한사람이흔한일은아니었다.
하지만,그사건자체가불가능한일은아니었다.황제가자신의후궁을총애하는신하에게물려주거나,환속시켜자유를찾게허락해주는일은적지않았다.
"...슬프게도,그렇게는할수없었다."
"대체왜..."
"그사람을사랑했으니까.너를사랑했으니까."
황제의눈빛에는한점의후회도들어가있지않았다.
"너는내게희망이었다.이제국과내권위만큼...아니,그이상으로내삶의목적이었다."
"아버지."
"너를위해계책을꾸미고,네가있을곳을만들기위해수를쓰고.하나하나행복하지않은일이없었다.지치고고된일이라도,너를위해서라면할수있었다."
엘레노어는,차마그의행동이잘못되었다고말할수없었다.
제국의관점에서보면무익한행동이었다.황제의행보라고하기에는무책임한생각이었다.
"차라리,다른후계자를만드셨다면..."
"노력은해봤다.하지만,도저히의욕이나지않더군.어쩌면,나는불임이었을지도모르겠다."
"설마."
"게걸스럽게여자를찾아다닌건아니었지만,후사를만드는것또한황제의의무.그의무를위해노력했다...라고말할수있을만큼의관계는가졌다.외부에공개된이는없었지만."
황제가불임이라는소문은종종들었던소문이었다.하지만,엘레노어가눈을부릅뜨고있는한대놓고그걸입에담을수있는이는많지않았다.
적어도,대외적으로자손하나를가지고있는한,아무리의심스러워도그걸입밖으로내는순간엘레노어의정통성을의심하게되는일이니까.
"그래도...어떻게모두를기만하신겁니까."
황제가이렇게까지말한이상,엘레노어도그말의진위를의심할수는없었다.
"모두를속일수는없습니다.이걸알고있는사람이있었을겁니다."
관계없는귀족이라면,한번버려진황후라고한들'몇번황제가찾아가안았겠지.'하고넘겨짚을수있다.
하지만황제의시종은그의일거수일투족을전부알고있었다.황제의경호대나메이드같은,핵심적인인간들에게는그의행적을숨길수없다.
"왜모두가...황제폐하의말을의심하지않았던겁니까?"
"수를썼지.나와가장가까이있는이들에게는숨길수없었지만...그래도,그들이정보를교환하지못하게막고비틀어주는건가능했으니."
황제는한명이고,그들이섬기는이들은많다.
황제는아주신중하고조심스럽게,'버려둔연인을만났을지도모르는시간'을만들었다.
"저를만난다음에말입니까?그게가능할리가..."
"쉽지는않았지.하지만,불가능하지는않았네.나와가까이있는사람은한둘이아니고...그들의정보가합쳐지지않는한,빈틈은나오기마련이니."
아무도의심을제기하지않는상황에서,긁어부스럼을만들고싶은사람은없다.서로서로,자신이눈치채지못했던순간에황제가그녀를안았다고생각할뿐.
"눈치챈사람이정말없었습니까?아무리그래도,저와황제폐하의차이점을찾아낸사람이있을법도한데..."
그렇다해도,황제의자식이다.피가이어져있지않았다면,그이질감을눈치채는사람이생길법했다.
"그에대한변명도...아니,미끼도마련해두고있었지.어린시절의너는놀랍도록강하고,순수하고,결연했기때문에쓸수있는방법이있었다."
"그게무슨..."
"엘레노어.용사전승에대해얼마나알고있지?"
엘레노어는인상을찡그렸다.아무리생각해도,그녀의출생과용사는아무런관련이없는이야기였으니까.
"자세한것은...모릅니다."
"용사는대부분외부에서소환되지만,반드시그런것은아니다."
"그뜻은..."
기억을뒤적여용사에대한정보를어렴풋이기억해낸엘레노어는,그가무슨말을하려는지눈치챌수있었다.
"들어본적이있습니다.어느귀족가의망나니자제가어느순간용사로선택받아,이전과는달라진모습을보여줬다거나..."
"그래.외부에는숨겨져있지만,그들도결국다른세계에서온자들이다."
"그게무슨..."
"빙의,혹은환생.여신이용사를내려줄때,그들의육신을포기하고그혼만이세계로불러들일때도있는것이지."
엘레노어는동요를감추지못했지만,어렵사리이성을되찾을수있었다.
"그게,제출생과무슨관계가있습니까?"
"출생에는관계가없지.하지만...내게는좋은변명거리가되어주었다."
황제의목소리가서서히갈라지고있었다.
"어찌하여,너는나와다른가?생김새가,행동이,생각이다른가?그런질문들에대한훌륭한방패막이가되어줬으니까."
마치그녀가빙의한용사인‘것같은’말을황제가신하들에게흘리면,그들은스스로정보를짜내알아서납득하고돌아갔다.
"그런짓을...그런것을숨기신겁니까?"
"만에하나네출생을눈치챈사람이있다해도눈을감아줄만한요인이되기도했지.용사의혈통과황제의혈통은대체할수있고,황가의가호는이어지니까."
거짓말이또다른거짓말을낳아,더이상돌이킬수없을정도로크게번졌다.
그모든것은,엘레노어를위해서였다.
"뒷감당을,어떻게하시려했던겁니까."
"용사의여정이끝나고나면그,혹은그녀를황제로만들려했다.용사와함께있는네게정치적암수를쓸놈은없을테고,있다한들네가정리할수있다고생각했으니."
"그렇게까지..."
황제는슬프게고개를숙이며,자신의실수를인정했다.
"안일했다.얻을수있는정보는한정되어있고,적어도수도에서는네게호의적인모습이었으니까."
"..."
"내딸이라서하는이야기는아니지만,외모도누구보다아름답지.그고난을이겨온다음이라면,서로가서로를받아들여줄수있을줄알았다."
여기서부터는,황제보다는엘레노어의실수가더컸다.
바보같을정도로선한사람이다.조금만더그의고통에귀기울여줬다면,조금만더그의아픔을인정해줬다면황제의계획은성겅할수있었으니까.
연인이나부부관계가되지는않더라도,최소한몇년정도이세계에남아달라고간청한다면그가들어줬을지도모른다.
"...만일,에네렐이제안을거부했다면어떻게하실생각이셨습니까?"
그가용사의힘을양도해준건,순전히운이좋았을뿐이다.
"한번용사와연을만들어둔다면,그를거스르면서까지너를위협할존재는없다고생각했다."
"음..."
"그에게황제자리를맡긴뒤라면,이전황제의혈통에관심을두는사람은줄어들겠지."
엘레노어는,이게말도안되는계획이라고생각했다.하지만아예불가능한것은아니었다.
그녀만아니었다면.
"차라리,딸이아니라기사로서,몸종으로서저를대하셨다면..."
그녀를버렸어야했다고말하고싶었다.엘레노어가황제입장에서생각해봐도,그녀를딸으로받아들인다는전제로는이보다더나은계획을세우기어려웠으니까.
"그럴순없었다."
엘레노어는,이제인정해야한다는사실을깨달았다.과거는과거였고,그녀가할수있는일은없었다.
하지만.
"만약에...처음제가그를봤을때,이모든일을다솔직하게고백하고,제발함께해달라말했더라면..."
엘레노어는고개를떨궜다.
그녀의탄생도,출생도,그걸위해황제가해야만했던거짓말도전부그녀가손을댈수없는영역이었다.
더잘해줬어야했다는후회도,그가너무많은의무를짊어지게한것에대한반성도지금은늦어버렸다.
"그래도..."
하지만,멈춰있을수는없었다.오늘했던일때문에,내일후회할수는없었다.
엘레노어는고개를들었다.그녀에관한충격적인진실을듣고난다음이었지만,그녀의눈은자신을향해있지않았다.
"그는황제가되지않겠다고말했습니다."
그에대한감정들이엘레노어의안에서용솟음쳤다.속죄,집착,사랑,미혹.어쩌면,그중어느것도진실이아니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그감정의크기만큼은너무나도거대했다.
"그리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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