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안개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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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리없습니다.저는분명히적합한황제폐하의부인,제어머니의배에서태어난황제폐하의자손입니다."
엘레노어는고개를저었다.비록'불의의사고'로인해다른곳에억류되어있다가황제의부름을받았다한들,그녀의어머니는황제의아내였다.
비록황제와얼굴을마주하기전에는,그녀자신도모르고있던비밀이었지만.
"어디부터이야기해야할지모르겠구나.네가이걸받아들일준비가되었는지도..."
엘레노어는입술을깨물었다.당장은황제의말이틀렸다고생각했지만,아무리생각해도그가그럴이유가없었다.
만일그말이사실이라면,그녀는어떻게해야할지상상하기어려웠다.
"그래도들어야합니다."
하지만,지금그녀에게는더물러설곳이없었다.정말로황제의생명이얼마남지않았다면,그사건은영원히묻혀버릴지도모르는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어디부터설명해야할까."
황제는어렵사리눈을들었다.
"그냥,내가누군가를사랑했을뿐이다.그리고,그사람은나를사랑하지않았을뿐이고."
"...겨우그겁니까?"
"그게전부다.그외에는,일어날수있는사건들이불운하게일어났을뿐."
정치적관계,정략결혼에대해모르던엘레노어가아니었다.
사랑없는결혼은흔하게일어날수있는일이었다.하지만그게황가에관련된일이라면,그무게감이달랐다.일어나서는안될일이다.
"제어머니가...부정을저질렀다한들,제가황가에들어올수있는이유가되지는않습니다."
황가에관한일이라면허용되지않을일이었지만,어느정도권세있는귀족가의결합에서는부인도남편도따로애인을두는일은흔했다.
하지만,그때도최소한의선은지켰다.적어도본남편의아이를낳을때까지는애인과의접촉을철저히금하고,후계자를낳아부인으로서의의무를다한후에일탈이이루어지는식이었다.
"부정이라고욕하고싶지는않네.그녀가먼저사랑했던사람은따로있었고,그걸권력으로누를수있다고생각했던사람은나였으니."
"...무슨일이일어났던겁니까."
황제는헛기침을한뒤,무거운입을힘겹게열었다.
"엘레시아.네어머니이자,내가유일하게사랑했던사람.그녀는아름답고..또신의있는사람이었다."
엘레노어는아무말도하지못한채,황제의말한마디한마디에온신경을기울이고있었다.
"혼약자도없었고,모든행동에기품과배려,사랑과인정이서려있던여자였네.나는황태자였을때부터그녀의사랑을얻기위해애썼다."
"그건..."
"하지만내가황제의책무에집중하는동안,그녀는자신의인생을살고있었지.낭만적인소설에나올법한여행을떠났고,그과정에서자연스럽게...그녀를호위하던기사와사랑에빠졌다."
황제의말에서느껴지는무게에,엘레노어는입을다물수밖에없었다.
아주어릴적의기억밖에없었지만,그녀의어머니는항상엘레노어를사랑으로대해주었다.
그런사람이불륜을저질렀을거라고는도저히생각할수없었다.
"제어머니가그런비밀을숨기고있었던겁니까.비열하게아버지를속이고,의무를..."
"엘레노어.내딸아.부디네어머니를모욕하지말아다오.그녀는,내가가장사랑했던...사랑하는사람이니까."
"하지만,황제폐하의말씀이사실이라면!"
"그녀는내게모두알려주었다.사랑하는사람이있다고.그때는황제가되기까지한걸음밖에남지않았었던,내구애라도받아들일수없다고."
"그렇다면,취소할수있었던것아닙니까?"
"그때는이미,너무멀리와버렸을때였다.나는황제가되기위해엘레시아의가문과결합해야했고,그녀의가문은내협조를얻어야했지."
다른계승권자를물리치고황제가되기위해서는,정치적영향력을최대한끌어올려야한다.
그걸알고있는엘레노어였지만,그렇다고해도쉽게이해할수있는상황은아니었다.
"아무리그래도...가문과제어머니가합의한결혼이아니었던겁니까?"
"놀랍게도아니었네."
엘레노어로서는믿을수없는일이었다.제국의정치는그렇게주먹구구로운영되지않는다.
“그게가능할리가...”
하지만,엘레노어는아주당연하고도사소한사실하나를깨달았다.그녀의출생에관한이야기를하고있으니,당연히지금일어난모든일들은그녀가태어나기전에일어난일들이다.
지금은당연한것으로여겨지는현황제치하에서의상식은,사실그녀가태어나기전까지상식이아니었던걸지도모른다.
"엘레시아는조용했고,고분고분했어.그러면서도멸시받았지.그녀의가문은엘레시아를그저가문의도구로취급했어.내게바쳐질공물이자,가문의영향력을올리기위한진상품으로."
엘레노어는상상조차하지못했던일이었다.그리유복하다고는할수없었지만,사랑을받지못했던기억은없었다.
"나도,아마가문에서도,그녀가순순히받아줄거라생각했네.어리석었지.그녀의가문은어리석은선택을했더라도,나는그랬으면안됐어."
"어째서..."
"그녀라면해줄거라생각했네.잠깐방황했던기억은흘려넘기고,주어진환경에맞춰행동해주리라믿었어.오만했다."
비극이었다.그녀가받아들이기어려울정도로힘겨운비극.
"나보다훨씬어렸을적에,몇배는성숙했던네앞에서할말은아니지만...그때의나는어렸네.아직제대로된인간이되지못했지."
황제의흐릿해진눈은,눈앞에있는광경대신과거를비추고있었다.
"어리석었습니다..."
엘레노어는,소름끼칠만큼자신과황제가닮았다는점을깨닫고말았다.
그렇게해줄법한사람에게,자신의뜻을강요한다는점이.
"엘레시아에게그기사는,사랑은양보할수없는것이었네.하지만,그상황에서그녀가선택할수있는건없었지."
"하지만,억지로라도..."
"나는그녀를안지않았어.차라리내욕망을채우기위해서였다면그녀의입을막고황가의씨를뿌렸겠지만...나는엘레시아를사랑했으니까.기다릴수있었지."
믿을수없는말이연이어쏟아지자,엘레노어는그의말에반박할생각조차하지못하고그저들을수밖에없었다.
"내심기대하기도했지.내진심을보여준다면그녀의마음을돌릴수있지않을까.충분한시간을들인다면나도그녀의사랑을받을수있지않을까하는소망이남아있었네."
"그래서..."
"그렇기에,그녀의순수한사랑을증오하지않았네.결국그녀를가진건나였고,언젠가는그고결한사랑이나에게도주어질거라생각했으니.하지만,틀렸네.어리석은생각이었어."
자신의죄를고백하는죄인처럼,그의목소리는어리석은자신에대한후회와죄책감으로가득차있었다.
"내가그녀와보낸삼년은,그녀가그녀의기사와보낸일년에비해한없이작은시간이었다.의도치않은여행을떠나,서로의진심을확인하고,가장위험한순간에서서로를위해헌신했던그순간보다무의미했다."
패배감과억울함,불합리함에대한한탄과그안에서도숨길수없는그녀에대한사랑.수많은감정들이정제되지않은채그저흘러나오고있었다.
"그래서,그녀를놓아줬다.그때는이미황제로서자리를잡은다음이었고,사소한불화로흔들릴위치는아니었으니."
사랑을해본적없는엘레노어였지만,그가그결정을내리기까지얼마나큰아픔과고통을겪었을지헤아릴수있었다.
"그런데."
황제가문득,말을멈췄다.지금까지의감정과는비교도안될감정이온몸에서뿜어져나오고있었다.
"그렇게,내가양보했다.이나라의황제인짐이,원하는것은무엇이든할수있는내가그들의행복을빌었단말이다.그렇다면,적어도그런아픔을내게강요했다면..."
분노가,흘러넘치고있었다.
"적어도,행복해야하는것아닌가?내가그정도는기대할수있는것아닌가!"
어떤상황에서도,이정도로강렬한동요와분노를보여주지않았던황제였다.극도로화가난상태에서도차분한그였으니.
"엘레시아의가문은너무나도역겨운짓을하더구나.그들을방치하고,귀족가의영애로서는견디기힘들상황에처넣었어."
어린시절의엘레노어는평민과함께어울려지냈다.그걸딱히'있어서는안될처사'라고여겨본적은없었지만,아무도그녀의어머니가황후라고생각하지않았다,
"그걸로는모자라서,그들은엘레시아의존재를수치라고생각했다.아무도그녀에게관심을가지지않았으니...조용히처리한뒤내게죄를청하면,그가문의다른여식으로새황후를들일거라생각했네."
"황제폐하..."
엘레노어는말을삼킬수밖에없었다.차마위로할엄두조차나지않는,어둡고도고통스러운비밀이었다.
"내가상황을알아챘을때는이미모두가죽은뒤였다.아내와딸을지켜줬어야할기사는'불운한사고'에휘말려사망했고,아내는무도한이들에맞서그녀의딸을지키려다죽고말았지."
그다음부터는그녀도알고있던이야기였다.
"그때까지만해도,아무런생각도하지못할만큼몰려있었다.그저슬픔에빠진채,어떻게든이일을끝내고싶다는마음뿐이었네.관련된모든이들을하루빨리죽이고,돌아가쉬고싶었다."
긴침묵이흐르는동안,엘레노어는아무말도하지못했다.황제의감정에압도당했다.
"그런데,네가있었다."
이리저리흔들리던황제의눈이 엘레노어의눈과마주쳤다.아주멀리있는광경을 선명하게보고있는것같은눈동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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