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57화 (157/217)

〈 157화 〉 안개­3

* * *

다행히,황제의곁엔아무도없었다.넓은알현실에홀로앉아있는황제의모습은,믿기힘들정도로초라하고위태로워보였다.

"..."

어떻게대화를시작해야할지판단하기어려웠다.

몸은괜찮냐는말을걸정도로친한사이는아니었고,다짜고짜화를낼정도로험악한분위기도아니었으니까.

"먼저,감사를표하네.그대가이일에관여해줄거라고는생각하지못했으니.제국은또한번그대에게큰선물을받았어."

"고마워할건없습니다.당신에게더받아낼것도없고요.그저,제가돌아갈때까지지원만해준다면그걸로충분합니다."

다행히도,그가내게원한이나복수를꿈꾸고있는것같지는않았다.산전수전다겪었을황제니무언가숨기고있다해도내게는들키지않았을테지만.

"그건걱정하지말게나.그때다짐했던것처럼,제국은자네를전심으로지원할테니까.내가영미덥지않다면,다른방법도있고."

하지만,여기서긁어부스럼을만들고싶지는않았다.그보다,내가여기온이유는좀더단순했다.

"그범죄자에대한처벌은어떻게되는겁니까?"

이상한소문이있었다.크리스티나는이일에황제가관여되어있다고주장했고,마법사들도꽤당당해보이는눈치였다.

"...그리크진않을걸세."

"법때문입니까?그렇다면어쩔수없지요."

마음을가라앉히고생각해보면,시체를비싸게사들였다는이유로그구매자를전부죽이거나평생가두기는좀어려웠다.

시체훼손죄가있을지는모르겠지만,마법에필요하다는명분을들이대면기껏해야감옥에얼굴좀비추고나오는정도가될지도모른다.

아쉬운대로,실제범행을일으킨각지의범죄조직들을정리할수도있겠지만,사실근본적인해결은되지않는다.

주머니를털기위해사람을죽이는이와,시체를얻기위해사람을죽이는이들.그들중누가더선하고악한지따지는것은별의미없는일이될테니까.

"아닐세.그보다는...파시어의뜻을따르는이들에게그리모질게대할수없기때문이지."

순식간에분위기가얼어붙었다.그마저내게이런거짓말을할거라고는생각하지못했다.

"파시어가이걸계획했단겁니까?"

하지만,크리스티나의말과는달랐다.다른건둘째치고,황제가나를속여야할이유가없었다.

귀족파인크리스티나는비교적황제쪽에치우친파시어를모함하고,그와내관계를악화시키는것으로이득을볼수있었다.

"제가아는귀족중하나는,당신이뒤에있다고주장했었는데요."

"물론,그말도옳네.나는파시어에동조했고,그일이일어나는것을묵인했으니."

황제는숨기려는기색도없이,그저고개를끄덕일뿐이었다.

"어째서죠?"

"그대를위해서네.그래도...나는파시어의의견에동의했지만,그게진정내가원하는바는아니었어."

어디까지연결되어있는걸까.혼란때문에,누구의말도믿을수없는처지가되어버렸다.

"그러면...당신이원하는것은뭡니까."

"흠."

그는뜸을잔뜩들인뒤,지친한숨을내쉬고나서야입을열었다.

"사실,지금이얘기를꺼낼생각은없었네.자네에게실례될수있는말이라고생각했기에,더기회를보고말하려했지."

"...그냥빨리말씀하시죠."

그리중요한말을할거라고는생각하지않았다.그의생각은뻔히보였으니까.

"기껏해야,엘레노어와맺어져다음황제를낳아줄수있나,그런것아닙니까?"

"한번실패한제안이잖나.그대가원한다면나는언제든그결합을축복하겠지만,그런제안을하기위해자네를부른건아닐세.그래도,혹시생각이있다면..."

"절대안할겁니다."

엘레노어를보는내시선은,조금복잡했다.그녀가나를따라오며목숨을아끼지않고싸워줬다는건명백한사실이었고,나도그걸부인할수는없었다.

그래도,정식으로그녀와이성관계를맺고싶지는않았다.

황제의눈에아쉬움이스쳐지나갔지만,그의말대로그게본론이아니라는듯그는금세눈을똑바로뜬채나를보았다.

눈과눈이마주쳤다.다늙어가는황제의눈빛이었지만,그안에는적지않은세월과압박감이담겨있었다.

"자네.제국의다음황제가되어줄수있겠는가?"

하지만황제의입에서흘러나온말은,내예상을아득히넘어서는충격적인말이었다.

얼어붙은나는,잠깐멈춰선채그의말을천천히곱씹었다.하지만,어딜어떻게생각해도내가그의말뜻을오해할만한요소가없었다.

"그말...진심입니까?"

교묘하게말을꼬아,빠져나갈여지를남겨둔채꺼낸말이아니다.

물론공적인자리에서꺼낸말이아니니구속력은없겠지만,그렇다해도쉽게꺼낼수없는말이라는것은분명했다.

"당연하지.이런일에농을칠정도로가벼운사람은아니네."

머리가어지러웠다.

"다음황제...제가되어야할이유는없는것같은데요."

"그대는적법한용사다.당장자네가다음즉위식을거행한다한들,황가의가호는그대를어루만지겠지."

"다른사람도있지않습니까?길거리를돌아다니는사람아무나골라황제로만든다해도,저보다는나을것같군요."

"황가의인간들은미련하고악하네.자네보다차기황제로더어울리는인간은없어."

그의말이길어지자,나는머리를부여잡고황제의제안을진지하게고민해야만했다.

이런양보를할거라는기대는한번도해본적없었다.너무예상밖의상황이었다.

하지만,내가황제가된다고해서얻을것이없었다.나는고개를저었다.

"황제가되고싶은마음도없을뿐더러...정말,다른의도가있는건아닙니까?엘레노어를보살펴달라거나..."

"오히려,그녀를증오한다면내의견을진지하게고민해봐야할걸세.엘레노어의권세는어디까지나그녀가기사단장이라는것과,황제의딸이라는잠재성에서나오는것이니."

황제의말한마디한마디가,모두내예상을아득히벗어나있었다.

"황제가되고난뒤처음내린명령이내딸에대한추방일지라도,전혀원망하지않겠네.자네가황제가되고난다음에는,뒷방늙은이따위의명령이야어찌되든상관없겠지만."

엘레노어를위한것도,제국을위한것도아니다.그렇다면,그는정말로나를위해이런제안을꺼낸걸까.

황제의신분으로내게줄수있는,그로서는최고의선물이었을것이다.어쩌면,그자신의목숨보다도더커다란속죄일지몰랐다.

"황제..."

이를꽉악문채,그의생각을이해하려했다.내가황제가되고난다음에,어떤행동을하길기대하고있는걸까.

"엘레노어는...좋든싫든쳐내지못하겠군요.만에하나,제가황제가된다면."

귀족파의지지를받아찬탈을하는형태로황제가되는것이아니라,현황제의지지를받아자리를물려받는다면어쩔수없었다.

지지세력이흔들리고있다는약점은그순간,현황제가아닌내문제가될테니까.이러니저러니해도내뜻을따라줄엘레노어를내손으로쳐낼수있을리가없었다.

"흠...그것까지생각하지는못했군."

"진심입니까?"

"어차피,시간이그쯤흘렀으면더이상짐이관여할일이아닐세.젊고활기넘치는,새로운인간들이처리해야할일이지."

하지만,근본적인문제는바뀌지않았다.

"거부하겠습니다.제가당신과약속했던건제안전한귀환이었습니다."

"그게꼭양립할수없는건아니잖나."

"그건무슨..."

동기를모른다.이사람이고저사람이고,그저움직일뿐누구도행동원리를내게보여주지않는다.

"정상적인방법으로마룡의심장을구하려한다면,적어도몇년은걸리지않겠나.그정도만자리를맡아주면충분하네."

"...그다음은요?"

"굳이따지자면내가신경쓸바가아니지만...황제의권력을가졌다고상상해보게.원하는여자는누구든안을수있지."

사생아는커녕자식이라곤엘레노어밖에없는황제에게이런말을듣게될줄은몰랐다.

"자네에게용사의피가들어가있으니,신분이천한여자를안아도그자식은차기황제가되기충분하네.제국은안정되겠지."

황제는너무많은걸양보하고있었다.어디까지보고있는건지가늠할수없었다.

"제가,아이와연인을두고떠날수있겠습니까?"

"정을주지않으면,자네에게고향이정말중요하다면떠날수있겠지.자네가황제의권력을가지고도수도사처럼순결을지킬수있다면,그리해도상관없네."

황제가된내게무언가를강요하지않는모습을보아하니,정말로내가황제가된다는사실자체에만관심을두고있는것같았다.

더이상이유를찾는것은,도저히답이나오지않을문제인것같았다.

"그렇다면,그냥엘레노어에게황제자리를물려주면안됩니까?"

"자네가그걸인정하겠나?"

나는이를악물었다.그가어디까지진심인지알수없었지만,만일내게다음황제를정할권한이있다면어떻게해야하는걸까.

멍하니엘레노어를생각했다.그녀가휘두른검,그녀가죽인사람이나악마,그녀가했던말과그녀의행동을.

고통스러운선택이었다.하지만,나는입을열었다.

"...예.저는인정할겁니다.될수있으면,그꼴을보기전에귀환하길바라겠지만요.도와주지는않을거지만,방해하지도않을겁니다."

황제는허탈한웃음을지었다.

"허허...고맙네.하지만,그럴순없네.그녀는황제가되어서는안돼."

절규하든내뱉는황제의목소리가,곧죽어가는시체에서흘러나오는소리처럼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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