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이름12
* * *
"역시,그랬던거군요..."
로렐이깊은한숨을쉬었다.
"알고있었습니까?"
"아니요.그냥가설을세워본것뿐이었어요.확신은없었죠.하지만..."
그녀가입술을꽉깨물었다.
"여행자나상인들에대한급습사건을,우리만겪고있는것은아니었으니까요.나름대로옷을갖춰입고조심스럽게움직이는이쪽조직에비해,막무가내로움직이는일반적인산적일뿐이었지만요."
"그건흔한일아닙니까?"
"그들이전부시체를탐내고있다면좀다르죠."
그말을듣자,나도표정을구길수밖에없었다.
산적에게시체는그저불필요한부산물일뿐이고,보통은그들이가지고있던지갑을더소중하게여긴다.
흔적을지우기위해시체를숨길수는있어도,고의적으로그걸모으려하지는않는다.
"비싸게사주는사람이있다고하면...꽤심각하네요."
내가처리한조직은마법사와연이있었지만,로렐의말을들어보면그렇지않은조직도있었다는것같다.
평범한산적들도판매처를찾을수있을만큼거대한흑마법사가있다는말이다.혼자처리할만한일이아니었다.
"후..."
강한마법사가있다고해도,내가싸워질것같지는않았다.하지만,그정도규모의마법사라면이기고지는것이문제가아니었다.
"마탑에연락해보겠습니다."
파시어에게아쉬운소리를하고싶지는않았지만,그녀에게도손해를보는일은아닐것이다.마법사들에게질낮은흑마법사란,합법적으로죽여연구성과를빼앗아올수있는보물고블린같은존재였으니까.
게다가,실제피해가발생하고있는사건이었다.좀돌아가더라도제국관리들에게연락하면마법사들을붙여줄것이다.
"그거,다시생각해보시는게좋을수도있어요."
"네?"
로렐의말은좀의외였다.
"증거는없어서,말씀드리기좀조심스럽지만...이뒤에마탑이있을수도있어요."
"네?"
믿기힘든말이었다.
마탑의마법사들이배후에있다면,의문하나를손쉽게해결할수는있다.'그금액을어디서조달했나?'하는핵심적인질문을.
하지만,동기가없다.왜그콧대높은마법사들이굳이범죄자들을상대로시체를사들여야하는가.
"최근몇몇마탑의마법사들이,갑작스럽게일을그만두거나행적이묘연해졌어요."
"...네?"
마법에재능이있는이들이전부마탑에들어오는것은아니다.귀족가문의이들중몇몇은,그저그재능을썩히는것이안타깝다는이유로교양수준의마법을배우기도한다.
그런이들을위해가정교사를파견하거나,다른방식으로마법이필요한일이있을때마다마탑은마법사들을파견하곤했다.
그런이들이,어느순간사라졌다는걸까.
"생각보다사태가심각하네..."
머리가복잡해졌다.
"제가직접파시어를만나보겠습니다."
로렐이깊은한숨을쉬었다.
"이런말씀을드리는게무례할수있다는건알아요.마탑주님은용사파티의일원이기도했고...하지만,이정도로사태가심각하다면,끝에그분이엮여있을가능성이커요."
"그럴가능성은없습니다."
그녀가무엇을중요하게여기는지,무엇을경시하고무엇을혐오하는지나는잘알고있었다.
"인정하긴싫지만...그녀는제대로된마법사예요.이런사소한일에엮일이유가없어요."
시체는흑마법사가구하기쉬운마법재료지만,마탑의주인인그녀가모으려애쓸필요없는재료다.그보다더효율적이고값비싼재료를수도없이구할수있을테니까.
이제와서그녀가사악한마법에관심을가질이유가없었다.그녀가원하는건영생이다.모든사람에게주어지는,어떠한부작용도없는영생.
그자신이죽음을두려워해서영원한삶을원했던거라면,진작에하고도남았을만한능력을갖춘여자였다.
"하지만..."
"걱정하지마세요."
불안해하는로렐을다독인뒤,나는자리에서일어났다.시간을지체할틈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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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수도로달려가려했던네르웬이었지만,바람을타고흘러나온익숙한냄새에걸음을멈출수밖에없었다.
이런곳에서맡아져야할냄새가,있어야할사람이아니었다.진작에수도로돌아갔어야할사람의흔적이었으니까.
혹시나하는마음에그냄새를따라간네르웬은홀린듯이버려진집안으로들어갔다.사냥꾼이살다가버려둔것같은,인기척이라고는느껴지지않는집이었다.
안으로가까이다가갈수록,거친숨소리가들렸다.그녀의착각이아니었다는사실에,네르웬은입술을지그시깨물었다.
"너도상태가말이아니구나."
네르웬은성녀,아니성녀였던여자를물끄러미바라보고있었다.
단정하고아름다웠던그녀라고는믿을수없는상태였다.언제나하얗게빛났던그녀의옷은거칠고더러운농부의천옷으로바뀌어있었고,맑고신성한눈빛은탁해져있었다.
"그럴필요가없잖아요?"
설명을붙이지않아도,네르웬은셀리아의말을이해할수있었다.
그녀를지탱하고있던성직자로서책임감은무의미해졌다.속죄를위해견뎌왔던환상과정신적고통들에,맞서싸울필요가없어졌다.
그모든것들은이제에네렐과는아무런상관도없는,그녀의개인적인사정일뿐이었으니까.
"후회하고있어?"
"뭘요?"
"조금만더참았으면,그결계같은것에서에네렐이스스로나왔을지도모르잖아."
"..."
네르웬의질문에,셀리아는잠시멈췄다.
"제능력은신경쓰지않아요.그리고,파시어씨도그랬어요.거기서우리가들어가지않았으면,어찌되었건복수의여신은그를풀어주지않았겠죠."
그정도규모의일이라면,그녀가자신의신성력을아까워할이유는없었다.하지만그행동자체에대해서,셀리아는의문을품을수밖에없었다.
"하지만...글쎄요,의심은조금드네요.제가그분을그안에서빼내는게,과연옳은행동이었을까요."
신과함께하는생활이다.그에게아무런잘못도저지르지않고,진심으로그를원하는여자.심지어신과함께하는생활이다.당장다급한상황은아니었다.
만약에,그가지치거나생각이바뀌어에리니스의뜻을받아들였다면어떻게됐을까.더볼것도없이,그녀는그를풀어줬을것이다.
어쩌면그게,더나은답아니었을까.
"그리고,있잖아요.그곳지하에서,제가욕심을부리지않았더라면..."
행복한미래나사죄따위는생각조차하지않고,얌전히그의손에몸을맡긴채죽음을기다렸다면어땠을까.
수없이많은'만약'이그녀의머릿속을맴돌았다.
"좀아쉽긴하지.만일,우리가조금만더빨리그를찾았다면어땠을까..."
네르웬도한숨을내쉬었다.
셀리아야그렇다치고,네르웬이저자세로나온다면그도조금은심경의변화를느낄수있었을것이다.
저렇게까지선한사람이다.다소억지로라도,귀환이실패하고그가폭주하기전에그를멈춰세울기회가남아있었을지도모른다.
"이대로있을생각이야?"
"제가뭘더할수있죠?"
아무리매사를긍정적으로보는그녀라해도,더이상부인할수없었다.에네렐에게그녀는짐이었다.
"그건모르겠고...됐다.너,따라와."
네르웬은셀리아의팔을집어끌고억지로일으켰다.
주인잃은엘프도멀쩡한상태라고는할수없었지만,이신잃은성직자에비할바는아니었다.
"...그래야할까요?"
"헛소리하지마.이것도옛정이있어서챙겨주는거라고."
이대로그녀를방치했다간이아무것도없는방안에서굶어죽어갈것만같았다.안그래도작고가벼운셀리아였지만,지금그녀는지나칠정도로가벼웠다.
마치속이텅빈인간의거죽을들어올리는것처럼.
"언젠가는이렇게될줄알고있었잖아..."
네르웬은셀리아를타박했지만,그녀도자신이헛된말을하고있다는것을자각하고있었다.
너무빨랐다.
마룡의심장을구할단서는없었고,모든재료를구해에네렐을돌려보낸다해도남은이들이고독해지는것은당연한이치다.
하지만,성공이과했다.너무빨랐다.운이좋아도십년이걸릴거라생각했던유니콘의피와불사조의유해를찾는일은,너무순식간에끝나버렸다.
마룡의심장을찾을단서를모으든,조용한곳에들어가서쉬든함께할수있을줄알았다.그가이토록빨리용사파티원들을쳐낼거라고는생각하지못했다.
"우리가할수있는일을찾아보자.다같이힘을합치면,뭐라도방법이나오겠지.일단수도로가자."
네르웬은억지로그녀를잡아끌었지만,아무리생각해도셀리아는자기다리로걸을수있는상태가아니었다.어쩔수없이,그녀는셀리아를업고폐가에서나왔다.
곧바로활을쏠수도없고,경쾌하게달릴수도없는무겁고거친자세로,네르웬은폐가를나와천천히걸었다.
"엘레노어,파시어,네르웬...그리고저까지.후,도저히신뢰가가지않는데요?"
셀리아는쓰디쓴웃음을흘렸다.
"그건맞지만...그래도."
네르웬의어깨가더욱무거워졌다.하지만,그렇다고이대로셀리아를죽게놔둘수는없었다.그리고,네르웬자신을죽게놔둘수도없었다.
여자를둘러업은엘프가,서서히평야를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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