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47화 (147/217)

〈 147화 〉 이름­9

* * *

"이곳도비었습니다."

무언가숨어있을것만같은동굴이었지만,그안은텅비어있었다.

"어,어깨에메고오신건..."

"그냥곰입니다."

영지단위에서곰한두마리가사라진다고유의미한이득을볼수있는건아니겠지만,그래도미리정리해두는게좋을지도모른다.

"이숲을관리하는사냥꾼이없어졌는지라...이대로뒀으면나무꾼이위험할뻔했군요.감사합니다."

갈색털의거대한곰은어깨에짊어지기에너무큰크기를가지고있었지만,무게는문제가아니었다.

"마차를가지고오길잘했네요."

처음로렐이호위를붙여주겠다고했을때는,거추장스러우니필요없다고했었다.

하지만,다시생각해보니꼭필요한사람들이었다.이곳사람이아닌나는혼자길을찾을수도없었고,이런사소한일을대신해줄만한사람도필요했으니까.

"다음은어디죠?"

하지만,나는짐승을사냥하기위해나온것이아니었다.곰한마리가아니라스무마리를잡았다해도,그범죄자들을잡지못했다면전부실패였다.

"우선성으로한번돌아온다음에움직이시죠.벌써세곳을돌았습니다."

"음..."

감옥에갇힌괴한들을만나봤었지만,어느하나제정신으로보이는사람이없었다.

벌벌떨며알수없는말을중얼거리는인간도있었고,미친듯이웃는사람도있었다.심문을맡은사람은꽤고생했을것이다.

"알겠습니다.잠시쉬고,다시움직이죠."

나는멍하니마차에앉았다.죽은곰의사체가피냄새를풍겼다.

'마법사인가...'

파시어가떠오르는건어쩔수없는일이었다.내가제대로알고있는마법사는그녀밖에없었으니까.

온갖어처구니없는마법재료를내게찾아오라고시켰던그녀지만,사람의시체는신경도쓰지않았다.

지금생각해보면,그재료는지나치게구하기쉽기때문에관심이없었던걸지도모르겠지만.

그녀가있었다면,좀더편하게문제를해결할수있었을지도모른다.

"마법사가아쉽군..."

"아,마탑주님말씀이십니까?"

혼잣말이라고생각했는데,목소리가너무컸던것같다.

"네.인성이야어찌되었든,능력있는마법사였으니까요."

"그러고보니,우리남작님이용사셨죠.죄송합니다.뭐라부인하려던건아닌데,실감이잘안나서..."

"그런데,파시어를아십니까?"

마탑의주인이라고는하지만,평범한경비병이그녀를알이유가없었다.뭐,워낙오래살았으니이름정도는들어본것일지도모른다.

"알다마다요.평소라면마법사에치를떠는우리라도,그분의이름은알고있습니다."

"그럴만한이유가..."

"제가어렸을적에,그분이추잡한짓을하는놈들을싹잡아들였거든요."

경비병의나이가적지않았다.슬슬손자를봐도이상하지않은,늙은병사였다.그런사람도파시어의행적을전부따라가지못했던걸까.

예상치못한곳에서파시어가살아온세월을새삼깨닫게되었다.

"추잡한일이라니요?"

"뭐,있잖습니까.암흑가의범죄자놈들이나,인신매매를저지르는쓰레기들말이죠."

"아..."

"그분이마탑을접수하고나서,마법사가직접뛰어들어그범죄자들을처단하기시작했으니까요.요즘은어떻게된건지다시슬금슬금기어나오긴했지만..."

머릿속에서'그녀가?'하는마음과'그녀라면그럴수있지.'하는마음이어지럽게부딪혔다.

"그래도처음그소식을들었을때는충격이었습니다.마법사야뭐,자기일에만집중하는괴짜놈들아닙니까?그런사람들이우리를도와주기위해움직였다니,믿을수없었으니까요."

파시어의머릿속은아무리생각해도이해할수없었다.행동으로그녀를판단하기에는,그시간의폭이너무넓었다.

"그...감사합니다,남작님."

"갑자기왜요?"

"수도로돌아가시면남부럽지않게사실수있었던것아닙니까.감사하다는말밖에드릴게없습니다."

"..."

저사람들은나를이해하지못했다.내가알려주지않았으니,당연한일이었다.

하지만,그이유가어쨌든감사의말을듣는것은기분좋은일이었다.나는아무말도하지않고고개를끄덕였다.

/////

"여기서부터는외부에알려져서좋은일이없을테니,부디주의하거라."

머리카락을후드로가린채,작은목소리로속삭이는파시어의모습은영락없는어린부랑자였다.

신분을숨긴건엘레노어도마찬가지였다.평소에피부처럼입고다니던갑옷을방에던져둔채,이허름하고더러운거리에녹아들어가기에충분할정도로지저분한옷을입고있었으니까.

"정말이런곳에..."

"내가수도에산지몇년이되었다고생각하느냐?비밀통로정도는수십개도넘게만들어놨지."

씁쓸한미소를지으며,파시어는눈앞에있는무너져내려가는집안으로들어갔다.

"잠시,안에사는사람이있을지도..."

"물론있겠지.내가그렇게어설픈사람으로보이느냐?"

전혀특별하지않아보이는집이었다.엘레노어도기사생활을하며,빈민가사람들의생활양식이어떤지는대략알고있었다.

"이런,꼬마아가씨가오셨구나.여기는무슨일로찾아왔니?"

비열한미소를흘리는남자의눈과냄새만보더라도,상대가무슨일을하는지알아챌수있었다.

이곳저곳에널브러진공통점없는물건들.장물이다.구석에는텅빈주머니들이버려져있었다.

"..."

갈데없는어린아이들을꼬드겨범죄를사주하는쓰레기같은인간이다.여러교단에서고아원을운영하고있었지만,모든사람을보호할수는없었다.

당장뛰쳐나가호통을치고칼부림을하고싶다는욕망을억지로눌러참으며,엘레노어는파시어의눈치를살폈다.

"다른친구들은있나요?"

어울리지않는여리고귀여운목소리로,파시어의입이열렸다.

"네명쯤있던것같은데,자고일어나보니어디론가나가있더구나.일단은푹쉬고잠부터자렴."

엘레노어는순간,그의입에서흘러나오는악취를느꼈다.방전체가수상한냄새로가득차있어,명백하게이질적인냄새를느끼지못했다.

익숙한냄새였다.굳이따지자면,마법사의냄새.

"됐다.이쪽은손님이다."

원래살고있던사람의말을듣자마자,파시어의목소리가돌변했다.

"예,예!알겠습니다!어,어디까지..."

"같이안으로들어갈거다.문을열어."

방금전까지만해도탐욕이가득깃든눈으로파시어를바라보던그의눈에,순식간에공포와두려움,비굴함이깃들었다.

그가조용히주문을외우자,지하로연결되는계단이모습을드러냈다.파시어가앞장서걷자,엘레노어는천천히그녀의뒤를따랐다.

"방금그가썼던마법,범상치않아보였습니다."

"능력은있는놈이지.사실,이런곳에처박아두는게아까울정도야."

"그렇다면...왜?"

"어쩔수없지않나.내성품인걸."

머리를가리던후드를벗어던진파시어는,작은미소를지으며엘레노어를바라보았다.

"나는,한번실패한사람을다시쓸정도로자비심이많은사람이아니야."

엘레노어는그말의뜻을생각해볼정신도없이,굳은듯멈췄다.

"내뜻에공감해주는이라고생각했는데...어리석었지.그는그저불사가필요했던거야.죽음이두려웠던걸세.어찌큰일을함께할수있겠나?"

"그건..."

"내연구자료를훔치려다발각된뒤로는,계속이일을하고있지.시한부나마영생을얻었으니,만족하고있을지도모르겠구먼."

"그에게불사의힘을줄생각입니까?"

"아니."

파시어는절레절레고개를저었다.

"내가원하는것에대해다시생각해보았네.나는소중한사람과떨어지기싫다는마음에서,이고통을겪는사람이없다고생각해서영생을꿈꿨네."

죽음이인간이라면누구나겪어야할필연적이고운명적인종말이되는것이아닌,불행하고슬픈사고로치부되는것.파시어의소망은그토록단순하고,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그가내게일깨워줬지.사람이중요한거야.누가남을것인가.그저사람이오래사는일이중요한것이아니라고."

"에네렐을말씀하시는겁니까."

"그나...내조부님같은사람이오래남는것이더중요한일이지.좋은사람."

파시어의입가에슬픈미소가그려졌다.

"그런의미에서하는말인데,너도내도움을받을생각은없나?젊었을때도움을받을수록효과가좋을거다.뭐,아직나이를걱정할때는아닌것같지만."

"세월을피하기위해당신을찾은사람이적지않았다고들었습니다.하지만,아무도도와주지않았다고..."

"뭐,영생에한해서는.하지만잠깐수명을늘려주는정도는해줬지.막대한돈을받고."

모순적인말이지만,시한부로나마영원한젊음을줄수있다는말이었다.엘레노어는,그녀의마법은기적과다를바없다고느꼈다.

"그런힘이있다면,황제폐하를위해써주십시오."

"그는이미걸어다니는시체나다름없지.내가그를위해무슨짓을했는지깨닫고나면,좀혐오스러워할지도모르겠다..."

"본론으로들어가시죠.그래서,제게보여주시려는게뭡니까?"

거대한문앞에선엘레노어는,파시어가조용히주문을외우는것을기다렸다.

"마술이란근본적으로기만일세.원인과결과를뒤바꿔속이고,중요한문서에먹칠을해그걸읽는이,세상을속이려하는게지."

"마술을배우고싶은생각은없습니다."

"지금부터보게될광경을이해하려면,최소한의지식이필요할걸세."

파시어가문을열자,엘레노어는반사적으로코를막았다.끔찍한냄새가새어나왔다.

"이건..."

"보시는대로."

엘레노어가이해하지못할만한흉측한것들이끝없이넓은방을가득메우고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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