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46화 (146/217)

〈 146화 〉 이름­8

* * *

검이흩날린다.경비병은,그거대한업적에아무말도하지못하고입을다물수밖에없었다.

위험하지도않다는것처럼여유로운자세로적을쓰러트리는그의모습은,비현실적일정도로웅장했다.

"뭐냐.대체!"

입을꼭다물고싸우려하던괴한의입에서도,믿을수없다는듯비명이흘러나온다.

화륵거리며타오르는횃불사이로그의움직임이드러났다.피가잔뜩묻은고풍스러운잠옷이바람을가르고나아갔다.

"저놈들이도망칩니다!"

어느순간부터,경비대는싸움을멈췄다.저흉험한장소에끼어들었다가괜히눈먼칼을맞는것보다,가만히숨어전열을정비하는것이나아보였기때문이었다.

검은옷을입은이들은여러수를쓰곤했다.심지어는,번뜩이는마법의섬광을발사하는괴한도있었다.

하지만그는너무나도간단하게그섬광을피해냈다.근거는없었지만,이들중누구도그마법이그를해칠수있다고생각하지않았다.

도망치겠다는그들의결정은,단순히새남작의여유를조금빼앗아갔을뿐이다.혹시모르니죽는사람을최소화해야겠다는아주옅은결심을무너뜨렸을뿐이다.

그의검이매서워졌다.조금더깊게,조금더빠르게,조금더배려없이휘둘러졌다.

"오오..."

소문은들어알고있었다.레오드린가문은정보를후하게푸는편이었으니까.

오래전에실종된레오드린의후계자가살아남았다는것도들었고,그게사실황가의수작이었으며,사실그가용사였다는사실마저공공연한비밀이었다.

하지만그가무슨일을할지는미지수였다.당장영지의행정이마비되고있으니그를부르지않을수는없었지만,당장영지의모든권력을낚아챈그가폭정을저지를지,선정을행할지는모르는노릇이었으니까.

평소라면용사의업적과행적이그인성과능력을보장해주겠지만,그에대해알고있는사람은거의없었다.

용사파티를따라다니는짐꾼이있었다는정도의정보말고는,정말아무것도없는외부인이었다.

하지만,한사람한사람의목숨을지키기위해,이렇게까지나와줄거라고는아무도생각하지못했다.

아직해가뜨지않았지만,조금씩하늘이밝아지고있었다.새로운영주는,피가잔뜩묻은잠옷을입은채도망치는괴한들을모두정리했다.

일을끝마치고돌아온새영주앞에서,경비대의대장은자신도모르게고개를숙였다.

"감사합니다,영주님.이대로라면전부죽을거라생각했는데..."

새영주는따뜻하게웃으며,멋쩍은듯쓰러진이들을가리켰다.

"생존자가좀많습니다.미안하지만,고생좀하셔야할것같네요."

"...네?"

/////

레오드린가문의감옥은오랜시간비어있었지만,지금은그방들은손님으로꽉들어차있었다.

"꽤많이데려오셨네요..."

"정보가없었으니까요."

억지로전장에끌려온병사도아니고,명백히경비병을공격하려들었던범죄자들이다.제대로재판을받는다한들틀림없이사형선고를받을것이다.

하지만,적의정체를모르고있던상황이었다.심문할사람이한명이라도더늘어나는게손해일리없었다.

"경비병들의상태도그리좋아보이진않더군요."

"사람한명이부족한상황이니까요."

고개를절레절레흔든로렐은,안타까운눈으로내몸을바라보았다.

"새옷은몸에맞으시나요?"

"나쁘지않네요."

"슬프게도,젊은남자귀족이입을법한옷은많이남아있거든요.정말품격있는옷은전부팔아치웠지만..."

말은그렇게했지만,이옷도만족스러웠다.

"범인은누구였습니까?"

"입이무겁다고해야할지,가볍다고해야할지...입을연사람은많은데,그사람들의말이앞뒤가안맞아요."

"음..."

정신이온전치못한사람일수도있었고,아예말단조직원들에게정보가들어가지않은걸지도모른다.

"하지만,공통점은있었어요.어떤방식으로든,마법사가들어간건확실해보여요."

"동의합니다."

그다지위협적인존재는아니었지만,분명마법을쓰는적이있었다.

제대로된마법사라기에는한참모자랐다.신체개조나,마도구를통해아주간단한마법을한두번쓸수있게된일반인일뿐이다.

하지만,그렇다하더라도그걸만드는건마법사다.돈으로살수있는마도구에는한계가있고,범죄자에게그걸팔만한마법사는많지않다.

"시체를숨긴것도그것때문일까요?"

"아마도요."

마법사들에게시체가유용한마법재료라고는하지만,그렇다고시체를직접제조하고싶다는정신병자들은많지않았다.

"장소는나왔습니까?"

"말했다시피,좀많아요.스무명이상의훈련된조직이라면...저희영지로서는쉽게판단하기힘들어요.어느쪽을조사하든정면충돌이있을수있다고생각하면쉽사리나설수없죠."

군대로치면적은수일지언정,단순히도적단으로치부하기에는지나치게많은수였다.

상대도전문적인훈련을받은것같지는않았지만,적어도상인이나모험가정도는흔적없이처리할수있는자들이었다.

"모험가나용병들을고용할수는없습니까?

하지만,단순정탐이라면영지의경비병들을모두동원해야할필요는없었다.

"무리예요.이런곳들에와줄용병은고만고만하고,믿을수도없으니까요."

"흐음..."

하지만,신뢰성이문제였다.용병이나모험가들은자신의일정에맞춰움직이는데다,조금만위험하면금세도망치려했다.

상대가돈이많은범죄자들이라면,반대로매수당해거짓정보를뿌릴수도있었다.

"그럼제가가죠."

"괜찮으시겠어요?"

"얼마든지요."

상대가좀강하다한들,용사의힘앞에서는얼마든지쓰러질적에불과했다.

로렐이고개를숙였다.그작은모습이너무대견하고고마워서,머리를쓰다듬고싶다는욕망을애써참아내야했다.

/////

엘레노어는황궁복도를걸으며,자신에대한자괴감을억지로참아내야했다.

"이방은..."

그가머물던방이다.귀빈용방이었으니,지금은다른사람이묵고있을것이다.

하지만황녀는홀린듯이그방의문을열었다.다행인지불행인지,그안에는아무도없었다.

"그래,이곳에서..."

엘레노어는이방에들이닥쳐,자신과결혼하라고억지로그에게강요하곤했다.

지금은알수있었다.그말이얼마나모멸적인말이었는지.

그토록끔찍이도황녀를싫어했던그가,그말을어떻게받아들였을지.

"..."

그때는그녀도제정신이아니었다.자신도,원하지않는사람과결혼해야한다는것에거부감을느꼈으니까.

그래서더화를낸것일지도모른다.자신이이렇게까지하고있는데,그가거부감을느끼는것을이해하고싶지않았으니까.

명예도,권력도,여자로서의가치도다른사람에뒤지지않는다고생각했던그녀가,그런식으로처참하게혐오받고있을거라고는생각지도않았으니까.

"돌아올생각은없겠지."

혼자중얼거린엘레노어는,아무일없었다는듯이그방을나섰다.

"부디..."

제국은그녀의전부였다.

선,명예,가치.모든것이그녀의안에서제국으로귀결되었고,충성과헌신으로귀결되었다.

하지만,그렇지않은사람이있었다.

제국과는명확히선을그었으면서도,어떤의무도지지않고있으면서도옳은일을보고'해야하는일이다.'라고말했던사람이.

그런사람을위해서,그녀는많은것을포기할수있었다.

"왔느냐."

하염없이걷던그녀는,어느새자신이목적지에도착했다는것을깨달을수있었다.

"황제폐하를뵙습니다."

개인적으로는딸과아버지의관계라한들,엘레노어는한번도그렇게느껴본적이없었다.

그가보여준부정과는별개였다.기사가된순간,아니황족의일원이된순간부터그녀는자신을제국의신하라고생각했다.

"어서오너라."

오랜만에본황제는훨씬늙은모습으로그녀를맞이했다.많은일들이있었을테니,당연하다면당연한일이었다.

"여정은끝났더냐?"

"그건아니지만,눈에띌만한성과를거뒀습니다.하지만,하루라도빨리마지막재료,마룡의심장을찾아야할겁니다."

"차라리그건...다행이구나."

황제는초조하게수염을쓰다듬었다.그마저도힘겨운듯,동작이어색하게끊겼다.

"그와의관계는어떠하냐.괜찮아졌느냐?"

"황제폐하."

마족의땅으로들어가는첫번째원정과는달랐다.에네렐은알지못했지만,파시어의마법과엘레노어에게들어간파발을통해황제도그들의여정을속속들이파악하고있었다.

세계수나중간지대에들어갔을때에는어쩔수없이소식이끊길수밖에없었지만,그안에서대략무슨일이일어났는지는그뒤에들어알고있을것이다.

그러므로,황제의의문은더중요한무언가를담고있을수밖에없었다.엘레노어는입술을깨물었다.

"저는,그에게아무것도강요할수없습니다."

직언을해야할때였다.이게제국의이익에반하는짓일지라도,엘레노어는더이상그를묶어둘자신이없었다.

"저는여전히그에게역겨운인간입니다.죄송합니다만...달라진것은없습니다."

황제는,그저안타까운눈으로그의딸을바라보고있었다.

"그걸말하려던것은아니었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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