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44화 (144/217)

〈 144화 〉 이름­6

* * *

나무로된따뜻한통에몸을담갔다.몸안이따뜻하게데워지는느낌이었다.

용사의몸이아니었다면화끈하게익어버렸을정도의온기였다.방금전까지팔팔끓고있었을물이니,이정도온도가나오는건당연한일이었다.

이편이좋았다.어차피이몸에화상을입을리는없었고,물이미지근해지는것보다는나았으니까.

따뜻한물에몸을맡기자,혼자있는시간이얼마나귀중한것인지다시깨달을수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로렐이조심스럽게문을여는소리가들려왔다.다행히목욕용커튼이덮여있던덕에,황급히몸을움직여야할필요는없었다.

"이건...읏,실례했습니다!왜여기메이드가배치되어있지않았던건지..."

"제가쉬라고했어요."

귀족이입을법한치렁치렁한옷을입을필요도없었고,따뜻한물을계속부어줘야할필요도없었다.

과로에시달리는건로렐과건설현장의인부들뿐만이아니었다.성에있는모든사람들이치열하게자신의역할을다하고있었다.한사람의인력도,휴식도가벼이여길수없었다.

"그래도...영주님이시잖아요?"

"과분하죠."

그렇게힘든사람들인데도,하나같이나를따뜻하게대해주었다.

거리를나올때마다밝게인사해준다.내밝은귀로도내험담을하는것을들을수없었다.

조금이라도더해주고싶다.무의미하게시간을보내는것보다는그편이더나을것같았다.

"죄송해요.나중에다시찾아뵐게요,오라버니."

"할말이있으면지금하셔도괜찮아요."

이미시간이늦었다.나도목욕을마치고바로잠자리에들생각이었다.

내가제대로옷을갈아입고이야기를들을준비를마치는동안,귀중한그녀의시간을허비하게하는것은마음에들지않았다.

"그렇다면...음,먼저사과를드려야겠네요.말씀하신마법재료,저희도열심히찾아봤지만...단서도안보여요."

"괜찮습니다.너무신경쓰지마세요."

마룡의심장을찾을단서가이런곳에서나올거라고는,기대도하지않았다.오히려쓸데없는곳에신경을쓰다허비되는인력과자원이아까웠다.

"그리고,새감시탑건축을도와주신거,진심으로감사드리고싶었어요."

"그러다보니떠올랐는데,왜요새가필요한겁니까?그것도이렇게급하게?"

서로의얼굴은보이지않았지만,그녀의축처진모습이보이는것같았다.

"마왕의침공은끝나지않았나요?"

건축이마무리되는단계는아니었으니,마왕침공을대비해서쌓아올린구조물이라는생각은들지않았다.

"맞아요.하지만,요즘심상치않은소문이돌고있어서요."

아무일없는것처럼평온해보이는영지였지만,뜯어보면다저마다고충이있는것일지도모른다.

"도적단이상인이나여행객을습격하고있다고하더라고요.얼마나도움이될지는모르지만,일단할수있는건해둬야하니까요."

"정말입니까?"

객관적으로,나라는인간이이영지에그다지쓸모있는존재라고말하기는어려웠다.

물론레오드린가문의후계자로서,내결정과동의가꼭필요하긴했다.하지만그건원래잘돌아가던영지를정상적으로돌아가게만드는것뿐,내덕분에도움이된다고할수는없었다.

노력하고있었지만,영지의정치적문제도내영역밖의일이었다.황실의법률이나귀족들간의관계,영지민들의마음에대해알수있을리없었다.

하지만,무력을써야하는일이라면달랐다.몸에담긴용사의힘은멀쩡히남아있었다.

범인이누구인지조사하고찾아다니는일이라면좀어려울지도모르겠지만,사람을찾아쓰러트리는일이라면너무나도여유롭게해낼수있었다.

"단순한소문입니까?아니면실체가있는사건입니까?"

굳이마왕군이돌아다니지않더라도,이세계는기본적으로위험하다.

"매번오가던상인들도수가눈에띄게줄었고,갑자기연락이끊긴마을도있죠.증거는없지만,매우높은확률로사실이라고생각해요."

"아직누구인지는찾지못하신모양이군요."

목욕물이식고있었다.이런식으로할만한대화는아니었다.

잠시말이멈췄다.그녀도이분위기가어색하다고느낀건지,아니면시시콜콜한말을나누기에너무지치고졸린건지조심스레뒷걸음질을쳤다.

"괜찮아요,너무걱정하지마세요.이,이만나가보겠습니다!"

로렐은문밖에나가자마자,슬슬돌아오고있던메이드를꾸중했다.나는옅은미소를지으며욕조에서나와,몸에묻은물기를닦아냈다.

/////

모두가떠났다.

파시어와엘레노어,셀리아는수도로돌아갔다.하지만,네르웬은머뭇거리며주위를돌아다닐수밖에없었다.

"...끝인가."

돌아갈곳은남지않았다.이미그를위해헌신하겠다고맹세한네르웬이었다.

방랑은익숙했지만느낌이달랐다.세계수의대전사로서더욱강해지기위해모험을떠난다는이전의방랑과달리,지금그녀의걸음에는아무런의미도없었다.

레오드린가문의영지,론디움을나오기도전에네르웬은그사실을느낄수있었다.

걸음이무겁다.그녀의다리는그가녀린몸을지탱하기도버겁다는듯이굼뜨게움직였다.

영원하지않을거라는것은알고있었다.그가귀환에성공하더라도네르웬이남겨지리라는것은자명한사실이었고,실패한다해도에네렐은결국인간이었다.

인간과엘프의수명은다르다.결국,그녀의고독은예정된일이었다.

그렇다고제발받아달라고그에게애원할수는없었다.그건그가원치않는일이었다.

평생헌신하겠다고서약한네르웬이다.그약속과는별개로,에네렐에게는너무많은것을받았다.

그녀의'처분'을막아준것은에네렐이었다.세계수에서임무의실패를받아들였을때깨졌어야할그녀의마음을붙잡아준것은에네렐이었다.

설령다른여자들이함께있고싶다고그를붙잡는다한들,제일먼저그들을쳐냈어야하는사람이네르웬이었다.

하지만정작그녀는자신의마음을붙잡지못했다.

"어디로...가야하지."

처음그녀가만들어진목적을들었을때는배신감을느꼈다.세계수의대전사가아니라,용사의핏줄을훔쳐오기위한존재로태어났다는뜻이었으니까.

하지만,지금네르웬은자신에게그것마저과분한임무였다고느낄수밖에없었다.실제로실패하기도했고.

길위에서있었지만,어디로도나아갈수없었다.정확히는,나아가는것과멈춰있는것의차이를느낄수없었다.

차라리지금그녀가이곳에멈춰있는다면,그와의거리가멀어지지는않는다.

며칠정도.오래떨어지지도않았는데,본능이그녀를충동질하고있다.

그의냄새를맡고,그의비위를맞춰네소임을다하라는태어날때부터주어졌던명령이그녀의신체를제어하려하고있다.

그리고네르웬은그럴때마다입술을꽉물어피를내었다.엘프답지않은행동이었다.

엘프의행동은언제나자연스러웠다.옳은행동,그엘프공동체가그들하나하나에부여한본능이그들의탈선을막아주었으니까.

하지만이미한번선을벗어난그녀에게,그본능은아무런도움이되지못했다.

"하아..."

열기섞인한숨이흘러나왔다.

엘프의예리한시각은,어둠에도불구하고레오드린가문의성을선명하게볼수있었다.

저안에그가있다.엘프의속도와각력이면,이거리에서도순식간에그에게닿을수있다.

하지만,해서는안된다.

그녀가그에게준상처는사라지지않는다.자신을누구보다고귀하다고생각했던그녀의오만도지워지지않는다.

그저,그걸안은채계속남아있어야할뿐이다.

"..."

아무런미련없이작별을고하던그의마지막모습이계속머릿속을맴돌았다.

그는아무것도원하지않았다.엘프를만나보기라도하려고수많은돈을쓰는남자가한둘이아니다.

그게아니더라도,그정도의구원이다.빛을잃은채엘프장로들의처벌을기다리고있던그녀에게,엘프로서의실패를'겨우그딴일'이라말하며,흰나뭇가지와주저없이싸울정도의구원.

하지만그는그다음에아무것도바라지않았다.원하지도않았고,그녀를필요로하지도않았다.

그냥이길바닥에네르웬을버려둔채,새로운사람들과새로운직위를향해떠나갔을뿐이다.

그가싸운이유가그녀를위한것이아니라는사실은알고있었다.하지만,이렇게까지그녀가필요없는존재라는사실을곱씹으면곱씹을수록쓰디쓴감정이새어나왔다.

"뭐,든지...하겠습니다..."

그감정이몸을가득채워,입밖으로흘러나왔다.환상을보는것도아니었고,그가이말을듣지못한다는사실은당연히알고있음에도불구하고,네르웬은혼잣말을멈출수없었다.

"제발,저를써주세요..."

이용가치가없다는사실은그녀도알고있다.네르웬의몸이필요하다면애초에엘프장로의제안을거부할이유가없었을것이고,힘이나길잡이로서의능력이필요한순간은지나갔으니까.

그저,그녀는자신의처지를받아들이지못하고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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