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43화 (143/217)

〈 143화 〉 이름­5

* * *

"대,대단하십니다!"

거대하고반듯한석재를가뿐하게들어올렸다.거기까지는좋았지만,시야가막혀어디로움직여야할지알수없었다.

"거기,감탄만하지말고유도를좀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이쪽으로,수평이되게놔주시면..."

들어올리기어려울정도로무거운물건은아니었지만,균형을잡는것은꽤어려웠기때문에조심스러울수밖에없었다.돌덩이를조심스레내려놓는데도,매캐한먼지가양옆으로퍼졌다.

"엄청나시군요."

"뭐,아직시작도안한것같지만요."

처음에는나를경계의눈으로바라보던주민들도,이제는존경이가득담긴눈빛으로나를바라보고있었다.

"좀쉬고계시죠.레오드린영애께서사람을거칠게쓴것같던데."

일반적인공사라면노동자의근무환경같은세세한정보가서류에들어갈리없었지만,이공사는좀달랐다.

"아닙니다!영주님께서이렇게직접도와주시니,저희는더열심히일해야하지않겠습니까!"

"부딪힐것같아서그래요."

"그,그러시다면야..."

인부들을내눈치를보다가,하나둘씩시원한그늘안으로들어갔다.석재를놓을위치를안내해줄인부한두명을제외하고,전부쉼터안으로들어갔다.

몇명이땀을뻘뻘흘리며달라붙어야할일을나혼자손쉽게해내고는있었지만,금세끝날것같지는않았다.

그래도,나를보는시선이한층누그러들었다는것을느낄수있었다.나쁘지않은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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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영주성으로돌아오자,퀭한눈의로렐이나를맞이했다.

"이런일까지하실필요는없었는데..."

"뭐,어쩔수없으니까요."

이해하기어려운상황이다.어느정도정치적논리를이해하고있는귀족들과는달리,평민들에게는더더욱그랬다.

실종된후계자가돌아왔다는거짓말을,다른누구도아닌황실에서한것이다.내잘못이아니었다거나하는시시콜콜한이야기를모두가알수있는건아니었다.

당장내게싫은소리를하는사람은없었지만,그들이나를보는시선이곱지만은않을것임이분명했다.

"저같은외부인이여기사람들과섞이려면,다른것보다직접얼굴을비추고함께일하는편이낫지요."

수도로돌아가고싶지는않았다.당장어딘가로떠날마음도없었다.

결국당분간은이곳사람들과어울려지내야한다.이정도일은투자라고생각할수있었다.

"하,하지만이제영주님이시잖아요.언제떠날지는몰라도당장은...그렇게험한일을스스로하실필요는없어요."

"그렇게말하기에는,로렐도이전에현장감독으로나와있지않았어요?"

처음이영지에들어왔을때,그공사현장에있었던건로렐이었다.아무리생각해도목소리가똑같았다.

"보셨어요?그게,아무래도저는이것저것가릴게없는형편이었으니까..."

"지금영지의상황이달라진건아니잖아요?제가여기온지그리오래지나지는않았으니까."

"그건또그렇긴한데...그래도오라버니가저희를도와주시는것만으로도여유가엄청생겼어요.사실,오라버니가오지않을지도모른다고생각해서억지로진행한공사도있었거든요."

이곳은분명번영하고있었다.마왕침공으로벌어진상처는대부분치유되고있었다.

죽어간사람은돌아오지않고,인구를회복하는것만은더많은세월이걸리겠지만적어도겉보기에는활기찬도시였다.

하지만로렐이내게준문서만봐도,이번영이굉장히아슬아슬하다는것은알수있었다.

"그래도해가지고나서공사를계속하라는건너무하지않아요?"

이세계의생활수준은지구의중세보다야훨씬쾌적한수준이었지만,그렇다고해서전기가들어오는건아니었다.

밤은어둡다.시야가제한된상황에서인부를닦달한다는것은굉장히위험한일이었다.

"횃불을켤수있는기름은보급했어요.이걸로는부족하다는걸알지만,아무생각이없었던건아니에요."

한숨을깊게내쉰로렐은,변명하듯중얼거렸다.

"그리많지는않았죠?"

"네.어떻게든준비해봤지만...지난전쟁에서,추위를쫓기위해창고에손을댄병사들이있었던모양이에요.책임질만한사람이대부분죽었으니조사를할수도없고..."

"안타까운일이군요."

"용사님이슬퍼하실일은아니에요.적어도,저희는살아있으니까요.그건그렇고,오라버니가이번에서명하셨던안건말인데..."

그녀와의거리가확좁혀졌다.로렐과대화하다보면,내가무언가하고있다는느낌을받을수있었다.

개인적인일을하는것이아니라,나보다조금더절박하고다급한사람을위해정말필요한것을주고있다는마음.

일이거의끝나가자,그녀가팔을쭉펴고기지개를켰다.정리되지않은금빛머리칼이아름답게흔들렸다.

/////

파시어는하얀색사제복을곱게갠다음,하염없이그걸바라보았다.

"하아..."

후회는없다.그를구해내기위해신성력을희생했던것도,속죄하기위한여행을그와함께떠났던것도.아무것도후회하지않았다.

하지만,정작그와떨어져야한다는말을듣자아무것도할수없었다.

"여분의의복이있는건가?너,그거없이는밖에나오려고하지않잖아."

네르웬이의아한듯물었다.

"이제의미없는물건이에요.사람들은...사제복을입은사람을보면,무언가를기대하곤하거든요."

치명적인상처를입은사람이구해달라고애원하거나,마음의방황을겪고있는사람이지푸라기라도잡듯찾아오거나.

하지만,셀리아는어느쪽에도대응할수없었다.

아픈이들을치유해줄신성력은이미그녀의손에남지않았다.방황하는자들을이끌어줄마음의강함은흔적도없이사라져버렸다.

남은것은그저,자신이저지른일에대해후회하는작은여자아이일뿐이었다.

"돌아갈수있을까요..."

오히려,그녀의신변을걱정해야할판이었다.

성녀가신성력을쓰지못하는처지가되었다는것은가벼운일이아니었다.극단적으로는,그사실만으로종교재판도없이이단낙인이찍혀도이상하지않았다.

배교자나사악한인간을심판하는종교재판이라한들,그본질은어디까지나'신의뜻을경전과성인의행동을통해유한한인간이가늠해보는'절차에불과했으니까.

여신본인이신성력을거둔인간을상대로는,그런복잡하고불필요한절차를거칠이유가없었다.

"뭐,어떻게든되겠지."

"글쎄요."

셀리아를사랑해주는사람은많다.하지만,그런이들은전부그녀의독실한신앙심을보고좋아해주는사람들이었다.

더이상성녀가아니게된그녀를좋아해줄사람은없었다.만일있다고해도,오직그녀의몸을노리는무뢰배일것이불보듯뻔했다.

"결국,실패하고말았네요."

그녀에게주어진기회는전부사용했다.그녀의기대와달리,에네렐은'모두함께'행복하게웃지않았다.

웃음을전부잃어버린것은아니니,조금이나마성공했다고할수도있을것이다.대놓고하하호호웃고있지는않았지만,적어도다른사람을도울때의그는행복해보였다.

그래도,그게언제까지이어질지는알수없었다.그녀가그사이에끼어드는것은불가능했다.

"기회가또있지않겠어?"

"인간의수명은짧아요.지금까지는어떻게잘헤쳐나갔지만,마룡을찾아낼수는없을거예요."

"파시어는?"

네르웬은별생각없이던져본말이었지만,셀리아의눈은번득뜨였다.

수명에집착하는파시어다.그녀한명에한해서라고는하지만,이미그녀는생명의한계를극복해냈다.

엘프와용같은장수종에비할바는아니지만,마법의힘으로너무나도훌륭하게불사를이뤄냈으니까.

"될까요?"

마탑의주인이라는압도적인권세를이용해,영생을얻게해달라는수많은사람들의부탁을단호하게쳐낸파시어였다.

그래도에네렐이원한다면,언제든지그를도와줄수있을것만같았다.그가당한괴롭힘에보답하겠다는마음은,그마법사도가지고있을거라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셀리아는자신의손을내려다보았다.

에네렐에게다시기회가주어지더라도,엘레노어나파시어에게다시기회가주어지더라도그녀에게는기회가없었다.

마룡을잡으러떠날용사파티가필요하다해도,셀리아는그사이에끼어들수없을테니까.새로운성직자를구할지언정,에네렐이그녀의도움을받을일은없을것이다.

이런상황에서도이기적인생각을하고있는자신을혐오하며,셀리아는조용히입술을깨물었다.

그가웃을수만있으면괜찮다.그의곁에누가있든상관없다.그걸위해서라면죽어도괜찮다.그다짐은변하지않았다.지금당장이라도,그녀의신성력뿐만아니라목숨까지희생할수있었다.

하지만혼자아무것도없이살아남아서,그저자신이에네렐의고통이었다는사실을수없이되뇌는그녀자신의모습은차마상상할수없을만큼고통스러웠다.

죽는것은괜찮다.살아남는것이고통스럽다.

그에게쓸모있는존재가되지도못한,복수의제물이되어자신을불사르지도못한추하고비루한자신이살아남는게무섭다.

셀리아는곁에있는사람을까맣게잊어버린채,깨끗하게세탁된그녀의하얀사제복을하염없이바라보았다.

마치,시간이멈춘것처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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