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 상징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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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아는이를꽉악물고,눈앞의붉은구를관측했다.
그녀에게잠깐보였던,신의계시라고생각했던것은착각이었다.
"복수의여신이했던말이모두진실이라고가정하면...속일수있어요."
에리니스는그녀가셀리아의여신인것처럼가짜계시를내렸다.셀레니스와에리니스가많은부분을공유하고있다는뜻이었다.
"흐읍..."
신의인격은둘,신의역할도둘이지만신의권능은하나다.
"저붉은구체의신성력을뽑아,여러분들께발라줄수만있다면...통과할수있을거예요."
그권능에저항하는것이신에대한배신으로해석될수있다는것은,반대로아직셀리아가저붉은구안에있는신을섬기는사제로해석될수있다는뜻이었다.
"하아아아!!!"
셀리아의신성력이손을타고흘러나와,붉은구에섞여들어갔다.
무시무시한신성력의파도속에서,셀리아는가까스로이성을유지한채그걸뽑아냈다.
"안돼.어떻게..."
"됐다.스스로생각해낸건기특하지만,그걸로는부족할것이야.마법이필요하지.”
무언가를속이는것은그녀에게너무나도익숙한일이었다.파시어는씨익웃었다.
“엘레노어,실례지만,잠시검을좀빌려주겠나?"
파시어는아무렇지않게엘레노어의검을뺏어든뒤,오른손으로어렵사리그걸들어자신의왼팔을잘라버렸다.
"그으으읏..."
고통스러운신음을흘리는그녀를보고,다른이들이놀라소리쳤다.
"파시어!"
"제정신입니까!"
잘려나간절단면에서피가뚝뚝떨어졌다.파시어는고통을참아내며억지로미소를만들었다.
"아,처음부터이정도는필요했거든...몇백년묵은대마법사의육체다.이정도마법을쓰기에는부족함이없지."
"그것때문에우리의각오를물어봤던겁니까?"
"그렇다.저구체안으로들어갈방법을찾아도,너희들이움직여주지않으면의미없는일이니까."
"하지만,팔을!"
"육체는영구적이지않아.이정도는...슬슬포기해도괜찮을거다.영원히쓸것도아니고.아,그리고이건잘썼다.내연약한힘으로도팔이숭덩숭덩잘리는걸보니,상상이상으로좋은검이구나."
파시어는아무렇지않은척웃으며피묻은검을엘레노어에게건네주었다.황녀는,그검을무겁게받았다.
"그럼,들어갑시다.에네렐을구하러."
모두의의견이일치했다.셀리아의손에서신성력이뿜어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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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끝났다.에리니스도나도,서로에게검을휘두르는건의미없는짓이라는걸알고있었으니까.
대신주저앉은나와에리니스는,서로에게감정을토해내고있었다.
"제발...제발한번이라도좀이기적이면안돼요?"
"내가그렇게남을생각해주는사람은아닌것같은데."
"의지에대한복수니뭐니해도,이전부터그런생각을해왔던건아니잖아요!그냥,그들을죽이는게무서운거잖아요!죽이고싶지않으니까,억지로이유를만들어붙이는..."
"그러면안됩니까?"
내가뻔뻔하게대응하자,에리니스도할말을잃었다는듯입을다물었다.
"복수든뭐든,제가누구에게빚진것은아니잖아요.당신의말이사실이든사실이아니든,제가당한일이고제가해결해야할일입니다.왜복수하지않냐고다른사람에게원망을들어야할이유는없어요."
"그래도,그래도..."
그리고,제가작정하고복수를하려하면당신에게도죄를물을수밖에없습니다.의지니뭐니하는걸빼놓고봐도마찬가지예요."
붉은갑주와넘쳐흐르는신성력뒤에,이제는익숙해진세레스의얼굴이언뜻보였다.
"왜죠?"
"여정도중에있었던일도일이지만,제가참지못하게된건그다음에있었던일때문이었습니다."
마왕을처리한다음에도,참고또참았다.
단순히마왕처단을위해서라면마왕성을나오는그순간힘을받아내도상관없었다.
그러지않았던건,그들이그힘을더좋은곳에써줄것이라는기대가있었기때문이기도했지만.
조금만있으면돌아갈수있다는희망이있기때문이기도했다.
"귀환에필요한마법재료라는거,원래는신이내려주는거였죠?"
"그건..."
황제의아쉬워하던얼굴이눈에선하다.그가어떤생각을가지고있었는지는모르겠지만,적어도그재료를받지못했다는것은분명해보였다.
"저는모르는방법이라고요!그럴수있는힘도없고..."
"그렇다면,당신이깨어나지않았다면저는돌아갈수있었던것아닌가요?"
에리니스의표정이어두워졌다.
"미안해요.그건...제가힘이되어주지못해서,저만없었더라면..."
그흉흉한갑옷에어울리지않는주눅든얼굴로,에리니스는털썩주저앉았다.
"됐어요.지난일에신경쓰고싶지도않고,당신이어떻게할수있던일도아니었으니까."
어쩔수없다.원망스럽긴하지만,그녀의책임이라고볼수는없었다.
"그래서하는말인데,보내주시면안될까요?"
밖의상황을알수는없었지만,다른파티원들이당황해하고있을거라는건짐작할수있었다.
"그들을아직도믿는건가요?"
"어느부분이냐에따라다르죠.그들이진심으로생각을고쳤는지,계속내편이되어줄지...그런건몰라요.확신할수없죠."
그들의행동은사라지지않는다.기억은남는다.
엘레노어는아직도나를제국을위해사용할수있을거라는기대를품고있을것이다.파시어의소망이무엇을의미하는지는모르지만,어떤방법으로든내가필요해서이용하려는것이다.
"그렇다면..."
하지만,그녀들의행동이,내기억이마왕퇴치에서멈춰버린것은아니다.
"적어도,제귀환을위해움직여줄겁니다.나중에의견차이가생긴다해도,그전에충분한이득을취할수있겠지요."
그들의목적이뭔지알바아니다.하지만,그들은목적이뭐든당장나를위해움직여주었다.
승리가확실하지않은전장에서싸우고,그들의시간과노력을아낌없이써주었다.
내가그들에게멸시받은기억을잊어서는안되는것처럼,그들이나에게해준일도잊어서는안된다.
"돌아가기위해이용하는겁니다.그정도는할수있어요."
"믿을사람을믿어야죠!당신,그렇게또얼빠진짓을하다가배신당할거라고요..."
에리니스는말끝을흐렸다.그녀의시선은핏빛구에생겨난균열에꽂혀있었다.
"이건생각못했는데."
이공간이찢겨나가는건아니었다.그저나와에리니스만있어야할공간에,다른존재들이자연스럽게섞여들어올뿐이다.
"무사한가,에네렐!구하러왔다!"
엘레노어의쩌렁쩌렁한목소리와함께,용사파티가하나둘씩이안으로들어왔다.
당당하게들어온파티원들은,아무렇지않게앉아있는내모습을보고놀랐는지흠칫놀랐다.
"언젠가는그럴지도모르지만...적어도오늘은아닌것같군요.어쩔겁니까,에리니스?"
"으으..."
"물론,우리가모두모였다해도당신과싸워이길수는없을겁니다."
솔직히말하면,어이가없었다.무슨방법을찾은뒤여기들어온것은아닌것같았다.
상대는신이다.우리도인간중에서는순위권에들정도로강하겠지만,저걸상대로는어림도없었다.
내가신의힘을빌려쓴다는건언뜻대단한것처럼보일지언정,실체는별것없었다.에리니스는당장나를죽일수없었지만,굳이이힘이아니더라도목숨을앗아갈생각은없었을것이다.
게다가내원한을,그감정들을공유하는에리니스라면그녀들을위협할가능성도없지않았다.스스로사지에들어온격이었다.
만일상황이생각보다흉흉했고,내가저에리니스에게죽어가고있거나설득되고있는상황이었다고해도,그들의난입에실질적인의미는없었다.
"파시어.팔이..."
"아,이쪽은상관없다.오히려,셀리아쪽이더많은희생을치렀지."
"네?"
팔에서피가뚝뚝떨어지는데무슨말을하는건지이해할수없었지만,셀리아가침울한목소리로말을이었다.
"혹시나했는데...역시.신에대한배신이되어버렸네요.앞으로는신성력을쓰지못할거예요."
"...뭐라고?"
"처음부터,그걸받을자격없는사람에게주어진힘이었어요."
무의미한행동치고는너무많은희생이있었다.하지만,그게모든면에서어떤의미도없었다는것은아니었다.
"제가어떻게하면될까요,에리니스?이들을죽이시겠습니까?"
"크읏...."
나를구하기위해스스로의팔을자르고,자신의신성력을내다버린사람들이다.
아무리에리니스라해도,이들을죽이는것을복수라고주장할수는없었다.
희생에는의미가없었지만,희생그자체로가치있었다.
"뻔뻔하게...너희들이에네렐을위한다며얼굴을들이밀어?"
"그의복수를받을각오는되어있다!"
엘레노어가검을들어,두려움없이신을향해겨누었다.
"하지만이건나와그가해결해야할일이다.그의검에목이잘린다면기쁘게받아들이겠지만,아무리신이라한들여기에끼어들수는없다!"
에리니스에분노어린검이몇합만에엘레노어를쓰러트렸다.검술에서도,힘에서도상대가되지않았다.
하지만,에리니스는그녀의목에검을겨누고도최후의일격을날릴수없었다.
"죽일겁니까?"
"그러면...어떻게되는거죠,에네렐?"
"제가화를내야하겠죠.제귀환에도움을줄수있는사람들을,당신의손으로죽인거니까.그걸위해나를구하러희생을감수한사람들이당신때문에사라진거니까."
성검에깃든자홍색빛은사그라지지않았다.이힘으로에리니스를쓰러트릴수는없을지언정,내의지를보여주기는충분했다.
"어떻게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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