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36화 (136/217)

〈 136화 〉 상징­13

* * *

"일어나라."

엘레노어의목소리에,셀리아는비틀거리는몸을억지로일으켰다.

"전부들었지?"

"...네."

어느새일어난네르웬과파시어가숨을고르고있었다.

쓰러져있었지만,의식을놓지는않았다.그저몸을움직일수없는상태였을뿐.

에리니스의소소한배려였다.그녀들을위한것이아니라,그를위한배려.

죽어가면서서서히고통을느끼라는,사소한악의때문이었다.

"에네렐은저안에있는모양이다."

붉은구체는주위의마기를전부빨아들였다.안을들여다볼수는없었지만,그안에서일어나는일을추측할수는있었다.

패배감에,엘레노어는입술을깨물었다.셀리아는방심해서당했다고해도,엘레노어와파시어,네르웬은온전한상태에서싸웠다.

하지만그들의공격은전혀닿지않았다.파시어가어떻게든짜내쓴마법은순식간에사그라들었고,네르웬이온힘을다해당긴활시위는걸린화살이날아가기도전에뜯어졌다.

그나마엘레노어의검은에리니스의검에닿았지만,복수의여신은몇합만에엘레노어를쓰러트렸다.

"너희들은...어쩔생각이냐."

승산은없다.그들의힘으로할수있는건없었다.

"일단상황을정리해보자꾸나.이막,아마영구적으로외부의개입을막게될거다."

파시어가한숨을푹푹쉬며지팡이로땅을두드렸다.

"이동굴안의마기는대부분사라졌다."

"어떻게그게가능했던겁니까?"

"주인잃은세월이너무오래되어썩어버리긴했지만,여기들어온소망과감정,기운들은본디신께바쳐진것이었다.그주인이거두어가겠다고선언한이상,여기남겨진힘은적법한주인에게흘러들어가는거지."

피부를찌르는마기의압박도,탁하고거친공기도대부분사라졌다.

그런마력들은전부한데뭉쳐,저거대한핏빛구를만드는데사용되고있었다.

"얼마나오래지속되는겁니까?"

"모른다.밖에서,혹은안에서충격이있다면줄어들겠지.별다른개입이없다면영구적이라고생각해라.개입이있다한들,적어도그의수명보다는길것이다."

선택지가생겨버렸다.여기서그를무시하고돌아간다는선택지가.

여기있는사람들은,각자돌아갈곳이있다.네르웬을제외하면,자신의집단에서중요한위치를차지하고있다.

이렇게멀리,오래떠나여정에참여하는것자체가일종의무책임한행동이라여겨질수있을정도로.

지금여기에서포기하더라도,아무도그들을힐난하지않는다.유일하게힐난할법한사람인에네렐은저안에갇혀있다.

"스스로나올수있겠나?"

"아마...어려울것같구나.확실하지는않지만,이구체의담긴신성주문이서서히변화하고있거든.밖에서부터의충격보다,안에서의충격을막는방향으로."

"그런것도볼수있는겁니까?"

"신성주문은숨기는법이없거든.뻔하지만,막을수도없고저항할수도없지."

파시어는주머니에서작은마법재료몇개를꺼냈다.

"일단조사해보겠지만,변변치는않을거다.내재료들은대부분세레스가들고있던배낭이나,마차안에남아있으니까.하지만,어떡할생각인가?자네들은."

"구할겁니다."

엘레노어의눈은흔들리지않았다.

"안의상황을파악할수는없지만,저핏빛구가탈출을방해하는방향으로강화되고있다면,에네렐이저안에있길원하는건아닐테니까요."

"아마그렇겠지."

"제국을위해서라도,그를구할수밖에..."

"왜지?"

"제국에는용사의혈통이필요합니다.황제폐하께서는제가그와이어져용사의혈통을낳길원하셨지만,그럴가능성이사라진지금남은방법을그를구하는것밖에..."

파시어가손을내저었다.

"아니다.그말,아무리생각해도이상해.황제의혈통도결국전대,전전대용사의혈통아니냐.그런방법을써가면서가호를유지해야할필요는없어."

엘레노어가의구심을품었다.

"그럴리없습니다."

"물론,내가그술식을황제보다더잘안다고자신할수는없지만...적어도제국을위해서꼭그가필요한건아닐테야.모든용사가황제와이어진건아니지않나.여자용사도있었고."

"그럴리..."

지금까지그녀가믿어왔던신념에균열이나기시작했다.하지만,차분히그말의진위를파악할시간은없었다.

"그는이미제국을위해희생했습니다.그가어떤상황에처해있든,제생각은바뀌지않습니다.그의헌신은보답받아야합니다."

미련을떨쳐버린엘레노어는,단호하게말을이었다.

"시간이얼마나걸리든,에네렐을되찾아야합니다.무슨수를써서라도."

파시어의말이진실이라는전제하에,지금돌아서면그녀가얻을수있는이득은수없이많았다.

황제의후계로그를추대하려드는귀족파의속물들은희망을잃을것이고,돌아온그녀는다시권력을굳게다질수있을것이다.

제국의권위는굳건해지고,황제의건강을위협하는스트레스는조금이나마줄어들것이다.

하지만그럴수없었다.에네렐을구해야하는그럴듯한이유를만들었지만,이행동이제국에해가되는행동일지도몰랐다.평소의그녀였다면눈길도주지않을선택지였다.

엘레노어는에네렐을구하겠다는생각을먼저가슴에품은뒤,그이유를억지로만들어내고있었다.

"네르웬,자네는어떤가?"

엘프궁사는그녀의머리칼을뽑아잘려나간활시위를수선하고있었다.

"모르고있었던사실이지만,엘프는삶의목표를정하는법을모르고있는것같아."

"뭐라고?"

"슬픈일이지만,내게남은건에네렐밖에없다.그가나를받아주지않는다해도,내남은평생그를위해봉사할거다."

에네렐과세계수의엘프들의갈등은봉합되었지만,그렇다고네르웬이돌아갈수있는건아니었다.

그들은에네렐의희생을인정했을지언정,네르웬의일탈은인정하지않았다.그녀의목적없는방랑은예정되어있었다.

"너희들의사정은알고있다.그를포기하더라도원망하지는않겠어.하지만,나는다시싸울거다."

복수의여신의압도적인힘을보았음에도불구하고,네르웬의기세는꺾이지않았다.

"맞아요!이렇게포기할순없어요!저는,함께..."

행복하게지내겠다고약속했다는말은,차마그녀의입밖으로나오지않았다.

성녀도반쯤은포기하고있었다.아주가끔은후회하기까지했다.

마왕의위협에서벗어나편안하게여행을떠나다보면,언젠가는기회가생길줄알았다.과거에그녀가했던잘못을속죄할수있는기회.

하지만,그의분노는깊었다.불꽃처럼타오르지는않았지만,용사파티원의얼굴과행동을볼때마다거부감을드러냈다.

평생불가능할지도모른다.하지만,아직기회는남아있었다.

"어떻게든해볼게요.반드시방법이있을거예요!"

셀리아가일어나두주먹을불끈쥐었다.파시어가그녀의어깨에손을올렸다.

"안돼.너는여기있거라,셀리아."

"왜죠?에네렐을돕고싶은마음은저나다른사람들이나마찬가지인데!"

"위험하다.배교에관한규율이어떻게적용될지몰라."

파시어의말에,네르웬이얼어붙었다.

"배...교?어째서,이건복수의여신을향한..."

"누구도알지못했던사실이었지만,우리는알아버렸잖나.복수의여신과,네가섬기는교단의여신이하나라는사실을."

대부분의성직자는,정식으로교단을들어올때신을섬기고그녀의뜻을따르겠다고맹세한다.

단순히악한일을한다고신성력이사라지지는않는다.하지만명확한의사를가지고자신이섬기는신을부정한다면,그맹세를어긴것으로취급되어신성력이사라질수있었다.

"그건!"

"가능성은적다고생각하지만,혹시모른다.신성력을쓸수없는일반인이된다해도받아들일수있겠나?"

신의힘을쓸수도없다는말을듣고,셀리아는순간얼어붙었다.

그녀는아주오래전,기억이남아있던시절부터여신과대화하던사이였다.

"그게요..."

셀리아에게여신은친구였고,부모였고,그녀의신이었다.

"그러니까..."

그리고셀리아는한번그녀를실망시켰다.그일기장에적힌슬프고도괴로운글씨들은,그녀가어떤짓을했는지적나라하게보여주고있었다.

"그래도해야할것같아요..."

지금셀리아가신성력을쓰고있다는것은,신이그녀와함께한다는증거가되지못했다. 이미 그녀의 목소리는 그 낡은 일기장 안에서 끊겨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그녀가 그런 사소한 일에 집착할 이유는 없었다.

"비록,이손에서더이상여신의빛이흘러나오지않아도...여신께서보고계실거라고요.에리니스안에서잠들어계신제여신이,제가한일을보실거예요."

"...그런가."

"다시신성력을되찾지못해도괜찮아요.처음부터,성녀라는직함을달기에는,부족한사람이었는걸요. 처음부터... 이랬어야 할지도."

각오를마친셀리아는이를꽉악물었다.

"안에서복수의여신이뭐라고말할지는모르겠지만...고마워요,파시어.덕분에실마리를잡은것같아요."

성녀의은색머리카락이신성력으로밝게빛났다.그녀의신성력이,붉은구체안으로스며들어갔다.

"해볼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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