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33화 (133/217)

〈 133화 〉 상징­10

* * *

"세레스?"

셀리아는눈앞에펼쳐진광경을이해할수없었다.

여신의인도는여전히그를가리키고있었다.성녀의신뢰할수없는시각대신,여신의보증이그를감싸고있었다.

하지만그끝에있는건,익숙한얼굴의메이드였다.

"염치도없는성녀란말이야.참,그런짓을해놓고여신의응답을바라다니."

메이드의몸에서막대한신성력이뿜어져나오고있었다.

"어떻게,이게,왜..."

"아직도이해를못하겠어?"

그녀의하얀색머리칼이,서서히붉은빛으로물들어간다.

이곳에담긴마기가,그압도적인힘이세레스의몸에스며든다.

"여...신?"

셀리아의다리가떨린다.신성력에서밀린다는.난생처음겪어보는경험은그녀에게두려움을안겨주었다.

"이제와서,혼자불쌍한척하면이해해줄것같았어?그'여신'이남아있었더라도그렇게해주지는않았을것같은데?"

세레스가입은메이드복이안에서부터붉게물들었다.이리저리비틀리고찢어진세레스의옷은,그공포스러운형태에도불구하고특정한감정을표현하고있었다.

순수하고정의로운복수를.

/////

"크윽..."

겨우정신을차린엘레노어는,황급히주위를돌아보았다.

조명하나없이깜깜한공간이었지만,그녀의감각으로도숨소리정도는눈치챌수있었다.

"파시어?"

엘레노어는봤다.파시어가분명마법을쓰려고시도했으며,그게처참히실패하는모습을.

그녀의어깨를잡고흔들자,파시어가서서히고개를들었다.

"음...잠시정신을잃었나."

"방금전에한말은뭐였습니까.대체무슨일이일어난겁니까!"

당장이라도에네렐을찾고싶었지만,일행이뿔뿔이흩어진상황에서혼자찾으러다닐수는없었다.

파시어의마법이다시돌아가기만하면,흩어진파티원들을다시모을수있을것이다.

"에네렐은신의힘을쓰려하지않았지."

"그건..."

"용사의힘말고,다른힘."

엘레노어도그녀가뭘말하고있는지깨달았다.그가황궁에서폭주할때사용되었던힘은,지금생각해도어마어마한수준이었다.

"방심했다.그가신의힘에관심이없었으니,당연히신또한관심없을거라생각해버렸어."

파시어는허탈하게웃었다.

"처음부터따라오고있었던거다.그녀본인의눈으로,우릴계속지켜보고있었던거다."

"누가..."

"한명밖에없지않나.이유도없이우릴따라온,용사파티가아닌사람."

아무렇지않게그들을따라와,이유없이에네렐을도운사람.

"...저희는왜그녀를의심하지않았던겁니까!"

하지만,엘레노어도그이유를알고있었다.용사파티의사람들은,누군가를의심하거나욕할수있는처지가아니었다.

당장그녀중누군가가에네렐의미움을사,속죄받을기회없이나가떨어질지도모르는상황이었으니까.

"으으..."

누워있던네르웬이신음을흘리며일어났다.

"신이...육체를가지고이땅에내려왔다는것을믿으라는겁니까?이렇게오래?아무것도하지않고?"

"아무것도하지않았기에이렇게오래현신했던걸지도모르지."

전례없는일은아니었다.가난한노인에게친절을베풀었는데그게알고보니변장한여신이었다거나하는민담은이곳저곳에전해지고있었으니까.

"내가마법을쓰지못했던것은거대한신성력의흐름때문이었네.그래도,이렇게아무것도못하고마력이흩어진건처음이야.고위천사정도는만나봤지만,진짜신을만났던적은없었으니까."

"전례가있던일이었습니까..."

"어쨌든,신의목적이뭔지알아내야하네.안다고해서어찌할방법이생기는건아니지만,적어도모르는것보다는낫겠지."

"이해할수없습니다.대체왜,이제와서신이..."

신이나타날근거가없는건아니었다.오히려,신이이제서야에네렐의기도에답해주었다는것이더신기할따름이었으니까.

"그신이대체누굽니까?대체우리에게뭘원하는겁니까!"

"아무것도.아무것도원하지않아."

다급해진엘레노어의말에대답해준것은,파시어가아니었다.

어둠속에서검은그림자가서서히걸어나왔다.

"진심이야.너희들에게는,아무것도원하지않는걸."

그녀는세레스의목소리로말을걸었지만,심상치않은기색을뿜어냈다.엘레노어는본능적인불안감을느꼈다.

"그냥,아무것도하지않고얌전히복수의희생양이되어주면돼.아무것도할필요없어."

그녀에게서붉은빛이뿜어져나오자,용사파티는세레스의모습을선명하게볼수있었다.

그리고,그녀에팔에짐짝처럼들려있는셀리아의모습도.

"무슨짓이냐!"

네르웬이다급하게활을쐈지만,그녀의화살은붉은빛과함께사그라들었다.

"셀리아에게무슨짓을한겁니까."

"죽이지는않았어.그건내몫이아니니까.에네렐의몫이지."

"왜이런짓을하는겁니까!"

"내가묻고싶어,왜,어떻게이렇게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던것처럼하하호호웃으며지낼수있는거야?아니,너희문제는아니지.에네렐의문제니까."

"그건..."

피가날정도로세게입술을깨문세레스가,기다란검을꽉쥐었다.

"왜황궁에서죽지않았던거지?대체왜,왜너희들을눈감아준거야?죽여도되잖아,아무도뭐라할수없다고!그럴힘이있었어,그럴만한분노도있었어,그럴만한정당성도있었어!"

여기있는누구도,그녀의분노에반론할수없었다.

그들은모두공범이었으니까.

"다시모험을시작했을때,다행이라고생각했어.속으로얼마나웃었는지몰라.너희들은에네렐을업신여겼잖아?에네렐은너희들을끔찍하게혐오하고있잖아?"

그들도알고있었다.에네렐이그녀들을싫어한다는것을.여행을하면서사소하게눈이마주치는것만으로도,과거를떠올리며괴로워하고있다는것을.

"아주조금,잠깐만기다려주면다시그가폭발하고,분노의칼날을들이밀거라생각했어.그런데왜,에네렐은그렇게하지않는거야?왜?왜?왜?"

붉은빛이날뛰었다.엘레노어와네르웬이전투태세를취했지만,그들도알고있었다.

저건이길수없다.그들의미약한힘으로저항할수있는존재가아니다.

이거대한동굴에쌓인마력과감정들이,복수라는기치아래저여신에게모여들고있었다.

"당신은...대체뭡니까?"

"이정도면알아채줄거라생각했는데."

세레스가입고있던옷은,하얀색메이드복이아니었다.그형태가미약하게남아있었지만,그건붉은갑주로변해있었다.

"만나서반갑네.아니,사실반갑지는않지만...나는복수의여신."

그녀가거칠게셀리아를내던졌다.하지만용사파티는그걸받아낼생각도하지못한채,공포에가득찬눈동자로그녀를노려보고있었다.

"에리니스다."

/////

"크윽..."

정신을차린나는,주위에아무도없다는사실을깨달을수있었다.

"갑자기이게무슨..."

지반이불안정하지않을까하는생각은했었지만,최소한이런붕괴가일어나기전에전조는좀있었어야했다.

인위적이다.누군가가우리를노리고이동굴을붕괴시켰다.

하지만,대체누가이런짓을한걸까.동굴은위험한곳이었지만,적어도이런짓을할만한지성체는없었다.

어떻게든다른사람을찾아야만했다.

"...저깁니까?"

다행히도,여신의인도가있었다.아주미약한빛과옅은충동이었지만,아무단서없이동굴을헤매는것보다야훨씬나았다.

컴컴한동굴속을걸어가던나는,이내인기척을느낄수있었다.

"에네렐?여기에요!"

"세레스?"

당장전력이될만한파시어나눈이좋은네르웬이아니라는점은아쉬웠지만,차라리이게다행일지도몰랐다.

혼자떨어졌을때마물의습격에서가장위험한사람은,비전투원인세레스였으니까.

"다른사람들은..."

"걱정하실필요없어요.전부여기있으니까요."

이상하다.분명세레스의목소리였는데,어둠속에숨겨진그여자의분위기는같은인간이라고는생각되지않았다.

"짜잔."

그녀가횃불을켰다.그제서야,나는쓰러진사람들을찾을수있었다.

"엘레노어?파시어?이런..."

이정도사고로쓰러질거라생각하지는않았지만,나조차도정신을잃고쓰려졌다는것을생각해보면가능성없는일은아니었다.전투가있었을수도있었다.

"네가지켜준거야?고마워.정말,큰빚을졌어."

"이런상황에서도저를믿고있는건가요?정말,어지러울정도로사람을잘믿네요.바보같아."

"...응?"

그제서야나는,세레스가붉은갑옷을입고있다는사실을눈치챌수있었다.머리가붉게물들었다는것도.

"오래전부터,당신을지켜보고있었어요."

나는우뚝서서그녀의목소리를,눈과표정,분위기를천천히살펴보았다.

"아니야.뭔가달라.분명같은것같은데..."

"일반적으로는그냥'여신'이라불리지만,셀리아가섬기는,제국교단의여신의본명은셀레니스에요."

"음?"

"교단의사람들은그이름을똑바로부르는걸불경하다고생각해서,어떻게든숨기려하지만요.하지만,저는아쉽게도그녀가아니랍니다.그보다,제가진짜진지하게물어보고싶은게있는데..."

심상치않았다.검을뽑으려했지만,세레스의압도적인존재감이나를막았다.그녀의몸에서나오는붉은빛이눈을어지럽혔다.

"왜,아무것도하지않았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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