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상징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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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되지않는다.지금까지아무말없었던여신이,이제와서기도했다고,'정식으로'기도했다고나타날리가없다.
하지만무언가느껴지고있었다.은은한빛과,나를유도하는충동,혹은계시가.
"신성력이느껴지는데...설마."
파시어가말을잇지못하고나를바라보았다.저멀리서셀리아가뛰어오고있었다.
"뭔가요.그건!에네렐...설마?"
은발의성녀는나를똑바로바라본채,이곳으로달려오고있었다.
"여신의힘이군.이해할수없지만...신의행보라는것이원래다그런식이지.축하한다,에네렐."
이를꽉악물었다.이제와서여신이무언가내게원하는게있다고생각하기힘들었다.
말할거라면더일찍해도됐을텐데.굳이이제와서,이렇게.
"이게..."
뭐라말할틈도없이,셀리아는내손을꼭잡았다.
"셀리아,너는어떻게알고온거야?"
그녀는잠시주저했지만,이내입을열었다.
"한동안...신께서대답해주지않으셨거든요.그런데방금기도할때,무언가가느껴졌어요.에네렐을향한무언가가."
수상쩍은부분이너무나도많았지만,신에관해서나는아무것도모르는것과마찬가지였다.
"선명하게에네렐이느껴졌어요.마치,여신께서인도하는것처럼..."
"이전에도그랬어?"
"아니요.그때는...그냥말로알려주셨죠.그따스하면서도친구같은목소리로."
셀리아가뭘말하고있는건지바로알아챌수있었다.여신의목소리는,그런말이아니라면설명할수없을정도로부드러운목소리였으니까.
"생각보다...상황이심각했군.마왕의영토에서빠져나온다음에도,신의목소리를한번도듣지못했다는거냐?"
파시어의작은얼굴이일그러졌다.
"네..."
셀리아는부끄럽다는듯이고개를푹숙였다.
"그게심각한거야?"
"아예처음부터안들렸다면그리대수로운일도아니다.하지만,신의목소리를일상적으로듣는성직자가그걸듣지못했다면,상황이좀심각했던거지.어쨌든,조금이나마들었으니됐다."
파시어는나를향해고개를돌렸다.
"그래서,여신은무엇을말하고있었나?"
"아무것도.그냥..."
나는가장높이뻗어있던산을바라보았다.
"우리가가는곳으로,계속가라고하는것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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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밑에는거대한동굴이있었다.마력을아예느끼지못하는사람도,공기의흐름을느낄수있을만큼거대한동굴이.
"여기서,소망들을빨아들이는건가..."
마기가흘러나온다.아니,흘러나오는것과는조금달랐다.저공간은빨아들이는공간이지,무언가내보내는공간이아니다.
그러니까이건,넘쳐흐르는거다.저안에있는원한과감정들이한도를넘어서서쌓이고또쌓이다가,도저히안을채우지못하고빠져나오는것이다.
"이안에신이있는건가요?"
"그렇게믿었던이들도있었지만,아마아닐것같구나."
유니콘은고개를저었다.말이거절의뜻으로고개를돌리는모습은,퍽신기한동작이었다.
"신이있다면,이런상황을방치하지는않았을테니까."
"하긴..."
신이산다기에는너무나제멋대로인공간이었고,여기흘러들어온감정과마기들이관리되고있는것같지도않았다.
"원래는저안에어떤신들이있었는지,혹시아는거있어요?"
"유니콘의언어로는짐작가는이들이있지만...인간의언어로는모른다.알아도,오랜세월이지났으니도움은안될거다.인간들은신을제멋대로부르지.같은신을나눠부르기도하고,다른신을합쳐부르기도하고."
"흠..."
유니콘의나이가궁금해지는말이었다.나로서는이해하기도힘든,까마득한과거부터이곳을지켜온것같았다.
"안쪽에는,저게응어리진마물들이있을거다.복잡하게생각할필요없이전부쓰러트리면된다."
"따로뭘해야합니까?"
"저안깊숙이들어가서,존재하는모든마물을쓰러트리면된다.그이상의정화는...할수있다면좋겠지만,기대하지는않으니까."
복잡하게생각할것없이,일종의하수구청소일뿐이다.기름때를제거하지못하더라도,막힌곳을뚫어낼수있다면그걸로족하다.
마지막으로파티원들의상태를점검한나는,서서히동굴안으로들어갔다.
"세레스,정말괜찮겠어?"
동굴은작지않았고,생존에필요한물건과최소한의식량들을가져가려면꽤많은양의짐이필요했다.
내가쓰던것같은거대한배낭에꽉꽉짐을눌러담은그녀는,피곤한몸을이끌고우리를따라오고있었다.
"너무무리할필요는없어."
"음,솔직히말해서,좀지치긴하네요."
메이드의정체가대체뭔지는아직도이해할수없었지만,이유도없이황궁을나와마지막까지나를따라와준그녀다.
미안한마음이없다면거짓말일것이다.
"미안해.내잘못이야."
"그럴지도...모르겠네요."
그녀는내게한번도보여주지않았던,원망섞인눈빛을보냈다.
이제는너무나익숙해져버린메이드복이낯설게느껴졌다.
"내가너를실망시켰니?"
"솔직히말하자면,너무많이실망했어요.탓하고싶은건아니지만..."
그녀가내어떤모습을보고따라온건지,그녀를위해서내가어떤행동을해야했을지짐작조차가지않았다.
어쩌면,그걸모른다는것조차세레스에게는실망스러운일이될지도몰랐다.
"뭐,그래도괜찮아요!이제거의다왔다고생각하면,견딜수있는걸요!"
"다왔다니?"
"이것만끝나면유니콘의시체도얻을수있고,마룡...헷,마룡의심장만얻으면목표완수잖아요?"
세레스는반해버릴정도로아름다운미소를지었다.
"그건...그렇지."
"실망했다는것과는별개로,제가헌신적인메이드라는건변함없으니까요.항상기쁘게봉사하고,주인님을사랑하는건마찬가지랍니다!"
"고마워."
컨디션저하에도불구하고,등에멘짐이무거워보이지는않았다.작은체구에도불구하고,꽤단련된몸을가지고있는걸지도모르겠다.
"셀리아는...괜찮아보이고."
"지금은,아무문제없어요."
신을만난다음부터,셀리아는진짜내가누구인지확실하게구분할수있게된것같았다.
"환각은아직보이지?"
"상관없어요.가끔튀어나와놀라기는하지만,애초에진짜가어디있는지알고있으면환각은전혀장해가되지않으니까요.무시하면그만이죠."
"흠..."
환상의가장큰위험성은,진실과거짓을구분할수없게되는것이다.무엇이진실이고무엇이거짓인지확실히알고있다면,맹점처럼무시해버릴수도있다.
"뭐,저안이라면신성력을마구퍼부어도문제없을것같지만."
마물이안에그득그득들이차있어도이상하지않을장소다.아무렇게나신성력을퍼부어도,마물중누군가는불타며사라질것이다.
"그럼,가자."
나는유니콘과두말을남겨두고,동굴안으로발걸음을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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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몸안에황금이치렁치렁박혀있는,왕관을쓴거대한괴물이나를반겼다.
"처음부터어마어마한놈이나왔잖아!"
엄밀히말하면처음은아니었다.입구부분나오던마물들은,별달리특별한것없는망령무리에불과했으니까.
하지만조금더안으로들어가자마자,누워있는괴물의거대한손아귀가내가있던자리를쓸고지나갔다.
"저거...진짜다.내가만든장난감과는다를거다."
"약점을찾아봐!셀리아,나를무시하고공격에집중해!"
혹시나해서용사의힘을뽑아내려해봤지만,역시그힘은조금도새어나오지않았다.
사악한마기를몰아내는힘이다.지금있었다면엄청난도움이됐을것같지만,당장은'안부러지는단단하고예리한검'일뿐인성검으로정직하게저괴물을베어내는수밖에없었다.
"합!"
땅을쓸고지나가는거대한손아귀를번쩍뛰어피한나는,그손이지나가기전에검을내리쳤다.
챙하는소리가들렸다.성검은완벽하게그손을베어내지못했다.
"해골...인가?"
마기로뒤덮여형체가잘보이지않았지만,적어도살점이아니라는사실은알수있었다.
완벽하게잘려나가지는않았지만,그래도유효타를낸것같았다.
형용할수없는소리를내며괴물이울부짖었다.마기가요동쳤다.
"어떻게저런괴물이나올수있던거야?"
"기도는...일종의신성주문이다!감정이들어가는신성주문!부를가지고싶다는욕망,부를가진자에대한원한,부를가진자의탐욕이한곳에섞인괴물인거다!"
"그런가..."
생각보다어마어마한괴물이었다.그리고,파시어의거창한말보다는약했다.
"셀리아!지금!"
"알겠어요!"
신호에맞춰,셀리아의신성한불길이황금괴물에게쏟아졌다.그거대한덩치때문에몸이전부타들어가지는않았지만,움직임을제한하기에는충분했다.
"하압!"
기도했을때부터느껴졌던그예지비스름한것은,저괴물의약점을선명하게보여주고있었다.
"우,이,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황금왕관에박혀있던수많은보석중,가장어둡고초라한보석에검을박아넣었다.마치생물을찌르는것처럼질척하고물컹거리는역겨운감각이성검을타고흘러들어왔다.
거대한비명과함께,괴물이쓰러졌다.하지만,승리를기뻐하기에는너무일렀다.
"파시어,몇놈이나더있을것같아?"
"최소한으로잡아도이런놈셋이상이다.더있을가능성이높지."
"미치겠네..."
하지만,유니콘의말이옳았던것같다.이런끔찍한공간을방치하고있을수는없었다.
다시일어나검을꼬나쥐고,나는앞을향해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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