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상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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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설명해봐.뭐가보여?"
잠시어깨에서손을떼자,그녀의초점이흔들렸다.마치뒤에서누군가가부르고있는것처럼.
"그러니까...에네렐이많아요.목소리가이곳저곳에서들려와서,도저히누가진짜인지구분할수없을정도로많아요."
"언제부터그랬어?"
성직자의정신력은,당연하지만일반인보다강할수밖에없었다.
신성력의보호는물리력보다정신적인공격에더강했고,그게아니더라도누군가환상이휘말렸을때제일먼저그걸치료해줄사람이성직자였으니까.
하지만그녀자신의,셀리아자체의정신이문제라면얘기가좀달라진다.
"여기와서좀심해지긴했는데...이전부터그랬어요.황궁에있었을때부터."
"눈을가린것도그것때문이야?"
"그게,구분이잘안가거든요.일단눈을가리고있으면보이는에네렐이가짜라는걸알수있으니까..."
모르고있었다.하지만,왜그걸이제말했냐는말은할수없었다.
황궁에서,막오크로드와싸울무렵에내가그사실을알게되었다면어떻게반응했을까.
미래는모르는일이지만,적어도그녀를순순히위로해준다거나해결방법을찾으려들지는않았을것이다.
그저필요없다고생각해서내버려두고,따라오지말라고말한뒤떠났을테니까.
물론,그랬다간다른곳이라면모를까세계수안에서엘프와싸울때처참하게지고내여정이끝나고말았을것이다.
적어도그싸움은,성직자없이버틸수있는싸움이아니었다.내상처가훨씬많았고,셀리아가아니었으면대화고뭐고시작조차할수없었을테니까.
"저...이제쓸모없는것같아요."
"아니,아니야.적어도지금당장은...아니,마룡을잡을때까지는남아있어줘.애초에,지금혼자서돌아갈수도없잖아?"
우리전력에비해서는약하다해도,성직자인셀리아혼자서무찌를만큼만만한적은아니다.
저런신수한둘정도는어떻게든처리할수있다고해도,기습이나연전을버텨내기에셀리아는너무약했다.
"정말,마지막까지친절하시네요.이래서...말하고싶지않았는데."
셀리아와내눈이마주쳤다.그녀의눈은거짓말처럼안정되어있었다.
"굳이,신경써줄필요는없어요."
"그런게아니라!"
직접죽이는건싫지만어딘가에서죽어버리는건신경쓸바아니다.그런생각을품고그녀와여행했다.
아니,나는내가그렇게생각하고있다고믿었던것같다.
"필요하니까그런거야.어쨌든,이파티에는성직자가필요해."
"잠깐이라면파시어씨가저를대체할수있을거예요.게다가...이런불안한성직자는,아무도필요하지않을테고요."
그녀의말이완전히틀린것은아니었다.불안한성직자를달가워하는파티는없었으니까.정식적으로불안한마법사다음으로위험한것이불안한성직자였다.
당장은치료주문이어디에도들어가지않아서망정이지,강화주문이나치료주문이적에게들어가는순간,당연히이길전투도패배로마무리될수밖에없다.
하지만,나는차마그녀를버린다는선택지를택할수없었다.
싫어하냐좋아하냐를따지면당연히싫어한다.셀리아는내가가지고있는가장끔찍했던추억의일부다.
하지만그녀에게받은것도적지않다.적어도그녀는직접악의를가지고나를괴롭히려들지는않았고,귀환후에적어도나를챙겨주려한사람이었다.
"너는..."
정말만약에,내가그녀의제안을받아들였다면어떻게되었을까.과거를잊고,마지막추억을만들자며조금만더그들에게살갑게대했다면.
파시어정도야,내가용사인걸밝히기만하면아무문제없이허리를숙일것이다.
네르웬이야,당장그냄새때문에혼란스러워하던판국이었으니자리가만들어지면억지로라도미소를지을것이다.
결국엘레노어는제국을위해희생하라고말할지도모른다.하지만,그럴수없다는것을말로설득했을때어떤일이일어났을까.
말도안되는일이었다.이제와서'다같이행복하게'지내자는 셀리아의 소망은,아무리가정에가정을붙여생각해봐도불가능에가까운일이었다.
내가그렇게행동했을리도없었고,그렇게한들다른이들이내게맞춰줬을리도없다.
"미안해요,에네렐."
"뭐,살다보면아플수도있는거지."
그정도로넘어갈수있는일은아니었지만,지금셀리아를탓하는건어떻게생각해도득이없었다.
"일단쉬어.어쩔수없잖아?천천히,더나아질수있는방법이있나생각해보자고."
"그걸말하는게아니에요."
"그럼,여정중에있었던일?그건좀화나지만,당장어쩔수있는일은아니잖아.너는그나마넷중에서제일나았고..."
셀리아의눈에서서히눈물이고였다.그녀의목소리가떨리고있었다.
"그것도정말,정말미안해요.말로다할수없을만큼미안해요.하지만,그게아니에요."
"그럼뭔데?"
"지금,행복하신가요?"
뜬금없이들어오는무게있는질문에,나는잠시멈춰생각했다.
행복한가,행복하지않은가.
파시어의보호막속에서갑자기생겨난바다를떠돌아다니는건물론기분좋은일이아니었다.그외에마차를타고숲을돌아다니는것은,좀 지루하고 불편할지언정 꼭 기분 나쁘지많은 않았다.
몸의수분이전부빠져나갈것처럼짭짤한소금기가득한육포를먹는것은,객관적으로행복하다고볼수는없다.
하지만,이미수없이많은음식들에익숙해진몸이다.그정도로기분나빠하기에는겪은일들이많았고,지금은특별한감정이들지않았다.
과정은좀불편했지만,영웅놀이는그럭저럭재밌었다.사람을죽여야하는것,결국내실수로죽는사람이생겼다는것은물론슬프고괴로운일이었지만,그래도내가무언가해서조금이나마평화를얻어낸것은즐거웠다.
"글쎄..."
그전에는,세계수였나.거기서나는기뻤던가,아니면피곤하고괴로웠던가.
네르웬하나의자유,아니내자유가포함된추상적인무언가를위해이를악물고싸웠다.결국은불사조의유해를얻어냈고.
그리고처음에는,오크로드였다.절망적인상황에서,엘레노어와파시어,셀리아가나를구하러왔었다.
"...잘모르겠어."
무작정싫다고말하기에는조금이나마즐거웠던것같다.무작정좋다고말하기에는부족했다.
"그나마다행이네요."
"하지만,그게어때서?"
셀리아는어렵사리입을열었다.
"저는,함께있으면에네렐이행복해질수있을것같았어요."
"뭐?"
"파시어언니도에네렐에게잘대해주고,네르웬씨는따끔하게혼나면어떻게든될것같고.엘레노어씨도나쁜사람은아니니까,어떻게든웃을수있을것같았어요."
그건무리다.나로서는,지금처럼더사이가악화되지않은것도기적이라생각한다.
하지만이관계도영원하지는않을것이다.최대한긍정적으로생각해도,그녀들이나를따르는이유는미안함이상의무언가가아니다.
엘레노어는나를'부당한차출을당한제국의신민'으로여기고있을뿐이고,그'부당한차출'에대한빚을갚으려는것뿐이다.
네르웬은아직새로운삶의목적을찾지못했기때문에,관성적으로나를따르고있을뿐이다.정말중요한것을스스로찾아낸다면떠나가겠지.
파시어는아직도속을알수없다.언젠가한번물어봐야할지도모른다.하지만,그마저도영원하지는않을것이다.
"있잖아요.저는저를과대평가했는지도몰라요.에네렐씨가얼마나많은상처를입었는지,과소평가했는지도몰라요."
셀리아의의도는단순했다.너무나도뻔하고순수하며,비현실적인목표였다.
"어떻게든다같이모이면,이전처럼행복하게지낼수있을거라고생각했는데.이래버리면,이래버리면..."
주먹을너무꽉쥐었는지,그녀의손이부들부들떨렸다.
"제가,그때에네렐에게살아달라고썼던마법은,희망이있을거라고했던말들은...다,무책임한말이되어버려요."
나를걱정하고있었다.
그녀가나에게어떤도움도,행복도주지못한다는사실에자책하고있었다.
"진짜너무늦은걸지도모르는데,그래도,죽는건안돼.죽으면,죽으면전부끝나버려..."
나는그녀의주먹을억지로폈다.부드러운손이이리저리흔들렸다.
최선을다해쥔셀리아의주먹은너무나여리고가냘파서,내힘이면쉽사리펼수있는수준에불과했다.
"누굴멋대로죽이려는거야."
그녀의시선이제대로내눈에꽂혔다.지금말하고있는사람을착각하지않았다는증거였다.
"너는나를억지로살릴수없어.그냥살아달라고부탁했던거고,나는네말을들었던것뿐이다."
달콤한꿈을내게보여준건그녀였지만,그건나를조종하지않았다. 내가 넘어간 것 뿐이다.
마치도박의맛을본중독자처럼, 그녀가 언뜻 보여준 '행복한 미래'가 너무 달콤해 보여서, 귀환이라는희망을찾아달려가는것뿐이다.
"그러니까,걱정하지마."
내가만일더불행해진다해도,그녀의잘못은아니다. 내 선택이었다.
알아들었는지,셀리아는고개를천천히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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