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28화 (128/217)

〈 128화 〉 상징­5

* * *

"온전히목숨을바쳐야된다...어떻게할생각이었나?그런조건에응해줄말이흔치는않을텐데."

"그건일단만난다음에생각해보려고했지요."

대책없는행동이긴했지만,다른수가있는것은아니었다.

애초에,유니콘을실제로만나는것조차자신할수없는일이었다.이숲이곳저곳에뿌려진신수의흔적에도불구하고,유니콘을만나려면며칠,몇주가더걸릴수도있었다.

네르웬이없었다면이쯤하고다른방법을알아봐야하지않을까싶을정도로눈앞이막막했다.

"유니콘이좋아하는먹이..."

대놓고또박또박말을거는지성체를말취급하는것도조금이상했다.이기묘한유니콘을어떻게대해야할지,혼란스러울수밖에없었다.

"음식이나장소같은것은알고있었지만,그걸로해결될문제는아니었으니까요."

생존본능은모든짐승이가지는욕망이다.유니콘의지성과무관하게,쉽게그런조건을허용해줄짐승이있을리없다.

"그게무슨의미인지,알고는있나?"

나는서서히고개를저었다.

유니콘을만났지만,이미내계획은절반이상깨져있었다.

저정도로성숙한대화를나눌수있는존재가유니콘이라면,단순히말이나소를희생시키듯바칠수있는존재가아니었다.

시간이오래걸리고위험성이올라가더라도,다른방법을찾아야할지도모른다.

"젊은유니콘들중,호기심많은이들은기사와함께자신의힘을뽐내지.순결한것을지키고악을섬멸하며,그때생긴유대로인간을완전히믿어버리는아이들이생긴다."

"..."

"제국이니명예니하는이해하지못할것을,진심으로가치있다고믿어버리는유니콘이만들어지는거다.그저,그동반자가그걸가치있다고여기는것만으로도.목숨을바칠의미가있다고생각하게되는거다."

어찌보면,당연한일이었을지도모른다.

제국이다.단순히주인을위해목숨을바친다거나,동료를위해목숨을바치는게아니다.

그런추상적인개념을이해하고,그걸위해희생할수있다는시점에서이미평범한말의행동이아니었다.

"그런일을,네가하겠다고?인위적으로?유니콘을탄인간은많지만,그들과함께싸운인간은적다.그중남자는더더욱적고,동반자를위해희생하길선택한유니콘은더더욱적지."

"...죄송합니다."

내말은분명무례한말이었다.어떤엘프가갑자기인간마을에다가와서,'스스로목숨을바친인간의시체가필요해서왔습니다.'라고말한다면어떤반응을보여야할까.

적어도,지금우습고멍청하다는듯이나를보며,왜안되는지친절하고상냥하게설명해주려는유니콘의태도는지나칠정도로성숙한모습이었다.

"무엇때문이냐?힘이부족해보이지는않을것같은데."

속이고싶다는생각은들지않았다.그걸긍정하면,정말변명의여지도없이살인을저지르는것이다.

"돌아가고싶습니다.제가있던곳으로."

"호오..."

유니콘은내쪽으로다가오더니,코를킁킁거리며냄새를맡았다.

"멀리있는곳이니?"

"아주멀리있는곳입니다."

그녀는작게웃으며고개를끄덕였다.

"그렇다면좋아.나를쓰렴."

그리고그유니콘은,도무지이해할수없는말을꺼냈다.

그게얼마나무도한일인지,왜그걸받아들여줄수없는지이제까지설명하던그녀가,이렇게시원스레내말을받아준다니.

이해할수없는일이었다.아니,내행동이인정되어서는안된다.

방금전까지아무렇지않게말을걸고,필요하지는않았지만우리를구해주기까지한그녀를희생시킬수는없다.

"안됩니다."

"너무부담가지지는말거라.필요하다는데어떻게하겠니.어차피나는곧죽을몸이니,가치있는곳에쓸거라믿고가겠다."

유니콘의수명이얼마나되는지는알지못했지만,불사조처럼도저히죽지않을법한생물은아니라고들었다.

하지만이렇게쉽게,그녀의목숨을앗아가도괜찮은걸까.

"마침외부인의도움이필요했거든.대가가내목숨이라면좀비싸긴하지만,필요하다면어쩔수없지."

"무리할필요는없습니다."

"조금더살아봐야바뀌는건없어.오래살다보면,느끼기싫어도그걸느끼곤하지."

하지만,여기까지와서빈손으로돌아갈수는없었다.

정말그녀의목숨이오늘내일하는것도아니고,시간이얼마남지않았으면자연사를기다려도상관없다.

일단그녀의부탁을들어야했다.

"원하는게뭐죠?"

그녀는고개를돌려,뒤를돌아보았다.

끝없이뻗은,말그대로하늘을찌를듯이높이솟아오른산맥이보였다.

"저안에들어가서,청소를좀해줬으면해."

/////

자세한것은나중에설명해주겠다는그녀의말을믿고,마차는서서히앞으로나아갔다.

하지만숲은점점가팔라졌고,검으로나뭇가지를꺾고무거운바위를치워도점차한계가드러났다.

"이이상마차를타고갈수는없을것같다."

세레스와교대해마차를몰던엘레노어가절레절레고개를저었다.

"오늘은여기서야영하자.괜찮으시겠습니까,유니콘?"

"나는상관없지.너는괜찮니,남자인간?"

너무급하게달려갈필요는없었다.앞으로의일을계획할시간도필요했고,셀리아의문제를파악할시간도필요했다.

"상관없습니다."

무엇보다,당장내가행동하지않으면누군가죽는극한의상황이아니다.

야영준비를끝낸다음,나는바로셀리아에게다가갔다.

/////

"넌왜그것밖에못하는거야?"

오른쪽팔이뜯어져피를철철흘리고있는에네렐이,원망스러운눈초리로셀리아를노려본다.

"내가가장힘들때,아무것도해주지않았으면서..."

화살을맞고쓰러진시체가고개를돌린다.그역시에네렐이었다.

"왜네가미안한척하는거야?"

온몸이멍자국으로뒤덮힌에네렐이,벗은몸으로물속에서말을건다.

셀리아는두눈과귀를꼭막았다.당연히,그환상들은사라지지않았다.

하지만그녀를고통스럽게하는건그런쉬운환상들이아니었다.눈을감아도환상이사라지지않는다는것은,적어도지금보이는모든것은환상이라인식해도상관없다는뜻이었다.

하지만보이지않는허공에서,더많은목소리가들려왔다.

"왜그랬어?"

"이제와서무슨..."

"역겹고이기적이야."

수많은방향에서들려오는수많은목소리들이그녀를혼란스럽게했다.

마력이불규칙하다는것은알고있었다.그녀의정신이점점불안정해지고있다는것도알고있었다.

하지만셀리아는,그녀가조금더견딜수있을거라생각했다.

아무것도없는환상에회복주문을쏟아붓고,패닉에빠져걱정을사게될줄은몰랐다.

무언가하얀빛이지나갔고,대화가있었다는건알수있었다.

수십명의말이겹치는에네렐의목소리와달리,다른사람들의말은주의를집중하면조금이나마들을수있었으니까.

파시어가수십번괜찮냐고물었지만,셀리아는차마대답할수없었다.괜찮다고말해도그들은믿어주지않았을것이다.

마차가움직이다,얼마쯤가서다시멈췄다.하지만계속해서그녀를비난하는에네렐의목소리는멈추지않았다.

파시어의손을잡고마차에서내려왔지만,차마눈을뜰수는없었다.

그순간,셀리아의어깨를잡는단단한손이느껴졌다.

"똑바로말해,정말괜찮은거맞아?"

진짜에네렐이었다.

/////

"말해줘.진짜무슨일이있었던거야?"

셀리아의상태는심각했다.유니콘과의거래는둘째치고,그녀를진정시키지않고서는사태가진전될리없었다.

개인적인정이남아있는지없는지여부를떠나서,그녀는이파티에유일한성직자고치유사였다.

그녀가손한번휘적이면나을작은상처도,자연치유를위해서는꽤많은시간이필요하다.용사의힘이있다는것을감안해도,몇시간은나를따갑게만들것이다.

실전에서,그정도로신경이분산되는건굉장히위험한일이었다.싸움이길어지고적이많아질수록기하급수적으로전투력이낮아지고,결국은쓰러지고말것이다.

다행히도한번어깨에내손이올라가자,셀리아의호흡이안정되었다.이게무슨의미가있는건지는모르겠지만.

"에네렐,에네렐,에네렐..."

몇번이고내이름을부른셀리아는,고개를돌려나를보았다.

"진정해.차분하게,네가뭘보고있는지말해봐."

환상을보고있는거라면위험하다.그녀가누군가에게공격받고있다면,혹은이자연자체의변화에흔들리고있다면그녀다음에는우리가될수도있었다.

겨우숨을가라앉힌셀리아는,나를보고슬프게웃었다.

"미안해요,저.결국쓸모없는사람이되어버렸네요."

"지금그걸걱정할때가아닌것같은데."

"에네렐이보여요.여기서,저기서,이곳저곳에서전부."

"흔들리지마."

"지금제손을잡은에네렐과는다르게,굉장히매섭고,싫어하는마음을솔직하게말해줘서..."

하얀그녀의머리칼은어느새산발이되어있었다.

"제가헛된꿈을꾸지않도록,꾸짖어주고있어요."

무언가단념한듯한셀리아의미소가,달갑지않게느껴졌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