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화 〉 상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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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에서는,전투에참여하는성직자에대한일종의고정관념같은것이있다.
신을위해서라면뭐든지할수있는,광기어린전사들이라는고정관념이.
그리고그게딱히틀린말은아니었다.제국의허가를얻은성직자라면,일반적인상황에서사람들이선하다고주장하는가치를존중한다.
사랑과자비,용서를주관하는여신교단의성직자라면더더욱그랬다.
하지만그것때문에라도,성직자가전투에참여하는것은쉬운일이아니었다.
보는것만으로도신의분노를일으키는마물이나언데드가아니라면,자연스럽게그자비와사랑의감정이적을향해서도발휘되는것이다.
같은인간이라면말할것도없었고,짐승이나인간과비슷하게생긴몬스터에게도종종그자비심이발휘되곤했다.
신성주문은그시전자마저도정직하게컨트롤하기어려운주문이다.감정과연계된다는특성탓에,회복주문의대상은제멋대로바뀌곤했다.
생리적인현상이다.동물이고통스럽게죽어가는모습을보면자신도모르게눈을찌푸리는것처럼,괴로워하는생명을보면자신도모르게감정이흘러가버리는것이다.
그러다보니,신성주문을자유롭게쓸수있는성직자는감정제어에극히능하거나정말조금의의심도없는,정당한싸움에정신무장이잘되어있는이들이될수밖에없었다.
"죄송해요,죄송해요!회,회복주문을..."
"나다!여기있다고!"
하지만,이번에도셀리아의회복주문은엉뚱한곳으로날아갔다.나무와풀말고는아무것도없는,텅빈곳에신성한빛이내려왔다.
"크읏..."
대충눈앞의신수의발톱을쳐냈다.어깨를찔린것도잠시방심한것뿐,애초에내상대가될만한짐승이아니었다.
"내가막겠다!"
"아니,괜찮아,엘레노어!셀리아의상태를확인해!이건내가알아서처리할테니까!"
뒤쪽을바라보느라,이호랑이형태의신수에집중할수없었다.
그래도나보다더욱위태로워보이는건셀리아였다.
성직자의회복주문이이리저리튈수있다는것을감안해도,그녀의상태는이질적이었다.
그녀가저녹색호랑이에측은지심을느꼈다고하면,그냥저짐승에회복주문이들어가야한다.
지금까지한번도일어나지않았던일이지만,우리가주로싸웠던적이마물이었다는것을감안하면한번쯤터질수도있는일이었다.
그냥다음에는주의하라고말한뒤,계속싸움을이어나가면될뿐이다.
계속회복주문이어긋난다면,그냥잠시쉬고있으라고말한뒤혼자서처리하면된다.
"아,안돼.살아야해,살아야해요!"
"진정해!얼마다치지도않았다고!"
그녀의신성주문이폭주했다.수십개의허상에회복주문이쏘아졌다.
"흠..."
그나마이번에는,그빛이허공을향해서만쏘아진것이아니었다.익숙한감촉의따사로운빛살이닿자,살짝긁힌상처는순식간에아물었다.
"눈...이냐?"
셀리아는한동안안대를쓰고있었다.어느순간부터그걸풀었고,그걸끼고있었을때도그리위험한상황이라생각되지는않았다.
하도안대를쓰고빼고를반복하고,필요한상황에서는안대를뺀채아무렇지않게앞을볼수있었다.
하지만내생각보다훨씬더,상태가위험했을지도모른다.
단순히감정이튄것이아니다.허공에신성주문이들어갔다는뜻은,적어도그녀의시야내에'회복이필요한존재'라고인식되는개체가존재했다는뜻이다.
"파시어,원인을찾아봐!셀리아,아무것도하지말고뒤로빠져서쉬어!"
"크워어어!"
잠깐한눈을판사이,신수가달려들었다.하지만뒤에서날아오는화살한발에,가속도를잃고뒤로물러났다.
어쩌면,이지역의혼란스러운마력이문제를불러일으킨걸지도몰랐다.지형을바꿀정도로거대한마력의변화가일상적으로일어나는곳이다.
파시어가먼저알아차리지못했다는건좀이상했지만,셀리아에게무슨일이일어나도크게이상하지는않았다.
"집중해라,에네렐!"
"알았어!"
어쨌든,일단눈앞의짐승을쓰러트리는게우선이다.사태파악은상황이안정된뒤천천히해도늦지않다.
"흐읍!"
일반적인호랑이보다훨씬큰신수였다.진짜호랑이를동물원이아닌장소에서만나본적은없었지만,아마힘도몇배는강할것이다.
"으르르..."
그럼에도불구하고,힘에서는내가위다.지지않는다.
휘두른검이그짐승의어깨를도려냈다.팔을잘라버릴정도로깊은공격은아니었지만,적어도이전처럼전력으로앞발을후려치는일은없을것이다.
"크아아!"
녹색호랑이가고통에몸부림쳤다.기회였다.하지만,몸을움찔거리게만드는위화감에최후의일격을주저할수밖에없었다.
"뭔가온다,에네렐!"
"느꼈어!"
사악한기운은아니었다.하지만,따지고보면이신수도일반적인의미에서사악한존재는아니었다.그저좀흉포한야생동물일뿐,선과악의가치를담을수없는생물이다.
게다가선한존재라해도,당장우리편을들어줄거라기대하는것은지나치게희망적인생각이었다.
"일단상황을지켜보겠다!당장저호랑이는움직이지못할거야.네르웬.대응사격을준비해!"
"확인했다,에네렐!"
말발굽소리다.마치이숲안을자기집처럼돌아다니는,매섭고도빠르며,경쾌한소리.
눈은호랑이형태의짐승을노려보고있었지만,정신은말발굽소리에팔려있었다.
"온다!"
우측이었다.네르웬의화살이날아갔지만,그백색섬광의꼬리를약간스치고지나갔을뿐아무런해도입히지못했다.
"크읏!"
잔뜩긴장한채그섬광을향해검을겨누었지만,그빛이꿰뚫는것은내가아니었다.
"크워어어어어어!!!"
방금전까지눈앞에있던짐승이순식간에사라졌다.하얀빛의꼬리와,흩날리는피가그짐승이사라진것이마법이나환상이아니라는것을보여주고있었다.
"경계를늦추지마!"
하지만숲속에서들려오는목소리는,차분하고도신성했다.
"필요한시기에때맞춰온불청객이라...놀랍구나."
기품있는중년여성의목소리였지만,입과성대로내는음성은아닌것같았다.
그보다더근원적인무언가다.
"이런,저쪽에서먼저나와줄거라고는생각지못했는데...운이좋구나,에네렐."
한숨돌린파시어가안도의미소를지었다.
나무사이로저벅저벅,말이땅을딛는소리가들려왔다.
먼저모습을드러낸건새하얀뿔이었다.가장뾰족한뿔의끝부분에는방금묻은붉은피가조금남아있었지만,뿔의밑둥부분은아직순수한하얀색이었다.
아름답다고말할수밖에없는그말의머리가모습을드러내고,길고쭉뻗은다리와새하얀털이뒤이어나타났다.
"유니콘..."
우리가찾아헤매던존재는,아무렇지않은모습으로우리앞에나타났다.
빛보다빠르고누구보다고귀한,뿔달린하얀말.
유니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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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말을하실줄안다고는생각하지못했습니다."
종종유니콘이인간에게말을걸었다는이야기는있지만,대부분은신뢰할수없는야사로취급되었다.
인간의말을알아듣고동의하거나거부할수있다는것은대부분의학자들이동의하는사실이었지만,직접소리내말을걸수있었다는것은다른문제였다.
유니콘의말을들었다고주장하는사람들은,대부분다른사람앞에서그걸증명해내지못했으니까.
유니콘이일종의환청을유발하거나,유대관계가엄청난소환사들을상대로만일어날수있는특수한상황이라고생각하게된것이다.
"할수있는이도많지않고,우리종족은부끄러움이많으니까."
"당신은아닙니까?"
"늙으면부끄러움이없어지지.말을가릴처지도아니고."
내게말을보는눈은없었지만,늙었다고하기에유니콘은너무나도흠없어보였다.
"그래,이곳으로온이유가무엇인가?일단위험해보여구하긴했지만,보아하니내도움이필요한상황은아니었나보군."
유니콘의강함에대해생각해본적은없었다.
순수한레이디를지키기위해빛처럼달려간다거나순결한기사에게힘을빌려준다는소문은있었지만,그게얼마나유의미한수준인지는알지못했다.
레이디를지키는유니콘은주로일반병사를상대로싸웠고,그것도싸움이라기보다는레이디를짊어진채도주하는것에가까웠다.
순결한기사는,일반적으로강했다.그업적에유니콘이얼마나많은지분을차지하는지기록으로확인하기어려울정도로.
하지만,느낄수있었다.이유니콘은강하다.나만큼이라고할수는없지만,쉽게쓰러질상대는아니다.
"그게..."
아니,생각의방향이틀렸다.
그녀와싸워봐야아무런이득도없다.유니콘을사냥하기위해나온것이아니다.스스로몸을바친유니콘이아니라면,내게는어떤가치도없다.
"유니콘의사체를얻으러왔습니다."
"위험하군.돌아가주지않겠나?진짜해를입힐생각으로이곳에들어왔다면...아무것도얻을수없을테니까."
그녀의말이옳았다.칼과뿔을맞대는싸움이라면시도라도해볼수있겠지만,작정하고도주하는유니콘을상대로는쫓아갈엄두조차내지못할것같았다.
"스스로죽음을선택한유니콘이어야합니다.저를위해서."
그녀는,여느말과다를바없는'푸히히힝'하는웃음을터트렸다.
"재밌는아이구나."
말의눈을읽는법은몰랐지만,희미하게나마호의가깃들어있다는것을알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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