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25화 (125/217)

〈 125화 〉 상징­2

* * *

"아무리생각해도,이지형은말이되지않는데..."

대지가물에잠길때부터,무언가좀이상하다는사실을눈치채야했을지도모른다.

햇살이비출때만해도좋았다.따사로운빛이몸과마차에남은습기를싹녹여줄때까지만해도나쁘지않았다.

하지만그거대한물이다빠진다음나온대지는,얕게나마풀이깔려있었던입구와비교할수없었다.

"황무지라니."

방금전까지비가쏟아졌다고는믿을수없을정도로황폐한땅이었다.생명의흔적이라고는보이지않는,쩍쩍갈라진땅.

"물위에서얼마나많이움직인건지...그보호막이일종의배역할을하고있었던모양이다,에네렐."

하지만,그걸감안해도이런변화는이상했다.

뒤를돌아봤지만,에네렐의말을이해할수있게되었다는것외에다른성과는없었다.

어느기점을기준으로,시야가턱하고막혔다.마치그앞에있는것을보여주지않겠다는것처럼.

"네,알겠어요!"

"응?"

셀리아가어딘가를보고소리쳤다.파시어가급히그녀의입을막았다.

"무슨일있어?"

파시어가내쪽을바라보는것을깨닫자,셀리아의안색이창백해졌다.

"아무일없었다!이,일단은여기서텐트를펴고쉬는편이나을것같구나.말이지쳤어."

그녀의말이옳았다.안쪽에있던우리도지칠대로지친상태였는데,쏟아지는폭우속에서허공을떠다니던말들의피로는상상을초월할것이다.

엘레노어가텐트를펴고,세레스가조리도구를준비하기시작했다.

전부내가하던일이었다.마왕퇴치가끝난이후로는,아무도내가그런일에손을대는것을용납하지않았지만.

"빗물을받아둘걸그랬네요.뭐,그런생각을하고있을상황은아니었지만..."

빳빳한메이드복에먼지가닿지않도록조심하며,세레스는스튜가담긴냄비밑에불을피웠다.

여섯명이원형으로둘러앉아,작은그릇과스푼에조금씩스튜를나눠담았다.퍽퍽한빵이었지만그럭저럭먹을만했다.

엘레노어는별생각없이먹고있었고,셀리아에게는스튜가조금짠것같았다.파시어는먹으면서도무언가를생각하는것같았고...

'하.'

이미굳어져버린습관이었다.고칠수없었다.

그들의눈치를살피는건,가장힘들고괴로웠을때내가반드시해야하는일이었으니까.

엘레노어의표정이굳어있을때는단단히각오해야한다.식사후에있을대련이더욱고통스러워질테니까.

처음에는단순히그녀의기분이나쁘기때문인가생각했던때도있었지만,나중에는그게아니라는것을알게되었다.

그녀자신이그날벌였던전투에실망하거나,내싸움에실망했을때그녀의얼굴이굳어갔으니까.

생각하고있는파시어는무해하다.무언가자랑하기위해귀찮게나를붙잡을때는있었어도,무언가더하려들지는않았다.

사실제일위험한건네르웬이었는데,문제가있어도식사중에지랄을하지않는다른여자와는달리그녀는불쾌한냄새를맡았을때언제든달려들어화를내기때문이었다.

그래도식사중에씻으라고하지는않았지만,좀더거리를두고멀리떨어져서먹으라는말은종종했다.

지워지지않는기억이다.하지만,더신경쓸필요는없다.시간을낭비하지말고스튜나한점더먹는것이좋을것이다.

하지만나는무의식적으로네르웬을바라보았다.그리고,눈이마주쳤다.

"음?"

그녀가일어났다.자신의그릇을자리에남겨둔채,조심스레내앞으로걸어왔다.

손발이약간의공포와거대한분노로부르르르떨렸다.그녀가조금이라도선을넘는다면,나도참고만있지는않을것이다.

"아,해라."

하지만그녀의행동은내상상너머에있었다.

네르웬이시비를걸이유가없다고생각했지만,사람의마음이어찌될지는모르는일이니까.

그래도이건예상하지못했다.이런행동을해야할이유도,상황도아니었으니까.

"뭐냐?"

내가묻자,네르웬의얼굴이수치로물들었다.

"그,먹여주는...거다."

엘프가말을더듬는모습은보기힘든광경이었다.

"왜?"

"남자의기분이나쁠때풀어줄수있는방법이라고...들었다."

"누가그걸알려줬는데?"

"제니가..."

당황한건나뿐만이아니었는지,다른사람들도놀란기색이역력했다.

그나마일찍정신을차린파시어가어색한웃음을지으며네르웬을제지했다.

"네르웬?그행동은,인간들이마음에두는이성에게하는행동이니라.성적뉘앙스가들어가있지."

"성적?이게성적인행동이라고?하지만성욕과연관될만한부분은조금도..."

나는인상을찌푸린채,아직도숟가락을들고있는네르웬을쏘아붙였다.

"인간에대해아예무지하지는않을텐데?"

"하,하지만이건내가아는...그런,음탕한행동과는다르다.그건좀더거칠고강압적이거나,그...돈을주고산다거나하는것아니었나?"

아.조금깨달을수있었다.

엘프와인간이맺어진다는것은비일상적인일이다.평범하게엘프사이에서교육받고,모험가로활동한네르웬이알수있는일이아니었다.

"남자가억지로욕망을채우기위해여자를깔아뭉개거나,그런일과는거리가먼듯하다만..."

파시어가깊은한숨을쉬었다.

"여자에게도성욕은있고,인간들은엘프의생각보다훨씬더...많은행동들에친밀함과성적의미를더하곤하느니라."

네르웬은몸을떨었다.

"아니,방금너도얼굴을붉히지않았나?"

"그건...그냥수치심이다!몸이성한이에게이런일을하는건,둘사이의신분차이가아주심할때.내가오롯이섬기는자일때해야하는일이니까..."

입술을꽉깨문네르웬은,잠시멈춰있었다.하지만이내결심을다졌다는듯,다시숟가락을내입으로들이밀었다.

"제니가말했던건이런의미였던가.하지만,좋다.이걸로네가성욕을채울수있다고해도,내가해야하는일은달라지지않는다.한번너에게구원받았던몸.이정도일에구애받지않겠다."

"뭐?"

"아...해라."

"파시어의설명이부족했던것같군.먼저,이건성적뉘앙스보다친밀함의확인에가까운행동이다.그리고,인간은일반적으로증오하는사람에게는그런감각을...성욕을느끼지않아."

객관적으로는,꽤두근거릴만한상황이다.네르웬은엘프다.그저아름답기위해설계된존재.

부작용없는성형수술을수십,수백번거친여자도그녀보다아름답지는못할것이다.수천년간내려져온,엘프의기술이모인외모다.

처음그녀를봤을때는,그더러운성격과분노를받아도화가나지않을정도로.

하지만,지금은너무익숙해졌다.네르웬의외모는더이상나를놀랍게하지못했고,그빈자리는그녀의행동으로채워졌다.

"싫어하는사람에게는그런감정을느끼지못하는건가.하지만내가배웠던대로는,증오하는인간을억지로깔아뭉개며정복감을충족..."

화가머리끝까지치솟았다.방금전까지만해도살살그녀를타이르려던나였지만,순간이성을잃었다.

"그딴인간이랑나랑같은사람으로취급하지마!"

벌떡일어나그녀를보고소리쳤다.내게스튜를먹여주기위해허리를굽힌그녀였기에,순간적으로나는그녀를내려다보고있었다.

하지만,내가정말그들과다른인간일까.

나는이를꽉악물고다시자리에앉아,입을벌려숟가락에올라간스튜를물어뜯듯이삼켰다.

맛있었다.배고픈상황에서짜고기름진스튜를먹었으니,맛이없으려야없을수가있었다.

"아무것도아니다.그냥이정도일뿐이야."

나는네르웬에손에서거칠게내숟가락을뺏어간뒤,아무렇지않게식사를이어나갔다.

"미안하다.내짧은지식으로너를판단하려던것,진심으로사죄하겠다."

"쓸데없는말하지말고밥이나먹어."

다시그녀의자리에앉은네르웬은,한층차분해진목소리로말했다.

"하지만,나는진심이다.내삶의목적은이미너밖에남지않았으니.네가어떤사람이든,나는너를위해살아갈거다.무슨대가를치르더라도."

몇번이고다시씻으라고명령하던네르웬의말이라고는믿을수없었다.

"새목표를찾는게좋을걸."

생각해본적없었다.용사파티가나를따라올때는그들이왜나를따라오는지이해할틈이없었다.

그저솟아오르는트라우마를억누르고,그들중하나가나를배신하지않을지경계하고걱정하는것외에는할수있는일이없었다.

하지만,그때도생각했지만,그들의행동은이상하다.이질적이다.

그들이내게죄를지은건변하지않는사실이다.하지만,죄를지었다고순순히잘못을인정하고그걸갚기위해움직일사람만있다면,세상에일어나는분쟁중절반은줄어들것이다.

황궁지하실에서야무슨짓을하든알바아니었다.정확히는,진심을의심할수밖에없었다.그때는내가강했고,당장나를진정시키지않으면안되는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파시어든엘레노어든셀리아든,오크로드와싸우고있던와중에내게합류할이유가없었다.

네르웬은,지금당장여기남아있어야할이유가없었다.그녀를구속하는제약은전부사라졌고,내가용사인것과별개로야밤에그녀가도망치면절대따라잡거나찾아낼수없다.

답은나오지않았다.어쩌면,내가그걸인정하는것을원치않았던걸지도모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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