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24화 (124/217)

〈 124화 〉 상징­1

* * *

멀리,쭉뻗어있는산맥이눈을어지럽혔다.

넓다.말그대로거대하다.얼마나눈을올려다봐도끝이보이지않는거대하고단단한산맥이었다.

"이런지형이면,확실히반대로올라가는건불가능하겠네."

"마력의흐름이불규칙하군.저번에도한두번와본적은있었지만..."

저스케일에압도된사람이나뿐만은아니었는지,네르웬과셀리아도꽤질린듯한표정을짓고있었다.

초소몇개가놓여있었지만,중간지대의입구부근은말도안될정도로평안해보였다.

"주의해야할것같다,에네렐.저안...시야가확보되지않는다."

"뭐?"

"상상이상으로안의공간이넓을지도모른다.아니,그뿐만이아니라...분리되어있을지도모른다.무언가안개같은게있어."

"준비는충분히했으니까,어느정도대비할수는있겠지."

마법재료는물론이고,식량과무기까지필요이상으로많이가져왔다.

어지간한환경의변화는견딜수있을것이다.애초에,좀유능하다해도평범한모험가였던여자가들어와서무사히나갔던곳이다.

"출발하자."

"네.갑니다!"

세레스가능숙하게마차를몰았다.그앞에뭐가펼쳐져있을지알수없었지만,최소한이앞은평화로운대지가펼쳐져있었다.

"사람들이정착할법도한데..."

중간지대안으로들어왔지만,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다.마차의바퀴가부드럽게풀을밟았다.

네르웬은주위를감시하기위해마차지붕에올라타있었다.하지만,당장눈앞에보이는광경은너무나평화롭고지루해보였다.

"다른용병들을데려왔어야했나..."

공간이너무넓었다.작은짐승들이종종보이는것말고는특별하지않은곳이었다.정말이곳에유니콘이살고있는건지확신할수없었다.

그리고얼마지나지않아,나는이평화로운지루함이얼마나행복에겨운일인지깨닫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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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안에침묵이맴돌았다.여기에서할일이조금이나마있는사람은,섬세하게마력을짜내고있는파시어밖에없었다.

그녀의마법은그작은손가락에서새어나온다는것이믿기지않을만큼경이로웠지만,그래도물의냄새는막지못하는것같았다.

아니면,마법을쓰기전에이미들어와있던습기가빠져나가지못하고갇혀있었을지도모른다.

"으읏..."

좁아서견딜수없는지,내무릎위에앉아있던셀리아가소심하게몸을비틀었다.

조금만참으라고말하고싶었지만,그녀가내말을곧이곧대로들을것같지않았다.명령이라고생각하고,잔뜩긴장한뒤더불편해할것이분명했다.

어쩔수없는일이었다.이미,마차밖은물론이고사람이앉아야하는곳까지꽉꽉짐으로메워진마차였다.

거기에네르웬과세레스까지이좁은마차안에들어와있으니,공간이좁은건어쩔수없었다.

"히히힝!"

밖에서괴로워하는말들의울음소리가들렸다.셀리아가번뜩정신을차리고치유주문을걸었다.

따뜻한빛이지나가자말들의비명이좀잦아들었지만,육체적고통이사라진것뿐그들을불안하게만드는요소는아직그대로남아있었다.

"이렇게좁을줄알았으면더넉넉한마차를사왔어야했는데..."

"의미없는가정이야.그랬다간파시어가지킬수없었을테니까.용병도마찬가지고...처음에는좀아까웠지만,데리고오지않길잘했어."

세레스는영불만스러운얼굴로네르웬위에앉아있었다.엘레노어의무릎위에는우리들의무기와갑옷들이한데뭉쳐올라가있었다.

이와중에몸집이제일작은파시어는,혼자한자리를온전히쓰고있는것도모자라다른자리하나를마법진을위해쓰고있었다.하지만,우리중누구도그녀를탓할수없었다.

이마차를지키고있는것은,다른무엇도아닌온전히파시어의역량이었으니까.

처음에는,그저비가오는거라고생각했다.놀랍지는않았다.마른하늘에장대비가쏟아지는이상기후정도야,중간지대의악명에비해서는우스울정도였다.

하지만비는그치지않았고,분명작은풀들이덮여있던부드러운대지는거짓말처럼물을밀어냈다.순식간에이넓은대지에물이차올랐다.

아슬아슬한상황에서우리모두를지켜준건파시어였다.마법으로옅은반구형의막을만든그녀덕분에,마차와말들은배위에올라탄것처럼물에둥둥떠다닐수있게되었다.

"으으..."

계속눈을감고손가락을움직이던파시어가,슬며시눈을뜨고한숨을내쉬었다.

"일단은끝났느니라.저마법진을건드리지만않으면,앞으로몇시간은버틸수있을게다."

"수고하셨습니다.정말큰일날뻔했군요."

엘레노어의칭찬에도불구하고,파시어의얼굴은어두웠다.

"뭐,이몸도나름마법사다.당연히이런일에대처할수있어야지.하지만,얼마나버틸수있을지는모른다."

마법자체는그리대단하지않았다.

물론그건파시어의수준을고려했을때대단하지않다는말이었을뿐,어설픈마법사는흉내조차낼수없었을것이다.

물에뜰정도로넓고가벼운마법막을퍼트리고,그걸다시위로올려비를막는다.그작업은말그대로물한방울새어들어올틈없이이루어져야했다.

조금이라도마력이흐트러지는순간안으로물이새어들어올것이고,순식간에이마차는물에잠길것이다.

이런마법을아무런준비도없이해내고,급조한마법진과마법재료를통해유지까지할수있다는것이파시어의수준을증명하고있었다.

"노력한다면...뭐,잠을쪼개자고마법진을계속유지한다면몇주정도인가.말을포기하고마차에집중한다면조금더시간을늘릴수있겠지만,영원히이걸이어갈수는없다."

밖은아무것도보이지않았다.그저거대한먹구름에서끝없이쏟아져내리는물방울외에는,아무것도없는공허한풍경이었다.

"으읏..."

떨리고있었다.내무릎위에앉은성녀의작은몸이추위로부르르르떨렸다.

시들어가는온기가느껴진다.무엇이라도해야한다는압박감이치솟는다.

그와동시에,'내가왜?'라는의문이머리를누른다.

네르웬의매서운눈초리에찬물에몸을씻을때,내몸은더춥지않았나.

그녀의편을들어주지않았다고나를차가운시선으로바라보던셀리아의눈에,내가더큰상처를입지않았나.

"에네렐?"

"...뭐냐."

그리험악하게말하지도않았는데,그녀는훅움츠러들었다.

하지만우습게도,그렇게움츠러든성녀가기어들어온곳은내품이었다.마치다른곳을보고있는것처럼,그녀는벌벌떨었다.

"그게,다른게아니라...돌아가면뭘하실지,생각해두신게있나해서요."

"그걸네게알려줘야할의무는없을텐데."

셀리아의표정을볼수는없었다.이미그녀는내품에안겨있었으니까.

"그런가요...그렇네요.미안해요."

잔뜩움츠러든셀리아는,한껏작아진목소리로말을이었다.

"하지만,힘들때는그런생각을하면잘버텨지더라고요.저는."

그작은목소리에도희망섞인웃음이새어나왔다.자신도모르게,궁금증이가슴을답답하게만들었다.

"넌뭘하고싶었는데?"

셀리아는잠시멍하니생각하더니,한결부드러워진목소리로말했다.

"다같이,맛있는걸먹고싶었어요."

마왕과의싸움은물론고통스러운일이었지만,의외로전투자체가그렇게끔찍하게고통스러운일은아니었다.

나야거기에서는빠져있었으니그렇게느꼈을수도있지만,실제전투는많지않았다.

정말어쩔수없이죽여야하는마왕군의군단장이나,요충지를지키고있는마물이아니라면싸울가치가없으니까.

더삶에밀착한괴로움이란,그런찝찝하고고통스러운여정이었다.대충익힌마물의고기를씹어먹고,눅눅하고축축해진.진흙으로가득찬신발을신고걷는것이고통스러웠다.

"그런가."

"황궁에돌아왔을때는,다이루어졌다고생각했어요.그런데한명이빠져서,그냥잠깐사람들이잊어버린거라고생각했는데..."

도서관에서마주쳤을때,성녀는내게아무렇지않게말을걸었다.

이해하려하지않았다.이해할필요도없었다.

무의미한시간이흘러갔다.

"엘레노어,그쪽에비상식량이있을텐데,혹시좀꺼낼수있겠어?"

파시어는지쳐잠든것같았지만,남은사람들은피곤하고머리가아파올뿐아직잠들정도는아니었다.

"이게...흐읍.좀힘들것같군.급하게물건들을집어넣다보니,깊숙한곳으로들어간모양이다."

아슬아슬하게쌓여있는짐들은,조금만잘못건드리면무너져버릴정도로아슬아슬하게균형을유지하고있었다.

"...먹었다.나도."

"네?"

"맛있는음식,질리도록먹었어.세레스가가져다주기도했고.일단은황궁안에있었으니까."

황가에진상되는음식이다.고기든디저트든,맛이없을리가없다.

셀리아는잠시머뭇거렸지만,이내조금밝아진목소리로말했다.

"다행이네요."

"...그래."

정면에앉아있는세레스는뾰로통한표정을짓더니,뭔가깨달은듯낑낑대며마차밖을바라보았다.

"비,그치고있어요!"

마차안의모든사람들이그말을듣고밖을바라보았다.아직하늘은어두웠지만,하늘에구멍이뚫린것처럼쏟아지던비는멈췄다.

구름틈새로,햇빛이들어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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