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 마녀 사냥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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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안돼.말도안돼!"
장남의이성은,눈앞에선여기사가황녀라는사실을명확하게알려주고있었다.
그정치적행보를떠나,황녀는검을다루는이에게이상적인존재였으니까.
혈통과재능도어마어마했지만,그힘과노력만으로도엘레노어는절대적인위상을자랑하고있었다.그가몰라볼리가없었다.
"저게...그녀일리가..."
엘레노어를무시하는사람은많았다.젊은데다,처음사교계에모습을드러냈을때는신분이의심스러운여자였을뿐이니까.
흉보기좋아하는사람들은그녀를황제의애첩이라고말하는사람이많았다.아무리조심스러운사람도,그녀가정말기사로서싸울수있을거라는확신을가지지는못했다.
하지만그녀는아무렇지않게그녀를의심하는이들에게결투를신청하고,한번도빠짐없이승리했다.끔찍할만큼압도적으로.
실제전투에서전공을세우지못할거라며의심의끈을놓지않은사람도있었다.
하지만그녀는최소한의호위병을이끌고,거의홀로나서서제국의암적존재들을쓸어버렸다.
황제의강압적인개혁정책이효력을발휘할수있었던것은,그녀의압도적인명성과인지도때문일수도있다는말이정설처럼받아들여질정도였다.
"안돼.그럴리없어.저런천박하고무례한인간옆에그황녀가머물리가..."
하지만그녀의차가운목소리는,장남이계속생각에빠져있게두지않았다.
"웨더가문의후계자가내게무슨말을했는지,여기있는모든사람이들었군."
장남은입술을꽉깨물었다.저게문제였다.
그녀가황녀라는것이드러나는순간,웨더의장남은자신이한말에대해책임져야했다.
무려천박한신분이라고욕한것이다.단순히약하거나역겹다고조롱했다면차라리활로가남아있을지도모른다.
하지만황가의혈통에게'비천하다.'라는말을한건,도저히용납받을수있는일이아니었다.
장남은깊은자책에빠졌다.귀족신분을들먹인게실수였다.
"웨더의가주가이일에대해어떻게생각할지궁금한데."
용납이나,협상이가능한수준의사건이아니다.황가의혈통을모욕한것이다.
상대가누구인지몰랐다고변명할수는있겠지만,수많은증인들과함께황녀가직접들었다.
그의편인웨더가문의병사들이나비천한용병따위의증거능력을신경쓸필요는없지만,윌리엄은아무리한미하다할지언정정식으로임명받은귀족이었다.
게다가황녀가혼자있을리가없다는것을감안하면,근처에명망과신분이높은황제파귀족이없을거라생각하는게더이상했다.
실패했다.군대를이끌고,싸움에서지고,꼴사납게패배하는것보다그의말한마디가더큰실패를불러왔다.
이건어찌할수없다.귀족파가아무리끈끈하게맺어져있다해도,서로무제한적인손해를감수할수있는건아니었다.
황제는이걸유용한기회로사용할것이다.이걸단순한촌극으로취급하지않고,교묘하게귀족파의젊은후계자들과웨더가문의무례로일을확대할것이뻔했다.
예의를중시하는늙은장로들이나제국자체에충성하는귀족들은황제에게기울어질것이고,그교활하고음흉한황제는그걸목줄삼아귀족파를제어하려할것이다.
그때부터일어나는사건은,웨더가문정도의어설픈세력으로방향을바꿀수없을터였다.
"그럴리없다..."
이런무례를저지르지않기위해,어설픈귀족가의자제들은황궁에들어오는순간부터입조심을시작해야했다.
하지만이런곳에서,웨더가문의장남인그가입조심을해야할상대가있을거라고는도저히상상할수없었다.마음을놓아버렸다.
"이건현실이아니다.저게진짜일리없어."
그리고장남은,결국마지막까지그의패배를받아들이지못했다.
그의실수로웨더가문이피해를입고,그가가주가될수있는가능성이사라지는것을인정할수없었다.
처음부터잘못되었다.어느순간부터인지는모르지만,모든상황이비상식적으로흘러가고있다는것은분명했다.
그는필사적으로자신을합리화했다.
저남자는일반병사보다조금강하지만,그뿐이다.
저괴물은죄다환상에불과하다.아군마법사가비열한술수를썼을뿐이다.
장남은그렇게믿어야만했다.
"그래,그거대한괴물이겨우칼한방에무너질리없어.가짜인거다..."
장남은엘레노어를직접본적이있었고,그반짝거리는백색갑옷은그녀를상징하는무구이기도했다.
하지만그렇게유명한물품이라면언제든지위조범이있을수있다.
그가엘레노어를본것은몇년전이었으니,정확한생김새나갑옷의형태를잊어버리기에는충분한시간이다.
그저그녀가자신을황녀라고주장하고있기때문에,손쉽게착각하고있는것일지도모른다.
"으으..."
장남은결단을내렸다.
저건허장성세에불과하다.두려움에떨고있는병사들따위는중요하지않다.
자신의검으로저사기꾼을무찌르기만하면,이환상은끝날것이다.
신체적능력은좀뛰어나보이지만,결국사람을죽이기싫어하는겁쟁이에불과하다.
죽이면된다.처음에하려고했던것처럼,그저검을뽑아쓰러트리면그걸로충분하다.
모든것을포기할필요도없고,가문의복수도이룰수있다.
"현혹되지마라!!!"
장남은이를악물고소리쳤다.주위의병사들은두려워하고있었지만,이게그가살아남을수있는마지막방법이었다.
"저놈은가짜에불과하다!용사도,황녀도.허황된말을일삼는사기꾼에불과하다!"
대놓고떠들고다닐수있는말은아니었지만,황실에서일어나는스캔들의대략적인전말은들어알았다.
황제는물론이거니와수도의명문귀족들마저눈에불을켜고찾아다니는진짜용사가여기있을리없었다.
만일그게사실이라해도,황녀가저렇게멀쩡한꼴로갑옷과검을들고나설수있을리없었다.
"내가직접증명하겠다!"
그는말을박차고나가,뚜벅뚜벅걸어오는자칭용사에게나아갔다.
하지만그자칭용사는아무런두려움없이,다른일행들을내버려두고그를향해다가왔다.
장남은마음속에서피어오르는두려움을억지로누르고,말의속도를높여계속돌진했다.
"간다!"
그가직접마상돌격을할일은없을거라생각했기에랜스를준비해오지는않았다.하지만,사기꾼을상대로한다면이장검으로도충분했다.
말의속도감이장남의가슴을뛰게만들었다.계속달려간장남은,사기꾼의몸을갈라버릴검을휘둘렀다.
"죽어라!"
닿았다.이위치라면피할수없다.
그렇게생각하고잠깐마음을놓은장남은,자신의검에성검이부딪히는것을느끼지못했다.
간과했다.필부의검이말의가속력이더해진기사의검을막을수없을거라고생각했다.
그리고그방심의대가는,너무나도컸다.
"크허억!"
계속앞으로달려나가던말은,어느순간위에올라타있었던그주인이사라졌다는것을깨닫고울부짖었다.
패닉에빠진건말뿐만이아니었다.꼴사납게바닥에구른장남은,몇초가지나고나서야그가힘에서밀렸다는사실을깨달았다.변명의여지가없을만큼압도적으로.
"무,무슨!"
그리고그자칭용사는,성검을땅바닥에꽂아넣고맨손으로그에게다가왔다.
"꺼,꺼져라.나는웨더가문의후계자다.너희같은사기꾼따위에게..."
일어날겨를도없었다.앉은채로꼴사납게뒤로도망치던장남은,어느새그의눈앞에에네렐이있다는사실을깨달았다.
서서히장남을조여오는에네렐의입가에는미소가걸려있었다.
"결과적으로봤을때굉장히고맙긴하지만...그래도,나도사람이다?"
"무슨소리를하는거냐!"
"보기싫은놈있으면때리고싶을때도있고,죽이고싶을때도있고,원망스러울때도있고.가끔은아예전부놓아버린채,화를내고싶을때도있고."
영문모를말을하며장남에게다가온에네렐은,허리를굽혀쓰러진장남의어깨를팔로꽉눌렀다.
"그런데말이야,너는정말,정말로...때릴맛이나는사람인것같아."
"꺼져라!비천한놈주제에!"
"자기가유리하다고생각하면힘의논리를앞세우고,불리하다고생각하면혈통을들이밀고.타인에대한존중따위는없고,자신과상대에대한명확한분석도없고."
에네렐이여유로운미소를지으며장남을억누르자,그는고통스러운비명을질렀다.
"아아아악!그만둬라!지금이라도잘못을인정하고물러선다면죄를묻지않겠다!"
"이렇게,끝까지오만하고,비열하고,화해하거나자비를베풀선택의여지조차주지않고."
장남은두려움을느꼈다.
죽는다.이걸허상이라고생각한것자체가크나큰오판이었다.
장남이믿고있던혈통과무력은,지금당장그를압박하는에네렐로부터그를구해주지못했다.
"가끔은,이런진짜나쁜놈을시원하게때려보고싶었거든."
이길수없다는절망감에,그가혹시나하며세웠던모든가설이그저자신만의망상이었다는사실에장남의몸이얼어붙었다.
"죽이진않을게.죽이지는."
뒤로쭉뻗은에네렐의주먹이,장남을향해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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