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마녀 사냥3
* * *
우울했었다.
나는결국모두를지키지못했고,뿌리깊은원한도끊어낼수없었다.
최소한의희생으로다른사람들을구했다는말은변명일뿐이었다.아직아무것도끝나지않았고,내가할수있는건단지시간끌기일뿐이었다.
웨더의군대를보기전까지는,그렇다고생각했다.
"막아!"
사뿐히땅을밟고나아가,지휘관이어설프게든검을쳐내떨어트린다.
"읏!"
다리를살짝걷어차균형을깨트리고다시앞으로나아간다.
"창을들어!무작정달려들지말고,진을만들란말이야!"
혼란스러운상황속에서도,병사들을어떻게든창을들어빽빽한창벽을만들어낸다.
원래마왕군과싸우기위해준비된이들이다.물론웨더가문은그들의병사를그런소모적인전장에쓰고싶은생각은없었겠지만,대외적으로는그랬다.
상대가나하나뿐인것때문에,최전선에있는병사들을제외하면내전투를보지못하기도했다.
그걸전부고려해봐도,당장사기가바닥나도망치지않는것은꽤놀라운일이었다.그들은일반병사에불과하고,이정도사기를유지할수있다면꽤위험한전투나거친전장에서도잘버텼을것이다.
"하아아아!"
하지만,그뿐이다.
나는대지를굳게디딘다음창벽을뛰어넘었다.당황한병사들의눈동자가커지는것이보인다.
조금더훈련되어있었다면창을위로들어내습격을막아낼수있을지도모른다.하지만그렇다고해도달라지는것은없었을것이다.
이런무딘창끝으로는용사를막을수없다.엘레노어는이보다훨씬거대한마물의크고무지막지한검격에맞았을때도,아무렇지않게다시일어났다.
힘도실려있지않은창으로나를막는다는것자체가무리다.
"뒤로빠져!전열을가다듬고다시방어선을구축해!"
저멀리있는지휘관이어떻게든상황을수습하려했다.의식적으로후퇴라는말을쓰지않으려하는것같았다.
아슬아슬하게버티고있는장병들의사기는,부정적인말이조금이라도더해진다면눈녹듯사그라져갈것이분명했으니까.
"애초에저놈은우릴죽이려들지않는다!도망치는놈은내칼에맞아죽을것이다!"
"흠,그건꽤예리하긴한데요."
나는성검을들고있었지만,병사의목을치거나그검으로배를관통하는일은하지않았다.
하지만이혼란스러운전장에서그걸눈치챘다는것은꽤놀라웠다.어설픈사람이이전장을본다면,추풍낙엽처럼쓰러지는병사들과그들을가르고나아가는내모습만보였을테니까.
"검술도어설프다!힘만센머저리에지나지않아!인간은괴물보다강하다!"
"그런데말이에요.저는말했다시피검술도어설프고,능력도부족한지라...힘조절이잘되지않을수도있거든요?"
내말에주위병사들이움찔하며떨었다.
"아무리노력해도,팔한두쪽이부러지거나쓰러져아군의발걸음에밟혀죽을수도있답니다.거기까지는신경써주지않을건데,괜찮으시겠어요?"
하지만죽음만이사람을두렵게하는것은아니다.중세시대다.부상으로평생을장애인으로사는사람이일상생활을누릴수있는사회가아니었다.
"평생을팔이나다리없이살아도괜찮다고생각하시는분은들어오세요.그게아니면,그저자리를지키고있으면됩니다."
"으으..."
내게덤벼드는병사들은,순식간에칼과창을놓친채맞고날아가쓰러졌다.
계속나아간다.이들은나를막을수없다.
뒤에서이쪽을노려보고있던지휘관격의남자에게,병사하나가달려와속삭였다.
"후퇴!후퇴하라!"
지금까지의전략을모두부정하는,믿을수없는명령이었다.
"후,후퇴?"
"도망쳐!어차피저건못막아!"
이상황에서도무기를버리지않고도망치는그들의훈련도는놀라웠다.하지만,그뿐이었다.
나는무리해서그들을쫓지않았다.
"오랜만에한번솜씨구경이나해볼까..."
그들이떠난자리에사악한기운이스며든다.장남과그의군대들이매섭게이쪽을노려보고있었다.
그들은나를두려워하고있는게아니었다.그보다는,이밑에서꿈틀거리는무언가를두려워하고있었다.
어마어마한마력이다.마치폭주하는분화구를보는것같은,그저마력을태울뿐인무시무시한크기의힘.
"온다!"
대지가갈라진다.내키의몇배는되어보이는,썩은살점과시체가한데엉킨괴물이솟아오른다.
"그워어어어어어!!!"
일반적인사람처럼,바람이목을타고올라와입을울리며나는소리가아니다.훨씬기괴하고부자연스러운,말그대로이형의괴물이내는신음이다.
"화끈한데."
그들이기다리고있었던괴물,이정도면나를막을수있을거라고생각했던사악한존재가튀어나왔다.
"재밌겠어."
그래도,내입가에는웃음이떠나지않았다.
//////
"뭐,뭐냐!"
"통제할수가없어요.당장도망쳐야..."
"뭐냐고물었다,마법사!"
로브를쓴마법사의멱살을장남이거칠게부여잡았다.
"저런괴물을쓴다고한적은없었잖나!"
마법사가시연에서보여준물건은,조금어설프긴했지만적어도골렘의형상을띄고있었다.
하지만저건아니었다.저걸본사람들은백이면백,웨더가악마와거래했다고생각할것이다.
"저도모르겠어요!이해할수가없다고요!아니,제마법대로라면저런식으로거대한마물은애초에나와서는안돼요!"
"...하긴,그랬다면미리말했겠지."
마술사가아무리비현실적이고불가해한힘을구사한다고해도,적어도전장에서는대체가능한능력중하나일뿐이다.
거대한화염구는투석기나불화살로대처할수있다.마법사의기동성이나기습성은엄청난장점이었지만,적어도전장에가해지는영향은크게다르지않다.
거대한골렘은적의전열을무너트리고사기를깎아내리는데엄청난능력을보여주지만,검기를쓸수있는기사와잘훈련된궁사,그리고더많은병사들이있다면극복할수있다.
마법사는전능하지않다.
"크기가너무크군."
저무허가마법사가약속받은금액은많지않았다.그중에서도일부는'마법재료'로해결하기로했으니,고급인력이라고하기에는많지않은보수였다.
당연히마법사에게기대하는것도많지않았다.하지만그녀가약속한것보다,저생체골렘은부자연스러울정도로거대했다.
"이상해요,이상해요.전부이상하다고요..."
저런마법을쓸줄아는마법사였으면,당연히그걸알려준뒤그에대한대가를더챙겼을것이다.
"지금당장이라도마법을멈춰!"
"안돼요.해보고있는데..."
"젠장!"
제어하지도못하는,제멋대로커져버린마법이라니.
더이상웨더가고용한흑마법사의마법이라고하기도부끄러울지경이었다.
"잠깐,그러면...그,위험한거아닙니까?"
부관이땀을삐질삐질흘리며말했다.
"당장저자칭용사가뒤로빠져버리면,저괴물이우릴공격하지않을거라는보장이..."
장남은인상을찌푸렸다.완벽하지는못할망정날카롭고유효해야만했던그의계획이순식간에망가졌다.
"기분은나쁘지만...좋다.일단후퇴해."
느린결정은아니었다.지금물러나는것이시간을얼마나잡아먹을지생각하면,장남의결단은훌륭했다.
하지만잠시그들끼리대화를나누는사이,거대한생체괴물이울부짖었다.
"그워어어어어어!!!"
통제되지않은마력이날뛴다.그입에서뿜어져나오는사악한기운이주위에퍼부어진다.
그건이내그괴물을중심으로너무나도넓고거대한원을그렸고,그위에서검은불꽃이피어올랐다.
"무슨일이냐!상황을파악해!"
"아군희생자는없습니다!하지만,돌아가는길이막혔습니다!"
뒤를돌아본장남은얼굴을찌푸렸다.
마치신이그들을지켜보고있다는것처럼,저막대한마력의흐름에도희생자는나오지않았다.
하지만그시선이호의적이지는않은것같았다.저타오르는마기의불길에닿는순간,그라면모를까다른병사들은타들어가거나저주받고말테니까.
"위력이엄청나지는않습니다.하지만..."
"젠장,젠장,젠장!"
장남은분노에못이겨로브쓴마법사를걷어찼다.
"흑마법사를쓰는게아니었는데..."
절박해보이기도했고,특별히위험한마법을쓰는것같지도않았다.
통제할수없는마법이위험하다는것은알고있었지만,위험을감수할가치가있다고느꼈다.
"아니,나보고이걸믿으라는거냐?"
어쩌다보니괴물이필요이상으로거대해지고,깔끔한광석형태로만들어져야할골렘이흉측하고썩어들어가는살덩이를붙이고,그입에서뽑아져나온마기가그들이도망치는것을막았다.
"이모든일이정말우연으로일어났다는거냐?네가우리를배신한게아니라?"
하지만이모든우연들이겹쳤다는건,장남으로서는도저히이해할수없는일이었다.당장쓸데없이강한저자칭용사조차이해할수없었는데,악재에악재가겹치고있었다.
"저는아니에요,정말아니란말이에요..."
"쓸모없군."
장남은깊은한숨을쉬고,그자칭용사와거대한괴수의싸움을지켜보았다.
속은부실할테지만,그크기에서나오는최소한의질량과힘만으로도충분하다.자칭용사는순식간에밟혀죽고말것이다.
하지만,이번에도현실은그의예상을배신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