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화 〉 선수치기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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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했다.자신이무슨짓을했는지깨달아버린윌리엄은깊은한숨을쉬었다.
하지만울프를죽일수는없었다.그는포기했다.목숨을윌리엄에게 맡기고,죄를받아들일준비를했다.
지금그에게폭력을가한다면,그건그저무의미한살인이었다.복수도뭣도아닌그냥살인.
붉은빛이사라진다.그어떤공격에도흔들릴뿐소멸하지않았던그의의지는,이제산산이흩어져껍질만남았다.
"막을수있는거겠죠?"
투정이었다.그의선택이가치있길바라는마음에서내뱉는무의미한말.
갑자기지목된에네렐은당황한듯아무말도하지못했다.
"제가이새끼를죽이면전투가일어날거라고하셨잖습니까.살려뒀으니,그걸막을계획이있을것아닙니까!"
에네렐은표정을굳힌다음,천천히고개를끄덕였다.
"되게하겠습니다.반드시."
전투는끝났지만,쉴수없는사람도있었다.거친싸움동안용사파티가입은상처는적지않았고,셀리아는치유주문을끊을수없었다.
"파시어,팔은좀괜찮아요?"
"조금뻐근하긴한데...뭐,항상그랬으니상관없느니라.나보다,저쪽이좀더시급한것같은데?"
파시어는시선을돌려윌리엄을바라보았다.
"아...아!알겠어요!"
거친싸움이었지만,조금이라도우세한쪽은에네렐일행이었다.자기몸과영혼을깎아먹어가며싸웠던윌리엄이더위급할수밖에없었다.
"저도치료해주시는겁니까...커흑!"
뭉쳐있는굳은피가목에걸렸다.거칠고고통스러운소리가윌리엄의목을흔들었다.
"치,치유를..."
셀리아가급히손을돌렸지만,그녀의손에서뻗어지는빛은힘없이흩어져버렸다.
"아,안돼요!"
"문제가뭐야?"
"그,이미여신의신성력이가득차있는것처럼,공간이없다고해야하나...어쨌든당장은치유할수없어요!"
에네렐은얼굴을찌푸렸다.파시어가이런말을했던적이처음은아니었다.
하지만그때용사파티는전설적인성물을소모품으로사용해가며강화와치유를걸었다.
"원인을파악할수있겠어?"
"모르겠어요.다른신을섬기는사제나그들의치유를받은사람에게치료를걸어본적도있었지만,제신성력이그들의신성력을밀어내는식으로치료할수있었어요.하지만지금은..."
윌리엄은허탈한웃음을흘렸다.
"뭐,죽을수도있다고생각했습니다.뒷감당을생각하면서싸웠던건아니었으니까."
에네렐은당황스러운표정을감추지못했다.마치그가지금까지살아있었던게거짓말이었다는것처럼,생명의불길이꺼져가고있었다.
"결국,이렇게되어버렸군요."
"당신은..."
에리니스의늙은사제가근처의민가에서슬그머니걸어나왔다.
"여기계셨군요."
네르웬은곧바로그에게활을겨누었다.
"저붉은기운은필히네놈의것이었지.그를이렇게만든것이너냐?"
"됐어,에네렐.저분은그저사제일뿐이야.그리고윌리엄경이무슨일을했든,결국그의선택이고."
늙은사제는방긋웃었다.
"이해해주셔서감사합니다."
그는터벅터벅다가가쓰러진윌리엄의이마에손을얹었다.붉은기운이윌리엄에몸에서빠져나와,그의손으로빨려들어갔다.
"만족하셨습니까?"
"잘...모르겠습니다."
그의눈에묻은분노가누그러들었다.사라진것은아니었다.하지만,그는더먼곳을보고있었다.
윌리엄이무슨생각을하고있는건지,어떤심정인지에네렐은알지못했지만,그의결정이그분노이상으로그럴고통스럽게만들고있을거라는사실을짐작할수있었다.
"그럼그걸로충분합니다."
윌리엄은쓰러지듯눈을감았다.셀리아가다급하게기도하자,이곳저곳이찢겨있던그의몸이서서히치유되었다.
다끝났다는것을느끼고,지친에네렐이주저앉았다.
당장은,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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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위험한상황이었지만,울프의기지와윌리엄의용사로상황을넘기는데성공했다.
하지만,당장무언가바뀌는일은없었다.나는사람들을불러모은채,당장해야할가장중요한일을시작했다.
"식사부터하십시다.일단먹어야살죠."
오래걸릴수도있는일이었기때문에,붉은늑대용병단은꽤넉넉한식량을가져온상태였다.
윌리엄과그의병사들,백조용병단,독전갈용병단이어색한대치구도를만들었다.
"거친음식인데,꽤잘드십니다?"
레오네가고기죽을삼키는것을보고,제니가히죽웃으며말을걸었다.
소금에절인질긴육포에,거칠고맛없는곡물을넣어대충끓인죽이다.갑옷만벗으면귀족영애라고해도이상하지않을레오네에게어울리는음식은아니었다.
"기사가대기위해서는이보다더끔찍한음식도얼마든지먹을수있어야합니다.억지로사람을괴롭히기위해주어지는음식이아니라면,못먹을건없죠."
"이게사람을괴롭게만드는음식이아니라고요?"
"제경우는,구운벌레였습니다.껍질이조금역겨운것만빼면먹을만했죠."
"으에에...매일그런걸먹어요?"
제니가절레절레고개를저었다.
"그냥신고식이었습니다.말그대로사람을괴롭히기위한음식이죠.요즘은사라졌다고들었지만몇년전에만해도남아있었으니까요."
이대화에호기심이생겼는지,윌리엄이데려온병사하나가끼어들었다.
"그래도,그,황녀님에게이런음식을드리는건좀아니지않습니까?우리는본가의귀족한명이시찰하러나오면당장밥짓는병사들이사색이됐었는데..."
내신분이노출된이상,함께따라다니는여자들에대한정보도당연히드러날수밖에없었다.
일단은비밀로해달라고했지만,적어도여기있는병사와용병들은전부엘레노어의신분을알고있었다.
"나도기사다.당연히신고식을거쳤고."
"네?어느간큰놈이황녀님께..."
"나는진흙이었다.냄비하나분량의진흙을억지로삼켜야했지."
"진짜그걸황녀님께시킨겁니까?"
레오네의눈이동그래졌다.
"강요하는사람은없었다.그저,내순번으로들어올기사에게예정되어있었던신고식이진흙이었을뿐."
"어..."
"나는황녀가아니라기사중하나로기사단에들어왔고,그게의무라면특별대우를받을수는없었다.대신,나를마지막으로그악습을없애라고명령했지."
"엄청나시군요.역시,기사중의기사이십니다."
"그랬던가..."
엘레노어는조용히내눈치를살폈다.
"먹...드세요,그냥."
심경이복잡한건나도마찬가지였다.
윌리엄에게는대의를위해그를용서하라고말해놓고서,내가다른파티원에게복수를감행한다는건말이안되는일이었으니까.
"음..."
떨리는눈으로엘레노어를바라보았다.그녀는지금까지아무말도하지않고나를따라왔다.적당히하다가화를내거나돌아갈거라생각했지만,엘레노어는아직도내옆에있었다.
내가싸우려고드는사람과함께싸우고,구하려고했던사람을함께구하며.
"식사는마치셨습니까,용사님?"
멍하니그녀를보고있는사이,나를부르는목소리가들렸다.
"네.먹을만큼먹었어요."
가슴에하얀붕대를칭칭감은울프는주위사람들을살핀다음,조심스럽게레오네와엘레노어를불렀다.
"지금부터일어날일에대해의논해야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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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다른병사들이머물고있는곳을떠나그나마타지않은집에들어갔다.다행히도,책상과의자가있었다.
"당장은웨더가문이움직이지못할겁니다."
"무슨수를써두신겁니까?"
"그들이비축하고있던식량을털었죠.돌려줄생각이었다만...후,이렇게되어버렸네요."
군사를움직이는데는물자가필요하다.내가빼앗은식량은적지않았고,적어도당분간은피해를복구하는데집중할것이다.
"그걸로는부족할겁니다."
하지만울프는고개를저었다.레오네도그의말에동의했다.
"대규모의병력을움직일것도아니고,정부족한식량은상인에게서사들이면될것같네요.웨더는그정도로영토복구에진심이니까요."
레오네는깊은한숨을쉬었다.
"정말입니까?적어도우리는,애런의계획을완전히벗어났습니다.독전갈용병단은영주인윌리엄이직접정리했잖습니까."
"맞아요.애런은실패했죠.하지만웨더가문의모두가실패한건아니에요."
확실히,웨더가문은진심이었다.사생아라고했던애런이그정도로복수를원한다면,가문의다른귀족들은더강한복수심을가졌을것이다.
"그들은군대를움직일거에요."
레오네의말에,엘레노어가안색을구겼다.
"말도안됩니다."
최소한지금까지의웨더가문이벌였던일은,도망칠구석이있었다.
직접공격하는것이부담되니용병을고용한다거나,혼란을일으킨약탈자들을제압하며명분을확보하는등.
"최근에,웨더가문의병사들이우릴경계하는시선이느껴졌어요.전공을훔쳐가는경쟁자로여기는눈빛이더군요.그들은,약간의시간만있으면직접이지역을공격할분위기를풍겼어요."
"그건진짜전쟁입니다!"
"그러니까웨더가문은,아직황실이건드릴수없을때전쟁을하고싶은거예요."
어찌보면합리적인선택이었다.영토의수복과가문의복수를절대적인목표로둔다면,'사소한'명분따위는나중에어떻게든처리할수있다는생각을할수도있으니까.
"그렇다면어쩔수없겠네요.최대한희생자를줄이면서,싸워야죠.그사람들이실수했다는것을느끼게해줘야겠네요."
하지만,명분도호소도없이그저칼과창으로싸운다면.
"우리가더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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