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선수치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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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예상하지못한상황이었다.윌리엄도예외는아니었다.
이미반쯤포기하고있었다.바보가아니고서야,이런길고거대한싸움이일어나는동안도망치지않을리없었으니까.
그래서더에네렐이원망스러웠지만,그래도그는에리니스를믿고있었다.그에게주어진기회가더있었을거라믿었다.
지금여기서에네렐을넘어서지못해도,그의복수심은죽지않는다고생각했다.
복수의대상이살아있다는것만알고있으면된다.지금이분노만기억하고있다면,세상끝까지쫓아가죽일수있을것같았으니까.
하지만,그가스스로죽기위해다가오는상황은예상하지못했다.
"왜아직도여기있는겁니까!"
당황한에네렐이소리쳤다.울프는그의말을무시한채터벅터벅걸어왔다.
"자네가나한테원망을품고있는거라면...죽이게.대신,그걸로만족하는거야."
"순순히목을내놓을줄은몰랐습니다."
"그래.대신,다른이들은건드리지말게.내용병단에게는복수같은건생각지도말라고당부해뒀으니,자네를귀찮게하진않을거야."
윌리엄의손이고양감으로떨렸다.
너무쉽다.처절하게저항하는,자신이무엇을잘못했는지도모르는용병을상대로무자비하게칼을휘두를거라생각했다.
"더처절하게죽이려했는데."
자신이왜죽어가는지도모르고쓰러지던부모의원한을갚으려했다.그저자신의약함을저주하며죽어가던이약탈자처럼,처참하고무자비하게죽이려했다.
"왜그런일을했습니까?"
지금당장이라도그의목을베어버리고싶은윌리엄이었지만,이질문을하지않고서는배길수없었다.
당연히윌리엄은자신의복수가정당하다고생각했다.하지만,다른이들도그걸인정해줄거라는기대는하지않았다.
"왜인정하는겁니까,왜!"
용병의약탈은너무흔하고도당연한일이었다.
그나마문명화된제국이고,국가간의전쟁이아닌내전중에일어난일이었으니이걸규탄이나마할수있는것이다.
제국바깥의남부공국에서이런걸로원한을샀다고하면,에리니스의총애를얻을만한사람이저용병단무리보다많을것이다.
"수십,수백번했을일이아닙니까.이제와서동정심이라도드는겁니까?"
물론,전투가일어나더라도충분한봉급을받고극도로잘통제된용병단이라면약탈이일어나지않을수도있다.
하지만마을이나성을점령하기위해온갖고생을해온용병들이얼마나자비로울지생각해보면,현실적으로는불가능한일이었다.
윌리엄도알고있었다.아무도이걸죄라고인정해주지않을것이라는걸.재판장도,다른귀족도,심지어는그공정하다는황제마저도.
"공감하는척하지마십시오.이해하는척하지말란말입니다!"
그리고모험가가된다음,영주가된다음용병과무관하게살아온것도아니었다.
직접살인에동참한적은없었어도용병이주문한독성약초나질좋은무기를구해다준적은많았다.
당장그가에네렐에게제안한것도용병들을고용하라는말이었다.그용병들이다살인자라는것을모르지않았다.그의부모를죽인이들과같은,돈을받고사람을죽이는인간이라는것을모르지않았다.
"당신따위들이,뭘안다고!"
에네렐의반응이면꽤관대한편에속했다.
정말차가운사람이라면그의슬픔따위에는코웃음을치면서,'여기부모죽은놈이한둘이냐?'혹은'가족잃은사람이너밖에없냐?'라고말하며검을휘둘렀을것이다.
누구에게도이해받을수없는,개인적인분노였다.공감해줄사람따위는없을거라믿었다.
그래서힘을얻었다.그것때문에에리니스에게기도했다.그녀라면아무리개인적인원한이라도,사적인복수라도들어줄거라생각했으니까.
그런데,왜.
"당신들이저를이해하려하는겁니까!"
분노로가득찬윌리엄의검이울프를향해나아갔다.에네렐이급하게그걸막아냈지만,울프는흔들림없이앞으로나아갔다.
"...미안하게생각하네."
찔려도상관없다는듯이울프는앞으로나아갔다.
윌리엄이두려운것은아니었다.그가에리니스께빌어얻어낸힘때문에숙이는것이아니었다.
"어째서..."
"이청년...에네렐이라고했던가?그는,마지막까지다른이를구하려했네.아무런상관없는마을사람들을,우리를."
다리는떨리고,이마에는땀이맺힌다.그용병경험과는별개로울프는그저평범한인간에불과하다.이런살기를앞두고버틸수있을리없다.
"증오의연쇄라고했지.왜자네가그걸먼저끊어야하냐고,용서해야하냐고도물었지.자네의말이옳네."
검을잡은울프의손에힘이풀렸다.피와시체로얼룩진대지에검하나가떨어졌다.
"용서하지말게.나를죽여.그리고,앞으로는...자네처럼죽는사람이없도록만들어주게."
울프는두팔을벌린채갑옷도없이서있었다.한걸음씩윌리엄이그에게다가갔다.
"끝내기전에묻고싶은게있습니다."
"말하게."
계속궁금했던것이있었다.윌리엄은풀리지않았던수수께끼를풀고싶었다.
"봤습니까?"
에네렐과다른파티원들은잔뜩경계한채,그들의대치를지켜보고있었다.
그두사람만알수있는말이었다.그날의기억을가지고있는,가해자와피해자만할수있는말.
"작은눈.봤지."
윌리엄이입술을깨물었다.너무오랜시간잊고있었던기억이었다.
부모가죽었다고해도,세상은끝나지않는다.약탈과방화,살인은끝없이이어진다.
부모를죽인용병이멈출이유가없었다.그는주위를살피더니,어린윌리엄이숨어있는곳을보고잠깐시선을멈췄다.
죽었다고생각했다.이마을사람들과함께최후를맞이한다고생각했다.
하지만용병은윌리엄을눈치채지못한것처럼,아무렇지않게다른곳으로이동했다.
"왜...죽이지않았습니까?"
"죽일이유가없었으니까.얻을것도없었고,믿을지는몰라도적어도그순간은..."
울프는이모든게무의미한싸움이라고생각했었다.
귀족사이에서일어나는웃기지도않은권력다툼때문에사람을죽이는것은,적어도그순간은유쾌하지않았다.
용병의논리로는,돈만챙길수있으면그만이다.약탈에대한권리를얻고달콤한금화를삼킬수있으면그원인을따질이유는없었다.
그래도그공포와분노,체념과기도가섞여있는눈동자를보았을때는,차마살인을즐거워할수없었다.
"한사람이라도살았으면해서."
윌리엄은이를악물었다.
용병에게약탈은당연한일이다.하지만,그걸당연하게여기지않는사람이있었다.
자신이그좁은곳에숨어복수의눈으로울프를바라보고있을때,그도윌리엄을보고있었다.
"하..."
윌리엄의복수는악인을때려부수는시원하고통쾌한복수가아니었다.그냥사람이그냥사람을죽이는,평범하게무의미한복수였다.
"그래도,이건할겁니다."
윌리엄의검이서서히울프에게나아갔다.그걸잡은손에는힘이들어가있지않았다.
"그래,끝내게."
중년의용병은천천히고개를끄덕였다.이정도면,그가생각했던것보다특별히나쁜죽음도아니었다.
자신보다더악하고강한사람에게처참하게짓밟히며죽을수도있었다.
귀족에게배신당해어둡고퀴퀴한감옥에갇혀있다가처형당할수도있었고,눈먼화살이나마법에맞아흔적도남기지않고사라질수도있었다.
그가죽인수많은사람들처럼,아무런저항도하지못하고땅에묻힐수도있었다.
적어도그런죽음들과비교하면,이건인정할수있는죽음이었다.그가선택한죽음이었다.
자신과아무상관없는사람들을구하기위해날뛰어준용사들을위해,그리고남겨진용병단원들과평범한사람들을위해.
죄지은자가죽고,마땅히복수해야할자가죽인다니.수많은사람의죽음을바라본그로서는자연사다음으로사치스러운죽음이라고여길수밖에없었다.
울프의가슴을찌른검은,서서히그안으로파고들었다.
"..."
에네렐은차마그걸막을수없었다.죽음을선택한건울프였다.쓸데없는희생을늘리지않고,살인에대한책임을지겠다고한건저중년의용병이내린결정이었다.
"해냈다..."
윌리엄은해방감에몸을떨었다.
복수는끝났다.더이상사라진부모의원한에울부짖을필요도없고,그를가로막고있는과거도사라졌다.
개인적인원한을개인적인방법으로풀었다.이곳에피가흐르겠지만,애초에영주작위를맡을테부터싸움을피할수있다는생각은하지않았다.
그냥알드길드가기대하는역할대로,다른사람들이윌리엄에게기대하는역할대로남아있으면된다.평범한한사람으로서.
피해자인윌리엄이가해자를죽이는일은,용병이마을을약탈하고무고한이들을죽이는것만큼이나당연한일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크읏..."
윌리엄의검은울프의몸을끝까지꿰뚫지않았다.검끝에약간의피를묻힌채,그는검을울프의몸에서빼내고뒤돌아섰다.
그는,조금이라도이용병보다열등한존재가되고싶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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