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 선수치기11
* * *
검과검이부딪혔다.
"정말,이렇게까지하셔야겠습니까..."
윌리엄의검이무겁다.심상치않다고생각했지만,상상이상으로매서웠다.
검을맞댄상태에서눈과눈이마주쳤다.나도모르게주눅들수밖에없었다.
힘에서밀리지않는다.말도안되는일이라고생각했지만,그의검은내검을짓누르고있었다.
"에리니스께서제게힘을주셨습니다.당신이용사라한들,지금.이순간만큼은저를막을수없을겁니다."
순간,칼에가해지는힘이느슨해졌다.
그가먼저움직였다.이힘겨루기가의미없다는것을깨닫자마자자세를숙이고내다리를걷어찼다.
내검은허공을갈랐고,윌리엄이유효타를만들었다.
"흣!"
"꽤단단하시군요."
하지만,치명타는아니었다.그가가진힘이상상이상으로어마어마하다고는해도,내가가지고있던용사의힘이사라진건아니었다.
방패도만들수없고검기도만들수없지만,그래도발차기한방에무너져내릴정도로어설픈몸은아니었다.
그리고,나혼자여기있는것은아니었다.
"큭!"
네르웬의화살이윌리엄의어깨로날아왔다.그의몸을감싼붉은빛이그의몸을감쌌다.
화살은그의몸에박히지못하고부자연스럽게떨어졌지만,그의기운이눈에띄게흩어졌다.
"하아아아!"
허름한옷을입은엘레노어가검을휘둘렀다.손쉽게튕겨나갔지만,그도엘레노어의검을무시할수는없었다.
최강의기사다.윌리엄의검술은나같은초보자의검보다는뛰어날지언정,최고의스승과수많은실전을거쳐단련된엘레노어의검술보다는모자랐다.
"큭,거추장스럽게..."
윌리엄의움직임이눈에띄게느려졌다.서서히느려진게아니라,순간순간멈춘것처럼흐름이끊겼다.
파시어의저주다.에리니스의힘을두른윌리엄이라면어설픈불덩이따위는먹히지않겠지만,그런적을상대로도잠시몸을경직시키는것정도는할수있었다.
셀리아의축복이내몸과검에깃들었다.중심을잃은윌리엄을향해내검이쏘아졌다.
"크윽!"
다시오기힘든기회였다.용사파티원들의존재를모르고있던윌리엄에게,갑작스러운기습은위협적이었을것이다.
피할수있는궤도도아니었다.심장을향해쏘아진성검은일반인들이라면반응조차할수없는속도로나아갔다.
에리니스의힘을쓴다고한들,그가사제를만났던게최근에일어났을일이라는것을감안하면아직완전히그힘에적응하지못했을것이다.
그가급히돌린팔은에리니스의검과파시어의마법에엉켰다.
체크메이트였다.
"크윽..."
하지만,성검이그의몸을꿰뚫는일은없었다.나를포함해,우리파티원들모두가당황한채멈췄다.심지어그걸맞고뒤로튕겨나간윌리엄마저도,충격에헐떡거리며믿을수없다는눈빛으로나를바라보고있었다.
윌리엄의힘이강한것이아니었다.그가무언가더거대한힘을써서나를막아낸것이아니었다.
그저,내결단이부족했던것이다.
"어째서..."
윌리엄은다시일어나검을들었다.내의사없이인간을벨수없는성검은,그저그의가슴에커다란충격을주었을뿐그를찌르지못했다.
베고싶지않았다.사람을지키기위해사람을죽이고싶지않았다.
죽어마땅한사람도아니고,나를죽이려하는사람도아니다.
내의지가부족하다.그의살의를덮을만큼의각오가없었다.
"더죽이고싶지않습니다.제발,여기까지하죠.검을쓰지않고도해결할수있는방법이있을겁니다."
"어떤방법입니까?저도궁금하군요.뭐,재판이라도내보낼까요?증거도없는몇십년전일입니다.웨더와계약한용병의반쯤은합법적인약탈행위입니다.판사가그걸들어줄것같습니까?"
그는기다렸다는듯이나를반박했다.더슬퍼졌다.
윌리엄은저힘을얻은상황에서도,무의미한분노에휩싸이지않고잠깐이나마'평화적인해결책'을생각해봤다는뜻이니까.
"그래도진상을밝혀야하지않습니까.그사람들의죽음이억울했다는것을,그범죄가끔찍하고잔인했다는것을모두가알아야하는것아닙니까."
강하다.저상태로,저분노와휘몰아치는감정들사이로대화를할수있는것자체가윌리엄의강함을보여주고있었다.
"물론,진짜용사의도움이있다면그런결과를얻을수도있겠지요.하지만,그건정말유의미한일입니까?"
고민하고,내말을듣고,생각한다.
지금도손이부들부들떨리고있으면서도,붉은빛이요동치며달려들라고속삭이고있을텐데도그렇다.
"애초에남은증거가있을리없습니다.증인이라고할만한사람도저외에다른사람을찾을수없을테지요.그건,그냥권력으로그를천천히죽이는것과다를바없습니다."
너무시간이많이흐른일이다.폭력이아니고서는처리할수없는일이다.
"울프도그일을반성하고있었습니다.죽고죽이는방식으로문제를해결하는건..."
윌리엄이이런상태가된것을눈치채고내게거짓말을했을것같지는않았다.이미원한관계나윌리엄의변화를눈치챈상태라면,그냥꽁무니를빼고도망쳤을것이다.
"그게어쨌다는겁니까!"
다시윌리엄이검을휘둘렀다.아직견딜만하지만,점점검에담긴파괴력이늘어난다.
다른파티원들이아니었다면저위압감에눌려버렸을지도모른다.눈에담긴증오가불타오른다.
이런느낌이었을까.그때나를봤던사람들은.
"저는,그때의저는약했습니다.빌어처먹을정도로약했다고요!몸도작아구석으로숨어들어서,작은틈사이로죽어가는아버지와어머니를보며...아무것도할수없었다고요."
그의감정변화에맞춰,붉은빛들이흔들린다.눈이멀정도로부신고통스러운불빛들이.
"이제야강해졌단말입니다.에리니스께서이제야허락하셨던말입니다.어렸을때는이길수없다고생각해서포기했던,자라났을때는찾을수없다고생각해서포기했던그원수가여기있단말입니다!"
처절하다.하지만,나도포기할수는없다.
내복수와는관계없는일이지만,나도처절하다.
"압니다.내가아무것도할수없다는게얼마나슬픈일인지,얼마나무력한일인지."
"당신이안다고요?용사의힘을휘둘렀던당신이?"
"이힘을얻은것은최근이었으니까요."
생각해보면,어느것하나내가선택하지않은것이없었다.아무도내게강요하지않았다.
"당장근처에마왕군이움직이는데,아직피난이끝나지않은마을이있을때.우리가떠나면그사람들이모두죽는다는것을알면서도떠나야하는것.이정도로는부족합니까?"
"마왕군을죽이면되는것아닙니까."
"앞에는더많은사람들이있습니다.당장마왕을쓰러트리지못하면죽게될수많은사람들이있었죠.그리고...저는그걸이해하려하지않았고요."
그래서억지를부렸다.애원하고빌고속였다.
"전투를마치고돌아온용사에게더싸워달라고부탁했죠.마법사의마력을써서라도눈앞의사람을살려달라고빌었어요."
그런짓을하니섞일수없었다.처음에는나를무해한존재로취급하던파티원들도,하나둘씩나에게원망을뱉어내기시작했다.
끔찍한시간이었다.그래도엘레노어에게서용사의힘을빼앗아올수는없었다.그녀가그걸가지고있는게더효율적이었으니까.더많은사람을구할수있었으니까.
하지만,지금은다르다.
"이제겨우구할수있게되었단말입니다."
그네르웬이,셀리아가,파시어가,엘레노어가나와함께있고내명령을따른다.예전이라면시간문제때문에,마력문제때문에상상도못할일이다.
실패했지만포기할필요는없다.더많은시간과노력을들인다면,결국이비극도막을수있다.
나라고복수심이없는것은아니다.이모든일을고려해도용사파티가내가가한상처는견디기어려운수준이었고,차마털어버릴수없었다.
"죄송합니다.저도당신이무슨심정인지조금이나마이해할수있습니다.제가옳다는말은하지않겠습니다.이럴말을할자격도없다는걸압니다."
그래도,구하고싶은마음도있었다.사람을살리고싶다는욕망이있었다.
그가작은틈사이로부모님이죽는모습을보고,그살인자에게복수하고싶었던만큼.
나도아무것도못하던내가원망스러워서,남아있는사람을지키고싶었다.
그때는하지못했던일을하고싶었다.내게제일중요한것은물론귀환이고,내가지금하고있는행동들은오히려귀환을늦추는행동이다.
안정된후방지역은중요하지만,이건어떻게생각해도과투자다.
"그런데아무리생각해봐도,안될것같습니다.진짜,이게말도안되는일이라는걸아는데,당신이복수할자격이있다는것도아는데,차마그럴수없단말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눈앞의사람들을상대로도망칠수없다.조금만더인내심을가지고기다리면아예지구로돌아가,더이상다른이들이고통받는모습을보지않아도된다는걸안다.
하지만나는인내심과는거리가먼사람이었다.마시멜로를단숨에먹어치울정도로굶주려있었다.
한발짝앞으로나와,다시그에게검을겨눴다.
"당신을막겠습니다."
성검끝에서푸른빛이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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