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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110화 (110/217)

〈 110화 〉 선수치기­10

* * *

"용병을끌고이곳으로오실줄은몰랐는데요.안으로들어가보셔야하는것아니었습니까?"

당장이라도모두를죽일듯한기세와달리,윌리엄은차분하게말을걸었다.

나는속으로안도의한숨을내쉬었다.어쩌면이건얼마남지않은기회일지도모른다.

"독전갈용병단이제통제를벗어났습니다.나름대로할수있는일을했다고생각했는데..."

"그렇다면,이곳을점령하기위해온건아니라는뜻이군요?"

"예.약탈자들을죽인다면모를까."

사람을죽인다는것은언제나슬픈일이었지만,당장마을을약탈하고살인을저지르는이들을가만놔두는것도말이안되는일이었다.

어쩌면,이미나는실수했는지도모른다.엘레노어가옳았다.무리해서라도그들중대부분을죽였어야할지도모른다.

"확실히...마을하나를점령하기에는과다한전력이군요.믿겠습니다."

다행히도그는내말을믿어주었다.

"죄송합니다.어떻게든전쟁을막아보려했지만...저는너무늦었습니다."

"노력만해주셨다면상관없습니다.말을꺼내긴했지만,적어도그두용병단이싸움을걸지않는다면확전은없을테니까요."

내게맡긴돈이적지않은만큼,그가화를낼수도있다고생각했다.운이좋았다.

뒤에서울프가달려왔다.

"대충상황은파악했습니다.독전갈용병단중생존자는없는것같습니다.마을깊숙이숨어있는주민들은있는데,굳이꺼내지는않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과정도결과도엉망진창이었지만,이대로봉합하고넘어가고싶었다.

자신이없었다.여기서내가더개입하면일이커질것만같았다.

마왕군을물리치면사람들이살고,피난을도우면사람들이살아남는내가알던전장과달랐다.인정해야했다.나는아직이세계에대해아무것도모르고있었다.

분위기가차가워졌다.윌리엄은텅빈눈동자로울프를노려보고있었다.

"...찾았다."

속삭이듯말하는작은목소리다.하지만,나는그게위험하다는것을느꼈다.

"누구를찾으셨다는겁니까?"

윌리엄의텅빈눈동자에감정이차오른다.분노,안도,기쁨,원망,그리고복수.

붉은빛이아른거린다.전부터의심하고있었지만,이제는저빛이무엇을의미하는지확신할수있을것같았다.

"에네렐...공.잠시한명만죽이고가도괜찮겠습니까?"

"그게무슨..."

"당신뒤에있는용병,죽여야할것같습니다."

오랜만에느껴보는두려움이었다.윌리엄의몸에서뿜어져나오는찌릿거리는살기에몸이반응했다.

"이들은약탈과는상관없는사람들입니다.독전갈용병단과는별개에요."

어떻게보면약탈을묵인했다고볼수도있겠지만,일단직접적연관은없었다.

"아닙니다.상관,있습니다."

검을잡은윌리엄의손이부르르떨렸다.그는그검을뻗어,내뒤에있는울프를가리켰다.

"제고향은이근처마을이었습니다.어렸을적에용병들이쳐들어왔고,제가알던사람들을모두죽였죠.부모님과친구,이웃들을전부."

슬픔이없는사람은없을것이다.여정에서봤던수많은사람들이그랬던것처럼.

그리고그비극의크기는,내가상상하지못할만큼컸을것이다.

"지금,그용병이당신뒤에있습니다.그러니양해해주십시오.죽여야겠습니다."

"그건안돼요.일단좀진정하고..."

막아야한다.지금당장울프없이붉은늑대용병단을제어할방법이없었다.

하지만,내가정말그럴자격이있을까.

"에리니스의사제분께서당신에대한얘기를해주었습니다.진짜용사는당신임에도불구하고,모두가당신을멸시하고비난했다고요."

그사제가만나려했던사람은내가아닌윌리엄이었다.복수가가장필요한사람.

"당신을따라다니는사람은용사파티로보였는데...뭐,나름의복수를이루신거겠죠.그런당신이,제가가족의복수를하는것도용납하지않겠다는겁니까?"

그의분노가,그의감정이흘러들어온다.붉은빛이선명하게눈을타고뇌안까지파고든다.

"이들은웨더와계약한용병입니다.지금이들을건드렸다간,진짜전쟁이일어날수있습니다."

어떻게든싸움을합리화하기위해눈에불을켜고구실을찾아다니는웨더가문이다.

먼저습격한독전갈용병단이면모를까,구원을위해달려온붉은늑대용병단을공격하는것은그럴듯한확전사유가될수있었다.

그걸떠나,단순히울프를죽이는것도받아들이기어려웠다.과거에죄악을저질렀을지언정,지금은그죄에서벗어나려하고있는사람이다.

"제가참아야하는겁니까?모두를위해?"

"어쩔수없..."

말을끊을수밖에없었던것은,나자신도내논리에동의하지않기때문이었다.

아니,논리로는동의했다.동의하지않은것은내감정이었다.

환하게타오르는붉은빛이그의복수심을보여주고있었다.그가얼마나고통스러워하고있는지,슬퍼하고있는지느낄수있었다.

"그용병들도귀족간의다툼에휘말린이들이었습니다."

"세세한이유따윈알바아닙니다.뒷감당이무서울테니당연히그정도허가는얻었겠지요."

"웨더의영애와이야기를했습니다.그들도나름대로사정이있었어요.어느쪽이든,이연쇄를끊지않으면계속싸울수밖에없습니다.그러니제발..."

하지만,그를죽인다고끝나는게아니다.전쟁을사주한자들은멀쩡히남아있고,그들이쓰는도구,직접사람을죽이는용병의얼굴이바뀔뿐아무것도달라지지않는다.

"그렇다면그들을전부죽이면됩니다.지금에리니스깨서는그럴수있는힘을내리셨습니다."

"그런식으로는문제가해결되지않습니다!"

극단적으로는,붉은늑대용병단을전부죽이면그의분노가사그라질지도모른다.웨더가문까지확실하게몰락시킨다면그의복수가완성될지도모른다.

그래도그건또다른폭탄을심어넣는것뿐이다.

"아니요.문제는없었습니다.적어도저한테는요."

그가슬프게웃었다.

"힘든세월을보냈지만,전부과거일뿐입니다.저는새로운가족들을만났고,새로운친구들을만났습니다.집이라고할수있을만한곳도얻었지요."

용사파티같은최고의영웅을비교대상으로두지않는다면,그의출세는꽤놀라운수준이었다.

운도타고났고,그의재능과노력도다른이들보다우월했을것이다.

"그런데,그과거일뿐인것들은,기억은사라지않습니다.애써묻어뒀지만,역시...전부잊지는못했나봅니다.사제의도움으로전부기억나버렸으니까요."

나는차마말을잇지못했다.

그의고통받은기억을잊어버리는것이나았다는말은차마할수없었다.

가족이죽었지만하하웃으며넘겨버리라는말을꺼낼수는없었다.그건옳지않은일이었다.

"새로운희생자가생길겁니다.당신이또다른가해자가될수도있습니다."

자기혐오때문에입이막혔다.내가뱉는말하나하나가,내입에서나올자격이없는말이었다.

'해야만하는일이니까.'라는말로희생을정당화하는것을무엇보다싫어하던나였다.내개인적인복수를위해인명과안전을도외시하고검을휘둘렀던나였다.

그런내가,내가가장싫어하던말을하고있다.입장이바뀌었다는이유만으로또다른나를죽이고있다.

내가우스웠다.아무리용사파티에서보낸시간이역겹고어려웠다고한들,가족을잃은사람보다내가더슬프고힘들었다고말할수는없었다.

"그래서,제가참아야하는겁니까?왜그연쇄를제가끊어야합니까?제가먼저피해를입었다는이유만으로제게책임을돌리시는것아닙니까!"

내가가장증오하던행동을내가하고있다.지금이라도그의복수를긍정해야하는걸지도모른다.

"그래도...누군가는끊어야하니까요."

그가헛웃음을지었다.

"그렇네요.어쩌면...제가용서해야할지도모르죠."

조금분위기가누그러들었다.하지만,나는차마마음을놓을수없었다.

싸워서이길수있을지확신할수없었다.그냥전력으로는절대질리없는싸움이다.용사의힘을얻은나와최고의전력인용사파티,그리고실력은좀부족할지언정두거대용병단이내뒤에있었으니까.

하지만,내가이사람을막을수있을까.정당한복수를원하는사람앞에서서,좋아하지도않는사람을살리기위해싸울수있을까.

"정말좋은사람이군요.당신과는상관없는사람의목숨을,상관없는영지의생명들을위해이렇게까지신경써주시다니."

"주제넘은참견일뿐입니다.그래도,부디..."

"하지만."

잠깐잦아들었던복수의기운이맹렬하게타올랐다.결정을마친윌리엄의검이붉게빛났다.

"미칠것같습니다.견딜수없단말입니다.이걸...이걸품에안은채아무렇지않게웃을수없어요.저는..."

한탄섞인그의목소리가힘없이흩날렸다.

"복수를마치지않고서는살아있을수없습니다."

이해할수있었다.이해할수있어서더슬펐다.

"복수를방해한다면죽이겠습니다."

몇백의용병과누구보다강한용사파티를앞에두고,윌리엄은한발짝앞으로다가왔다.

그의각오가더강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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