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 선수치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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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이아니었다.불타오르는집과죽어가는사람들,의기양양하게웃는용병들까지.
윌리엄은검을뽑았다.
"많군..."
가세가쇠락한알드길드가문은,이런변경의영지에충분한병사를배치할수없었다.
병사가적기도했거니와,변경에과도한병사를배치하는것은위기감을불러일으킬수있었다.
어떻게든충돌의빌미를만들고싶지않았던알드길드가문이,전략적으로중요하지않은마을에병사들을배치할리없었다.
이미충돌이본격화된지금은의미없는일이되어버렸지만.
"적의규모가명확히파악되지않았습니다.본대에지원을요청하겠습니다!"
"됐어."
윌리엄은굶주려있었다.자신이아무것도먹지못했다는사실을너무오랜시간잊고있었던이가,갑자기그걸자각했을때처럼.
"내가죽인다."
늙은사제는이곳에서기다리고있으라말했다.하지만,기대가크지는않았다.
이곳을공격한독전갈용병단은신생용병단이다.알드길드의영지에서얻을수있는정보는한정적이었지만,그정도는알수있었다.
20년전의그용병이여기끼어있을거라는생각은하지않았다.
"여,영지군이다!"
"벌써?우리가여길습격한지얼마나됐다고..."
"수는많지않아보여!일단단장한테보고하고,지금당장습격해야해!"
저족속들은달라지지않았다.비열한이들은남의것을뺏어자신의배를채운다.
그때는무엇보다거대해보였던아버지도,힘좀쓰던동네의아저씨들도그들을두렵게하지못했다.작은몸집을가진윌리엄도다를게없었다.
하지만지금은다르다.윌리엄이아니라,그들이두려워하고있다.
"영주님,이건..."
"괜찮아.내가알아서하지."
윌리엄이검을뽑자,붉은빛이검에스며들었다.
잠깐잊고있었을뿐,항상거기있었다는것처럼.
"오,옵니다!"
"죽여!일단내가보고할테니까..."
싸움은오래가지않았다.검에묻은피가선명하고붉은빛을내뿜었다.
쓰러져죽은농민들의시체옆에,방금전까지그들을약탈하고죽이던용병들의주검이나란히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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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늦었습니다."
늑대가죽을어깨에두른남자는,깊은한숨을쉬며나를맞이했다.널브러진술잔들이그의얼굴이붉어진이유를설명해주고있었다.
여관밖에는백명이넘는용병무리가모여있었다.흉흉한분위기가,심상치않은일이일어나고있다는것을알려주었다.
"백조용병단은기다리겠다고했지만,애초에독전갈용병단이출발한이상일을무를수는없어요."
알드길드가문의병사들은독전갈용병단의공격을막을수없다는전제하에시작된계획이었다.
백조용병단과늑대용병단은그들을제압하고웨더의본대가올때까지기다리는역할일뿐이다.
"지금당장출발하면막을수있습니까?"
그는서서히고개를저었다.
"죄송합니다.진작알았다면더자세히알려드렸을텐데."
"아니요.충분히하셨습니다."
그냥돈많은상인일뿐인나에게,웨더가문의계획을세세하게알려준다는것자체가말이되지않는다.
어느용병단이투입된다는사실을알려줬던것만으로도,그는할일을다했다.
"어째서알려주신겁니까?"
오히려,돈으로는설명되지않을정도로나를많이도와주었다.그저금화몇푼에눈이멀어웨더와의약속을누설한다는건,그로서도큰위험을감당한것이었다.
"싸움을막고싶은건저도마찬가지였으니까요."
울프는옆에있는술잔에남은술을전부털어마셨다.
"부끄러운이야기지만.저희용병단의주사업원은약탈이었습니다.귀족의허가아래사람을죽이고,돈을벌었죠."
이가갈리는일이었지만,그들이특별하다고볼수는없었다.백조용병단같은특이케이스를제외하면,용병단의주사업이다른곳에있을리없었다.
애초에그런세상이다.그런사회다.나름대로치안이안정된제국안에서도싸움이끊이지않는다.
어쩌면,그런다툼을할여유가없는마왕침공시절을아쉬워하게될정도로.
"그런데,하다보니신물이나게되더군요.그게쌓이고쌓이다가한번은,정말위험한전투에참여한적이있었습니다."
술잔손잡이를쥔울프의손에핏줄이드러났다.
"거의다죽었습니다.저보다직위가높던단원들은다전사했고,저랑조무래기들만남았지요.어떻게든돈은받을수있었지만,회의감이들었습니다."
그들은죽음에익숙한것처럼보이지만,실상정말로죽음과가까운사람은많지않다.
나는아니겠지,저사람은아니겠지하며애써죽음에서눈을돌린다.옆에서죽은사람이나오면그럴만한이유가있었을거라며합리화한다.그러다어느순간,눈앞의죽음을맞이하게되는것이다.
"그때는몰랐는데,나중에알고보니싸운이유가어처구니없었습니다.어떤귀족영애가다른귀족의말을걷어찼다나.그걸듣고나니...허무해졌습니다."
"그러면,지금의세력들은..."
"다마왕침공때문에생긴사람들이죠.부서진마을들을도와주고,복구하고...사람이아니라괴물을죽이니,우리용병단을좋은모습으로봐주는사람도나오더군요.기뻤습니다."
반사적으로빈술잔을입에가져다댄그는,술이없는것을깨닫고고개를푹숙였다.
"그래서,어떻게든그기분을간직해보려했었는데...뭐,안된모양입니다."
그도사람이죽이고싶지않았던모양이다.적어도,지금만큼은.
"이제다모였을겁니다.출발하시죠."
소잃고외양간을고치는격이었지만,할수밖에없었다.이제와서독전갈용병단의약탈을방치한다면그나름대로희생자가생길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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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도꺼림칙한냄새가느껴졌다.고기가타는듯한역겨운냄새가코를찌르고있다.
타오르는불길이눈을어지럽힌다.붉은빛이흩날리는것같다.
"...결국이렇게되었군요."
레오네가깊은한탄을흘렸다.
"미안해요.거의다성공했었는데..."
"저희야말로기다려주지못해죄송합니다.고귀한분이얽힌이상최대한버텨보려했지만,결국웨더의뜻대로움직일수밖에없을것같더군요."
그럼에도불구하고,아직할수있는일은있다.
군대를움직이는데에는식량이필요하다.그리고그들은모르고있겠지만,이미그들이비축해둔식량은내가훔쳐두었다.
용병이일시적으로이지방의치안을안정시킨다음,피를흘리지않고웨더의병사가이곳을점령한다는것이그들의계획이다.
당장독전갈용병단의약탈을중단시키고,어떻게든시간을끌수만있다면싸움을미룰수있다.
하지만,그게의미있는일인것같지않았다.내가벗어나는바로다시싸울것같았다.
허망했다.
안으로들어가자,경비병들과시민들의시체가널려있었다.
내가헛구역질하자,레오네가나를붙잡았다.
"굳이이런험한꼴을보실필요는없습니다.저희가처리해야할일이니,에네렐님과그,고귀하신분은뒤에서기다리셔도됩니다."
"아니에요.좀어지러울뿐이지,이정도는견딜만해요.오히려생각보다훨씬괜찮네요.시체의상태가좋아서."
"네?"
마물의종류는다양하지만,사람을진짜죽이기만하는마물은거의없었다.
오크나마견,다른짐승형마물들은주로패배자를잡아먹었다.산채로다리를뜯겨씹어먹혔는지,엉금엉금기어도망치다쓰러진시체가있었다.몸통이우악스럽게뜯겨버려진시체가있었다.
도축이얼마나인도적인행위인지깨닫게해주는시체들을보고나면,그저칼로찢겨죽고불타죽은시체를보는것은견딜만했다.
아니,견딜만하지않았다.쉽게견뎌서는안된다.돈이목적이건식량이목적이건,사람이죽은것이당연해서는안된다.
"음?"
이시체는농민의것으로보이지않았다.검으로베인것이라고믿기어려울정도로끔찍하게짓이겨진시체다.
"용병인가?"
얼굴은뭉개져있었고옷이나무장상태는형편없는독전갈용병단이었으니,그가이마을에머물던사람인지아니면독전갈용병단인지알아챌수없었다.
하지만계속걸어가자그런시체들이더보였다.여러무리가한곳에쓰러져있는모습,옷에묻은때나기묘한상처를볼때이들은농민이아니었다.
"이사람들...먼저움직인용병이군요."
누군가먼저움직였다.마을안이조용했을때는먼저눈치채고도망친것아닌가싶었지만,다행히도그런최악의사태는면한것같았다.
비겁한생각이지만,좀슬픈생각이지만,이대로상황이끝나는건나쁘지않다.
백조용병단과늑대용병단에게주어진임무는독전갈용병단을처리하는것이지,알드길드의경비병과싸우는것이아니다.
알드길드의병사가우리생각이상으로신속하게투입되어독전갈용병단을전멸시켰다면,웨더가문도결국발을뻗을명분이없다.
원한은남아있고,훗날싸움이일어날지도모르지만적어도오늘은아닐것이다.
"무슨일로오셨습니까?"
골목너머에서,피에물든갑옷을입은기사하나가나를불렀다.
"그게..."
윌리엄이었다.지금까지수많은용병들을베어왔던것이그라는것을증명이라도하듯,그는검에묻은피를닦지도않고계속나아가고있었다.
다른부하들은보이지않았다.하지만그가뿜어내는기운은,그를단지'모험가출신기사한명'으로볼수없게만들었다.
"에네렐.왜다시이곳에돌아왔습니까?"
보인다.아니,엄연히그건그의몸안에있었으니까보인다고생각했던것은내착각이었을지도모른다.
하지만그의안에붉은빛이번쩍인다는사실이,너무나도선명하게내시각을통해전해졌다.
윌리엄은붉게타오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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