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선수치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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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밤이었지만,창고근처의사람들은분주하게움직였다.
빛이라고는창고앞의횃불밖에없었지만,얼굴을가린사람들은쥐새끼처럼분주하고,뱀처럼조심스럽게발걸음을옮겼다.
"번번이고맙네."
얼굴을가린남자는조심스럽게동전몇개를경비병에손에쥐여주었다.
"제가더감사하죠.기다리는사람들많으니까,빨리끝내고나오세요,아저씨."
"알겠네."
아주살짝,너무소리가크게새어나오지않을정도로창고의문이열렸다.
"안에서부터빼가세요.길은만들어놨으니까요."
남자가창고안으로들어갔다.입구를지키고있는두명의경비병은그가건넨동전의수를천천히세었다.
"조금적지않냐?"
"이거,한스아저씨의소개로온사람이라고.형편이어렵다고했으니까이정도는봐줘도괜찮아."
잠깐의시간이흐르자,안에서포대하나를든남자가천천히걸어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얼른가시죠.다음사람좀불러주시고요."
"고맙네."
창고에서약간거리가있는곳으로걸어간남자는,마찬가지로얼굴을천으로가린중년의여자하나를불렀다.
그녀는오자마자반가움이가득한얼굴로경비병을불렀다.
"물레방앗집아들맞지?애들하고장난치며놀던게엊그제같은데,못본지너무오래됐다.그지?"
"나,나중에한번찾아뵐게요.기다리는사람도많고,들키면큰일나니까빨리안으로들어가세요."
"고맙네,이런곳에서경비병덕도보고얼마나좋은지..."
그녀는재빨리동전몇개를건네준다음호들갑을떨며안으로들어갔다.
"누구셔?"
"그,여관에서일하는빌씨알지?그분아내.애들말로는저분이넉넉히챙겨주신다고하던데..."
"와,진짜네,이정도면꽤큰데?"
"잘모으면창녀하나는부를수있겠네.수입이짭짤하다니까?"
물자가집중된다는것은,필연적으로비리가일어난다는뜻이기도하다.
"이러다걸리면큰일나는거아닙니까?그럴것같지는않지만,걸린놈이독박쓰겠지.야,그래도누가잡겠냐?어차피다친구들인데."
"그건그렇습니다."
외부인이개입해서생기는부패라면,이곳사람들이자체적으로몰아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이들은그들의가족,친구,지인들이었다.칼자르듯잘라내는것은어려웠다.
그게아니더라도,오르는물가에비해과도한양의비축물자들은시민들의불만을만들었다.그시민중에는당연히경비병이포함되어있었다.
"이게,어떻게보면우리도공익을위해일하는사람아니겠냐?우리이웃들이이렇게배고파하고있잖아."
"그렇습니까?"
"이걸주는게공익에도움이되겠냐,아니면꽁꽁싸매고있는게공익에도움이되겠냐?"
선임경비병이무언가그럴듯한말을하자,아무것도모르는후임경비병은박수를치며호응했다.
"역시수도에서공부하신분은좀다르십니다.그런데,공익이뭡니까?"
"됐다.말을말지."
잠시기다리는사이,중년여자가자기몫을챙긴뒤창고를빠져나왔다.
"어쨌든,이게원래는다저사람들재산이잖아?마왕군침공이끝나면더이상안빼앗아가겠다는말도했고.먼저약속을어긴건귀족들이야."
합리화할이유가차고넘쳤다.귀족들은물자를쌓아두는데관심이있을뿐,구체적인과정에관심을두지않았다.
"다음사람옵니다."
"마지막사람인것같은데..."
하지만얼굴을가린남자는경비병의기억속에없는사람이었다.
"그,실례지만,누구십니까?"
하지만이경비병이모르는사람이라도,다른경비병이알고있는사람일수도있었다.
"대장장이일하시는마일즈씨가소개시켜줬습니다.어떻게든식량을구해야하는데,여기라면방법이있을거라며..."
"외부인이야?"
"근처마을에서왔습니다."
"아는사람많아져서좋을건없는데..."
경비병이안색을흐렸다.나름대로합당한이유가있다고한들,결국이건범죄다.
"제발,어떻게안되겠습니까?"
하지만그신중함의무게보다,얼굴을가린남자가그의손위에올려둔은화의무게가더무거웠다.
"으,이정도면...그래,좋아."
"감사합니다!"
그가안으로들어가자,후임경비병이탐욕어린눈으로은화를바라보았다.
"혼자꿀꺽하시면안됩니다."
"너는,나랑일을얼마나오래했는데내가그럴사람으로보이냐?반으로나눌거니까걱정하지마."
"으히히..."
"근데,뭐할거냐?"
"이정도돈이면일단부모님부터드려야하지말입니다."
"잘생각했다.이렇게돈이많이되면팔아넘겨도돈깨나벌수있을것같은데..."
장밋빛상상을하는동안,창고에서조금소란스러운소리가들렸다.
"뭐하는거아닙니까?저라도들어가서감시해보는게..."
"됐어.그러다가경비대장님이라도오는날에는바로탈영범신세다.뭐,해봤자얼마나하겠어?주머니에곡식몇푼더가져가는정도겠지."
주위를둘러보자,은밀하게모여있는사람들은다용무를마치고떠난상태였다.
"쩝.오늘은손님이좀부족하네."
"그래도저분이주신돈으로하루수입이넘습니다.크,이런행운이올줄이야."
"그러게.다른애들이호구잡았다는얘기들었을때는부러워하기만했는데,기다리다보니또이런복이있네."
약간의시간이흐르자,두포대를짊어진얼굴가린남자가창고에서빠져나왔다.
"감사합니다.이은혜는꼭갚겠습니다."
"아,그거원래는한포대씩만가져가는건데.뭐,됐소.돈을많이냈으니그정도는봐줄수있지."
"정말고맙습니다."
얼굴가린남자는연신고개를숙인뒤,다시거리의어둠속으로사라졌다.
"이상하다,자세가좀어색해보이는데...괜찮습니까?"
"무거운짐을들어본적없으면저럴만도하지.신경쓰지마."
경비병의시선을피하고,아무도없는거리로들어간얼굴가린남자는,준비되어있는투박한마차안으로들어갔다.
짐을운반하기위해만들어진투박한마차였지만,그짐칸안에는선객이있었다.
"성공하셨어요,주인님?"
"그래.좀빠듯했지만,어떻게든할만했어."
짊어진포대두개를내려놓은다음,그는허공에서식량포대를꺼내마차에실었다.
"신기하네요!"
"파시어의마법이지.한계는뚜렷하지만..."
허공에짐칸을만들어짐을나르는마법을영구적으로쓸수있었다면,따로짐꾼이필요하지도않았을것이다.
정확히는보이지않는곳에상자를만들고,그상자에부피를무시하고물건을구겨넣을수있는마법이다.
무게는그대로유지되고,오래지속할수있는마법도아니다.파시어가계속이마법에만집중한다면모를까.
하지만이런범죄에잠깐사용하기에는이만한마법이없었다.
"이제이걸들고도망치면부자가되는건가요?"
"다시다돌려줄거야.은신처는확보했지?"
"네.언제든지마음만먹으면빼낼수있는곳에있어요."
위기를연출하기위해서는,위기가일어날만한사유가있어야한다.
"이대로기다리면분명혼란이일어날거예요.폭동이일어났을때딱애런영애의편을들어식량을푸는계획이죠?"
"비슷하지만좀달라.진짜폭력사태가일어날때까지기다려선안되지.굶어죽거나식량을차지하기위해서로싸우는사람도있을테고,진압과정에서사람이죽을테니까."
"하지만,그럼다의미없는짓아닌가요?"
"이제위기를부풀려야지.당장내가빼앗은식량은얼마되지않지만,현재만큼이나임박한미래를두려워하니까."
사람들이굶어죽을때까지기다릴만한시간도없었고,그렇게희생시킬생각도없었다.
"불안감을증폭시킬거다.그리고,그시위에내가참여해야지."
더강한힘이있다면,사람들을억누를수있다.위험한분위기를만들면서도,높은귀족들이보기에'운이좋아서싸움이일어나지않았다.'같은상황을만들수있다.
"거의다끝났어."
이미불온한목소리들이흘러나오고있다.지금그가해야할일은불안을부채질하는것이었다.
"파시어가준변장마도구,아직넉넉히가지고있지?"
"네!"
"내일은세곳을돌아다닐거야.광장,부대앞,그리고여관.우리가예약한곳이아닌다른곳으로.여기서'경비병들의식량이바닥났다.'라는소문을퍼트린다."
시간을지나치게쓰는행동이긴했지만,성공만하면큰도움이될것이다.
근처영주의묵인을받고수색을진행하는것과,적극적인지원을받으며수색을진행하는것은다르다. 애런에게 가주 자리를 안겨줄 수만 있다면, 이 모든 노력들은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이런다고정말애런영애가우릴도와줄까요?"
"도와주긴 하겠지. 하지만..."
위험한부분이었다.한번이라도만나본레오네도아니고,귀족영애일애런에게이런신뢰를주는것은도박이었다.
도움을 주지 않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 영지에 웨더 애런이 도움이 될 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영지민들을 핍박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래도,그녀가나타났다고사정이더나빠졌다는말은왜곡일거야."
당장계승권도가지고있지않은예비귀족이커다란권한을가졌을리없었다.
"적어도,지금기득권을가진사람과친하지는않을테지.그정도면충분하...지는않겠지만,어느정도는협력할수있어."
평범하게는작위를계승할수없는이가그걸계승하려든다면,다른이들과다른지지세력이필요하다.
우리가노력해준다면그걸만들수있다.
"잘되고있어,계속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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