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95화 (95/217)

〈 95화 〉 중간지대­9

* * *

엘레노어는입을다문채아무말도하지못했다.

"말해봐."

"우선...그때는사정이다급했다.네게필요이상의짐을지운것같아미안하지만,그때는필요하다고생각했어."

"네가그때그랬잖아.수작을부려서죽였다고."

"단순히말을걸었거나음흉한눈빛을보였기때문이아니었다.나도그정도로엄격하지는않아."

생각해보면,그이후에그때만큼격한사고가일어났던적은없었다.

셀리아나네르웬에게추근거리는사람이있었을때도,소리쳐면박을주는선에서멈췄다.

주점에들어간곳이한두번이아니었고,술에잔뜩취한사람이만용을부리는일이그때한번일거라고생각하기는어려웠다.

"그럼뭔데?"

"내가마신술에약을타두었다.평소라면향으로눈치채고땅에부어버렸겠지만...그때는지쳐있었어."

그건알지못했었다.

항상그녀를보고있던것은아니었고,아마그때도빈방을찾고여관비용을계산하느라정신이없었을것이다.

그녀의성격이라면,별일아니었다는듯이'수작을부렸다.'라는말과함께그커다란일을넘겼다는것도이상하지는않았다.

"그건..."

그때의나는왜그런짓을했냐고따질용기도,힘도없었다.전투가없는날이라도파티원모두의신경이곤두서있었으니까.

"일단사과할게.그래,미안해.내가좀오해를했었네."

"아니다.네가모를수밖에없었던..."

"그래도,바로목을치는게맞아?"

그의행동이어처구니없긴했다.

내가용사파티에본격적으로들어왔을때는,이미황제의군대가나를호위하다가'필요할때만나를투입할수있는'상황을벗어났을때였다.

정확히기억나지는않지만,그곳의사람들도당장내일있을마왕군침공에맞서조급한마음을달래고있었을것이다.몇번이고마왕군의침공을격퇴했을것이다.

그런다급한상황에여자를홀리기위해약을타다니,이해하기어려운일이었다.

아니,어쩌면그런급박한상황때문에더앞뒤가리지않고무모한행동을했던걸지도모르지만.

"무슨일인지조금이라도설명하고,경비병에넘겨도되는거아니야?"

"그런무른사고방식으로는,또다른피해를낳을뿐이다!"

엘레노어는억울하다는듯이소리쳤지만,이내다시꼬리를내렸다.

"미안하다.그,너를탓할생각은아니었다.그저,과거에도이런일이있었던것뿐이다."

그녀가무슨일을하며살았는지,말과글로들어서어느정도는알고있다.

성인이되기도전에공을세우려수도안의범죄조직들을소탕하고,그외에도수없이많은도적들과싸웠다고했다.

"한번은비슷한일이있었다.대상은내가아니었지만,주점에서술에취한여자를억지로범하려던불한당들이있었지."

"..."

"나도그때는그렇게생각했다.흠씬두들겨패주고경비대에넘기는정도로끝내도괜찮을거라고.죽이고싶었지만,감정적으로이검에피를묻혀서는안된다고."

이세계의범죄자를본경험은나보다그녀가훨씬많을것이다.어쩌면,내가그녀의행동에참견하는게주제넘은짓일지도모른다.

"하지만후에그주점에다시들어갔을때,그여자는죽어있었다.경비대와친했던남자는분노에찬채다시돌아왔고,그녀는끔찍하게유린당한채땅에묻혀있었지."

마치그때를회상하는것처럼,그녀의얼굴은점점일그러지고있었다.

"그시체를내가파냈다.손수,삽으로.옷은하나도걸치지못한채,온몸에난멍자국과피.눌어붙은욕망의흔적들이남아있었지."

엘레노어는마치어제일어난사건인것처럼,생생하게그일을기억하고있었다.

"그걸증거로다시그를잡아넣었다.그가사형당하는순간까지지켜보고나서야안심할수있었지."

"그랬구나."

"물론,이건극단적인예에불과하다.적어도수도근처에서는다시그딴일이일어나지않게조치했고,그게아니더라도사람을재판도없이베어버린내행동이옳다고생각하지는않아."

왜그녀와황제가인기를얻고있는지,신뢰를받고있는지조금은알수있을것같았다.

"하지만선택해야할때가있다.지금내가위험한사람한명을죽이지않으면,무고한사람두명을죽이게될수도있다."

그렇게말한뒤엘레노어는다시표정을흐렸다.

"아니다.미안하다.잊어라...네게할말은아니었다."

풀죽은그녀의모습은,순간그녀가내게한사과가진심이아닐까하는생각마저들게만들었다.

"상관없어.그래도,너도인정해야해.지금당장그들을전부죽일수는없어."

"이미약탈경험이있을거다.만일없더라도,당장저런규모의용병단이저런식으로운영되는데평범한의뢰로유지될리없어."

"알아.하지만...저안에는어린아이도있었는데?"

질이낮다.무구를겨우구하고,간부급이아니면방어구를제대로갖춰입은사람도거의없었다.

단지돈이없는것뿐만아니라,사람의질도높지않았다.어린이와노약자가어설픈누더기를걸치고끼어있었다.

"나도몰살은반대한다.하지만,적어도그들의죄를묻고체포한뒤떨어트려두지않으면..."

"지금부터증거를수집하고단원하나하나의죄를물을수는없어.만일가능하다해도,어떤감옥에어떤경비병을통해서넣을건데?"

"음..."

"알드길드가문의경비병을쓰면웨더가문에서는전쟁이시작되었다고생각할테고,웨더가문의경비병은애초에개입하려들지도않겠지."

수가없었다.어떤선택을하든만족스러운결과가나오기어려웠다.

"그리고,지금부터체포하겠다고해서잡혀줄사람들이어딨어?"

그런상황이나올지도모르지만,그건충분히많은병사들을모아둔채그들을포위했을때나나올법한일이었다.

"우리가무력으로그들을제압하려고해도,대부분은응하지않을거야.차라리도망치겠지."

사방으로사람들이흩어지면하나하나쫓아가서잡을수없다.미리성채사이에기름을뿌리고불로된벽을만드는등준비를철저히하면막을수도있겠지만,그러다가인명피해가생기면하지않는것만못하다.

"...알겠다."

"일단머리좀식히고,백조용병단부터천천히시작해보자."

저용병단단장의성향으로볼때,다른용병단이전부발을빼고난뒤에도신의를지키기위해싸울것같지는않았다.이쪽이대세가된다면,그도결국우리의의견을생각해볼것이다.

한사람이라도더살리기위해서는,땀을흘려야만했다.

/////

분위기가좀진정되자,마차안에서제니가슬그머니말을걸었다.

"아까그말...농담이죠?다죽일수있다거나..."

"당연히진심으로한말입니다."

이쪽의전력을억지로감출필요는없었다.말로만하는과시는허세로보일수있겠지만,내가타고다니는마차나주머니의돈이최소한의신빙성을더해줄것이다.

"정말요?와..."

붉은늑대용병단은분명협조적이지만,그게영원할거라는보장은없었다.결국먼저배신을권유하고있는쪽은나였고,그들을움직일요인은돈밖에없었다.

군기가잡혀있고무장을잘갖춘용병들이라고약탈을싫어할리없었다.웨더가문이생각이상으로많은돈을제시했을때를대비해서라도,나를따라야할작은이유정도는만들어두어야했다.

"음?"

마차가점점속도를줄이더니,어느순간멈췄다.아직목적지에도착한것같지는않았다.

"안에계십니까?"

노인의목소리였지만,어딘가익숙했다.내기억에남을만한노인이많지는않았는데.

마차에서내려가보니,딱한번만났던사람이앞에있었다.

"그,고아원을운영하던..."

"기억해주셨군요!"

막수도에돌아왔을때만났던,복수의여신을섬기는사제였다.

"원하는바는이루셨습니까?"

그는사람좋은미소를지었지만,그질문에답해야하는나는웃을수없었다.

"글쎄요...모르겠네요.모르겠어요."

"그렇다면그답을찾아나갈때까지계속고민하셔야겠군요.고민을멈춘순간부터는모든순간이실패의연속이지만,고민하는동안은모든순간이더좋은결과를위한과정이될테니까요.

"아..."

그때도느꼈지만,지금용사의힘을얻고보니그의힘이엄청나다는것을느꼈다.

나이때문에노쇠해진근육과하얀색으로물든수염도그의기운을억누를수없었다.

"아이들은다잘있어요?"

"아직돈은넉넉히남아있고,가장나이많은아이에게관리를맡겼으니괜찮을겁니다.에리니스의아이들도그들을돌보고있으니,잠시동안은괜찮을겁니다."

좋은말을해준사람이었다.하지만다시그의앞에선순간,나는복수의성공과실패를떠나그냥부끄러웠다.

"그리고저는결국에리니스의사제니까요.아이들은정말소중하고사랑스럽지만,결국신의뜻이있는곳으로나아가야할몸입니다."

지팡이를잡고허허웃는그의모습은,누가봐도인자하고친절한사제의얼굴이었다.

하지만나는그가겨우그단어만으로정의되지않는사람이라는것을안다.그가보여줬던눈빛은그만큼무거웠다.

"혹시..."

타인의신을의심한다는것이무례하다는사실은알고있지만,에리니스의흔적을느끼고있었다.

"저때문입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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