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93화 (93/217)

〈 93화 〉 중간지대­7

* * *

맛있다.

내감정과상관없이혀가기뻐하고있었다.세계수에서맡을수있을법한나무향기는마음에들지않았지만,적어도그과실은달콤했다.

"과일의상태는괜찮나,주인?"

"그래.좋아."

세계수에서맛본것보다는풍미가약했지만,110점짜리과일이105점이된수준이었다.

네르웬은내앞에앉은채떨리는눈으로나를바라보고있었다.

"말했죠?분명좋아해줄거라했잖아요!"

네르웬을밀어붙였던기센소녀는의기양양한웃음을지었다.

"용병이신가요?"

하지만이여관에서일하는사람같아보이지는않았고,울프는분명여관전체를용병단이빌렸다고말했다.

"얼마전에주워서키우고있는아이입니다.몸은작아도검은꽤쓰고,독기도있는편이니믿어도괜찮습니다.."

"그러네요.뭔가,좀안어울리는것같아서..."

울프나그간부라면모를까,용병단원들이마나를자유롭게다룰수있을가능성은적었다.

그렇다면자연스럽게근육과체격은강함에비례해서늘어날수밖에없다.근처에있는우락부락한용병들에비해,그녀는좀이질적이었다.

"그마왕침공때문에여기저기부서진마을이많았습니다.저희도열심히싸웠는데...그렇게버려진마을중한곳에서주워왔지요."

마왕이등장하면사사로운싸움이줄어든다.사람의돈을받고사람을죽이는게직업인용병들도,마왕에맞서싸우는신성한전사가된다.

용사파티와함께여정을떠날때도,선한사람과손을잡을수있는것만은아니었다.

초록빛진물을줄줄흘리고다니는비대한괴물을몇달쯤보고나면,질나쁜범죄자라도눈코입이멀쩡히달려있다는것에감사하게되는것이다.

아무리질나쁜사람이라고해도,손을잡을수밖에없다.

"이만올라가보겠습니다."

과일은다먹었고,계속술을마시고싶은마음은없었다.내쪽을신기하게보고있는사람들도있었지만,눈빛이이상해보이는용병들도적지않았다.

내가아니라여자들쪽으로가해지는시선은더위험했다.아직까지별다른일은없었지만,언제충돌이일어나도이상하지않다.

"그럴줄알고미리방을준비해두었습니다.편히쉬십시오!"

마지막까지울프는공손하게허리를굽혔다.떨떠름한미소를짓고나는계단을올라갔다.

하지만울프가마련해준방에들어오자나는미처깨닫지못한사실하나를알게되었다.

"방이...하나네."

평소라면,내가묵을방과다른여자들이지낼방을따로구했을것이다.

하지만지금은그만한공간적여유가없었다.이미꽉꽉들어찬여관에억지로끼어들수있었던것도,울프의허락을받지않고서야일어날수없었던일이었다.

"괜찮다,주인!나는밖에서자도상관없다!

"나도마찬가지다.정안되면마차에서자도괜찮다."

네르웬과엘레노어가다급하게소리쳤지만,나는고개를저었다.

"됐어.쓸데없는짓하지말고안에들어와서자."

내가이들을싫어한다고해도,다른사람앞에서대놓고티를낼수는없다.여관안에쫙깔려있는용병들은한번보고말사람이아니었다.

그들이이여자들을깔보기라도하면,필요이상으로일이복잡해질수있다.

"일단이불은넉넉하게가져왔어요!"

세레스는틈틈이바닥을닦아,적어도사람이잘수있는환경을만들어두었다.

"...그래."

이미해는어두워져있었다.불을끄자,편안한어둠이방안을메웠다.

"조금이라도불편한곳이있으면말해주세요!"

은발메이드는바로침대밑에자리를잡고누웠다.다른여자들도하나둘씩몸을눕혔다.

나무로만들어진여관천장을보자,묘하게마음이안정된다.

'이정도만'을끊임없이생각하던때가있었다.

오늘은제발마물을만나는일없이,무탈하게하루를보냈으면좋겠다,비가와서축축한몸과진창이된땅을힘겹게걷는일이없었으면좋겠다.

오늘하루만이라도대련을쉬었으면좋겠다,위험하고차가운물에몸을씻고나면궁사가더괴롭히지않았으면좋겠다,마법사가오늘하루만은제발입을다물어줬으면좋겠다.

천장이있는곳에서잘수있으면좋겠다,그지긋지긋하고맛없는보존식이나간이라고는하나도되어있지않은질긴고기대신다른음식을먹었으면좋겠다.

모두이루어졌다.그때의내게오늘하루를건네준다면감지덕지했을것이분명하다.

그래도나는만족할수없었다.

"잠시,옆에누워도될까요?"

순간긴장했다.딱딱한침대에사람이올라가는쿵소리가들려왔다.

얇은메이드복이하늘하늘흔들렸다.세레스였다.

"밑은너무좁아서요.괜찮죠?"

세레스의작은목소리가내귀를간지럽혔다.

"상관없어."

지나칠정도로달라붙으려하지는않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세레스의팔이닿았다.

"헤헤..."

정말로자리가부족해서올라왔다는그녀의말을믿지는않았다.그래도내침대에올라온세레스는더이상무언가를하려하지않았다.

어느순간,스르르잠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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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일어나자마자,가볍게식사를한뒤다시울프와계획을세웠다.

이용당할가능성은높았지만,그가일정수준이상으로우리를착취할수있다고생각하기는어려웠다.

기껏해야몸값을조금더높여받거나,다른용병들과의계약에서우위를차지하는정도일것이다.

"백조친구들은마지막에만나는게좋을것같고,근처에독전갈놈들이진을치고있으니그쪽으로가보시는게좋을겁니다."

붉은늑대용병단이마을전체에머무르고있다는사실은허세가아니었다.적어도백명은넘어보이는용병들이이곳저곳에보였으니까.

아무리생각해도그들보다큰규모의인원이머물만한곳이없었다.

"그놈들은거친놈들입니다.평소라면마을에민폐를끼치건말건신경도안쓸놈들이지만,지금은좀큰건을앞두고있으니까평판관리를하겠지요."

"그래서요?"

"마을에있는게아니라,버려진성채에진을치고있다고합니다.며칠전에들은얘기니아직거기머무르고있을겁니다."

천천히그의말을곱씹어보았다.하지만,아무리생각해도그림이좀이상했다.

허가받지않은백명이넘는무장집단이,아예대민피해가무서워서마을에들어가지도못하고성채에진을쳤다.

"그냥그건산적아닙니까?"

"그리크게다를것도없습니다."

병사는비싸다.

단순하게계산해도,백명이넘는사람을먹여살리기위해서드는돈과식량이적지않다.

모험가와용병의경계가옅은것처럼산적과용병의경계도그리두껍지는않았던걸까.

"이쪽지리는잘모르실테니...제시!네가따라가서길안내좀해주거라!"

"알겠습니다!"

어제네르웬과붙어있었던여자용병이쫄래쫄래걸어왔다.

사실,네르웬이있다면굳이동행이필요하지는않았다.하지만마다할이유도특별히없었다.

싸움을하는것도아니고그냥여기저기돌아다니며말을걸뿐이다.

저용병이그의감시원이될수도있었고,우리가가진인질이될수도있었다.어느쪽이건,서로에대한신뢰를확고하게할수있었다.

"바로출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열심히하겠습니다!"

제시라는여자용병도세레스와같은과인듯,해맑은웃음이가시지않았다.

"아니,대장!나가고싶어서안달난놈이한두놈이아닌데,왜하필제시가가는거요?"

"여기토박이출신이잖냐.그활든분하고도꽤친해진것같고."

잠시눈을뗀사이,제시는네르웬에게착달라붙은채친화력을과시하고있었다.

"언니,했어요?어제말한거!"

"목소리가너무크다!애초에기회도없었고,하,하라고해도하지않았을..."

네르웬은 얼굴을붉히며그녀를제지했다.소란이끝난뒤,나는다른사람들을모두불러모아여관을나섰다.

"피곤하신가요?"

한창준비가이루어지고있는사이,단정하게메이드복을차려입은세레스가내옆에붙었다.

"아니.이정도면괜찮아."

더심한일도얼마든지해봤다.

단순히용사파티의성공을위한일뿐만이아니었다.마왕퇴치와는상관없는일이라도,나는한사람이라도더살리기위해끊임없이일했다.

제일힘든건엘레노어와다른파티원들에게비는일이었다.그나마쉬운일도몸을아낌없이써야했다.

그에비하면이건지루하지만,그성과에비하면지나치게쉬운일이었다.돈도전부준비되어있고,목숨을저울질할필요도없고,몸에무리를주는일을할필요도없으니까.

그냥꾸준히,지루한일을하면그만일뿐이다.

"그래도,너무힘들거나지루하면그냥터트려도괜찮아요.펑하고."

"그럴생각이있었으면진작그랬겠지.지금은괜찮아."

"정말요?"

세레스는마치나를꿰뚫어보는것처럼매서운눈동자로,동시에그와모순되는친절하고따뜻한눈빛으로나를바라보았다.

"정말힘들지않아요?"

네르웬과파시어는제시와함께동선을점검하고있었고,엘레노어와셀리아는마차를정비하고있었다.

나를바라보고있는그녀가,순간낯선사람으로느껴졌다.머리칼부터눈,얼굴,몸과옷차림까지.순간그녀가처음보는사람이된것같았다.

"그러면어쩔수없네요!준비가다된것같으니,이제출발하면될거예요!"

순간이었다.다시내가알던세레스로돌아온그녀는,내손을잡아끌고마차위로나를올려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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