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중간지대4
* * *
어설프다.그저억지를부리는것같은,무의미한검을그녀에게휘둘렀다.
어디를목표로휘두르고있다는자각도,이공격을막거나피하기위해엘레노어가어떤행동을해야한다는계산도,그녀가그다음에어떤행동을할것이라는예측도없다.
검술이아니라마음가짐부터다시배워야할 조잡하고무의미한공격.
"하앗!"
하지만격차가너무심하다.체급이다르다.
거대한산크기의거북이가그냥엉금엉금기어다닌다해도,그발아래깔리는인간은그걸막을수없다.
그녀의표정이일그러진다.제국최강의검사가,진심으로이일격을분석하고전력으로그걸막아내고있다.
"크읏!"
별생각없이, 막힌검을다시들어내리친다.그녀는온몸을비틀어그걸피해냈다.
마치성인이아이와놀아주는것처럼 검을휘둘렀다.
그녀의말이옳았다. 대련이란 말을 들었을 때는 치가 떨렸지만 검을잡으니두렵지않았다.
무력하게쓰러지지도,누운채그녀의냉정한눈빛과엄정한질책을받지않아도된다.
그저이힘만으로.용사의힘이있는것만으로도,나는그녀를압도할수있다.
땅바닥에구를필요도없고,성검에얻어맞아멍이들필요도없다.
압도적이다.
"봐줄필요는없다."
잡생각에빠져공격이멈춘사이,엘레노어는다시자세를바로잡고검을쥐었다.
조금도흐트러지지않은올곧은자세.내가어떤곳에서검을휘두르건전력으로받아낼준비가되어있는완벽한자세다.
그렇다고한들,정말로내검을막아낼수는없겠지만.
"그래."
내작은움직임에 그녀가진심으로반응한다.
마물을쓰러트리고마왕을죽였던용사가,전력으로내어설픈검에대응하지않으면안된다.
그녀는차마내게반격할엄두도내지못하고쏟아지는검격을받아내고있었다.
"크윽!"
검을휘두를때마다그녀의몸이부들부들떨린다.저항이점점약해진다.
검과검이부딪히는것은,내게 그저정체다. 이대로 수십 분이라도 버틸 수 있다. 하지만그녀에게는그것마저도 전신의 힘을 전부 끌어다 쓴 필사적인 방어였다.
"윽!"
빈틈이생긴그녀의다리에,성검의날이내리꽂혔다.
한쪽무릎을굽힌채비틀거리는그녀였지만,손에잡은검은놓지않았다.나를보는눈빛도달라지지않았다.
잘리지는않는다.성검은 내가원하지않은것을베지않는다.
그럼에도불구하고,매우좁은면적에때려박히는검의무게는무시할수준이아니다.진심으로힘을주어머리를때린다면,분명목숨을잃고말것이다.
아름답다.엘레노어는,누가뭐라해도그외모만큼은아름다웠다.황제의가장총애받는딸이라는누구보다고귀한신분도가지고있었다.그녀자신도누구보다노력해온,몇십년을노력해온꽉찬인생을산사람이었다.
그런그녀가 겨우이검에흔들린다.마치엘레노어의모든것을부정하는것처럼압도적인힘이그녀를누른다.
추하지만, 기분 좋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계속해라."
잠시여운을즐기고있던내게,엘레노어의차가운목소리가꽂혔다.
"그렇게말하지않아도할생각이었어!"
검과검이부딪히는날카로운파열음이기분좋게귀를울린다.
내가이긴다.인정하고싶지는않지만,이건내정신에도움이된다.
밤에검을쥔채엘레노어와만나더라도,절대지지않을것같다는생각이든다.
대련이무섭지않다.그녀의차가운눈초리가우스워진다.
아무감정도들어있지않았던검에작은감정하나가섞여들어간다.
"어디한번,이것도막아보라고!"
나는 즐기고있었다.이렇게우스운검을,궤도도속도도박자도엉망진창인검을그녀가얼마나진지한표정을지으며막아낼지상상하는것은,한편의코미디였다.
검이점점빨라진다.쇠와쇠가더욱거칠게부딪힌다.
몇번이고땅에구른그녀의몸에는어느새흙이잔뜩묻어있었다.
하지만어느순간,나는어처구니없는사실하나를깨닫고말았다.
엘레노어는쓰러지지않았다.
내가전력을발휘한것같지는않았다.쓰고싶을때자유자재로쓸수있는힘이아닌데전력이라고말하는것도우스웠지만.
그래도흰나뭇가지와싸웠을때에비하면,반도되지않을힘이다.
분명내검은엘레노어의몸에조금씩타격을주고있었다.다리에하나,팔에하나,옆구리에하나.
하지만그녀는쓰러지지않는다.진심으로싸우겠다는눈빛은흔들리지않았고,내힘을따라잡을수없을지언정어떻게든막아내려전력을다한다.
육체적인피해가쌓이는것이상으로그녀의경험이늘어나고있다.몸이내어설픈검을기억해버린다.
"흐으으읍!"
다시휘두른검은,아주조금이지만튕겨져나갔다.
"무슨..."
그대가는컸다.내검을막기위해그녀는많은힘을써야했고,숨은헐떡이고있었고몸은흔들리고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내어설픈정신은다음행동을준비하고있지않았다.
엘레노어가한발짝앞으로나와,내목으로검을찌르고들어오는그순간까지도.
검이땅에떨어지는소리가공터를메웠다.엘레노어는서서히그자리에서무너졌다.
"역시,강하군..."
그검이목에닿는일은없었다.힘뿐만아니라반응속도마저도,그녀와나의격차는너무나도컸다.
엘레노어의공격을인지하는순간검을놓고팔로검을후려치자,그녀는결국몸의균형을잃고쓰러졌다.
팔에서화끈한기운이느껴졌다.종이에베였다고해도될정도로얇은상처지만,옷이피에젖어눅눅하게살에달라붙고있었다.
"네가이겼다."
엘레노어는무언가후련한듯한얼굴로,땅바닥에주저앉은채나를올려다보았다.
이코미디의광대는이제그녀가아니라내가되었다.
아니,어쩌면처음부터나였을지도모른다.
내가아무런힘도없었을때,나도엘레노어의검을막는것에급급했다.
지금생각해보면,아니그때도그게그녀의전력이아니라는것은알고있었다.검술로도,힘으로도,속도로도상대가안될정도의차이가났으니까.
내가눈으로그녀의움직임을볼수있다는것만으로도나를봐주고있었던것이다.
그래도억울했다.화가났다.이길수없는내가싫었고,억지로나를일으키는그녀가싫었다.
하지만,지금그녀는.
마치그게아무것도아니라는것처럼진심으로검을잡고있다.
'상대가엘레노어라면어차피못이긴다.'라며포기했던그때의나와는다르게,명백하게그녀를조롱하는내공격을진심으로분석했다.
다리에타격을받으면그저쓰러지던내과거와달리,몇번의공격을받더라도정말쓰러질때까지기회를노리고있다.
그교육은틀렸다.아무리생각해도잘못되었고,그녀를인정할생각은없다.
하지만,그래도 이건.
나를너무초라하게만들어버린다.
팔의상처를돌아본다.이정도까지는아니라도,나도열정에차있을때가있었다.
단하나의검술이라도,몸놀림이라도그녀를보고익히려고했던때가.
집중하고,상상하며그녀에게일초라도더버티겠다고이를악물었던시절이있었다.
한번이라도때려보겠다고노력했던시절이있었다.
성공한적은,아마단한번이었던것같다.
당연히엘레노어의몸에는아무런상처도나지않았지만,그녀의얇은팔을내검이조금눌렀다.
그때가,처음이자마지막으로그녀가대련중나를칭찬했던날이었다.
"내가이겼다고?"
그눈빛을기억한다.
그때내가했던일을기억한다.
쏟아지는검격에어지러운정신을억지로붙잡으면서,머리로는끊임없이그녀의패턴을분석하고,검은쉴새없이공격을막아내며.
단한번.한번이라도그녀를따라잡기위해나자신을검으로만들었던순간을.
"겨우이걸로..."
착각하고있었다.이미3년의세월동안,나는그녀와함께살았다.
엘레노어가우스꽝스러워지는것은,그녀혼자시궁창으로빠트리는일이아니다.
그녀를믿은나,그녀를동경하던나,그녀를추구하던나,그리고아주잠깐이지만.
엘레노어를따라잡은나마저우습게만드는일이었다.
겨우이따위힘으로.
"만족스럽지않았나?"
엘레노어의눈빛에걱정이섞여있었다.자책이섞여있었다.
하지만,내게그걸받을자격은없었다.
검에진심을섞지않은것은나다.
안전을위해서그랬다고변명할수도있었지만,나도알고있었다.그건말도안되는변명이었다.
엘레노어의성장을돕기위해서라면다른방식으로검을휘둘렀을것이다.차라리그녀의의도대로,내복수를위해전력으로 그녀를 때리기 위해 검을휘둘렀더라도이런결과가나오지는않았을것이다.
"네가더잘알고있잖아?이딴검으로,이딴식으로..."
"너는검을배운지아직4년이되지않았다.평범한사람을기준으로생각하면,이또한놀라운성취다."
이해할수없다.
그토록내게기대하고,그에응하지않았던나를괴롭히던그녀다.
"기사들은늦어도5세,6세에는검에대한개념을배운다."
"애초에,마음이어긋나있었잖아!네가나보다더잘알텐데..."
"네가선택한것이라면,그것으로옳다.너는기사가아니다.검에진심을담을필요는없지."
엘레노어는기대와집착을모두벗어던진채,진심으로나를대견하다고생각하고있었다.
"그저,우리세계에커다란선물을안겨다준민간인이다.나는그걸알지못했지.다시한번,진심으로사과하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