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 중간지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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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제소개를해야겠군요.그냥윌리엄이라고부르시면됩니다."
아무리나에대해오해하고있다고해도,지나칠정도로겸손한태도였다.
"에네렐입니다."
"듣지못했던이름인데...죄송합니다.모험가출신이었던지라,명가의이름을알지못합니다.실례지만가문이어떻게되십니까?"
"그건지금말씀드리기에는좀어렵겠네요."
레오드린이라는가문의이름은,아직도좀어색했다.
그리고그사람이진짜용사라는사실은수도에이미퍼져있을테고,엘레노어의신분이들키는것은시간문제다.
한쪽의편을들어사태를수습했다는사실이들키는순간,내행동은수많은정치적의미를가지게될것이다.
몇달안에원하는것을찾을수있다면 그런방법을써도상관없다.하지만예상한것이상으로많은시간이소모되고,그과정에서정치구도가바뀌기라도한다면.
유사시에황제를압박할수있는카드를쥐어서나쁠건없지만,적어도그가나를돕고있는동안에는그의권력이유지되어야한다.
"역시그렇군요."
영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윌리엄은혀를끌끌찼다.
그의말처럼 이름있는귀족출신이라고는생각되지않았다.모험가나용병,군인출신으로공을세워직위를얻었을것이다.
"그래도,얘기는한번들어보고싶네요.무슨계획이죠?"
"음...먼저설명을드리자면,이건일시적인상황입니다."
"꽤오랫동안분쟁지역이라고들었는데. 아닌가요?"
"그건맞지만...뭐랄까,진짜군인들이서로를노려보는전쟁은꽤오랜만이죠.대부분은결투나외교전으로끝나는경우가대부분입니다."
이제야좀내상식이작동하는느낌이었다.황제의통제력이그리약해보이지도않았는데,서로죽고죽이며싸우는게오히려더이해되지않는일이었다.
"그러면지금은아니라는말입니까?"
"저같은말단에게는좀쉬쉬하고있는것같지만...수도에서흉흉한소문이돌고있는것같거든요.이번에는황제폐하가충돌을억제하지못할것같습니다."
듣고싶지않은이름이었지만,여기서그를빼놓고대화를이어갈수는없었다.
"상황이좋지않습니다.지금은그근처에서서로신경전을벌이는정도지만...이미웨네가문의병사들이근처에배치되기시작했어요."
"그래도힘의균형같은게..."
"무너졌습니다.마왕침공때문에,병사들이지나치게많이죽었기때문이죠."
"왜?"
"이쪽가문이황제폐하를따르고있었으니까요.더위험한전장에투입되었고,더많은병사를차출할수밖에없었죠."
마왕이일어났을때,우리파티만싸우고있던건아니었다.
마물과전선을마주하지않은세계수나몇몇남부의나라들이있었지만,적어도제국민에게는목숨을건사투였다.
"원래알드길드가문이황제와친한가문이었습니까?"
"그건...절대적이지는않을겁니다.보통은가세가약한쪽이황제폐하께충성하고,강한쪽이귀족들과연을만들곤하죠."
"왜죠?"
"시대와상관없이,황실에서는평화를원했습니다."
세력이강한쪽에서는영토를차지하려고귀족의편을들고,약한쪽에서는어떻게든지금까지차지한영토를보전하려고황제의편을든다는걸까.
사실,이런상황에서누군가의편을들고싶지는않았다.선악을가리기애매한상황이었다.
하지만 황제의통제권이약화된것은내책임도있었다.
애초에이런일이일어나지않게황제자신이잘해야하는것아니었나하는생각이들긴했지만.
"말했지만,저희를이용해서영토를챙기려는속셈이라면..."
"영토를챙기다니요.제가원하는건그냥평화입니다."
당장은,그가속한가문의이익이평화와일치하기때문이다.
"마왕을막기위해스스로몸을던진병사들이,고향에돌아왔을때폐허를보게된다면얼마나마음이아프겠습니까?"
"그래요.알겠으니까,빨리계획부터설명해주세요."
그의얼굴에환한미소가번졌다.자신의공적으로귀족직위까지얻어낸사람치고는꽤젊은나이로보였다.
"말씀드렸다시피,이문제는황제폐하의통제력이약해지며일어난일입니다.조금만시간을끌면아슬아슬하게나마평화가지켜지겠죠."
"이해했습니다."
"그리고이가문들은...직접칼을맞댄적은많지않습니다.많은용병을사들일수있는재력을과시하거나,대전사를부른뒤결투로분쟁을해결했죠."
비슷비슷한가문과의싸움인데다영지의상비군을끌어다쓸수도없다면,당연히용병의질과수가승패를결정한다.
결투를통해용병의질을가늠하고,재력을통해그수를추측할수있다면쓸데없는싸움을할필요는없다.
승리한가문도그많은용병들에게대가를지불해야할테니,실제싸움이일어나지않는게이득이다.
"그러니,그쪽용병단들을좀설득해주시지않겠습니까?이번싸움에서빠지고,에네렐모험가님의탐험을도울수있도록계약하는거지요."
전쟁을 준비할 정도로 많은 용병이 한 번에 빠지면, 어설프게나마 힘의 균형이 유지된다.
영지의 군대는 권력의 핵심이다. 웨네 가문이 돈이 아니라 그들의 목숨을 써서 남을 공격하려 든다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한번맺은계약을깨려들까요?"
"대부분은계약을기다리고있을뿐,아직정식으로그걸맺지는않았을겁니다. 용병과의 계약자체가일종의선전포고인지라,암묵적으로는계약을맺더라도그걸선포하지는않으니까요."
"음..."
"게다가그적인알드길드가문에들어오는것도아닙니다.외부인을도우러떠나는정도라면배신이라고볼수도없어요.충분한돈이면그들이신용을팔게할수있습니다."
윌리엄의말을온전히믿을수는없었다.아니,그보다는왜윌리엄이이렇게까지나를믿는지알수없었다.
"물론,착수금과보상금은넉넉히드리겠습니다.저희도금화가넉넉하지는않은지라조금부족하게느끼실수도있겠지만...용병을매수하기는충분할겁니다."
"그정도로돈이있으면,직접매수하셔도되는것아닙니까?"
"용병은절대불리한쪽에서서싸우지않으니까요.게다가저희랑계약하는것은배신행위니,그런어리석은짓을할용병은없습니다."
그는마치이런상황을예상이라도했던것처럼,딱딱들어맞는계획을짜내고있었다.
"그리고 중간지대 안은위험합니다.용병이라도넉넉히데리고들어간다면,혹시나위험한상황이생겼을때도움이될수있지않겠습니까?"
한숨을깊게쉰뒤,나는고개를끄덕였다.
웨네가문의사람을만난다고한들,이것보다더좋은제안을받을수있을것같지않았다.
이것저것다무시하고강행돌파하거나,엘레노어의신분을드러내지않는한가장효과적인해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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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엘레노어의얼굴을보는것은기분나쁜일이었다.하지만,단지얼굴을보지않았다는것만으로내가편안해지는것은아니었다.
쓸데없이도망친것같은기분을느끼는것도싫었다.내가그녀에게복수할준비가되지않았다는것처럼,나자신이나를몰아붙이는것같아불쾌했다.
"알았다."
엘레노어는얼굴을가릴만한로브를걸쳐입은뒤바로나를따라나왔다.
"생각이바뀌었나?"
그녀가처음대련하겠다고말했을때,나는감정을주체하지못했다.
혼자열에뻗쳐화를낸다음 그녀의이야기를듣지도않고돌아왔으니까.
"나야말로궁금한데.엘레노어.정말이게필요하다고생각하는거야?"
"물론."
우리는여관을나와한적한곳까지걸어갔다.달은없었지만,나는그녀의얼굴을빠짐없이볼수있었다.
"네가내게원한을품은것이대련이라면,그걸네힘으로극복하는것은분명기분좋은일이겠지."
"내가이길텐데?"
"그러니까필요한거다,에네렐."
아직도무섭다.대련이라는단어자체가공포스럽고,엘레노어의차가운눈빛이두렵다.그리고,나자신도.
"이건내게도필요한일이다.용사의힘에너무익숙해진나머지,나보다강한사람과싸울준비가되어있지않아."
저무표정한얼굴이싫었다.
어쩌면,그때도알고있었을지도모른다.그녀에게악의는없었다고.
"흰나뭇가지와의싸움에서도...더도움이될수있었다.나는부족했어."
하지만사람이꼭악의가있어야상처입는것은아니다.물과불에악의가있을리없겠지만,홍수와화염은사람을죽게만드니까.
"나는힘조절을못해.죽을수도있다?"
"어떤훈련에서도사고는일어나는법이다.무슨일이있더라도너를원망할생각은없다."
검을잡는것이두려웠다.이고통스러운일과를반복하고싶지않았다.
검을잡고싶었다.드디어이길수있다.땅바닥에꼴사납게뒹구는사람이,내가아니라그녀가되게만들수있다.
"...그래."
나는결국검을들었다.어설픈자세로부자연스럽게올라간검을보자,헛웃음이새어나왔다.
이전모험중에,이런자세로그녀에게검을겨누었다면바로꼴사납게바닥을뒹굴었을것이다.
검은저멀리날아가고,나는그녀의꾸중을듣고있었을것이다.힘을받아낼준비도되지않았고,앞으로나아갈각오도없는어설프고오만한자세였다.
그런데도,엘레노어는내검을노려보고있다.조금도방심하지않고 진지하게내우스꽝스러운검을분석하고있다.
잠시침묵이흘렀다.아무일없이시간이흘러갔다.
우리는동시에이상한점을깨닫고어색한눈빛을교환했다.
나는무의식적으로,당연히엘레노어가먼저나를찌르러들어올거라고생각하고있었다.
"...먼저할게."
각오를다진나는,검을휘둘렀다.아무렇지않은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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