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87화 (87/217)

〈 87화 〉 중간지대­1

* * *

눈을감고마차좌석에기댄채, 시간이지나가기를기다렸다.

"네르웬,과일싸왔죠? 어디 있어요?"

"그리많이가져오지는못했다.본래 엘프의음식은유출이제한된단말이다. 간단한 비스킷 같은 보존식품이 아니면 세계수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어."

셀리아의간절한부탁에도,네르웬은딱잘라그녀를밀어냈다.

"그럼 그건 어떻게 가져온 건데요?"

"엘프 장로회의 허가를 받은 일이다. 그 분들이 필요했다고 인정해 주어서 이 정도나마 가져올 수 있었던 거야."

"에이,그러지말고하나만주면안돼요?슬슬배고파지는데..."

얼마전까지만해도마차의분위기는얼음장같았지만,그사건이후로마음에조금여유가생긴것같았다.

"너무목소리가큰것아닌가?에네렐을깨울필요는없을것같은데."

엘레노어가조용히핀잔을주자,셀리아는급하게목소리를죽였다.

아무리풀어졌다고해도,깨어있는나를상대로농담을할만큼좋은분위기는아니었다.

"주인님을위해겨우가져온물건이다. 그분과의 관계를 공적 사유로 인정했기에, 엘프 장로들이 허가를 내 주었지."

"그,그렇다면어쩔수없네요."

"그래. 나도 과즙 한 방울 입에 댈 수 없는 물건이니, 그리 받아들여라."

나도어느정도는마음을놓을수있었다.

적어도그녀들이내귀환에진심이라는사실은알수있었다.

정말순수하게나를위해돕고있다고생각하지는않았지만,세게수한복판에서엘프와싸운다는억지스러운상황에서도내편을들어주었다.

어떤꿍꿍이가숨어있든,그들이본색을드러내려면꽤거대한사건이필요할것이다.

그거면충분했다.

"이 기세로 가면, 의외로 금방 모을 수도 있겠네요..."

셀리아는 조금 풀이 죽었는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거다."

일어난사건의크기를제쳐두고,들인시간을생각하면불사조의유해를얻었던과정은천운이라고할수밖에없었다.

기약없이땅을헤매거나광활한대지를파헤치는일은없었으니까.그렇게시간이흘러갔다면,몇년을허망하게소비했을지생각하기도싫었다.

"그러고보면,네르웬은 어떻게든허락을받았네요.조금부럽다..."

"이걸허락이라고말할수있을지모르겠군.결국,나는그를위해내동족에게활을들이밀어야했다."

"그렇네요...음,대단해요."

"대단할것도없다.내게는선택지가없었고,그에게사죄하기위해서는싸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눈으로보이지는않았지만,셀리아가안절부절못하고연신자세를고쳐앉는것이느껴졌다.

"힘들지않았어요?"

"그걸생각할겨를이없었다."

네르웬의운명도꽤기구한편이었다.결국그녀의 감정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었고, 그녀는누구보다역겨워하던나를사랑할수밖에없게되었으니까.

"무언가고민하고있나?"

"다른사람들은다용사님을따라다니기로정리가됐는데,저는아직...그게안됐으니까요."

"그랬던가?"

그러고보면,나는이들에게관심을조금도주지않았다.아무것도모르고있었다.왜나를따라왔는지,뭐라고말해둔뒤이곳에온건지.

"그대는황녀아니었나,엘레노어?아버지의동의를받았나?"

"다소억지를부리긴했지만...그렇다. 황제폐하께서는내기사수행을허가해주셨다."

"그런명목이었나."

말도안되는명분이었다.

기사수행을여정을떠나는기사지망생이없는것은아니지만,대부분한미한가문의차남이집에남아있기싫어떠나는,좀과격한구직활동에불과했다.

호위없이여행을떠나는건어중간한검술실력을갖춘기사들에게굉장히위험한일이었고,진짜장래가유망한기사들은굳이그런일을하지않았다.

나이가좀젊을뿐,이미정식기사일뿐더러아예자기소유의기사단을가지고있는엘레노어가기사수행을떠나야할필요는없었다.

"황제폐하에게짐을지워드린건죄송스러운일이지만...당장급한것은이일이다."

"괜찮은것맞아요?계승은어떻게되는거예요?"

"반쯤포기하고있다.사실,에네렐이용사였다는사실을숨겼다는것만으로내가그자리를이어받을가능성은크게줄었다."

수도가어떤상황일지알방법은없었다.하지만대략적인소문만들어도,그녀에대한시선이예전과같지않다는사실은알수있었다.

그녀가 담담하게 황제 자리를 포기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어도 더 분노에 벌벌 떨거나, 인정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엘레노어의 생각과 무관하게, 황제는 그녀를 황제로 만들고 싶을 것 같지만.

"그렇구나.저는사실...그,교황님이엄청나게화내고있거든요."

파시어야자신이마탑의주인이었으니누구에게간섭을받을만한위치에있지는않았다.

하지만성녀는엄연히여신교단소속의성녀였다.

"너도선택해야할때가올거다."

"하지않았으면좋겠어요.저는어쩔수없지만,저때문에다른사람들이용사님을미워하게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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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도,신빙성은얼마나된다고생각하지?"

모험가출신여급이지도를준덕에,어디부터수색을시작해야할지어렴풋이짐작할수있었다.

지도를받아든엘레노어는꼼꼼하게지형과글자를살피더니,천천히고개를끄덕였다.

"신빙성이없지는않다.확실히이지역이라면,다른이들의이목을끌지않을수도있지."

그여급이내게거짓말을했을것같지는않았다.무언가의대가로약속받은정보도아니었고,내게주지않아도상관없는지도였으니까.

하지만기대가지나치면실망이커질지도모른다.나는마음을차갑게식혔다.

"마물문제인가?"

"그건아니다.물론위험한마물들도많겠지만,이정도의전력이라면마물따위에흔들릴이유가없지."

숨겨진장소나세계의끝에존재하는마물들은인간의상식을벗어날정도로강하다고알고있었지만,우리가가야할곳이그정도로외딴장소는아니었다.

용사 파티의 전력이라면 어중간한 마물이나 신수에게 질 일은 없었다.

"이곳은분쟁지역이다.정확히는,이곳으로들어가는입구가분쟁지역이다."

"제국안인데?"

"귀족간의갈등을전부막을수는없으니까.원한과증오의역사가깊은몇몇가문들은...종종통제를벗어나곤하지."

"이입구로만들어갈수있고,입구가분쟁지역인건가.몰래들어가면되는거아니야?감시가철저하지는않을것같은데."

마왕의군단을상대로도요리조리잘도망치던우리다.평범한인간병사에게잡힐리가없었다.

"목표가명확하면그방법이나을수도있다.하지만,상상이상으로많은시간이허비된다면..."

병사들의눈에들키지않는것도하루이틀얘기지,결국몇달이나몇년간조사를진행하다보면재보급등의이유로사람들과만날수밖에없다.

따라잡히지는않더라도,모든흔적을지울수는없었다.신원미상의여행자가이곳을돌아다닌다는것이근처귀족들에게달갑지않을것이분명했다.

"네힘은쓰지않을생각이고?"

그래도이쪽은황녀가붙어있다.그녀가신분을드러내고통행을 허가해 달라고요청하기만하면출입이어렵지는않을것이다.

"필요하다면사용하겠다.하지만,다시생각해주었으면한다."

"왜?"

"그허가를누구에게받을지결정하는것만으로도큰혼돈이일어날수있다."

"누구땅인지명확히정해져있지도않은거야?"

"복잡한땅이다.거대한강바로옆에황무지가있고,쉬지않고타오르는불길옆에바로숲이펼쳐져있는비상식적인대지라할수있지."

엘레노어는품안에서그녀의지도를꺼내보여주었다.제국의모든땅이그려진그지도에는귀족들의영지들이색깔에따라나뉘어있었지만,그땅에는아무색깔도칠해져있지않았다.

나는한숨을깊이쉰뒤,엘레노어의얼굴을노려보았다.

내가강압적으로지시한다면,그녀는결국황녀의권한을쓰게될것이다.그정도의각오는있는것같았다.

"...그얘기는천천히생각해보자."

"알겠다."

조용히고개를끄덕이는엘레노어의모습을보고,나는뭔지모를어색함을느꼈다.

용사파티에서,항상명령하는것은그녀였다.계획은파시어가세울지언정,최종적으로결정하는것은언제나엘레노어였다.

그녀는실패에대해책임질준비가되어있었고,가장합리적인판단을할수있었다.

나는발언권이없었다.개인적인질문이나불평같은건아무도들어주지않았고,사람의목숨이걸린일에서나개같이달려드는나에게관심을보여주는정도였다.

아무렇지않게내눈치를살피는그녀를보고,그녀에게명령하는것을당연하게생각하게된나를느꼈다.

"...괜찮다.분명해낼수있을거다."

나는그말의의미를깨닫기위해잠시고민해야했다.하지만,어떻게생각해봐도그말은위로나격려외에다른의미를담고있다고여기기힘들었다.

"그런거아니야."

"답답해보이는군."

나는서둘러자리에서일어났다.비틀거리는내모습은누가보기에도어설퍼보였을것이다.

그런나를지켜보던엘레노어의입에서,상상치못했던말이들려왔다.

"대련,하겠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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