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84화 (84/217)

〈 84화 〉 세계수­14

* * *

성검의말을듣는게싫었다.

모험을즐기는그녀와,여행을원치않았던나는의견차이가너무컸다.

마왕퇴치중에그녀를만날수있었다면 그대화를반가워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이미지칠대로지친나에게,성검의활기찬목소리는잡음과다를바없었다.

그녀가입을여는것은오랜만이었다.

­막아!

"막으라니...무슨?"

­용사의힘,어떻게쓰는지알려줄게!일단막아!"

오크로드와의싸움이후로,그녀에게힘에대해물어본적이있었다.

엘레노어는멀쩡히쓸수있었던용사의힘을나는왜쓸수없었던건지도저히이해할수없었으니까.

성검은이유를알고있는것같았지만,내게말해주지는않았다.그걸내가듣는순간 성검의힘을쓰기더어려워질거라면서.

"안되는거아니었어?"

급하게성검을세워방어자세를취했지만,이얇은검으로무언가를막을수있을거라는생각은하지않았다.

­반대로,돌려서!

말을길게이어나갈시간이없었다.내발은멈추지않고움직였지만,쏟아지는흰나뭇가지의화살을막을수는없었다.

점점몸에박힌화살촉이늘어간다.내게만화살이박히고있는것은아니었다.

셀리아의신성력덕분에치명적인상처로이어지지는않았지만 언제까지버틸수있을지몰랐다.

­어차피충분한것같으니까 그냥지금말해둘게!용사의힘을발동할수있는조건은,지키고싶다는마음이야!

"뭐?"

용사에대해공부를아예안했던건아니었다.그말은좀이상했다.

용사의힘을가지고온세상을억압하는폭군이된사람도있었고,온갖행패를부리는사람도있었으니까.

­선악과는상관없어.자기재산을지키고싶다는마음이든,세계를지키고싶다는마음이든뭐든괜찮아.

그래도 인정하기어려웠다.

이정도로도부족했던건가.그때오크로드앞에서,수많은민간인들을뒤에두고싸웠던걸로는부족했던걸까.

­그게문제가아니야.애초에,검이아니야!네가뽑아낸건검기가아니었다고!

확실히 그건검기라기에는좀이상했다.

에너지로가득찬무언가.검이라기보다는,거대한판에가까운...

알것같았다.

나는그녀의말대로검을수평으로쥔채,힘을끌어올렸다.

"내뒤로,모여!"

파티원들은의심하지않고내등뒤에모였다.추격이끊기자,활을든흰나뭇가지를볼수있었다.

나는숨을깊게들이마신채,성검에용사의힘을쏟아부었다.

내가용사가되었다면,어떤무기를쥐게되었을까.

성검은일반적으로검이었지만,모든용사가검을쥔것은아니었다는사실은알고있었다.

내가뽑아낸것은검기가아니었다.그렇게비효율적인형태의검기가있을리없었다.

그저,용사의힘으로만들어진무언가가오크로드를잘라버렸을뿐.

그건자르기위해있는무기가아니었다.

가장선두에서서,눈앞의적을노려보며어떤공격이들어와도내등뒤의사람들을보호할무기.

"나와라!!!"

성검의위와아래로푸른색빛이뿜어져나왔다.그건서서히형태를만들며,점점거대해지고있었다.

흰나뭇가지의화살이,그빛에닿아바스러진다.

충격은내몸으로고스란히전해지지만,적어도내뒤에있는사람이그화살에맞는일은없었다.

내키보다커다란빛의판.어떤공격에도부서지지않을거대한수호자.

성검을중심으로한거대한빛의판이,총알처럼쏟아지는화살들을받아냈다.

거대한방패가되어.

/////

네르웬은,넋을잃고그방패를보고있었다.

엘레노어의검을볼때마다아름답다고생각했었다.부서지지않는신념으로전장한복판에들어가적을베어넘기는그녀는,인정할수밖에없는가치를담고있었다.

그에비하면이방패는 조금탁했다.삐죽삐죽새어나오는빛은거칠었고,화살에맞을때마다흐릿해지고흔들렸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방패는아름다웠다.

"왜..."

차마인정할수없었다.그방패는 그녀를지키기위한방패였다.

단순히네르웬에대한혐오로,그녀를안고싶지않다는마음만가지고서는저런기적을만들수없다.

그녀는증오받아야한다.그가귀환할때까지.그게불가능하다면그의일생이끝날때까지묵묵히그의증오를받아야했다.

그를사랑하고있는지금의네르웬은,그에게상처를준과거의네르웬을용서할수없었다.

하지만저방패는그녀를지키고있다.

"으으..."

화살에박혀아물지않은상처가남아있었지만,그걸느끼지못할정도로마음속이찢어발겨지는것같다.

이대로는안된다.겨우이정도로 그녀가용서받아서는안된다.

어쩌면,이대로자결하는것이옳은선택일지도모른다.

모체가될그녀가사라진이상 엘프들은그에게집착하지않을것이다.

더이상네르웬은그에게상처주지않아도된다.자기죗값을조금이나마치르고,이세상을떠나면된다.

그렇게다짐한네르웬은,자신의심장에손으로직접화살을꽂아넣기위해화살통에남은마지막화살을뽑아들었다.

"아..."

하지만,또다시보고말았다.

그찬란하게빛나는빛의방패를.흔들리고비틀거릴지언정부서지지않는그의의지를.

"...안되지."

차라리진작죽었어야했다.여정중에죽거나,그황궁에서의소란사이에목이베여죽었어야했다.

하지만,지금그녀가자결하는것은그에대한배신이다.그의의지를무의미하게만들고,이싸움에서그를패배하게만드는행동이다.

"나무어머니..."

마지막으로 남은 화살을 활시위에 얹고, 남은 힘을 전부 끌어 줄을 당긴다.

시간이느려지는것같다.따라잡지못할것같던흰나뭇가지의화살이었지만, 어느 순간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빛의방패를부술것처럼세차게쏟아지는흰나뭇가지의화살때문에,아주잠깐그방패가흐려지는순간이온다.

방패에빈틈이생기는순간이온다.

"하아아아!!!"

그아주잠깐생긴공간사이로네르웬의화살이날아갔다.

흰나뭇가지의가슴에닿을정도로빠르고정교하게.

/////

흰나뭇가지의입에서검붉은피가새어나왔다.

아직엘프로남아있던부분이비명을지르기시작한다.이공격은틀림없이위험했다.

"놀랍구나..."

맞아서는안될공격이었다.

인간이라면운에따라,노력이나다른무언가에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었다. 농민이귀족을,귀족이왕족을이길수있을지도모른다.

하지만엘프에게힘의서열은절대적이었다.인도하는자로태어난이는무슨수를써도전사를이길수없고,약하게태어난전사는무슨수를써도더강하게태어난전사를이길수없다.

네르웬이어느정도로강한지는이미알고있었다.그녀에게는그순간을파고들능력이존재하지않았다.

마치평범한인간처럼,네르웬은스스로를넘어섰다.

"그렇다한들,포기할수는없다..."

흘러나오는피를억지로눌러막고,흰나뭇가지는다시활을쥐었다.

이제는 승리를장담할수없다.

저방패가얼마나더버틸지는모른다.하지만,그녀의몸이얼마나더버틸지도모른다.

성녀가포함된파티와지구전을한다는것자체가승산없는행동이었다.압도적으로승리하거나,아니면시간을끌고또끌다가패배하는미래만남아있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흰나뭇가지는자신의의무에등을돌릴생각이없었다.

엘프를 위해, 모두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맹세했으니까.

"그렇다면,우리가좀포기하고싶게만들어줘야겠네."

에네렐의표정에는웃음이가득피어있었다.그리고그옆에는,미친듯이주문을읊어내려가는파시어가있었다.

/////

만약의사태를대비하지않은건아니었다.세계수에들어오는순간부터,일이쉽게풀리지않을 수도 있다는는각오는하고있었다.

억지를부려모든파티원들을데려온것도 그준비중하나였다.

'엘프와협상을할때는,언제라도 그들에게피해를줄수있다는사실을인지시켜야한다.'라는파시어의말에따라,상황이 틀어졌을 때 그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겨운오물을깨끗이하고,과잉과혼란으로어지러이자라는것들을잘라내며,거짓된욕망의허망함을보여주고,타락한변화를원상태로되돌리는자여..."

감정없는성직자만큼무능한것이준비되지않은마법사다.

파시어가쏘아댄화염구따위는,그녀에진가에비하면어처구니없을정도로초라한재주에불과하다.

세계수에진입했을때부터준비해왔던마법이,마무리를앞두고있었다.

"지금,여기내머리위에모습을드러내어..."

엘프들이당황하기시작했다.화살을 쏘는 엘프도 있었지만 내 방패 앞에 사그라졌다.

흰나뭇가지의화살도뚫지못했던방패가,다급하게쏘아대는공격에흔들릴리없었다.

"그대앞에존재하는것들을태울지니!"

엄청난마력이움직였다.차마눈을뜰수없을정도로없을정도로거대한열기가느껴진다.

"...하."

엘프들이질끈눈을감았지만,아무일도일어나지않았다.

그저,작은보라색머리의마법사가오른손을하늘로쭉뻗은채주먹을쥐고있었을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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