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78화 (78/217)

〈 78화 〉 세계수­8

* * *

에이린을따라걷자,세계수를감싸고있는목제건물에다다를수있었다.

내강력한요청에따라 결국에이린은내조건을전부받아들였다.네르웬과나,그리고다른용사파티원들전부가그진실을듣겠다는것.

엘프들의경계심가득한시선에도불구하고,우리는에이린을따라천천히그안으로들어갔다.

"나무를잘라서집을만드는줄은몰랐는데..."

"집으로는살아있는나무가좋겠지만,여기는좀더철저하게지켜야하는곳이거든요."

가까운곳에서보니,세계수는더더욱거대하게느껴졌다.광장하나를홀로차지하고있을법한,말그대로세계를떠받치는것같은풍채를가지고있었다.

그걸감싸고있는건물은 오밀조밀하면서도아름다웠다.엘프의건축양식이라는게존재한다면,오직이곳에서만볼수있는풍경일것이다.

"여기부터는주의해주세요.엘프외의다른종족이이곳에들어온적은,세계수가자리잡은이후한번도없었으니까요."

경이로웠다.

단지나무하나라고할수없을만한크기의,거대하고도압도적인생명.

그리고거기에매달려있는열매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였다. 아니, 이걸 열매라고 불러도 될지도 의문스러웠다.

단단한껍질없이얇은점막이겉을감싸고있는열매안에,사람의형상이보였다.

"저게...엘프입니까?"

"아직태어나지못한엘프랍니다.혹시라도손을댈생각은하지마세요.하지만,잠깐바라보는것정도는괜찮아요."

깨어나지않은엘프들이지만,눈과코,팔과다리가온전히 만들어져 있었다.

반투명한 막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기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신비로웠다.

"...계속가시죠."

하지만,엘프의생태를체험하러온것은아니었다.이들의신비로움과별개로,나는할일이있었다.

"여기올라서세요.되도록움직이지마시고요."

나무로만들어진원형판에에이린의안내를따라일행들이하나둘씩올라갔다.에이린이어딘가를건드리자 그나무판자는스멀스멀땅아래로내려갔다.

"지하로가는겁니까?"

"입구가지하에있을뿐이에요."

그느린속도 때문인지, 나무판자는끝도없이밑으로떨어지는것처럼느껴졌다.

오랜기다림끝에우리는땅아래로내려왔다.은은하게빛나는나뭇가지들이군데군데놓여있었기에,지하일지언정 어디로 가야 할 지는 알 수 있었다.

"거의다됐어요.조금만더가면나와요."

조금앞에놓여있는다른나무판자는 아마위로올라가는것같았다.빛이 거의 없는공간에서더버텨야한다고생각하니 슬슬머리가어지러워졌다.

"그냥지금알려주시면안됩니까?"

그녀를따라올때는잠시신비감에정신을잊고있었다.하지만,대체무슨비밀이길래이런곳까지내려와서대화를시작해야하는걸까.

"이해하시려면,일단안으로들어가셔야할거예요.뭐,지금부터이야기를시작하면시간에맞을것같으니..."

에이린은나지막이입을열었다.

"엘프들은태어날때부터그목적이정해져있습니다."

"세계수의의지대로?"

"맞게보셨지만,정밀하지는않네요."

마음에드는구조는아니었지만,엘프본인들은불만이없어보였으니외부인인내가왈가왈부할일은아니었다.

"하지만세계수의의지라는게...항상우리에게길을보여주는건아니에요.나무어머니가살아있다는건의심의여지가없지만,항상깨어있는건아니니까요."

"그래서?"

"신의뜻에따라행동하는성직자들이라도,모든일에신의허락을기다리지는않겠죠?"

느낌이좋지않았다.보통이런말이나온다음에는,그공백을채우는방법에대한이야기가나오기마련이었으니까.

"세계수의안정을위해,그들의자녀인엘프전체의안위와영예를위해서... 전통과합의를 거친 뒤에 중요한결정을내리기도하지요."

어느순간,느낄수있었다.

이엘리베이터는생물이었다.우리가타고있는나무판은생물이아니었지만,이걸올라가게하고무언가는생물이었다.아마살아있는나무였을것이다.

놀라운기술이다.집으로만들어지기위해태어난,그부자연스러운나무처럼이밑에있는나무들도'올라가기위해'만들어졌을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자연의 신비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도가 있다.

"잠깐."

"우리사이에서...'세계수의의지'는두가지의미를가지고있어요.우리의거대하신나무어머니.말그대로세계수의의지를뜻하기도하지만..."

위를올려다보니,빛이있었다.서서히빛이가까워지자,나는가장중요한곳에들어왔음을깨달을수있었다.

"그안에들어가있는우리.엘프장로회의의지를뜻하기도하지요."

마치연구실같은깔끔하고청결한공간에,수많은엘프들이움직이고있었다.

"잘오셨어요.세계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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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로이루어진수많은글자들이여기저기서나타나고,사라졌다.엘프들의언어를이해할수는없었지만,군데군데떠오르는형체들은알수있었다.

홀로그램처럼떠오른환영마법들이이곳저곳에떠다닌다.그중한곳에는,아까생체열매속에잠들어있던태아도있었다.

분명세계수에연결된열매였다.그리고,우리는세계수안에있었다.

"엘프들을...여기서?"

"역시현명하시네요.맞아요.어떤엘프가태어날지,어떤성격을가지게될지,어디에재능을가지게될지.태어날때부터,저희가결정한답니다."

네르웬에게서 수십번들었던말이었다. '태어날때부터.'

전사로태어난엘프는전사가되고,외교관이나농부로태어난엘프는농부가된다.

고귀하게태어난자는고귀한엘프가되고,그렇지못한엘프들은평생평범한엘프로산다.

하지만 그게 이런의미일줄은몰랐다.

"처음부터다...계획하는겁니까?"

"물론.모든것이통제안에있어요.몇명의엘프를탄생시킬지,전사가얼마나필요하고농부나사냥꾼이얼마나필요한지.전부계획하고있죠."

주의깊게생각했다면 예상할수있었을까.

나무안에거주지를만들능력이있다면,가장거대한나무,세계수안에도들어갈수있다고생각했어야했다.

부자연스러운구조를볼때엘프가이나무를만든것으로보이지는않았지만,그래도나무속을이정도로파낼기술력은무시할수없었다.

"어떻게?"

"엘프의주술이죠.오래전부터전해져오고,지금도계속나아가고있는생명에관한주술."

파시어가나지막이입을열었다.

"엘프의치유술이나독술은타의추종을불허하지.생명을다루는기술에있어서는,그어떤연금술사나마법사보다유능할거다."

"아는것이많네요?어린나이에...대견하네요."

조금깔아보는시선으로파시어를평가한에이린은,다시부드러운얼굴로나를바라보았다.

"수명도,능력도,이름도,삶도.전부저희계획에따라정해지는거예요."

에이린의생각이맞았다.

여기들어오지못했다면,나는엘프들이만들어진다는사실을이해하지못했을테니까.

그들이인간이나다른종족처럼성교를통해,여자의배안에서태어나지않는다는사실은알고있었다.

네르웬은그걸자랑스러워했고,나도한두번은들을수있었던이야기였으니까.

"그래도...좀충격적이군요."

파시어는눈을감은채생각에빠져있었다.충격과는별개로,이사실자체를암기하려드는것같았다.혹은,지금도무언가주문을외우고있을지도.

무덤덤한엘레노어에비해,셀리아는충격에빠져있었다.여신교단은사랑과자연스러운탄생을축복하는종교니,이건끔찍한신성모독처럼느껴질것이다.

"모든엘프가이걸알고있습니까?"

"아니요.엘프장로가아니고서는아무도모르는사실이에요.이건엄청난특혜고,저도곧다른장로의불호령을듣게될거예요."

그녀가엘프장로중으뜸이아니었던걸까.하지만,이제는누가어떻게모습을드러내도놀라지않을자신이있었다.

"그러니빨리진행하죠.여기까지는이해하셨나요?"

"...네."

나는마지못해고개를끄덕였다.그녀의말처럼,이곳을바라보는주위의시선이심상치않았다.

가볍게보기에도수십,혹은수백이들어있을지도모르는공간이다.이들이모두엘프장로라면,에이린하나의발언권은그리크지않을지도몰랐다.

"좋아요!그러면,다음으로넘어갈게요.이렇게새로운엘프를탄생시키기위해서는,필요한게몇가지있어요."

"...마법재료?"

"그건나무어머니의몫이죠.중요한건정보에요.어머니께어떤부탁을드렸을때어떤아이가자라나는지알아야하니까요."

정보가중요하다고했다.어떤조작을가했을때,어떤성질이발현되는가.

"저희가정보를얻을수있는방식은한정되어있지만,'막태어난아이'는나무어머니의열매에들어올수있어요."

나도눈치는있었다.그정도까지말해준다면,나도그들이내게원하는게뭔지알수있었다.

"용사의힘입니까? 혈통입니까? 또?"

"맞아요.단순히힘이중요한게아니라,그육체의수용능력이중요한거죠."

"..."

"절차와의식이복잡할지언정,마왕을쓰러트릴정도로거대한힘을받아들일수있는능력.그정보가필요해요."

"제가도움이될지는모르겠네요."

오크로드를쓰러트릴때썼던힘은꽤거대했지만,나는제대로용사의힘을다뤄본적이없었다.

애초에,용사와는상관없는엘레노어가문제없이용사의힘을썼다.그녀가찾는것이허상일가능성도있었다.

"도움이되어야해요.왜냐하면..."

하지만에이린은,부드러운목소리로꽤잔인한말을꺼냈다.

"네르웬은,그걸위해태어났으니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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