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세계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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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요.충분히들은것같네요."
에이린은표정을감추지못했다.상대가눈앞에있는네르웬이라면,그걸감출필요도없었다.
"터무니없는오해를하고있었네요.분위기가이상하다는생각은했지만..."
그가뿜어내는적대적인압박감이,단지사고로인해생긴것인줄로만알고있었다.
엘프가외부인에게화살을쏘는것은어쩔수없는일이다.혹시모를용사의방문에대비해,경계를늦출수는없으니까.
몇몇엘프의오류로인해그가더큰모욕감을받았다해도,관련자를아주엄중하게처벌하면마음이풀릴거라생각했다.
하지만,문제는더깊은곳에있었다.
"용사님이...당신을싫어한단말이죠."
"그렇습니다."
일시적으로분위기가가라앉은게아니라,여행내내그분위기였다.보고싶지않은사람들과여행을한다는건,쉬운일이아니었을것이다.
"진짜용사는용사의힘을엘레노어에게나눠줬고?"
"예."
에이린은,생각을수정해야만했다.
"그래도같이여행을다닐정도라면,어느정도마음이풀린걸수도있지않아요?앞으로관계가좋아질가능성은?"
"힘들것같습니다.이미귀환말고는아무것도생각하지않고있으니."
"어찌한다...어렵네요."
"여기까지온것도,그의귀환에단서가될만한것을찾아온것때문이었습니다.거기에더해종속계약까지맺지않았다면,그는저를받아들여주지않았을겁니다."
에이린의얼굴이조금펴졌다.
"어려운선택을하셨네요.엘프의긍지를저버리고자신을바칠선택을하시다니..."
"그때는,그가용사라는것을알고있었으니까요.게다가그냄새도어느순간부터혐오가사라져..."
"그래서,그가당신을안았나요?"
"네?"
네르웬은아무말도하지못했다.그상황에왜그걸물어보는건지이해할수없었다.
"묻는말에대답해줘요.당신이이해하지못했다면,천천히대답해줄게요.그가당신을안았나요?"
"그건...아니었습니다."
각오는했지만,그는그녀를안을생각이없어보였다.
"기능에장애가있었나요?"
"확인해보지는못했습니다만...아예여자에흥미가없는건아닐겁니다."
아주가끔,여행중에진한남자의냄새를맡은적이있었다.물로는씻겨나가지않는지독한냄새를.
그가몸을파는여자와관계를가진적은없었지만,기능에장애가있는건아닐것이다.
"그냥...저를싫어하는것같습니다."
좋은감정을가질이유가없었다.여행에동행한것도억지를부려얻은결과였다.
네르웬이쓸모없는존재가되는순간,그는바로그녀를내칠것이다.
"아쉽네요."
에이린은허탈한미소를지었다.계획은어긋났다.
누구의잘못이라고할수는없었다.용사가소환과동시에자신의힘을타인에게양도할거라고는누구도생각하지못했을테니까.
하지만누군가는책임을져야했다.무지는변명이될수없다.
"네르웬."
나지막이그녀를부르는에이린의목소리에,네르웬은움찔하며몸을떨었다.
"당신은큰잘못을저질렀어요."
"그건..."
"아니요.당신의생각보다더많이,깊게.아마세계수안의엘프들이당신을죽이고싶어할지도모르겠네요."
"그정도입니까?"
"그이상이에요."
에이린은작은복수를떠올렸다.
공동체에,세계수에도움이되고싶어하는것은모든엘프들이태어날때부터지니는본능이다.
이기심을극복하고,헌신과사랑을만들수있게하는엘프의특징.
그게지나쳐보통은다른이들을깔보는오만을가지게되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그건절대빠져서는안될엘프의본능이었다.
"궁금하시면,알려드릴수는있겠네요."
자신이세계수에폐를끼쳤다는것을깨닫는다면,엘프는죄책감에몸부림치게되리라.
"그,그렇습니까?"
"처음부터,'정상'으로돌아오고싶다고하셨죠?왜당신이이상했는지알고싶다고도하셨고..."
네르웬은에이린의미소에서불길한감각을느꼈다.하지만,피하려한다고피해질일은아니었다.
"예.알고싶습니다."
"하지만,알게되면무를수없어요.제가원하든원치않든,당신에게벌이필요해질테니까요."
"필요한일이라면,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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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녀가있었다.
남부럽지않은귀족집안으로태어나서,행복한삶을살았던소녀가.
태어나자마자부모를잃었다는것때문에다른이들의안타까움을사기도했지만,정작그녀자신에게는큰문제가아니었다.
그녀에게는할아버지와할머니가있었다.그어떤누구보다도그녀를사랑해주고,아껴준사람들이.
하고싶은모든것을할수있었다.풍족한영지와발달된상업,선대가만들어준업적은사치스럽고풍족한삶을누릴수있게해주었다.
영지민들을쥐어짜지도않았고,다른이들과마찰을빚을필요도없었다.그녀의세상은아름다웠고,모두가그작은아이를좋아했다.
전쟁도없었고무장한산적도거의없었으니,그녀를불행하게만들만한것은세상에존재하지않았다.
딱하나,시간을제외하면.
"할아버...지?"
아무리좋은것을먹고편히쉬더라도,시간은냉혹하게그들의생명을갉아먹었다.
어린소녀는이해할수없었다.이렇게좋은사람이,친절한사람이,아무잘못도하지않은사람이죽어야한다는것을.
"괜찮다.충분히살았고,행복하게살았어."
객관적으로는,노인의말이옳았다.운과실력,노력과위치가따라준덕에그들은아무탈없이행복하게살았으니까.
마치모험담에나오는기사와공주의뒷이야기처럼,그들은'오래오래행복하게살았다.'
마지막순간까지함께병상에누워,그들이이뤄낸것을바라보며영원한잠을준비할수있었다.
하지만,그게영원하지는않았다.
소녀는그의말에거짓이담겨있다고느꼈다.
미련이남아있다.아직도자신을사랑하고있다.
더해주지못한것에아쉬움을느끼고있다.
그녀가더자라나어엿한레이디가되고,좋은사람과만나고,맛있는것을먹고,귀여운아이를낳는것을보지못해한스러워하고있다.
그럼에도불구하고,그들은떠난다.
그저인간의수명이한정되어있다는이유만으로.
"안돼.할아버지,죽으면안돼요.왜,왜..."
"사람이라면어쩔수없는거란다.너도알고있잖니."
"그런게있을리가없어요.노력하면,어떻게든..."
하고싶은건전부할수있었던그녀는,처음으로무력감과절망감을느꼈다.
"고맙다...파시어.그래도,앞으로행복하게잘살수있지?"
"저는잘할수있어요.할수있으니까..."
"그러면나는만족한다.아무렴,잘할수있지.누구손녀인데.잘할수있을거야..."
아주느긋하게,천천히,하고싶은말을모두끝낸다음에야그들은눈을감았다.
호상이었다.이미다른이들보다훨씬오래산그들이고,마지막순간까지편안했으니까.
하지만파시어에게는아니었다.남겨진사람은,그들이없는세상을살아가야한다.
그렇게소녀는마법사가되었다.그슬픔을누구도다시겪게하지않겠다는,숙원을가지고.
/////
생명이었다.파시어는이걸느끼며,엘프들의기술에경외심을느꼈다.
속이텅빈나무가살아있다는것도경이로웠지만,더놀라운건이들의설계와기술력이었다.
모든생명의목적은그번식과유지다.하지만이집은명백히목적이뒤바뀌어있었다.
공간을확보하기위해,비효율적인구조를나무에게강요해야한다.그러고도그생명에는아무런지장이없어야한다.
아마이크기와나뭇잎의개수마저,씨앗이심어질위치와목적까지정해두고키운나무일것이다.
영생을목표로삼았을때,그녀가처음눈을돌렸던곳은엘프의기술이었다.
수명을측정할수없을정도로오래사는종족이다.고대의엘프중몇몇이아직까지살아남아어느전투에서모습을드러냈다는소문은,현대에도심심치않게들을수있었다.
어떻게든그들과친해져그비밀을파헤치려했지만,마탑의주인인그녀마저도이마을에침입하는건자살행위나다를바없었다.
"그래도,이렇게오게될줄은몰랐지만..."
혼잣말을하는그녀의등뒤에서,남자의목소리가들렸다.
"무슨문제라도있나?"
그사람이었다.
그녀를이해하지못하는사람중에서,몇안되는파시어를이해하고격려해주었던사람.
"그냥혼자중얼거렸을뿐이다.오래살면잔말이많아지지."
그의안색이복잡했다.파시어는,그의본질이변하지않았다는것을느꼈다.
남에게무언가해주지않고는버티지못했던사람이다.구할수있는사람을구하지않으면잠을이루지못했던사람이다.
흔들리고있었다.그녀에대한증오와원한이불쑥치솟아얼굴을찡그린다.
작은아이를봤을때느낄법한측은함과동정심이갑자기떠올라,그걸숨기기위해얼굴을돌린다.
그가용사이기때문이아니었다.에네렐은,그저그였다.
등을돌려멀어지는그의뒷모습을바라보면서,파시어는잠시감상에잠겼다.
만약을대비해준비한,기나긴영창이끝나지않을정도로만.
아주잠깐,슬픔과연민과후회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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