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75화 (75/217)

〈 75화 〉 세계수­5

* * *

"당황스럽지만이해했어요.돌아가고싶으셨던거군요."

에이린은부드럽게고개를끄덕였다.

"도와드릴수있을것같네요.하지만불사조의유해라니...시간이더필요할거예요."

"다른엘프들의동의를구해야합니까?"

"아니요.이정도부탁을거부할장로는없을거예요.하지만,시간이필요해요."

하긴,처음부터비협조적으로나올생각이었으면여기에나를데려오지도않았을것이다.

"불사조는정령의일종이지만,그보다몇단계는격이높죠.정령사로태어난엘프중에서도일부만이그들과만날수있어요."

"만날수는...있군요."

하지만불사조하나를만나는것으로해결될일이아니다.

엘프가우정으로데려온불사조를사냥했다간,무슨일이일어날지몰랐으니까.

그렇게죽여도유해가남을지확신할수없었으니,그건지나치게위험한도박이었다.

"불사조의유해...전승관리자를만나야할테고,그녀를보게된다해도쉽게답을구할수는없을거예요.죄송하지만,당장은기다리셔야할것같네요."

그래도긍정적인대답을얻었다.

내가언제까지결과를내놓으라고그들을압박할수있는처지도아니었고,여기서이렇게시간이끌리는건어쩔수없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모두를위해희생하고,마왕을처단한용사님의부탁이잖아요?당연히이정도는할수있어요."

나는잠시에이린의눈을피했다.내눈이흔들린다는것을그녀에게들키고싶지않았다.

별거아닌말인데도 생각이상으로감정이요동쳤다.

저건,지나칠정도로내가듣고싶은말이었다.

내희생을인정해주는것,수고했다고말해주는것,그걸감사하다고해주는것.

이게처음들은감사의말은아니었다.용사파티가움직일때,민간인들과가장많이접촉한것은나였다.

용사파티의행보에대한감사든,혹은개인적으로그들을구하기위해움직였던내행동에대한감사든 감사를들을기회는여러번있었다.

하지만그때의나는그걸느낄여력이없었다.그저내일있을행군을대비하기위해,온정신과몸의전원을꺼놓아야만했으니까.

어쩌면그래서,이말이더고맙게느껴지는걸지도모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나는다시정신을차렸다.

사람은그렇게이타적으로생각하지않는다.타인의헌신으로무언가받아낸사람은,쉽게그걸돌려주려하지않는다.

방금전까지정찰대로서헌신한엘프의공로를,한순간에'공동체에해가되는것'으로취급한엘프장로가 진심으로 그걸 감사할 거라고 믿는 것은, 과한 기대였다.

그녀는 내가'듣고싶은말'을해준것뿐이다.

"하지만,아쉽지않으신가요?"

"...무엇이,아쉽다는말씀이십니까?"

"황제가교활한수를쓰고있기는하지만...이미이겨내셨잖아요?"

어지러워지는정신을다잡았다.

내가그녀를모르는것만큼,그녀도나를모른다.생각해보면,내가용사파티와마찰이있었다는건관계자들말고는알지못할비밀이다.

그황제마저정확한전모를파악하는데시간이걸렸다.네르웬이따로엘프들과연락한게아니라면,그녀도피상적인정보만가지고있을게분명하다.

진짜용사가있다는소문은어느정도퍼졌을것이다.황궁에서의소란을완전히묻어둘수는없을테고,크레온도그걸언급했으니까.

내가용사라는것은어떻게알아챈걸까.용사파티와함께다니는청일점을두고찍어본것일지도모르고,혹은용사를파악하는엘프만의방법이있는걸지도모른다.

하지만구체적으로어떤일이있었는지,내가왜돌아가고싶어하는지는아직모르고있는것같았다.

"이겨냈다니요.그럴문제도아니고..."

"저런,옆에따라다니는황녀는전리품이아니었나요?"

잠깐,결과만놓고생각해보자.

나는수도에서그난리를친다음황궁을빠져나왔다.황실은나를추적하지않았을뿐더러황녀를보내주었다.

내대외적인신분은그저남작중하나다.그것도신분이불분명한,실종된인물을황가에서되찾아주었다는증언만가지고있는남작.

그런사람에게황녀가붙을이유가없었다. 누가봐도,내가황제의목줄을잡고있다는생각을할수밖에없다.

"으읏..."

엘레노어가입술을깨물었다.본인앞에서대놓고그녀를전리품이라고하는것은,말도안될만큼무례한행동이다.

엘프가오만할지언정,그녀의말대로오만할필요가없는이들은나름의예의를지킨다.엘레노어를차기황제라고생각한다면,그들이이렇게나올수있을리가없었다.

"아닙니다.어디까지나본인의의사로저를도와주는거예요."

"본인의의사라...그렇군요."

에이린은무언가이해한다는듯이미소지었다.

"정말,돌아가고싶은건가요?"

"네."

거기에대해서는타협의여지가없었다.

"하지만,이미하고싶은모든것을할수있지않나요?돌아갈필요가있어요?"

욕망에대해말하는엘프는좀신선했다.네르웬은책무와품위에얽매여있다고느꼈으니까.

"여자도부도명예도전부챙길수있잖아요?"

"상관없습니다."

지구의문물들은그리웠지만,꼭그것때문에돌아가고싶은건아니었다.

이곳의모든것들이내게미련을남긴다.걸음하나멋대로걸을수없고,숨하나멋대로쉴수없다.

어딜가든과거가남아있다.

용사파티의업적이울려퍼질때마다내가거기서당했던일을떠올리게된다.

하지만그렇다고내가용사라고주장하는것은,나자신도인정하기어려운일이었다.

나는그저힘을빌려줬을뿐,마왕을처단하기위해팔이잘려나가고배가꿰뚫리는상황속에서싸운건엘레노어였다.

이중적이다.여기살아있는모든사람들이내덕에살아있는것같으면서도, 내가 그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피해자로 느껴진다는 게.

"여기가좀...싫거든요."

당연히,용사파티의얼굴을보는것도싫었다.하지만좀아이러니하게도,얼굴은계속보니익숙해졌다.

아무렇지않은건아니었지만,적어도보는것만으로스트레스를느끼지는않았다.

하지만그반대로온갖사소한상황들이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평범한대화,말,나와는상관없는일들을볼때마다 내가당하는것처럼느껴진다. 그녀들에게서 괴롭힘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나를 괴롭게 한다.

이곳에있는한,행복하기는어려울것같았다.

"그렇다면어쩔수없죠.또필요한게있으신가요?"

나는힐긋네르웬의눈치를살폈다.그녀는긴장한건지아무말도하지못했다.

"네르웬이정상이아닙니다."

"정상이아니라니,그게무슨말이죠?"

내가설명해봤자이해시킬수있을리가없었다.네르웬을재촉하자,그녀는마지못해입을열었다.

"장로님,그건...나중에따로설명하겠습니다."

다급한것아니었나.그녀가나보다더절실할거라고생각했던나로서는좀의외였다.

하지만이해할수없는건아니었다.다른파티원들이있는자리에서,그녀의충동과상태를세세하게설명하는것은부끄러울것이다.

"알겠어요.세계수에서원하는바를이루시길바랄게요."

에이린은마지막까지따뜻하게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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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

식사가끝난뒤,네르웬은조용히에이린을불렀다.

그리고,그녀의안색이상상이상으로좋지않다는것을깨달았다.

네르웬은주어진일을한번도실패한적이없었다.태어날때부터엘프중가장강했던전사로서당연한일이었다.

하지만지금,그녀를보는에이린의눈빛은전투를승리로마치고돌아온전사를보는눈빛이아니었다.

"그래요.말씀하세요."

그래도에이린의차가운눈빛과달리,겉으로보이는말은따뜻했다.

혹여나그녀가인지하지못하는실수를해,바로질책당할지도모른다고생각했던네르웬은그제야한숨돌릴수있었다.

"제감정이...좀이상합니다."

"구체적으로는요?"

네르웬은숨을삼켰다.

그녀의이상한상태를설명하려면,그녀가그에게무슨짓을했는지빠짐없이설명해야했으니까.

"처음에는,역겨움이었습니다.그에대해서필요이상으로강렬한냄새를느끼고..."

에이린의표정이더욱어두워졌다.

"그,그만해야하겠습니까?"

"아니요.계속말하세요.여기서말하는'그'는,물론용사님이겠죠?"

"그때는몰랐지만,그렇습니다."

변명할거리는많이있었다.그녀는그가용사라는사실을몰랐고,다른어떤엘프라도용사파티에끼어든짐꾼에게그녀이상의멸시를가했을테니까.

"역겨움을느꼈나요?그럴리없을텐데..."

"정상적인상황은아니었습니다.무언가사악한힘이..."

"아니요.네르웬."

단호하게,에이린은그녀의말을끊었다.

"제생각에이건...일종의사고같네요."

"사고,말씀이십니까?"

"지금당신의상태는완벽하게정상이에요.당신의말이믿기지않을정도로요."

"아닙니다.지금도약간,비정상적인감정의변화가..."

"지금이정상이에요."

에이린은조금도망설이지않고그녀의가설을부정했다.

"그러니,용사파티에서무슨일이있었는지설명해주세요.하나도빼놓지않고,세세하게."

평소의여유로운에이린을알고있던네르웬은,지금그녀가심각할정도로조급한상태라는것을알수있었다.

네르웬은숨김없이자신의죄를털어놓았다.에네렐에게그녀가무엇을했는지,다른파티원들이그를어떻게대했는지.

에이린은묵묵히그걸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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