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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74화 (74/217)

〈 74화 〉 세계수­4

* * *

"먹어라.한번엘프의과일들을먹은자들은,밖에서차마열매를먹을수없게된다는말이있지.그중에서도좋은물건들이다."

네르웬의말은언뜻고압적으로들렸다.

하지만말투에도도한태도가남아있는것과는별개로,그녀가과일을대하는손길이나나를보는눈빛은부드럽고따뜻했다.

"...그래."

그러고보면,이엘프들만이상했던것도아니었다.네르웬의감정변화도만만치않게이상했다.

아직속에서끓어오르는분노가남아있었지만,그렇다고상을엎어버린뒤'너나처먹어라쌍년아.'라고말할수도없는노릇이었다.

그리고,그녀의말처럼이과일은너무나도달콤했다.

현대의과일들도자연에서는일어날수없는수준의품종개량을거친열매들이다.하지만이열매들은그보다몇단계위에있었다.

마치달콤함을주기위해만들어진것처럼강한당분과함께,시원한주스를마시는것같은과즙이입안을거침없이휘저었다.

맛있는건그과일뿐만이아니었다.바삭하고고소한빵이나사냥꾼이잡아들인고기까지어디하나빠질만한음식이없었다.

나무안에서불을써고기를굽는다는게눈으로는이해되지않았지만,이렇게멋들어진음식들을보고있으니아무래도좋았다.

"그,에이린이라는분은어떤분이야?결정권이있는사람인가?"

그리고,좋든싫든그녀와대화할필요가있었다.

상황을파악하지못했다면,정보를모아야한다.그리고가장쉽게믿을수있는정보를얻는방법은결국네르웬에게의지하는것이다.

"그분은장로다.장로가한명은아니니혼자서모든것을결정할수있는건아니겠지만,그래도그분의결정을쉽게무시할수는없을거다."

"거물인가..."

"내가태어나기전부터이미장로였던분이다.그분이이렇게호의적으로대해주신다면,분명방법을찾을수있을거다."

어마어마한나이였다.젊은엘프가장로소리를듣지는않을테니,그네르웬보다도더오랜세월을살아온엘프였다는걸까.

"그게말이돼?저렇게젊은데..."

"엘프는,숨이끊어지는순간까지아름다운모습을유지한다."

그러고보면,늙은엘프를봤다는얘기는들어보지못했다.

"대체얼마나오래살길래..."

"전사나농부는저렇게까지오래살지는못해.하지만이끄는이들은쉽게쓰러지지않는다."

"놀랍네...어?"

세레스가의기양양한모습으로나를향해다가오고있었다.

"제가잘말해뒀어요,주인님!"

그녀의뒤를따라온아이린은괴로운얼굴로자리에앉았다.

"자세한이야기는들었어요.상상이상으로,저희아이들이무례한짓을했더군요."

"화살얘기는들으셨을텐데요."

"엘프정찰대들은,허가없이침입한자들을바로사살하도록훈련받았어요."

예상외로살벌한규칙이었지만,이숲전체가하나의국가라고생각한다면아예말이안되는일은아니었다.

"당연히,상대를파악하지못하고먼저공격했다고생각했어요.하지만네르웬을확인한뒤,그저용사님이질문했다는것만으로화살을쏜건용서받기어려운일이에요."

왜이렇게늦어지나했더니,세레스의증언을듣고있었나보다.

"제가용사라는건몰랐을겁니다."

"그건의미없는일이에요.하다못해성녀나마법사도아니고,용사에게화살을쏘다니."

말로넘어가기는찝찝한일이었지만,이런쓸데없는곳에시간을쓰고싶지는않았다.

"이정도로화가풀릴지는모르겠지만,바로당사자를데려와서사과하도록할게요.그녀는형벌의의미로추방될거예요."

"추,추방이요?"

네르웬이깜짝놀라일어났다.방금전까지고향의안락함을즐기고있었던그녀의안색이순식간에바뀌었다.

"추방이에요.그런과격한엘프는,이공동체에필요하지않으니까요."

"그건좀과하네요."

사실,그형벌이시원하지는않았다.이엘프마을.마을이라기에는너무크니왕국이라고치더라도,겨우밖으로나가방랑할뿐이니까.

엘프라면신변의위협은있겠지만,정찰대라면기본적으로전사로태어난엘프일것이다.

일반적인산적이나용병무리에당할가능성은적고,모험가로활동한다면꽤떵떵거리며살수있을테니까.

그아름다운외모도사그라지지않을테니,좋은남자를만난다면편안하게여생을보낼수도있었다.

하지만,꼭한번쯤은이렇게빈정거려보고싶었다.

"엘프의오만은그...일종의종족적특성아닙니까?인간이탐욕적이고,드워프가키가작은것처럼요.아무래도선처가필요하지않을까요?"

성숙한행동은아니었다.적어도에이린은,겉보기로나마나를예의바른태도로대했으니까.

하지만네르웬을통해쌓여온증오는,모든엘프를향해퍼져있었다.꼭한번쯤은,이들에게인종차별이라는걸해보고싶었다.

"통찰력이뛰어나시군요."

하지만그녀는표정하나바뀌지않은채말을이었다.

"엘프들은오만할필요가있었기에오만한거예요.쓸데없이정이많았다간세계수를버리고다른이들을이숲에들일지도모르잖아요?"

"하지만당신은..."

네르웬이나다른엘프들의태도를보면,그들은용사라고엄청나게특별한대우를해주는것이아니었다.

"말씀드렸지만,저는인도자니까요.오만은진실을보지못하게하고그릇된판단을내리게하지요.그리고용사님같은타종족과만날일도많으니,당연히그걸벗어던져야하겠죠."

불쾌하다.

내가기분이상해야할이유는없다.추방이영미적지근한형벌이라고는해도,분노를참지못해화살한발을쏜것에대한벌이라기에는조금무겁다.

그들이어떤꿍꿍이를가지고있든이사건으로내가피해를볼일은없었다.

하지만이곳저곳에서느껴지는묘한이질감이나를조여들었다.

"에네렐,부탁한다.부디조금만,조금만처벌수위를낮춰다오.제발..."

"네르웬.당신은재판관으로태어나지도않았으며,용사의기분을상하게할권리도없어요."

에이린은네르웬의항의를묵살하고손을튕겼다.위층에서낯이익은엘프하나가내려왔다.

"먼저,사과부터받으시죠."

그녀는두려움에부들부들떨고있었다.동정심이들지는않았지만,호기심은들었다.

외상은없었지만,그녀의상태는누가봐도불안정해보였다.

"죄송합니다!제,제가용사님을몰라뵙고결례를저질렀습니다!"

그녀의이마가나뭇바닥에닿았다.엎드려내자비를구걸하는,아니그마저도하지못하는엘프였지만감흥이느껴지지는않았다.

지루했다.겨우이런사과를받기위해,내시간을소모했던걸까.

"됐어요.가세요."

내가용사가아니었으면받지못했을사과,그녀가내가용사라는사실을알기만했어도하지않아도되었을사과다.

그마저도저기있는세레스가자기일처럼화내주지않았더라면,흐지부지넘어갔을일에불과했다.

"뭐든지하겠다.제발..."

네르웬이내팔을살짝잡아끌었다.그녀의손은부드러웠고냄새는향기로웠지만,그게기분좋지는않았다.

"너는굳이이런일없어도,하라는일은해야하는입장아니었나?"

그녀를용서하지않았다.마치친해진것처럼,아무일도없다는듯이거리를좁히는그녀를보고싶지않았다.

"네르웬,너무밖에오래있었네요.그녀는과도한교만과폭력성을드러냈고,우리사회에피해를입혔어요.이엘프는필요하지않습니다."

부드럽고나긋나긋한어조로,에이린은앞에있는엘프를무자비하게비난했다.

"그렇다면적어도,형벌이아닌일반추방으로해주십시오!그걸로충분하잖습니까!"

"그게다른가?"

"다르다!단순히쫓겨나는것이아니라,그건,그건..."

"제가설명하겠습니다."

당장이라도달려들것처럼절박하던네르웬은,장로의목소리에우뚝멈췄다.

"공동체에필요하지않은엘프라면그저쫓아내면그만이지만,그는엄연히폐를끼친엘프입니다."

이쯤되니,그들이내게뭘요구할지무서워지기시작했다.살인미수에대한죗값을치르게하려는게아니라,단순히내기분을상하게하려고이런짓을했던거라니.

"엘프의몸은귀중합니다.충분한대가를지불할이들은널려있지요.이곳에서는금화가광물에불과해도,그대에게는중요할테니,피해에대한배상을할수있을거예요."

잠시,나는그말의의미를곰곰이생각해야했다.

"보아하니,네르웬과도그런관계가된것같으신데..."

아니,생각하기싫었다.나와관계없는엘프일뿐이다.쓸데없는사과에이렇게시간을오래끈것이실수였다.

"됐어요,이런이야기에시간을쓰고싶지않습니다."

더이상기다리고싶지않았다.

"본론부터말하겠습니다.저는제고향으로돌아가야합니다.다른세계로."

"네...네?"

"귀환술식에재료가필요합니다.불사조의유해.구해줄수있습니까?혹은,그에따른정보를줄수있습니까?"

이제야좀대화가되는것같았다.

오래머물생각도없었고,이곳에서무언가이룰만한일도없었다.

그냥돌아가고싶었다.

"도,돌아가신다니요.제국에귀환술식이준비되어있던것아니었나요?"

"...누가그걸한번실패했거든요."

"맙소사."

"다른건다필요없습니다.가능합니까,불가능합니까.혹은제가그걸위해무언갈해드려야하는겁니까?"

처음계획은이게아니었다.네르웬이면모를까,엘프들은내게무언가해줄의무가없었다.

최대한정중하고부드럽게부탁하려했다.하지만,여기서무의미한말로시간을소모하는건참을수없었다.

에이린의당황한표정은순식간에사라졌다.그녀는손을휘저어화살을쏜엘프를내쫓았다.

드디어,대화를할준비가끝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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