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작별을 앞둔 용사 파티가 내게 집착한다-72화 (72/217)

〈 72화 〉 세계수­2

* * *

분위기가매서웠다.쉽게해결될일같지는않았다.

"저분은용사다.세계수에구할것이있어오셨다!"

용사를존중하는것은엘프도마찬가지였다.그게아니었으면,세계수의대전사인네르웬이용사파티로들어오는일은없었을테니까.

하지만인간보다는그존경이약할수밖에없었고,용사로서의권위도미약할수밖에없었다.

마왕의침공을눈앞에서막아야하는제국과달리,엘프들에게마왕의침공이란다소거리감이있는사건이었다.

제국의권위와여신교단의영향으로용사를숭배하다시피하는인간들과달리,다소데면데면한감이있었다.

"그렇다면다른분들도?마왕은퇴치되었던것아니었습니까?"

그래도용사의이름값을무시할수는없었는지,그들의태도가조금누그러졌다.

"마왕은퇴치되었지만,이분은아직해야할일이남아있다."

"그건엘프를위한일입니까?"

엘프정찰대는엘레노어를바라보며단호하게질문했다.엘레노어는그시선을피했고,다시대답한것은네르웬이었다.

"그건아니지만,꼭필요한일이다."

활을든엘프의표정이어두워졌다.고민이많아진것같았다.

"...저는당신을믿습니다만,외부인을들이는것은아무리당신이라해도엘프장로의허가를받아야합니다."

"알고있다.기다리고있을테니보고하도록해라."

엘프하나가손을휘젓자,그녀의길고가느다란손에서바람을타고정령하나가나타났다.

깃털끝은바람으로되어있고,머리는나뭇잎으로만들어진새의형상을한정령은소환자에손에얼굴을비볐다.

"출발해.장로님께알려줘."

이것저것설명하지도않은채,그녀는손을들어그새를하늘로올려보냈다.정령은세계수를향해바람처럼날아갔다.

"신기하네..."

정령사를처음본것은아니었지만,그녀가정령을다루는모습은꽤생소했다.

일반적인정령사들은정령을소환하는데에도시간이더필요했고,저렇게쉽게명령을내릴수도없었다.

"엘프정령사들은원래저런방식을쓴단다."

파시어는슬쩍내눈치를보더니말을꺼냈다.그녀는자신이아는것을설명하지않으면답답해서버티지못하는성향이었다.

"다른정령사들의정령술은기본적으로거래다.근본적으로는제물을바쳐마족과거래하는것과다르지않아."

"그렇게는안보이던데..."

"감정도제물이될수있다.신과의기도에서성직자들이믿음을제물로바치는것처럼,정령과의교감과사랑도제물이되지."

셀리아의표정이조금굳어졌지만,파시어는아랑곳하지않고말을이었다.

"하지만엘프는다르다.정령사로태어난엘프들은존재자체로정령에게사랑받지.그때문에다른종류의정령들을두루다룰수는없지만,그정령과의유대와정령의강력함은믿을수없을정도로강하다."

태어날때부터정령사라는건가.확실히,편지를발에감아주거나명백한명령을구사하지도않고정령에게의사를전달하는건꽤놀라웠다.

"오래걸리나요?"

마침눈이엘프와눈이마주친나는,시간이얼마나걸릴지물었다.

날아간정령의속도를보면,코앞인세계수에연락이들어가는속도가느릴것같지는않았다.

하지만엘프장로의허가라는게얼마나오래걸릴지는모르는일이다.

이세계의행정처리를현대의기준에서바라볼수는없었다.당장마왕이코앞에있는상황에서도촌장이회의를시작하면결론이쉽게나는꼴을본적이없었다.

게다가상대가엘프라면,시간관념이좀비틀려있을수도있었다.그게아니라도,우리를곱게볼이유는없었다.

나는엘프를만난적이없었다.그다지믿고싶은가정은아니었지만,네르웬이엘프중에서는그나마인성이괜찮은수준일지도몰랐다.

엘프는배타적이고권위적인종족이다.이건어떤서적과증언에도일치하는사실이다.

집단밖에나와서대화나모험이라도해본네르웬같은엘프가조금이나마더사회성이나을수도있었다.

"네놈따위가끼어들일이아니다,인간."

말보다엘프의화살이빨랐다.내얼굴에서한뼘정도거리를두고지나간화살은,땅에박혀몸부림치고있었다.

"어?"

이건좀위험했다.그녀에게살의가없기때문이기도했지만,하도네르웬의엄호를받다보니'엘프의화살을피하지않는'습관이들어버렸다.

엘프들이어설프게화살을쏠거라는생각은들지않았지만,그래도네르웬과비견될만한궁사는없을것이다.이걸피하지않았다니,위험한짓을했다.

"이거,싸우자는거맞지요?"

아직무기를뽑지않은사람은나밖에없었다.엘레노어는검을뽑았고,네르웬은활을겨누었으며,파시어가들어올린지팡이옆에는검은화염이이글거리고있었다.

"무례를범한것은네놈이다.이신성한땅에서허가되지않은질문을하다니,너는그더러운입으로이축복받은숲을더럽혔다."

"네르웬,원래...보통이런식이냐?"

혹시나다른엘프들의편을들까봐바로그녀를경계하고있었지만,오히려가장강경하게엘프들을막고있는것은네르웬이었다.

파시어는결국준비되지않은마법사였고,엘레노어가어느정도회복되었다고해도검사의공격은거리를좁힐필요가있다.

하지만네르웬의활은다르다.본래이마을출신이었으니,저엘프들도그녀의활이얼마나위협적인지알고있을것이다.

손가락하나까딱하는순간그녀의손에서날아간화살이엘프의심장을꿰뚫으리라는것은,오만한그들이라도알수있는사실이었다.

"원래이런식이냐?"

나는어이가없어네르웬에게핀잔을줬다.네르웬은그녀답지않게고개를푹숙였다.

"말투는그렇다치고,화살부터날릴줄은예상하지못했다.미안하다.아무래도어린엘프들이라,좀..."

네르웬도엘프중에서는엄청젊은편이라고알고있었는데,겉보기로는다큰엘프들을어리다고감싸주는걸보니뭔지모를위화감이들었다.

"욕을하는것까지는일상적인일이라이거네..."

내게활을겨눈엘프는치를떨며소리쳤다.

"네르웬!당신은세계수의대전사입니다.그품위를지키지않으면,당신보다낮은모든엘프가권위를잃게됩니다!"

"이분은용사다.내가말을높인다한들엘프와의권위와는떨어질일은없다."

"저희도용사가누군지는알고있습니다.아무리바깥세상에관심이없다고해도,이번대의용사가여자라는사실정도는압니다!"

엘레노어와눈이마주쳤다.그녀는할말이없다는듯고개를푹숙였다.

내가용사라고억지로설득하고싶지도않았다.저태도를보면,내가용사라고해도한번뽑아든활을순순히놓아줄것같지도않았다.

"됐으니까,일단무기부터내려놓죠."

죽일수는없다.지금그들을죽여서얻는것은없다.차라리등을돌려숲을나오는게나을것이후일이라도기약할수있는방법일것이다.

하지만,내생각이상으로네르웬의통제력이약했다.적어도그녀가함께하는동안은이런소란에휩쓸리지않을것같았다.

가장강한전사일지라도,결국실권은엘프장로들이가지고있기때문일지도몰랐다.

"어림없는소리!인간주제에,함부로고귀한종족에게질문한것을사과해라!그렇게꼿꼿이머리를들고다니겠다면,네르웬의자비도너를구해주지못할것이다!"

"거참..."

"무례하구나.고귀하지도숭고하지도않은엘프.머릿속에지성이라고는존재하지않으니,네게주어진혈통과세월이아까울따름이다."

잠깐잊고있었다.용사파티의인성도,그다지좋다고말할수있는편은아니었다.

"용사여,태워도되겠나?이숲이반쯤타고나면,저나이만많은꼬맹이들도인간의언어와예의범절을배울수있을게다."

자부심이라고는이쪽도지지않았다.파시어가나를중요하게생각한다면,나에대한모욕을그녀에대한모욕처럼받아들일것이다.

어느정도는,시원하긴했다.

그녀혼자서모든엘프와싸워이길거라고는생각하지않는다.하지만,이곳의모든나무가엘프의주술로보호받고있는것은아닐것이다.

마탑으로돌아간뒤필요한재료들을모으고,한달정도준비한다면세계수를둘러싸고있는숲을반으로줄일수있을것이다.

"어딜감히!"

"네놈은선을넘었다,작은마법사!"

하지만당장눈앞에있는엘프들은,분노에가득차파시어를노려봤다.

일이꼬였다.이상황을어떻게해결해야할까고민하던와중,묘한기척이느껴졌다.

무언가,오고있었다.아니,와있었다.

"세계수에잘오셨습니다."

새로나타난엘프하나가,공손하게허리를굽혔다.

엘프들이다그렇긴하지만,그녀도말로설명하기어려울정도의아름다움을가지고있었다.

엘프들을늘어놓고보니개성은조금부족했지만,모든여자들이어디를어떻게봐도아름다운존재라는것은부정할수없을정도로.

"용사님...지금은,에네렐남작님이라고불리고계시던가요."

차분하고성숙한몸을가진그녀였지만,몸에서느껴지는기운도만만치않았다.

단순한싸움이라면결국네르웬보다못하겠지만,다른엘프들의반응을보면꽤권위있는엘프임이분명했다.

"세계수에오신것을환영합니다.부디편히지내시길."

그엘프는생긋생긋웃으며나를맞이했다.엘프정찰대들도,심지어는네르웬도상황을이해하지못했다는것처럼멀뚱멀뚱나를바라보고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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